영화 <분노의 포도> 1940년
[1]
사람들은 집에서 나와 뜨겁고 따금따금한 공기의 냄새를 맡고는 코를 막았다. 아이들도 집에서 나왔지만 비가 내린 뒤처럼 뛰어다니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남자들은 울타리 옆에 서서 망가져 버린 옥수수밭을 바라보았다. 옥수수는 빠르게 말라가고 있었고, 엷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초록색이 살짝 보일 뿐이었다. 남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을 많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여자들이 집에서 나와 남자들 옆에 서서 이번에야말로 남자들이 완전히 주저앉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았다. 여자들은 몰래 남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른 것이 남아 있는 한 옥수수는 포기해도 되니까. 근처에 서 있는 아이들은 맨발로 흙에 그림을 그리면서 어른들이 주저앉는 것은 아닌지 안색을 살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얼굴을 홀깃홀깃 보다가 발가락으로 흙에 조심스레 선을 그렸다. 말들이 물통으로 다가와서 물속에 코를 들이밀자 표면을 덮고 있던 흙먼지가 씻겨 나갔다. 한참 후, 이를 지켜보던 남자들의 얼굴에서 망연한 표정이 사라지고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이 나타났다. 여자들은 이제 남자들이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것, 위험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남자들이 대답했다. 나도 몰라. 하지만 괜찮았다. 여자들은 알 수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들도 알 수 있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남자들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여자들은 자기 일을 하러 집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의 태도가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태양의 붉은 빛이 엷어졌다. 태양은 먼지 담요를 쓴 땅 위에서 이글거렸다. 남자들은 자기 집 문간에 앉아 막대기와 작은 돌멩이를 쥔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P13-14)
소작인들은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죠? 소작료를 더 낼 수는 없어요. 지금도 굶다시피 하니까. 아이들은 항상 배를 곯고 있어요. 입을 옷도 없습니다. 찢어진 누더기뿐이에요. 이웃들은 우리랑 같은 형편이니까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부끄러워서 모임에도 못 나갈 겁니다.
마침내 지주의 대리인들이 요점을 꺼냈다. 소작 제도는 이제 소용이 없습니다. 트랙터만 있으면 한 사람이 열두 가구나 열네 가구 몫을 해낼 수가 있으니, 그 사람한테 월급을 주고 추수한 걸 이쪽이 다 갖는 편이 낫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괴물이 지금 아프거든요. 괴물한테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에요.
하지만 그러다가 목화 농사 때문에 땅이 망가질 거예요.
우리도 알아요. 땅이 죽어버리기 전에 빨리 목화를 거둬들여야죠. 그리고 땅을 팔아치울 겁니다. 동부에는 땅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소작인들은 깜짝 놀라 얼굴로 시선을 들었다. 그럼 우리는요? 어떻게 먹고 살라고요?
당신들은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쟁기가 이 앞마당도 훑고 지나가게 될 테니까.
소작인들이 성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할아버지가 이 땅을 개척했습니다. 인디언들을 죽이고 내쫓았다고요. 우리 아버지는 여기서 태어나 잡초도 뽑고 뱀도 죽였습니다. 그러다가 흉년이 와서 돈을 조금 빌렸죠. 우리도 여기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죠. 그때는 은행이 이 땅의 주인이었지만, 우리는 여기 남아서 우리가 키운 곡식 중 일부만 가졌습니다.
우리도 알아요. 다 알아. 이건 우리가 아니라, 은행이 시킨 겁니다. 은행은 사람하고 달라요. 땅을 5만 에이커나 가진 지주도 평범한 사람들하고는 다르죠. 괴물이 되는 겁니다. (P69-70)
트랙터가 도로를 넘어 밭으로 들어왔다. 벌레처럼 움직이지만, 벌레치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힘이 센 거대한 생물이었다. 트랙터는 땅 위를 기어 다니며 이랑을 만들고 흙을 뒤집었다. 디젤 트랙터는 가만히 있을 때는 그냥 빈둥거리는 것 같았지만, 움직일 때는 천둥 같은 소리를 내다가 차츰 단조롭게 우르릉거리는 소리로 잦아들었다. 들창코의 괴물이 흙먼지를 일으킨 다음 그 속에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그들은 울타리와 앞마당을 지나고 도랑을 지나 마을을 곧장 가로질렀다. 땅 위를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며 달렸다. 그들은 산도, 협곡도, 수로도, 울타리도, 집도 모두 무시했다.
운전석의 쇠의자에 앉은 남자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장갑과 보안경을 끼고 코와 입에 고무로 된 방진 마스크를 쓴 그 남자는 괴물의 일부였으며, 로봇이었다. 실린더의 천둥 같은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지면서 공기와 흙 속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흙과 공기도 같은 리듬으로 진동했다. 운전석의 남자는 트랙터를 통제할 수 없었다. 트랙터는 십여 개의 농장을 꿰뚫으며 마을을 똑바로 가로질렀다가 다시 똑바로 돌아왔다. 운전석에서 녀석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지만, 운전사는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트랙터를 만든 괴물, 트랙터를 이리로 보낸 그 괴물이 운전사의 손과 머리와 근육 속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가리고, 그의 입을 막고, 그의 인식을 무디게 만들고, 항의의 목소리를 막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있는 그대로의 땅을 보지 못하고, 땅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발로 흙덩어리를 밟아 보거나 땅의 온기와 힘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는 쇠로 만든 의자에 앉아서 쇠로 만든 페달을 밟았다. 그는 자신의 연장인 기계에 응원을 보내거나, 기계를 때리거나, 저주를 퍼붓거나, 격려하지도 못했다. 그는 땅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간절히 원하지도 않았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한다 해도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쑥쑥 자라나던 어린 줄기가 가뭄에 시들어 버리거나 홍수 때문에 물에 잠겨도 운전사는 트랙터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은행이 땅을 사랑하지 않듯, 그도 땅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트랙터에 찬사를 보낼 수는 있었다. 기계의 외양과 불뚝불뚝 솟아나는 힘과 폭발하는 실린더의 힘에 감탄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트랙터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트랙터 뒤에서는 반짝이는 원반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땅을 잘라 내고 있었다. 그것은 쟁기질이 아니라 수술이었다. 그 원반들이 잘라 낸 흙더미를 오른쪽으로 밀어내면 또 다른 원반들이 흙더미를 잘라 왼쪽으로 밀어냈다. 땅을 잘라내는 원반의 칼날들은 흙에 씻겨서 반짝반짝 광택이 났다. 원반들 뒤에서는 써레가 쇠이빨로 흙을 빗질해 작은 흙덩이를 부숴 땅을 평평하게 골랐다. 써레 뒤에서는 파종기(주물 공장에서 발기한 음경처럼 다듬어진 열두 개의 쇠몽둥이)가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었다. 운전사는 쇠로 만든 의자에 앉아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 똑바른 선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자기 것도 아니고 애정도 없는 트랙터를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이 통제하지도 못하는 힘을 자랑스러워했다. 곡식이 다 자라서 추수를 할 때도 손가락으로 뜨거운 흙덩어리를 부수며 체를 치듯 손가락 사이로 흙을 흘려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씨앗을 직접 손으로 만지거나 작물이 쑥쑥 자라기를 염원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기르지도 않은 곡식으로 만들어진 빵을 먹으려 아무런 교감도 느끼지 못했다. 땅은 쇠뭉치 밑에서 열매를 맺고, 쇠뭉치 밑에서 점점 죽어 갔다. 땅을 사랑하는 사람도 증오하는 사람도 없고, 땅을 위한 기도도 저주도 없었기 때문에. (P73-76)
소작인은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었다.
“참 웃기는 일이구먼.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사람이 자기 땅을 걸으면서 땅을 관리하고, 흉작이 들면 슬퍼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고, 그러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데, 그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더 커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데.”
소작인은 계속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땅을 직접 보지 않거나, 시간이 없어서 땅을 손으로 만져 보지 못하거나, 땅 위를 걸어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그 땅은 그 사람을 닮아 가지,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걸 생각할 수 없어. 땅이 그 사람이니까, 그 사람보다 더 강하니까. 그 사람은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아져. 그냥 재산이 많을 뿐이지. 그 사람은 땅의 하인일 뿐이야. 그것도 원래 다 그런 법이라고.” (P78)
“난 얘기를 하고 싶어. 아무하고도 얘길 못 했으니까. 만약 내가 미쳤다면, 미친 거야. 그뿐이라고. 밤에 이웃집을 찾아가는 묘지의 유령하고 같아. 피터 씨의 집에도 가도, 렌스 씨의 집에도 가고, 조드 씨 집에도 가고, 그런데 집들이 전부 어두워. 쥐가 들끓는 상자처럼 서 있을 뿐이야. 옛날에는 사람들이 거기서 파티도 하고 춤도 췄는데. 예배도 드리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기도 했는데.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생각이 들면 도시로 나가서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져. 그놈들이 트랙터로 사람들을 쫓아내면서 우리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봐. 그놈들이 자기들 ‘이윤’을 지키려고 우리 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보라고. 그놈들은 땅바닥에서 죽어 간 우리 아버지.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첫 울음을 터뜨린 조, 밤에 덤불 속에서 숫염소처럼 날뛰 나를 빼앗아 가버렸어. 그러고서 그놈들이 손에 넣은 게 뭐야? 여기 땅이 나쁘다는 건 하느님도 아셔. 몇 년 전부터 아무도 수확을 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그 개자식들이 책상에 앉아서 자기들 이윤을 지키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두 동강 내 버렸어. 사람들을 둘로 갈라 버렸단 말이야. 우리가 사는 곳은 바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야. 자동차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외롭게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은 완전하지 않아. 더 이상 살아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 개자식들이 마을 사람들을 죽였어.”
그는 여기서 말을 멈췄다. 그러나 그의 얇은 입술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의 가슴은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은 채 불빛을 받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난........ 난 오랫동안 아무하고도 얘길 못했어.”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했다.
“묘지의 유령처럼 그냥 돌아다니기만 했지.”
케이시가 긴 널빤지들을 불 속으로 밀어 넣자 불꽃이 판자를 핥으며 다시 고기 조각들을 향해 솟아올랐다. 차가운 밤공기에 나무가 수축하면서 집에서 커다랗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케이시가 조용히 말했다.
