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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18. 2024

스티그 라르손의 <벌집을 발로 찬 소녀>

영화 <밀레니엄: 제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 2012년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대하 장편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대단원을 맞이하는 3부에 해당한다. 전 세계에 `밀레니엄 신드롬`을 일으키며 유럽에 열풍을 몰고 온 이 시리즈는 독립적인 동시에 전체적인 통일성을 갖춘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밀레니엄`이란 주인공인 저널리스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창립하고 활동중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월간지의 이름이다.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난 충격적인 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며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는 저널리스트 미카엘과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활약을 그렸다면, 2부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에서는 동구권 여성 성매매의 배후를 밝히려는 ‘밀레니엄’ 특집호 발간과 맞물려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리스베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이 담겨 있다. 3부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자신만의 정의로 세상의 어둠에 맞서 싸우는 여주인공 리스베트의 마지막 결전을 그리고 있는데, 미카엘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공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과 비밀조직의 부정부패를 낱낱이 파헤친다.      

[1]

이따금 요나손은 그다지 정통적이지 않은 의학관을 펼치곤 했다. 그에 따르면, 의사들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너무 빨리 포기하고, 문제를 정확히 규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한 나머지, 환자를 적절히 치료할 기회를 놓친다는 거였다. 사실 이것은 의학 교과서가 권고하는 바이지만, 문제는 의사들이 고민만 하고 있을 때 환자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저량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치료를 중단할 수도 있다.                   (P14) 

    

난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건 로드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건 영원히 불가능해....            (P19)

      

훌륭한 리더는 문제를 다른 사람들과 잘 상의하는 사람이야.            (P167) 

    

“자넨 이걸 깨달아야 해. 섹션은 스웨덴 국방 전체의 선봉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우린 최후의 방어선이야.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이 나라의 안보를 보장하는 일이지.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바덴셰는 의혹의 빛이 담긴 시선으로 클린톤을 쳐다보았다.

“우린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야. 우리는 그 누구에게서도 감사받지 못하는 인간들이지. 우린 그 어떤 사람도 감히 내리지 못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이야....... 특히 정치하는 놈들이 내리지 못하는 결정을 말이야.”

마지막 문장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엔 경멸의 어조가 짙게 배어 있었다.

“자 이젠 내 말대로 하게. 그럼 섹션은 살아남을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단호하게 행동해야 하고, 강력한 수단들을 동원해야 해!”

바덴셰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P236)      


미카엘은 전날 밤 세포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최소한 한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정보 조작은 모든 첩보 활동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장기적으로 볼 때 엄청난 가치를 갖게 될 허위 정보를 하나 심어놓은 것이다.                  (P255)   

  

697년의 아일랜드 법령은 여성이 병사가 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전에는 여성 병사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얘기다.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이들 말고도 여성 병사를 가졌던 민족은 적지 않았다. 아랍인, 베르베르족, 쿠르드족, 라지푸트족, 중국인, 필리핀인, 마오리족,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미크로네시아인,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

고대 그리스에는 무시무시한 여전사들에 대한 전설들이 가득하다. 이 이야기들은 어렸을 때부터 병법과 무술과 육체적 극기를 훈련해온 여성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들은 남성과 떨어져 살았으며, 그들만의 군단을 이루어 전장으로 나갔다고 한다. 또 이들이 전장에서 남성들에 대해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이 많은 구절들에서 언급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아마존족은 예를 들어 기원전 7세기경의 이야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언급된다.                  (P259)    

 

'아마존' 이라는 용어도 그리스에서 온 것이다. '아마존'이란 문자 그대로 '젖가슴이 없는'을 뜻한다. 일반적인 설명에 의하면, 아마존 여인들은 활시위를 잘 당기기 위해 오른쪽 젖가슴을 도려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최대의 두 의사인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는 이러한 절단수술이 무기다루는 능력을 향상시켜준다고 입을 모으고는 있지만 이러한 관습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여기에는 언어학적으로도 의문부호가 하나 숨어있다. '아마존'이라는 단어의 접두사인 a는 과연...~이 없는 이라는 의미로 쓰였을까? 혹자는 오히려 그 반대가 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아마존은 유난히 큰 젖가슴을 지닌 여자였다는 것이다. 만일 전설이 사실이었다면 오른쪽 젖가슴이 없는 여성의 모티프가 지금까지도 남아있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는 예는-조상이든 부적이든- 그 어떤 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P260)    