“거리로 나선 마을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네. 그 사람들을 만나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도움이 필요한 거야. 그 어떤 설교에서도 얻을 수 없는 도움이.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데 천국의 희망이 무슨 소용이겠나? 우리 영혼이 슬픔에 잠겨 기가 꺾였는데 성령이 다 뭐야?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 사람들은 죽기 전에 먼저 제대로 살아 봐야 해.” (P107-108)
“아냐, 그런 얘기는 해 버려야 해. 가끔은 자기가 슬프다는 얘기를 하면서 슬픔이 그대로 빠져나가 버리기도 하거든. 사람을 죽이고 싶다가도 얘기를 하면서 속이 후련해지면 사람을 죽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얘기하길 잘 한 거야. 될 수 있으면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지.” (P109)
소작인들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사람은 술을 사서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순식간에 마셔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웃지도 않았고, 춤도 추지 않았다. 노래도 부르지 않았고, 기타를 뜯지도 않았다. 그들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황토 흙먼지를 발로 차올리면서.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기름진 새 땅에서. 캘리포니아에서. 거기서는 과일이 자란다니까. 다시 시작할 거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아이들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당신과 나는, 휴우, 우린 이미 과거야. 한 순간의 분노, 지금까지 있었던 수 많은 일들, 그게 바로 우리라고. 이 땅, 이 붉은 땅이 우리야.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없어. 고물상한데 우리가 팔아넘긴 쓰라린 심정, 고물상이 그 심정까지 가져갔는데도 우린 여전히 속이 쓰리잖아. 지주한테 이제 떠나라는 소리나 듣는 신세, 그게 바로 우리야. 트랙터가 우리 집을 들이 받은 것처럼, 우린 죽을 때까지 그런 신세일 거야. 캘리포니아로 가든 어디로 가든 우린 모두 쓰라린 심정을 안고 행진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맨 앞에 서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사람들이 쓰라린 심정을 안고 똑같은 길을 지나겠지. 그 사람들이 군대처럼 발맞춰 지나가면, 그 자리에 무시무시한 공포가 생겨날 거야.
소작인들은 황토 먼지 속에서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P182-183)
어머니는 물기를 짠 옷들을 장작처럼 탁자 위에 쌓았다.
“사람들 말로는 캘리포니아까지 거리가 2000마일이나 된다고 하더라. 그게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 같니, 톰? 지도를 찾아봤는데, 엽서에 나오는 것 같은 틈 산들을 뚫고 지나가야 하더라. 그렇게 멀리까지 가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니, 톰?”
“모르죠..... 이 주일쯤? 운이 좋으면 열흘에 갈지도 모르고요. 어머니, 걱정은 그만 하세요. 감옥에 있을 때 어땠는지 아세요? 거기서는 자기가 언제 나가게 될지 생각하면 안 돼요. 그랬다가는 미쳐버리니까. 그냥 그날 하루하루만 생각해야 돼요. 아니면 토요일에 열리는 야구 시합을 생각하거나. 감옥에 들어온 지 오래된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지만, 새로 들어온 젊은 애들은 결국 감방 문에 머리를 쿵쿵 찧곤 해요. 앞으로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머니도 감옥의 고참들처럼 한번 해 보시지 그래요? 그냥 그날 하루하루만 생각하는 거예요.”
“좋은 방법이구나.” (P189-190)
“할 수 있어, 여보?”
어머니가 헛기침을 했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생각이 있느냐가 문제죠.”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해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갈 거예요. 하지만 할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겠죠. 우리 식구들이 여기 동부에 산 지 오래됐는데, 조드나 해즐릿 집안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달라거나, 하룻밤 재워 달라거나, 차를 좀 태워 달라는 사람을 거절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었어요. 조드 집안에 못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못되지는 않았다고요.” (P213)
어머니는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짐이 시야를 가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쭉 빼고 먼지투성이 길을 따라 앞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이 너무나 피곤해 보였다.
짐 위에 올라탄 사람들은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집과 헛간, 그리고 아직도 굴뚝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는 연기가 보였다. 아침의 첫 햇살을 받아 창문이 붉게 물들었다. 멀리 가 마당에 혼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곧 언덕이 그들의 시야를 가려 버렸다. 길 양편으로 목화밭이 펼쳐졌다. 트럭은 흙먼지 속에서 고속도로를 향해, 서부를 향해 느릿느릿 기어갔다. (P238)
66번 고속도로는 이주자들의 도로다. 미시시피 강에서 베이커즈필드까지 지도 위에서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 곡선을 그리며 국토를 가로지르는 이 긴 콘크리트 도로는 붉은 땅과 잿빛 땅을 넘어 산을 휘감아 올라갔다가 로키 산맥을 지나 햇빛이 쨍쨍한 무서운 사막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사막을 가로질러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가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계곡들 사이로 들어간다.
66번 도로는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흙먼지와 점점 좁아지는 땅,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트랙터와 땅에 대한 소유권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게 된 현실, 북쪽으로 서서히 밀고 올라오는 사막, 텍사스에서부터 휘몰아치는 바람, 땅을 비옥하게 해 주기는커녕 조금 남아 있던 비옥한 땅마저 훔쳐가 버리는 홍수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은 좁은 도로와 수레가 다니는 길과 바큇자국이 난 시골길을 달려와 66번 도로로 들어선다. 66번 도로는 이 작은 지류들의 어머니이며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P243-244)
“그건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라면 기름 값으로 자기가 자던 침대를 팔 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요. 얘기를 해 보면 다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이사를 가는 거니까. 하지만 이 나라가 도대체 어찌 되려는 건지. 난 그걸 알고 싶소. 이 나가 어찌 되어 가는 거요? 사람들이 더 이상 먹고살 수 없는 지경이 됐으니.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어요. 말씀 좀 해 보시오. 이 나라가 어찌 되어 가는 건지.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누구한테 물어봐도 다들 모르겠다고 해요. 100마일을 더 갈 기름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신발을 내놓는 세상인데, 도통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소.” (P262)
뚱뚱한 남자가 기름 호스를 주입구에 넣으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 구제니 뭐니 말들은 하지만.”
케이시가 말했다.
“난 이 나라를 걸어서 돌아다녀 봤습니다. 다들 똑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가 보기에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항상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 뿐. 사람들은 왜 그걸 생각하지 않죠? 지금도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도 알고 방법도 알아요. 움직여야 하니까 움직이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움직이는 겁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걸 원하니까 움직입니다. 뭔가 좋은 걸 얻으려면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요. 뭔가를 얻고 싶다면 직접 나가서 얻어야죠. 사람들이 화가 나서 싸우려드는 건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난 이 나라를 걸어서 돌아다니면서 당신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뚱뚱한 남자가 펌프로 차에 기름을 넣자 펌프 계기판의 바늘이 움직이며 기름의 양을 기록했다.
“맞아요.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되는 거요? 난 그걸 알고 싶소.”
톰이 짜증을 내며 끼어들었다.
“그건 절대 알 수 없어요. 케이시가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당신은 계속 같은 질문만 하고 있으니. 당신 같은 사람들을 전에도 본 적이 있소. 그건 질문이 아니라 그냥 노래 같은 거야. ‘우리가 어떻게 될까?’ 이런 노래. 당신은 답을 알고 싶어 하는게 아니오.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움직이고, 사방에는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쩌면 당신이 금방 죽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요. 당신 같은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봤어. 당신은 뭘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오. 그저 자장가 삼아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지. ‘우리가 어떻게 될까?’” (P263-264)
“당신한테 큰 소리를 낼 생각은 아니었소. 날이 너무 더워서. 당신도 가진 게 없으니 머지않아 저 길로 나서게 될 거요. 당신은 트랙터 때문에 밀려나는 게 아니라 시내에 있는 예쁜 노란색 주유소들 때문에 밀려나겠지.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어요.”
톰이 미안한 듯이 말했다.
“당신도 떠나게 될 거요.”
톰이 말을 하는 동안 펌프를 잡고 있던 뚱뚱한 남자의 손놀림이 점점 느려지더니 마침내 멈춰 버렸다.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톰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운 없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소? 우리가 벌써 짐을 싸서 서부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소?”
케이시가 대답했다.
“다들 그러니까. 옛날에 나는 악마가 적인 줄 알고 악마와 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악마보다 더한 놈이 지금 이 나라를 붙들고 있어요. 그놈은 우리가 그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를 놔주지 않을 겁니다. 독도마뱀이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걸 본 적 있습니까? 녀석이 몸을 둘로 잘라 놔도 녀석의 머리는 상대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목을 잘라도 마찬가지죠. 드라이버로 머리를 억지로 떼어 놔야 녀석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녀석이 상대를 물고 있는 동안 독이 이빨 자국 틈으로 방울방울 스며들죠.”
그는 말을 멈추고 곁눈질로 톰을 바라보았다.
뚱뚱한 남자는 무기력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이 펌프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소.”
그가 조용히 말했다. (P265-266)
“가끔은 아무리 해도 법을 지킬 수가 없을 때가 있는 법이에요. 남한테 부끄럽지 않게 법을 따르려면 그렇죠. 그럴 수 없을 때가 많아요. 플로이드가 미쳐서 날뛸 때도 법대로라면 우리가 그 아이를 포기했어야 하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가끔은 법도 가려가며 지켜야 해요.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내 아버지를 직접 땅에 묻을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누구 할 말 있나?”
목사가 팔꿈치를 짚은 채 몸을 일으켰다.
“법은 변하지만,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버님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P291)
서부의 땅은 이제 막 시작되는 변화의 물결에 불안해하고 있다. 서부의 주들도 폭풍 전야의 말들처럼 불안해하고 있다. 대지주들도 변화를 감지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변화인지 전혀 알지 못하므로, 대지주들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공격한다.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정부, 자꾸만 성장하는 노동조합 같은 것들을. 이런 것들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임을 모르고서, 원인이 아니라 결과. 원인은 깊숙이 숨어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수백만 배로 늘어난 굶주림. 한 사람의 굶주림. 기쁨과 안정된 삶에 대한 굶주림. 이것이 수백만 배로 늘어 났다. 몸과 마음은 성장하고 일하고 창조하고 싶어 안달하고, 그 열망이 수백만 배로 늘어났다. 사람이 갖고 있는 최후의 분명한 기능, 일하고 싶어 안달하는 몸과 단 한 사람의 욕구 충족 이상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벽을 쌓고, 집을 짓고, 댐을 만들고, 그 벽과 집과 댐 속에 인간 자신의 일부를 넣는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그 대가로 벽과 집과 댐에게서 뭔가를 빼앗아 온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며 단단한 근육을 얻고, 머릿속의 생각에서 분명한 선과 형태를 얻는다. 이 우주의 모든 유기체나 무기물들과 달리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하고, 자신의 생각이라는 계단을 걸어 오르며, 자신이 이룩한 일보다 더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론이 변화할 때나 붕괴할 때, 국민적, 종교적, 경제적 사고의 좁은 뒷골목과 학파와 사상이 성장할 때와 허물어질 때, 인간은 손을 뻗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럽게,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지고 하면서, 일단 앞으로 발을 내디딘 후 뒤로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반 발짝 물러설 뿐이다. 결코 한 발짝을 온전히 물러서는 법은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 이렇다는 것을 이미 아는지도 모른다. 검은 비행기에서 나온 폭탄이 시장에 떨어질 때, 포로들이 돼지처럼 찔려 죽을 때, 짓뭉개진 시체들이 흙먼지 속에서 추악하게 말라 갈 때, 그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발을 내딛지 않았다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갈 때의 고통이 그렇게 생생하지 않았다면, 폭탄도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목이 베여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폭격을 하던 사람들이 살아 있는데도 폭탄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때를 두려워하라. 폭탄 하나하나는 정신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대지주들이 살아 있는데도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를 두려워하라. 패배로 끝난 파업 하나하나가 누군가 발을 내디뎠다는 증거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고통받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 때문에 죽으려 하지도 않는다면 그때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의 근간이므로, 이것이 이 우주에서 독특한 존재인 인간 자신이므로.
서부의 주들은 새로 시작되는 변화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캔자스와 아칸소,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한 가족이 땅을 떠났다. 아버지가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이제 그 은행이 땅을 원한다. 토지 회사, 혹은 토지를 소유한 은행은 트랙터를 원한다. 그들은 땅 위에서 평범한 가족들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트랙터가 나쁜 것인가? 길게 고랑을 그리며 땅을 갈아 엎는 그 힘이 잘못된 것인가? 만약 이 트랙터가 우리 거라면 트랙터는 좋은 것이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라면. 만약 우리 트랙터가 길게 고랑을 그리며 우리 땅을 갈아엎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내 땅이 아니라 우리 땅을 갈아엎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한때 우리 것이었던 이 땅을 사랑한 것처럼 트랙터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트랙터는 두 가지 일을 한다. 땅을 갈아엎는 일과 우리를 땅에서 쫓아내는 일. 이 트랙터는 탱크와 거의 다르지 않다. 둘 다 사람들을 위협하고 상처를 입혀서 쫓아내 버린다. 우리는 이 점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땅에서 쫓겨난 한 사람, 한 가족. 녹슨 자동차가 삐걱거리면서 서부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린다. 나는 내 땅을 잃었다. 트랙터 한 대가 내 땅을 빼앗아갔다. 나는 혼자서 혼란에 빠져 있다. 밤이 되면 한 가족이 도랑에서 야영을 하고, 또 다른 가족이 차를 몰고 들어와 천막을 꺼낸다. 두 남자는 쭈그려 앉았고, 여자와 아이들은 귀를 기울인다. 이것이 중요하다. 변화를 싫어하고 혁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쭈그리고 앉은 두 남자를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그들이 서로를 증오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하게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문제의 싹이 여기 있다. 이것이 접합제다. 여기서 ‘나는 나의 땅을 잃었다.’라는 말이 변질되니까. 세포가 분열하면서 당신이 싫어하는 것이 자라 나온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잃었다.’로 바뀌는 것이다. 이건 위험하다. 두 남자는 이제 혼자 있을 때만큼 외롭지도 않고 당혹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나한테 식량이 조금 있다.’로 발전하면, 이미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문제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이제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이 땅, 이 트랙터는 우리 것이다. 도랑에 쭈그리고 앉은 두 남자, 작은 모닥불, 냄비에서 끓고 있는 돼지고기, 돌처럼 굳은 눈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여자들. 뒤에서는 아이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에 영혼의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밤이 내린다. 아기는 감기에 걸렸다. 자, 이 담요를 가져가, 양모 담요야. 우리 어머니 것이었지만.... 아기를 위해서 가져가. 이것이 폭발의 시초다. 이것이 시작이다.‘나’에서 ‘우리’로 변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을 소유한 당신이 이점을 이해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인과 결과를 분리할 수 있다면. 페인, 마르크스, 제퍼슨, 레닌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소유라는 것이 원래 사람을 ‘나’속에 고착시켜 ‘우리’로부터 영원히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서부의 주들은 새로 시작되는 변화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필요가 생각을 자극하고, 생각은 행동을 불러온다. 50만 명의 사람들이 이주하고 있으며, 마음이 들뜬 100만 명이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1000만 명이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트랙터들은 텅 빈 땅에서 무수한 고랑을 파며 땅을 갈아엎고 있다. (P313-317)
“목사님은 뭔가 근사한 말만 하려고 해요. 뭐, 한번 해보세요. 저는 연설 듣는 거 좋아하니까. 교도소장은 항상 연설을 했죠. 들어 봤자 우리한테 손해날 건 없는 얘기였는데, 교도소장은 연설을 하면서 정신없이 흥분하고 했어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
케이시는 마디가 굵은 긴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지금 뭔가가 벌어지고 있고, 사람들도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지. 자네 말처럼 사람들은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어. 자네 말처럼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생각도 안 하고. 하지만 다들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똑같은 방향으로. 잘 들어보면 움직이는 소리, 살금살금 움직이는 소리, 바스락대는 소리..... 그리고 불안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일이 뭔지 전혀 모르고 있지. 서쪽으로 가는 이 사람들 때문에...... 홀로 남은 그 사람들의 땅 때문에 뭔가 일이 벌어질 거야. 이 나라를 통째로 바꿔 버릴 일이 벌어질 거야.”
톰이 말했다.
“그래도 저는 한 번에 한 발짝씩 나아갈 뿐이에요.”
“그래, 하지만 울타리가 나타나면 자네는 그 울타리를 넘겠지.”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면 넘어야죠.”
케이시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최선의 방법이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구먼. 하지만 울타리에도 종류가 많아. 나처럼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울타리를 넘는 사람도 있어...... 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넘는 사람들.” (P362-363)
이주하는 사람들이 탄 자동차들이 길가에서 기어 나와 국토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고속도로로 올라서서 서쪽으로 향했다. 밝은 햇빛 속에서 그들은 마치 벌레처럼 서쪽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어둠이 내리면 그들은 잠자리와 물이 있는 곳 근처로 벌레처럼 모여들었다. 그들은 외로움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모두들 슬픔과 근심과 패배로 가득한 곳에서 왔으므로, 모두들 실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있었으므로, 서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주기도 하고,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새로운 땅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어떤 가족이 샘 근처에 천막을 치면 또 다른 가족이 샘과 동료를 찾아 근처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이미 두 가족이 시험해 보고 괜찮다고 판단한 그 장소에 또 다른 가족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해가 지면 스무 가족과 스무 대의 자동차들이 그곳에 모이는 경우도 있었다.
저녁이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스무 가족이 한 가족이 되고,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슬픔은 모두의 슬픔이 되고, 서부에서 황금 같은 시절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꿈도 모두의 꿈이 되었다. 어떤 아이가 아프면 스무 가족에 속한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천막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면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밤새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침묵을 지키다가 아침에 기쁨을 함께 나눴다. 전날 밤만 해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줄 선물을 찾으려고 자기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뒤졌다. 저녁에 스무 가족은 불가에 둘러앉아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가 되었다. 저녁과 밤에만, 누군가가 담요에 싸둔 기타를 꺼내 음악을 연주하면 모든 사람들이 밤공기 속에서 노래를 불렀다. 남자들은 가사를 따라했고, 여자들은 콧노래로 멜로디를 따라했다.
밤마다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었다. 가구들까지 완전히 갖춰진 세상. 그 안에서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적을 만들기도 했다. 이 세상에는 허풍선이도 있고 겁쟁이도 있다. 조용한 사람도 있고, 겸손한 사람도 있고, 친절한 사람도 있었다. 밤마다 그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그 세상은 마치 서커스 공연장처럼 허물어졌다.
처음에 사람들은 세상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것에 겁을 냈다. 그러나 세상을 만드는 기술이 점차 그들의 것이 되었다. 얼마 후 지도자들이 나타났고, 법도 만들어졌다. 규칙도 생겼다. 이런 세상들은 점점 서쪽으로 옮겨 가면서 더 많은 것을 갖춰 더 완전해졌다.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경험이 점점 늘어났으므로.
사람들은 어떤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지 배웠다. 천막 안에서 사생활을 누릴 권리, 과거를 가슴 속에 묻어 둘 권리, 말을 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권리, 도움을 거절하거나 받아들일 권린, 도움을 제공하거나 도와 달라는 요청을 거부할 권리, 남자가 구애를 하고 여자가 구애를 받을 권리,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을 권리, 임산부와 병자가 다른 모든 권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권리.
그들은 다른 것도 배웠다. 비록 아무도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없애 버려야 하는 터무니없는 권리가 무엇인지 배웠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할 권리,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소란을 피울 권리, 유혹을 하거나 강간할 권리, 간통을 저지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살인할 권리, 이런 권리들은 분쇄되었다. 이런 권리들이 살아 있다면 그들의 작은 세상이 단 하룻밤도 존재할 수 없었으니까.
그들의 세상이 점점 서쪽으로 옮겨가면서, 누가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규칙은 법이 되었다. 야영장 근처를 어지럽히는 것은 불법이었다. 식수를 더럽히는 것도 무조건 불법이었다. 굶주린 사람에게 함께 먹자고 권하지도 않고 마로 옆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불법이었다.
이런 법률들과 함께 형벌도 생겼다. 형벌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무시무시한 싸움을 벌이던지, 아니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추방하는 것. 추방은 가장 무서운 벌이었다. 어떤 사람이 법을 어기면, 그의 이름과 얼굴이 널리 알려져서 어느 세상에도 들어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P405-408)
“서부 사람들이 왜 당신들을 싫어하는 거죠?”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톰을 바라보았다.
“지금 서부로 가는 중이오?”
“예.”
“캘리포니아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없어요.”
“그럼 내 말을 듣지 말고 가서 직접 보시오.”
톰이 말했다.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가는 데가 어떤 데인지 알고 싶어 하는 법 아닙니까?”
“정말로 그걸 알고 싶다니까 하는 말인데, 나도 몇 가지 의문을 품고 생각을 좀 해 봤소. 캘리포니아는 좋은 곳이에요. 하지만 그 좋은 고장은 이미 오래전에 도둑맞았지. 사막을 건너면 베이커즈필드 근처가 나올 거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 과수원과 포도 나무가 사방에 있으니. 아마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본 적이 없을 거요. 거길 지나면 땅이 평평하고 30피트 깊이의 물이 흐르는 곳이 나올 거요. 아직 개간되지 않은 땅이지. 하지만 당신들은 그 땅을 눈곱만큼도 가질 수 없어요. 그건 ‘토지 가축 회사’ 소유니까. 하지만 사람이 경작하지 않으면 땅은 쓸모가 없는 법이지. 만약 당신이 그 땅에 들어가서 옥수수라도 조금 심었다가는 감옥에 가게 될 거요!”
“좋은 땅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 없다고요?”
“그래요. 좋은 땅이 있는데 그냥 놀리고 있소! 이 얘기를 듣고 조금 화가 나겠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오. 거기 사람들 시선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거든. 거기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볼 때 그 표정에는 ‘난 너희들이 싫어 이 개자식들아.’라고 쓰여 있소. 보안관보들이 나타나 사람을 밀어붙이기도 하지. 길가에 천막을 세우면 그놈들이 나타나서 천막을 옮기라고 할 거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들을 싫어하는 건 무섭기 때문이오. 굶주린 사람은 남은 걸 훔쳐서라도 먹을 걸 구하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 땅을 놀리는 건 죄니까 누군가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젠장! 아직 누구한테 ‘오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죠?”
톰이 말했다.
“오키? 그게 뭔데요?”
“오키는 원래 오클라호마 출신이라는 뜻이었소. 하지만 지금은 더러운 개자식이라는 뜻이지. 인간쓰레기라는 뜻이란 말이오. 그 말 자체에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 말을 할 때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알아요. 하지만 난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소. 당신들이 직접 가 봐야지. 내가 듣기로는 우리 같은 사람들 30만 명이 거기서 돼지처럼 살고 있다고 하더구만. 캘리포니아에서는 모든 것이 이미 누군가의 소유니까. 남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게다가 뭔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을 모두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자기 물건을 놓지 않을 거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 겁에 질려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화를 내는 거지. 당신들이 직접 가서 봐야 해요.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직접 들어 봐야 해. 정말 무지무지 아름다운 곳이지만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소. 너무 무섭고 걱정스러워서 자기들끼리도 친절하게 대하는 법이 없어요.”
톰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발꿈치로 모래를 팠다.
“일을 하면서 돈을 저축하면 땅을 좀 살 수 있을까요?”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자기 아들을 바라보았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아이가 거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 남자가 말했다.
“안정적인 일은 얻지 못할 거요. 매일 먹을 걸 구하려고 애를 써야 할걸. 그것도 기분 나쁜 눈초리로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옆에서. 목화 따는 일을 하게 된다면, 놈들이 반드시 저울 눈금을 속일 거요. 뭐 그러는 사람도 있고 안 그러는 사람도 있지만, 당신 입장에서는 모든 저울에 다 농간을 부려 놓은 것처럼 보이겠지. 제대로 된 저울이 어떤 건지 알아낼 방법도 없고, 어찌됐든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오.” (P427-430)
“변화의 시기라는 게 있어. 그때가 오면 죽음은 모든 죽음의 한 조각이 되고, 출산도 모든 출산의 한 조각이 돼.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과 죽는 것은 똑같은 일의 양면에 지나지 않지. 그때가 되면 세상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게다. 상처를 입어도 별로 심하게 아프지 않을 테고. 이젠 외로운 상처가 아니니까. 로저샨. 네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 되는구나.” (P438)
존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식구들한테 불운을 몰고 오는 것 같소. 내가 멀리 떠나 버려야 할 것 같아. 이대로는 마음이 편치가 않아요.”
케이시가 재빨리 말했다.
“이건 확실히 압니다.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난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어요. 난 행운이나 불운 같은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확신하는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권리가 없다는 것. 사람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어요.”
존이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당신도 모른단 말이오?”
“모릅니다.”
“마누라를 그렇게 죽게 만든 게 죄라고 생각하오?”
케이시가 말했다.
“글쎄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그냥 실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 죄라고 생각하면 죄라고 봐야죠. 사람은 바닥에서부터 자기 죄를 쌓아올리니까.”
“아무래도 다시 잘 생각해 봐야겠소.”
존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벌렁 드러누워 무릎을 세웠다. (P471-472)
[2]
한때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의 영토였고, 그 땅은 멕시코인들의 것이었다. 그런데 누더기를 입은 미국인들이 떼를 지어 이 땅으로 마구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땅을 너무나 갈망한 나머지 이 땅을 빼앗아 버렸다. 수터의 땅을 훔치고 게레로의 땅을 훔친 것이다. 그들은 땅을 빼앗아 나눠 가졌으며, 땅을 놓고 서로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갈망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훔친 땅을 총으로 지켰다. 집과 헛간을 세우고, 땅을 갈아엎어 농작물을 심었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소유물이 되고, 소유물은 소유권이 되었다.
멕시코인들은 나약했다. 그들은 저항하지 못했다. 땅을 원하는 미국인들처럼 광적으로 원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땅을 무단으로 차지한 사람들은 더 이상 무단 점유자가 아니라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들의 자식들이 자라 그 땅에서 또 자식을 낳았다. 이제 그들에게 갈망은 없었다. 땅과 물과 그 위의 아름다운 하늘과 쑥쑥 솟아오르는 초록색 풀과 뚱뚱하게 살이 져가는 식물의 뿌리에 대한 흉포한 갈망, 모든 것을 갉아먹고 찢어 버리는 그 갈망은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땅과 그밖의 것들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이제는 그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옥한 땅과 그 땅을 갈기 위한 반짝이는 쟁기, 그리고 공중에서 날개짓을 하는 풍차와 씨앗에 대한, 창자를 찢어발기는 듯한 갈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새들이 처음으로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없었다. 집 주위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소중한 땅으로 나가기 위해 첫 새벽의 빛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잊혔고, 농작물은 달러로 계산되었으며, 땅의 가치는 원금과 이자를 합한 금액으로 결정되었고, 농작물은 땅에 심기도 전에 거래되었다. 흉작, 가뭄, 홍수도 이제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금전적인 손실을 뜻할 뿐이었다. 그들의 애정은 돈 때문에 점점 식어갔고, 사나움도 이해타산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이제 그들은 농부가 아니라 농작물을 하는 장사꾼, 물건을 만들기도 전에 팔아야 하는 소규모 제조업자가 되었다. 장사꾼 노릇을 잘하지 못한 농부들은 장사를 잘한 사람들에게 땅을 잃었다. 아무리 영리해도, 땅과 농작물을 아무리 사랑해도, 장사를 잘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가들이 농장을 소유하게 되었고, 농장은 점점 커져 갔으며, 농장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제는 농업이 산업이 되었다. 지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로마를 흉내 냈다. 그들은 노예를 수입했다. 비록 노예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중국인, 일본인, 멕시코인, 필리핀인 들을 수입한 것이다. 사업가들은 그들이 쌀과 콩만 먹는다고 말했다. 그놈들은 필요한 게 별로 없어. 임금을 많이 줘도 그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걸. 그놈들 사는 꼴을 좀 봐. 그놈들이 먹는 음식을 좀 보라고. 놈들이 우스운 짓을 하면 추방해 버리면 돼.
농장은 점점 커지고 지주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이제 자기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의 숫자는 한심할 정도로 적었다. 외국에서 수입한 농노들은 매를 맞으며 두려움 속에서 굶주리다가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사납게 굴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농장은 점점 커지고 지주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P9-11)
그런데 땅을 빼앗긴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뉴멕시코, 네바다, 아칸소 등지에서 흙먼지와 트랙터에 밀려난 사람들이 몰려왔다. 자동차에 짐을 가득 싣고 대상(隊商)처럼 길을 나선 이 사람들은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다. 2만 명이 5만 명으로, 10만 명으로, 20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굶주린 배를 안고 불안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산을 넘어왔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으려고 개미떼처럼 허둥지둥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들은 짐을 드는 일이든, 밀거나 잡아당기는 일이든, 과일을 따는 일이든, 작물을 베는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무슨 집이라도 지려고 들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어요. 살 곳도 없습니다. 그들은 개미처럼 허둥거리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구하려 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땅을 원했다.
우린 외국인이 아닙니다. 7대째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에요. 그전에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독일에서 살았지만, 우리 조상 중에는 독립전쟁에 참전한 사람도 있습니다. 남북전쟁에 나갔던 사람도 많고요. 남군과 북군 양편에 모두, 미국인이에요.
그들은 굶주렸고, 사나웠다. 그들은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오로지 증오뿐이었다. 오키들. 지주들은 오키들을 미워했다. 자기들은 연약한 반면 오키들은 강인하다는 것, 자기들은 피둥피둥 살이 쪘지만 오키들은 굶주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납고 굶주린 사람이 무장을 하면 연약한 사람한테서 얼마나 쉽게 땅을 훔칠 수 있는지를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이미 얘기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도시의 장사꾼들도 오키들을 미워했다. 오키들이 빈털터리였기 때문에, 장사꾼들의 경멸을 받는 데 이보다 더 지름길은 없다. 장사꾼들은 정확하게 반대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도시 사람들. 소규모 은행가들도 오키들을 미워했다. 그들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노동자들도 오키들을 미워했다. 배고픈 사람은 반드시 일자리를 구하려 할테니까. 만약 오키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일자리를 구하려 한다면 임금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임금을 깎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돈을 더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땅을 빼앗긴 이주민들이 캘리포니아로 흘러 들어왔다. 25만 명, 30만 명쯤. 그들이 떠나온 땅에서는 새 트랙터들이 땅 위를 오가고 있었고, 소작인들이 강제로 쫓겨나고 있었다. 새로운 물결이 움직였다. 땅과 집을 빼앗기고 더 강인해져서 위험해진 사람들의 물결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재산, 사회적 성공, 오락, 사치품, 은행 거래의 안전성 등 많은 것을 원했지만, 새로 이주해 온 야만인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땅과 먹을 것, 그들에게 이 두 가지는 하나였다. 캘리포니아인들이 원하는 것은 하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오키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길가에 널려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눈으로 보면서 갖고 싶어 했다. 파면 물이 나오는 좋은 땅, 푸르른 땅, 손으로 시험 삼아 흙덩이를 부스러뜨릴 수 있는 곳. 냄새를 맡아 볼 수 있는 풀, 목구멍에서 강렬한 단맛이 느껴질 때까지 씹어 볼 수 있는 귀리줄기. 놀고 있는 땅이 눈에 들어오면 그들은 등을 구부린 채 양배추를 수확하는 모습을, 황금빛 옥수수와 순무와 당근을 수확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P12-14)
사람들은 낡은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일자리를 찾으려고 여러 농장들을 돌아다녔다. 오늘 밤에는 어디서 자야하나? 강가에 후버빌이 있어요. 거기가면 오키들이 우글우글해요.
사람들은 낡은 자동차를 후버빌로 몰았다.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어느 도시에나 변두리에는 후버빌 같은 곳이 있었으므로.
그 빈민가는 물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집이 아니라 천막에서 살았다. 잡초를 엮어 만든 울타리, 종이로 만든 집, 커다란 폐물 거미, 새로 온 사람들은 식구들과 함께 차를 몰고 들어가 후버빌의 주민이 되었다. 그런 마을은 항상 후버빌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가능한 한 물과 가까운 곳에 천막을 세웠다. 천막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의 쓰레기장으로 가서 마분지를 가져다가 집을 지었다. 비가 오면 이런 집들은 녹아서 쓸려가 버렸다. 후버빌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일대를 돌아 다녔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은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자동차 휘발유 값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면 남자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자기들이 본 땅에 대해 이야기했다. (P15-16)
로렌스빌에서 어떤 보안관보가 무단 거주자를 쫓아냈다. 그러나 그 무단 거주자가 저항하는 바람에 보안과보는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무단 거주자의 열한 살짜리 아들이 22구경 소총으로 보안관보를 쏘아 죽였다. (P19-20)
캔자스와 아칸소, 오클라호마와 텍사스와 뉴멕시코에서는 트랙터들이 들어와 소작인들을 쫓아냈다.
캘리포니아에 이미 30만 명이 와 있었고, 지금도 계속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도로들은 물건을 미는 일이든 드는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하려고 개미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 사람이 들 수 있을 만한 짐을 들어 올릴 때마다 다섯 명이 그 일을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한 사람의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있으면 다섯 명이 입을 벌렸다.
대지주들, 소요가 일어나면 땅을 잃을 수밖에 없는 대지주들은 역사를 살펴보고 굉장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재물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 재물을 빼앗아간다는 것.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다 보면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빼앗기 위해 무력을 동원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역사를 통틀어 작은 소리로 비명을 질러 대고 있는 또 다른 사실 하나, 억압은 억압받는 자들을 강하게 만들고 단결시킬 뿐이라는 것. 대지주들은 역사의 이 세 가지 외침을 무시했다. 땅은 더욱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고,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대지주들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엄청난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무기와 독가스를 사는 데 많은 돈을 썼다. 혹시 사람들 사이에서 불온한 소리들이 오가지는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 첩자들도 보냈다. 폭동이 일어나면 짓밟아 버리기 위해서였다. 대지주들은 경제적 변화도 무시했고, 변화를 위한 계획도 무시했다. 폭동의 원인이 계속 존재하는데도 대지주들은 폭동을 분쇄할 방법만 생각했다.
사람들에게서 일을 빼앗아 버린 트랙터, 짐을 운반하는 순환선, 물건을 생산하는 기계, 이 모든 것들이 점점 증가했다. 그래서 고속도로 위에서 허둥거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대지주들에게서 빵 부스러기나마 얻어먹을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며 길가에 널려 있는 땅을 갈망했다. 대지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연합회를 만들어 위협하고 죽이고 독가스를 뿌리는 방법들을 논의했다. 그들은 항상 주동자를 두려워했다.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도자가 하나라도 나오는 날에는 끝장이었다.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의식이 깨어난다면 땅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때는 이 세상의 모든 독가스와 총을 동원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엄청난 재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위대한 존재이자 더 못한 존재가 되어 버린 대지주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향해 달음질쳤다.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파괴해 버릴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한 것이다. 모든 수단, 모든 폭력, 후버빌에 대한 모든 기습 단속, 초라한 천막촌을 으쓱거리며 돌아다니는 모든 보안관보들은 운명의 날을 조금씩 미루면서 결국 그날이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 확고한 사실로 만들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남자들, 날카로운 표정의 남자들, 그들의 몸은 굶주림 때문에 야위었으며, 허기에 맞서 싸우느라 단단해져 있었다. 눈은 음침했고, 턱은 단단했다. 그들 주위에는 풍요로운 땅이 있었다.
저 아래 네 번째 천막에 사는 아이 얘기 들었어?
아니, 내가 방금 돌아왔거든.
그 아이가 자다가 울면서 데굴데굴 구르더래. 식구들은 기생충이 생긴 줄 알고 약을 먹였는데 애가 죽어 버렸다는 구먼. 혀가 까맣게 되는 병이었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라더군.
애가 불쌍하네.
그렇지. 그런데 식구들이 그 애를 묻어 줄 수가 없어서 애가 군립(郡立) 공동묘지에 묻혔대.
아이고, 젠장.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동전들을 조금 꺼냈다. 아이가 죽은 천막 앞에는 작은 동전 더미가 생겼다. 가족들이 그것을 발견했다.
여기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야. 우리는 착한 사람들이야. 하느님. 착한 사람들이 전부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이 오게 해 주세요. 아이들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오게 해 주세요.
지주 연합회는 언젠가 이런 기도가 멈추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가 그들에게는 끝장이었다. (P22-25)
“도대체 왜 사람을 못살게 구냐고요?”
“모른다고 했잖아요. 어떤 사람들 말로는 우리한테 투표권을 주기 싫어서 그런대요.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해서 투표를 못 하게 하려고. 하지만 우리가 구호 기관의 도움을 못 받게 하려고 그런다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 조직을 갖출까봐 그런다는 사람도 있고, 난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거라고는 우리가 항상 시달리고 있다는 것뿐. 두고 봐요. 당신도 알게 될 테니.” (P35)
“고향에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전단을 가져왔어요. 오렌지색 전단. 여기서 농사를 지을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우리 같은 사람들이 30만 명이나 된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전부 그 전단을 봤을걸요.”
“그렇겠죠. 하지만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면, 뭣하러 그런 전단을 일부러 찍어서 돌리겠어요?”
“머리를 좀 써요.”
“그거야 그렇지만 난 사실을 알고 싶어요.”
“이봐요. 일자리가 있고,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달라는 대로 돈을 줘야겠죠. 하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연장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빛이 강렬해지고 목소리도 날카로워졌다.
“그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100명이라고 생각해봐요. 그 사람들한테 전부 딸린 애들이 있고, 그 애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10퍼센트만 있으면 아이들에게 옥수수 죽을 사 먹일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100명이나 돼요. 그럴 때 그냥 5센트만 주겠다고 한다면? 다들 그 5센트 때문에 아귀다툼을 벌이겠죠.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에서 품삯이 얼마였는지 알아요? 한 시간에 15센트였어요. 열 시간 일하면 1달러 50센트. 하지만 거기서 숙식까지 해결할 수는 없으니 자동차 기름을 써 가며 거기까지 가야 했죠.”
그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의 눈이 증오로 번득였다.
“여기 사람들이 전단을 돌린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인부들한테 시간당 15센트를 주면서 절약한 품삯으로 전단지쯤은 얼마든지 찍을 수 있으니까.” (P36-37)
“잠깐 생각을 그만두고 얘기 좀 들어 줄 수 있어요?”
케이시는 길쭉한 목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항상 얘기를 듣고 있지. 그래서 생각을 하는 거야.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금방 사람들의 기분을 알 수 있게 되거든. 항상 그래. 사람들 얘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기분을 느껴. 사람들은 다락방에 갇힌 새처럼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지. 밖으로 나가려다가 먼지투성이 창문에 부딪혀서 날개가 부서져 버릴 걸세.”
톰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20피트 거리에 있는 회색 천막을 바라보았다. 천막을 지탱하고 있는 밧줄에 빨아 널어 놓은 청바지, 셔츠, 원피스가 걸려 있었다. 톰이 조용히 말했다.
“제가 말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이미 알고 계셨군요.”
케이시가 말했다.
“알고 있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무 장비도 없이 우글거리고 있지.”
그는 고개를 숙이며 손을 뻗어서 천천히 이마를 쓸어 올렸다.
“오는 동안 계속 알고 있었어. 우리가 멈출 때마다 그게 보였어. 굶주린 사람들. 고기를 얻더라도 충분히 먹질 못하지.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파지면 나한테 기도를 해 달라고 했어. 가끔 내가 기도를 해 준 적도 있고.”
그는 끌어 올린 무릎을 팔로 감싸 안고 깍지를 낀 다음 다리를 더욱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난 그러면 될 줄 알았네. 기도를 제물로 삼은 거지. 끈끈이에 파리가 달라붙듯이 모든 근심이 기도에 달라붙고, 기도가 하늘로 날아가면서 근심도 같이 가져간다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게 소용없어.”
“기도 덕분에 고기가 생긴 적은 없어요. 고기를 구하려면 돼지 새끼가 필요하죠.”
“그래,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품삯을 올려 주신 적도 없지. 여기 이 사람들은 점잖게 살면서 애들을 점잖게 키우고 싶어 해. 늙어서는 문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젊었을 때는 춤추고 노래하고 같이 자고 싶어 하고 말이야.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일을 하고 싶어 해. 그게 다야. 이 사람들은 그저 피곤해질 때까지 그 빌어먹을 근육을 움직이고 싶어 한다고. 젠장!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P46-48)
“케이시, 여긴 목사들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에요. 여기선 비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여기 사람들은 우리처럼 서부로 오는 사람들을 겁내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겁을 줘서 돌려보내려고 경찰을 보내죠.”
케이시가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왜 나더러 감옥에 가 본 적이 있냐고 물은 건가?”
톰이 천천히 말했다.
“감옥에 있으면, 뭐랄까, 육감이 날카로워져요. 거기 사람들은 죄수들이 많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내버려 두질 않으니까. 기껏해야 두 명쯤 모일 수 있을까. 그래서 느낌으로 많은 걸 알아내게 되죠. 뭔가 일이 터지려고 할 때.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살짝 돌아서 걸레 자루로 간수한테 대드는 일이 터지려고 할 때, 우리는 그걸 미리 알 수 있어요. 탈옥이나 폭동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굳이 누구한테 미리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죠. 이미 육감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
“여기 계세요. 어쨌든 내일까지는 여기 계세요.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아요. 저기 저쪽에서 어떤 젊은 친구하고 얘기를 했는데, 녀석이 코요테처럼 교활하고 영리하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영리해요. 코요테는 자기 일만 신경 쓰면서 순진하고 즐겁게 지내는 척, 남한테 해를 끼칠 생각이 전혀 없는 척하지만, 웬걸, 바로 옆에 닭장이 있지요.”
케이시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뭔가 물어보려다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느느 천천히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무릎을 펴서 다리를 뻗었다.
“그래, 당장 떠나지는 않겠네.”
“사람들이, 착하고 조용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 그 때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있을게.” (P49-51)
이주민들이 계속 움직이면서 살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자그마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사람들, 40에이커의 땅에 의지해서 살아온 사람들, 40에이커의 땅에서 나오는 음식으로 배불리 먹거나 굶주려 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제 서부 전역에서 유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허둥지둥 돌아다녔다. 고속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개울처럼 흘러 다녔고, 도랑 둑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커다란 고속도로에 이주하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중서부와 남서부에는 소박한 농사꾼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산업화의 물결에도 변하지 않았고, 농사에 기계를 사용한 적도 없었으며, 기계가 개인의 손에 들어갔을 때의 힘과 위험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라면서 산업화의 모순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감각은 산업화된 삶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여전히 예리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계들이 그들을 밀어내자 그들은 고속도로로 몰려 나왔다. 이러한 이주의 경험이 그들을 변화시켰다. 고속도로, 길을 따라 생겨난 야영지들,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과 굶주림 그 자체, 이런 것들이 그들을 바꿔 놓았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일 수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바꿔 놓았다. 끝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생활이 그들을 바꿔 놓았다. 그들은 이주민이었다. 또한 사람들의 적의가 그들을 바꿔 놓고,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침입자를 물리칠 때처럼 무리 지어 무장을 했다. 곡괭이를 들고 나온 사람들, 엽총을 들고 나온 사무원들과 가게 주인들, 그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맞서서 세계를 지킨다고 생각했다.
고속도로로 몰려 나온 이주민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서부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재산이 어떻게 될까봐 무서워했다. 배를 곯은 적이 없는 사람들은 배고픈 자의 눈을 처음으로 보았다. 뭔가를 간절히 원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이주민들의 눈에서 욕망의 불꽃을 보았다. 도시 사람들과 온화한 교외의 시골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데 모였다. 그리고 자기들이 좋은 사람이고 침입자들이 나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원래 싸우기 전에는 반드시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야 하는 법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망할 놈의 오키들은 더럽고 무식해. 놈들은 타락한 색광들이야. 저 망할 놈의 오키들은 도둑이야. 놈들은 뭐든지 훔칠 거야. 놈들은 소유권이라는 걸 전혀 몰라.
마지막 얘기는 사실이었다. 재산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재산을 가진 사람의 고통을 어찌 알겠는가? 마을을 지키러 나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놈들이 병을 퍼뜨려. 놈들은 더러워. 놈들이 학교에 다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놈들은 이방인이야. 자네 누이가 그런 놈하고 데이트를 한다면 어떻겠어?
사람들은 스스로를 다그쳐 잔인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무리지어 무장을 했다. 곤봉, 독가스, 총으로. 여긴 우리 땅이야. 저 오키들이 멋대로 돌아다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사실 무장한 사람들도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자신은 이 땅이 자기 소유라고 믿었다. 밤에 훈련을 받은 사무원들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작은 가게 주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서랍에 가득든 차용증뿐이었다. 하지만 빚이라도 있다는 것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사무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난 일주일에 15달러를 받아, 망할 놈의 오키들이 12달러에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며? 작은 가게 주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빚이 없는 사람하고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어?
이주민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계속 흘러 들어왔다. 그들의 눈 속에는 굶주림이 있었고, 욕망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주장도 없고 체계도 없었다. 그들이 엄청난 숫자로 몰려온다는 것. 그들에게 욕망이 있다는 것. 그뿐이었다. 일자리가 하나 생기면 열 명이 그 자리를 잡으려고 싸웠다. 낮은 품삯을 무기로 싸웠다. 저 사람이 30센트를 받는다면, 나는 25센트만 받겠다는 식이었다.
저 사람이 25센트를 받는다면 난 20센트만 받겠소.
아냐, 나는 지금 배고파 죽겠어. 그러니 15센트만 받겠소. 나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할 거요. 당신도 우리 애들을 한번 봐야 해요. 몸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제대로 뛰어놀지도 못해요. 바람에 떨어진 과일이라도 하나 쥐어 주면, 아주 우쭐해져서 난리지. 난 고기 한 점이라도 사기 위해 일을 할 거요.
이건 좋은 일이었다. 품삯은 내려가고, 물가는 계속 높았으니까. 대지주들은 기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더 많은 전단지를 뿌렸다. 그래서 품삯은 내려가고 물가는 계속 높았다. 오래지 않아 우린 다시 농노들을 거느리게 될 거야.
대지주들과 기업들은 또 다른 방법을 고안해 냈다. 대지주가 통조림 공장을 사는 것이었다. 복숭아와 배가 익으면 지주는 과일 값을 키우는 값보다 싸게 후려쳤다. 통조림 공장 사장 자격으로 과일을 싼값에 사들인 다음 통조림 가격을 높게 유지해 이윤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통조림 공장을 소유하지 못한 소규모 농부들은 농장을 잃어버렸고, 그 작은 농장들은 대지주와 은행과 역시 통조림 공장을 소유한 기업들 차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농장의 숫자가 적어졌다. 소규모 농부들은 도시로 이주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돈을 빌려 쓸 곳도, 그들을 도와 줄 친구나 친척들도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고속도로로 나섰다. 도로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이라도 저지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농사는 잘되었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도로로 나섰다. 곡식 창고는 가득 차 있어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구루병에 걸렸고 펠라그라병 때문에 옆구리에서는 종기가 솟아올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자리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P116-120)
“여기 있는 내 땅은 65에이커예요. 혹시 농업 조합이라고 들어봤어요?”
“그럼요.”
“나도 거기 회원이에요. 어젯밤에 회의가 있었는데, 지금 농업 조합을 좌지우지하는 게 누군줄 알아요? 웨스트 은행이에요. 그 은행이 이 계곡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어요. 그리고 자기네 소유가 아닌 땅에 대해서는 대출을 해주고 있고, 그래서 어젯밤에 은행에서 나온 사람이 나더러 이러더라고요. ‘시간당 30센트를 지불하고 계시는데, 25센트로 깎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죠. ‘인부들이 일을 잘해요. 30센트를 받을 만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이제는 품삯이 25센트로 정해져 있어요. 당신이 30센트를 지불하면 상황이 어지러워질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내년에도 예년만큼 대출을 받으실 건가요?’ 이러더라고요.” (P140-141)
“우리를 쫓아내려는 거겠지. 우리가 조직을 만들까봐 겁이 나는 모양이야. 어쩌면 그 사람들 생각이 옳을지도 모르고. 여기 천막촌은 조직이거든. 사람들이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하니까. 이 일대에서 제일 좋은 현악단도 있네. 배고픈 사람들은 가게에서 외상도 조금 그을 수 있다네. 5달러 정도. 음식을 사면서 그 정도 외상을 그어도 천막촌은 끄덕없어. 우린 절대 법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지. 큰 농장을 가지 사람들이 아마 그걸 무서워하는 것 같아. 우릴 감옥에 집어넣을 수 없으니까. 그게 무서운 거지. 우리가 그렇게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면 다른 일도 해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모양일세.”
톰은 도랑에서 나와 눈에 들어간 땀을 닦았다.
“아까 베이커즈필드 북쪽에서 선동가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신문 기사 얘기 들었죠?”
“그럼요. 그 사람들 하는 짓이 항상 그래요.”
윌키가 말했다.
“내가 거기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절대 선동가가 아니에요. 놈들은 그걸 빨갱이라고 부르던데, 도대체 빨갱이가 뭐죠?”
키모시는 도랑 바닥에서 약간 솟아 있던 부분을 평평하게 다듬었다. 그의 뻣뻣한 하얀색 수염이 햇빛에 반짝였다.
“도대체 빨갱이가 뭔지 궁금하다는 사람이 아주 많지.”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우리 천막촌의 젊은 녀석 하나가 그걸 알아냈어.”
그는 삽으로 흙더미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인즈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3만 에이커쯤 되는 땅에 복숭아하고 포도를 기르고, 통조림 공장이랑 와인 양조장도 갖고 있었다네, 그놈은 항상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 ‘망할 놈의 빨갱이들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가 이 빨갱이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여기 서부로 온 지 얼마 안 된 젊은이가 아나 있었네. 그 친구가 어느 날 그런 말을 듣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지.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그랬더니 하인즈가 대답을 했지.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 이 젊은 친구는 그말을 좀 생각해 보다가 다시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지, ‘세상에, 하인즈 씨 전 개자식이 아니지만 만약 빨갱이가 그런 거라면 저도 시간당 30센트를 받고 싶은걸요. 다들 그래요. 하인즈 씨, 그럼 우리는 전부 빨갱이에요.’”
티모시는 도랑 바닥을 따라 삽을 움직였다. 삽으로 흙을 퍼낸 부분에서 단단한 흙이 반짝였다.
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저도 빨갱이겠는데요.” (P147-149)
“누구든 한 번이라도 자선을 받으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속에 상처가 생기죠. 하지만 자선을 한번 받으면 결코 잊지 못하죠. 틀림없이 제시는 자선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래요, 없어요.”
제시가 말했다.
“난 있어요.”
애니가 말했다.
“지난 겨울에, 나랑 남편이랑 애들이 전부 굶고 있었죠.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날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구세군에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우린 배가 고팠어요. 그런데 거기 사람들은 저녁 식사 때문에 우리가 설설 기게 만들었어요. 그 사람들이 우리 체면을 짓밟았다고요. 그놈들, 그놈들이 얼마나 미운지! 아마 조이스 부인도 자선을 받아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게 자선이 아니라는 걸 몰랐을 거예요. 조드 부인, 여기 천막촌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우쭐거릴 수 없어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한테 물건을 줄 수 없어요. 대신 천막촌에 물건을 기부하면 천막촌이 나눠 줘요. 여긴 자선 기관 같은 건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사납고 거칠게 변해 있었다.
“그놈들이 얼마나 미운지 몰라요. 남편이 비굴해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놈들이, 그놈의 구세군이 내 남편을 그렇게 만들었다고요.” (P188-189)
아버지가 말했다.
“변화가 다가오고 있어. 어떤 변화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변화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히 변화가 오고 있어. 뭔가가 들떠 있는 느낌이야. 사람들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불안해 하고 있는 거야.” (P247)
소규모 농부들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빚이 쌓여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무에 약을 뿌리며 농사를 지었지만 아무것도 팔지 못했다. 가지도 치고 접붙이기도 해 주었지만 열매를 따지 못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도 열심히 일하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열매는 땅 위에서 썩어가고 있다. 그리고 포도주 만드는 통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공기를 오염시킨다. 포도주 맛을 좀 봐. 포도 향이 전혀 안 나잖아. 유황, 타닌산, 알코올 맛뿐이야.
이 조그만 과수원도 내년이면 대지주 손에 넘어갈 것이다. 빚이 과수원 주인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까.
이 포도원도 은행 소유가 될 것이다. 오로지 대지주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통조림 공장도 같이 소유하고 있으므로. 배 네 개의 껍질을 벗겨 반으로 잘라서 통조림으로 만드는 비용이 15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통조림 배는 썩지도 않는다. 통조림은 몇 년 동안 버틸 수 있다.
과일 썩는 냄새가 캘리포니아 주 전체로 퍼져 나간다. 이 달콤한 냄새는 이 땅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커다란 슬픔을 보여 준다. 나무를 접붙일 줄도 알고 씨앗을 심어 크고 풍요로운 열매를 길러 낼 줄도 아는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굶주린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른 열매를 먹일 길이 없다. 새로운 과일을 만들어 낸 사람들도 사람들에게 그 열매를 먹일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낼 수 없다. 이런 실패가 커다란 슬픔이 되어 캘리포니아 주를 뒤덮고 있다.
값을 유지하기 위해 덩굴과 나무의 뿌리가 만들어 낸 열매들을 파괴해 버려야 한다. 이것이 무엇보다 슬프고 쓰라린 일이다. 차에 가득가득 실린 오렌지들이 땅바닥에 버려진다. 사람들이 그 과일을 먹으려고 먼 길을 왔지만, 그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냥 차를 몰고 나가서 오렌지를 주워 올 수 있다면, 열두 개에 20센트를 주고 오렌지를 사 먹을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호스를 가지고 아서 오렌지에 휘발유를 뿌린다. 그들은 과일을 그냥 주워 가려고 온 범죄자들에게 화가 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며 과일을 먹고 싶어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색 오렌지 위에는 휘발유가 뿌려진다.
썩는 냄새가 일대를 가득 채운다.
커피를 태워 배의 연료로 써라. 옥수수를 태워 난방을 해라, 옥수수는 뜨겁게 타니까. 강에 감자를 버리고 강둑에 경비를 세워 굶주린 사람들이 감자를 건져 가지 못하게 해라. 돼지를 죽여 묻어 버려라. 그리고 그 썩은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도록 내버려 둬라.
고발조차 할 수 없는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 울음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다른 모든 성공을 뒤엎어 버리는 실패가 있다. 비옥한 땅, 곧게 자라는 나무들, 튼튼한 줄기, 다 익은 열매. 그리고 펠라그라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그냥 죽어 갈 수밖에 없다. 오렌지가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검시관들은 사망 증명서에 사인을 영양실조로 적어넣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일부러 식량을 썩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오면 경비병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감자를 바라본다. 도랑 속에서 죽임을 당해 생선회에 가려지는 돼지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인다. 산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P253-255)
“일부러 아버지 화를 돋우신 거예요?”
“그럼, 남자가 너무 걱정을 하다 보면 그 걱정거리가 간을 먹어 버려. 그래서 머지않아 얼이 빠져 가지고 병석에 드러누워서 죽어 버리지. 하지만 누가 성질을 돋운다고 같이 화를 낸다면, 그건 아무 문제없는 거다. 네 아버지가 말은 안 해도 지금 화가 많이 났어. 이제 정신을 차리실 거다. 문제없을 거야.” (P262)
“좋은 걸 한 가지 배웠네요. 항상 배우고 있죠. 매일, 사람이 곤란해지거나 다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라는 것,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뿐이니까. 그런 사람들 뿐이에요.” (P312)
“감옥은 웃기는 곳이야. 난 뭔가를 찾으려고 애쓰는 예수처럼 광야로 나왔는데, 가끔 그 뭔가를 찾을 뻔하기도 했지.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걸 찾은 곳이 바로 감옥이었어.”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 유쾌했다.
“아주 크고 낡은 감방이었는데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지. 새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던 사람들이 나가고, 물론 나는 그 사람들하고 전부 얘기를 해 봤네.” (P322)
“그래서, 난 점점 깨닫기 시작했어. 감방 안에는 주정뱅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물건을 훔쳐서 들어온 사람들이었지. 그것도 필요하긴 한데 훔치는 것 말고는 달리 구할 방법이 없었던 사람들. 알겠나?”
“아뇨.”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얘기야. 그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 건 그 물건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난 점점 깨닫기 시작한 걸세. 문제를 일으키는 건 언제나 가난이라는 걸. 아직 완전히 깨달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날, 교도소에서 나눠 준 콩이 상했다라고. 어떤 친구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지 그 친구는 목이 터져라고 소리를 질러 댔어. 결국 모범수 하나가 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그냥 가 버리더군. 그래서 우리가 다 같이 똑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네. 감방이 뻥 터져 버릴 것 같았다니까. 아이고! 그랬더니 뭔가 반응이 오는 거야! 간수들이 뛰어와서 먹을 걸 주더라고. 먹을 걸 줬어, 알겠나?” (P323)
“우린 여기 일하러 왔어. 놈들은 5센트를 주겠다고 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그래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쯤에는 2센트 반을 주겠다고 놈들이 말을 바꾸더란 말이야. 그걸로는 먹고 살 수가 없어. 아이까지 키우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우리는 그 돈을 받고 일할 수 없다고 했지. 그랬더니 놈들이 우리를 쫓아내는 거야. 온 세상의 경찰관이 다 우리를 잡으러 온 것 같았어. 그런데 지금은 5센트를 준다니, 놈들이 여기 파업을 박살 낸 다음에..... 그때도 5센트를 줄 것 같은가?” (P324-325)
“자네 식구들도 현실을 알면 좋을 텐데. 고기를 계속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뭔지 깨닫는다면 좋을 텐데...... 아이고, 젠장! 가끔은 나도 지쳐. 죽도록 피곤하다고. 어떤 하나 있었는데,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들어온 사람이야. 그 친구가 조합을 만들려고 그렇게 애쓰다가 결국 성공했다더군. 그런데 자경단 놈들이 노조를 깨 버렸대.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 아나? 그 친구가 그토록 도우려고 애썼던 바로 그 사람들이 그 친구를 쫓아내 버렸어. 그 친구랑 상종하기 싫다면서. 자기들이 그 친구와 한패로 보일까봐 무서웠던 거지. ‘나가, 네가 있으면 우리가 위험해.’ 이러더래. 그 친구는 마음이 크게 상했지. 하지만 이러더군. ‘알고 보면 그리 나쁜 일도 아냐.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모두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지. 항상 그런 식이야.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런 일을 재미로 하는 사람은 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는 거지. 자기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는 거지. 자기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워싱턴을 봐, 혁명을 성공시켰는데 나중에 개자식들이 워싱턴한테 덤벼들었잖아. 링컨도 마찬가지고. 두 사람을 죽이라고 소리를 질러 댄 사람들은 다 똑같아.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야.’”
“정말 고약한 얘기네요.”
톰이 말했다.
“그렇지. 그 친구가 감옥에 들어와서 이러더라고. ‘여하튼 사람은 자기 할 수 잇는 일을 한다. 그리고 사람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들이 조금 앞서 있을 때 자기가 조금 뒤처질 수도 있지만 완전히 뒤로 밀려나는 경우는 없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이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이건 그런 일이 헛수고처럼 보여도 사실은 헛수고가 아니라는 뜻이다.’” (P328-329)
“흐음, 어머니. 전 그동안 혼자 숨어 있었어요. 그동안에 제가 누굴 생각했는지 아세요? 케이시예요! 케이시는 말이 엄청 많았죠. 그게 신경에 거슬렸는데, 지금은 케이시가 한 말을 생각하고 있어요. 케이시가 한 말이 다 기억나는 거예요. 전부 다, 한번은 케이시가 자기 영혼을 찾으러 광야로 나갔는데, 자기만의 영혼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자기가 커다란 영혼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광야가 좋은 곳이 아니라는 얘기도 했어요. 자기가 갖고 있는 영혼의 작은 조각은 다른 조각과 합쳐져서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제가 이런 걸 다 기억하다니 우습죠? 제가 그 얘기를 그렇게 열심히 들을 줄도 몰랐는데.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한다는 걸 저도 알아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어.”
톰이 계속 말했다. “케이시가 성경 구절을 줄줄 왼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옥불이 어쩌고 하는 성경 구절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케이시가 그 구절을 두 번 읊었는데, 지금 그게 기억나요. 전도서에 나오는 구절이래요.”
“어떤 구절인데, 톰?”
“이런 내용이에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이게 그중 한 토막이에요.”
“계속해 봐, 계속해 봐라, 톰.”
“조금만 더 할게요,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결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그게 성경 구절이라고?”
“케이시가 그렇다고 했어요. 전도서라고 하던데요.”
“쉿...... 조용히 해 봐.”
“그냥 바람 소리라니까요. 어머니, 제가 잘 알아요. 어쨌든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어머니..... 대부분의 설교는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거예요. 언제까지나 없어지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팔짱이나 끼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다가 죽은 다음에 황금 쟁반에다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 전도서는 두 사람이 일한 대가로 더 나은 보상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톰, 너 뭘 할 작정이니?”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국영 천막촌을 생각해 봤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던 것. 싸움이 나면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했죠. 총을 흔들어 대는 경찰이 없는데도 경찰이 있을 때보다 더 질서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하고는 다른 사람들인 경찰들을 쫓아 버리고, 우리 자신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 협력하면 되는데, 모두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어머니가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톰, 너 뭘 할 생각이야?”
“케이시가 하던 일이요.”
“놈들이 케이시를 죽였잖아.”
“예, 케이시가 빨리 피하지 못했으니까. 케이시가 한 일은 절대 법에 어긋나지 않아요. 어머니, 그동안 생각을 아주 많이 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돼지처럼 사는 거, 좋은 땅이 그냥 놀고 있는 거, 어떤 사람은 100만 에이커나 되는 땅을 갖고 있는데 수십만 명이나 되는 훌륭한 농부들은 굶주리고 있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전부 힘을 합쳐서 소리를 지른다면, 그때 그 사람들이 소리쳤던 것처럼 한다면, 후퍼 농장에서는 그런 사람이 몇 명밖에 안 됐지만.....”
“톰, 놈들이 너를 뒤쫓을 거야. 그래서 플로이드한테 그랬던 것처럼 너를 쓰러뜨릴 거야.”
“놈들은 어쨌든 저를 뒤쫓을 거에요. 놈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전부 몰아세우고 있어요.”
“너 누굴 죽일 생각은 아니지, 톰?”
“그럼요, 생각을 해 봤는데, 어차피 법을 어긴 몸이니 어쩌면..... 젠장, 아직 생각이 분명하지 않아요. 어머니, 이젠 제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
두 사람은 칠흑처럼 어두운 굴 속에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네 소식을 어떻게 듣지? 놈들이 널 죽여도 내가 모를 텐데. 놈들이 널 해칠 수도 있는데, 네 소식을 어떻게 듣지?”
톰이 불편한 웃음을 터뜨렸다.
“뭐, 케이시 말처럼,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뭐, 톰?”
“그렇다면 문제 될 게 없죠. 저는 어둠 속에서 어디나 있는 존재가 되니까. 저는 사방에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어디를 보시든,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걸 달라고 싸움을 벌이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곳마다 제가 있을 거예요. 케이시 말이 옳다면, 사람들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질러 댈 때도 제가 있을 테고, 배고픈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앞에 두고 웃음을 터뜨릴 때도 제가 있을 거예요. 우리 식구들이 스스로 가꾼 음식을 먹고 스스로 지은 집에서 살 때도, 저는 거기 있을 거예요. 아시겠어요? 이런, 꼭 케이시처럼 얘기하고 있네. 케이시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모양이에요. 가끔은 케이시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니까요.” (P399-402)
“알아, 난 이제 쓸모가 없어. 맨날 옛날 생각만 하고 있으니. 종일 고향 생각만 해. 다시는 고향을 보지 못할 텐데.”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가 더 나아요. 땅도 더 좋고.”
어머니가 말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이 고장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지금쯤이면 고향의 버드나무 잎사귀들이 다 떨어졌겠다는 생각을 하느라고, 남쪽 울타리의 구멍을 손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 거, 참! 여자들이 점점 집안일을 좌우하게 됐으니, 여자들이 이걸 해라. 저리고 가라, 이러잖아. 그런데 나는 그게 거슬리지도 않아.”
어머니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잘 변해요. 여자들은 삶을 모두 가슴에 품고 있고, 남자들은 머리에 품고 있죠. 당신은 신경쓰지 말아요. 어쩌면...... 그래요, 어쩌면 내년쯤에는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버지가 말했다.
“우린 지금 가진 게 하나도 없어. 앞으로 일자리도 없고 수확도 없는 계절이 오래 계속될 거야. 그럼 우린 어떻게 하지? 먹을 걸 어떻게 구하지? 로져산이 아이를 낳을 때도 멀지 않았는데, 생각하기도 싫어. 그래서 생각을 안 하려고 계속 옛날 일만 파고 있는 거야. 이제 우리 인생은 끝난 것 같아.”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요. 여보. 여자들은 그런 걸 알 수 있어요. 살면서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남자들은 단계별로 인생을 살아요.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이 죽는 것, 그게 한 단계죠. 농장을 일구고 그 농장을 잃는 것, 그게 또 한 단계예요. 하지만 여자들에게 삶은 전부 하나의 흐름이에요. 개울처럼, 소용돌이처럼, 폭포처럼, 강처럼 그냥 계속 흐르죠. 여자들이 보는 인생은 그래요. 우린 그냥 죽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고요. 조금 변하기야 하겠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예요.”
존이 다그치듯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모든 흐름이 멈추지 않게 막아 주는 게 뭐죠. 사람들이 지쳐서 드러눕지 않게 해 주는 게 뭐예요?”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번들거리는 손등을 다른 손으로 문지르고, 오른손 손가락을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워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내가 보기에는 그냥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이루어지는 일 같아요. 내가 보기에는 그래요. 심지어 배가 고파지는 것조차.... 병이 드는 것조차. 죽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강해지죠.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애쓰는 거예요. 하루하루.” (P409-410)
처음에 비가 시작되었을 때 이주민들은 천막 안에 모여 앉아 이런 얘기들을 했다. 비가 금방 그칠 거야. 비가 얼마나 계속될 것 같아?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하자 남자들이 삽을 들고 빗속으로 나가 천막 주위에 작은 둑을 쌓았다. 그러나 빗줄기는 천막의 캔버스 천을 두드리다가 마침내 그 안으로 스며들어 천막 안에 개울을 만들었다. 남자들이 만든 작은 둑마저 쓸려가 버리자 물이 안으로 들어와서 매트리스와 담요를 적셨다. 사람들은 젖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상자들을 쌓고 그 위에 널빤지를 놓았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그 널빤지 위에 앉아 있었다.
천막들 옆에는 낡은 자동차들이 있었다. 물기 때문에 점화장치의 배선이 고장 나고, 기화기가 고장 났다. 작은 회색빛 천막들은 호수 속에서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배선이 망가진 차에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설사 시동이 걸린다 해도 바퀴가 진흙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젖은 담요를 품에 안고 물살을 헤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과 노인을 품에 안고 첨벙첨벙 물소리를 내며 걸었다. 높은 곳에 헛간이라도 하나 있으면 절망적인 표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곳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사람들 몇 명이 구호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슬픈 얼굴로 돌아왔다.
규칙이 있대. 여기서 일 년을 살아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군, 정부가 도와줄 거라고 했어. 언제가 될지 그건 자기들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헛간에는 사람들이 한데 뭉쳐서 앉아 있었다.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자 그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울어 댔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이윽고 질병이 찾아왔다. 폐렴, 눈과 유두에 돋는 발진.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이 고속도로로 흘러넘쳤다. 배수로는 더 이상 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천막에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헛간에서, 물에 흠뻑 젖은 남자들이 나왔다. 옷은 젖은 걸레 같았고, 신발은 진흙반죽 같았다. 그들이 첨벙첨벙 물소리를 내며 도시로, 동네 가게로, 구호소로 갔다. 음식을 구걸하려고, 굽실거리면서 음식을 구걸하려고. 도와달라고 애걸하려고. 때로는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거짓말도 했다. 그렇게 애원을 하고 굽실거리면서 절망적인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에서는 주민들이 물에 흠뻑 젖은 사람들에게 느끼던 연민이 분노로 변했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다시 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이윽고 보안관들이 보안관보를 대거 새로 고용하고 소총, 최루탄, 탄약 들을 서둘러 주문했다. 굶주린 남자들은 가게 뒤의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서서 빵을 구걸하고, 썩은 야채를 구걸했다. 기회가 생기면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고 개울물이 둑을 무너뜨리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굶주림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헛간에 모여 젖은 건초 더미 속에 누워 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가 생겨났다. 이윽고 소년들이 밖으로 나왔다. 구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건을 훔치기 위해서였다. 남자들도 힘없이 밖으로 나왔다. 물건을 훔쳐보려고.
보안관들은 보안관보들을 새로 채용하고 소총을 새로 주문했다. 비가 새지 않는 집에서 편안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동정을 느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혐오로 바뀌었다가 결국에는 이주민들에 대한 증오로 변했다.
비가 새는 헛간의 젖은 건초에서 폐렴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여자들이 아이를 낳았다. 노인들은 구석에 웅크린 자세 그대로 죽어 갔다. 그래서 검시관들은 그들의 시체를 똑바로 펼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절박해진 남자들이 대답하게 닭장으로 가서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닭을 훔쳤다. 사람들이 총을 쏘아도 그들은 달아나지 않고 심드렁한 얼굴로 물을 튀기면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총에 맞으면 지친 듯이 진흙 속으로 푹 쓰러졌다.
비가 그쳤다. 밭에는 여전히 물이 차 있어서 수면에 회색빛 하늘이 비쳤다. 땅 위에서 물이 재잘거리며 흘렀다. 남자들이 헛간에서 나왔다. 그들은 바닥에 앉아 물에 잠긴 땅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아주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봄까지 일이 없어. 일이 없다고.
일이 없으면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거야.
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땅을 갈고 풀을 벨 때 말을 이용하지. 하지만 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녀석들을 굶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건 말 얘기지. 우린 사람이잖아.
여자들은 남자들을 지켜보았다. 결국 파국이 왔는지 보려고. 여자들은 말없이 서서 지켜보았다. 모여 있는 남자들의 얼굴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대신 분노가 나타났다. 여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오지 않을 것이다.
작은 새싹들이 땅을 뚫고 솟아나왔다. 며칠이 지나자 산들은 연한 초록색으로 물들어 또 한 해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P428-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