 

그렇다. 비밀경찰 애들은 종종 멍청한 짓을 저지르곤 한다.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로서, 비단 세포뿐 아니라, 아마도 전 세계의 모든 정보기관이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비밀경찰은 뉴질랜드에 잠수 특공대를 보내 그린피스의 ‘레인보 워리어’호를 폭파하지 않았던 가? 세계 역사상 가장 멍청한 첩보 작전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것이리라. 아니, 멍청하기로 따지자면 닉슨 대통령 선거 팀이 벌인 워터게이크 빌딩 침입 사건이 한술 더 뜨겠지만. 하기야, 그런 한심한 인간들이 지휘했는데 스캔들이 터지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겠지...... 물론 비밀경찰은 괜찮은 일들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전혀 발표되지 않는다. 반대로, 비밀경찰이 어떤 부적절하거나 어리석은 일을 벌였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매체들은 그야말로 개떼처럼 달려든다. ‘그들이 이런 집단이라고 우리가 말하지 않았는가?’ 라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어가면서.                    (P276-277)  

   

아르만스키는 세포가 필요 불가결한 기관이며, 국민 전체의 안전을 지킨다는 목적을 버리지 않는 한, 약간의 대인 사찰도 크게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이처럼 국민을 사찰하는 임무를 띤 기관은 엄격한 공공의 감시하에 놓여야 했다. 다시말해서 그들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헌법적인 보장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정치인과 국회의원을 막론하고 세포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적어도 서류상으론 모든 것을 들여다볼 권한이 있는 특별감사관을 수상이 임명한다 해도 달라질 게 없었다.                   (P277-278)   

  

그런데 저들은 그녀의 삶을 까뒤집겠다며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왜 그녀가 자신을 방어했는지를 해명하라고, 그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빌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혼자 조용히 내버려 둘 수는 없단 말인가? 결국 그녀가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은 그녀 자신뿐,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친구가 돼 줄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P294)     

좋아, 그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 기자로서 자네의 임무는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거지. 관청의 어떤 높은 인간이 말했다해서 그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야. 자네가 훌륭한 기자인 건 맞지만, 바로 이 기본적인 임무를 잊으면 그 재능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P334)   

  

“아뇨. 난 의료계 전체에 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수치는 그 일에 관여한 자들만의 몫이죠. 또 세포도 수치를 당해야 합니다. 물론 세포에도 성실하게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말하는 건 세포 내부의 한 음모 집단이에요. 리스베트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그들은 다시 그녀를 입원시키려고 했어요. 그들의 기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후견 체제가 해제될 수 있도록요.”                  (P373)  

   

너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 자신뿐이야. 

나, 안니카, 아르만스키..또 다른 사람들이 너를 돕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난 네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라고 설득할 생각도 없어.

왜냐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기 때문이지.           (P469) 

    

[2]

기원전 1세기경의 시칠리아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어떤 역사가들은 별로 신빙성없는 역사가로 여기지만)는 리비아의 아마존족에 대한 묘사를 남겼다. 여기서 '리비아'란 당시 이집트 서부에서부터 북아프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지명으로, 이곳의 아마존 제국은 여성만이 군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을 점유할 자격이 있는, 이른바 '여성지배체제'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제국의 여왕 미리나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3만의 보병과 3천의 기병을 이끌고 숱한 남성 군대들을 굴복시키며 이집트와 시리아를 거쳐 에게해까지 진군했다고 한다. 결국 미리나 여왕은 패배했고, 그녀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미리나의 군대는 그 지역에 흔적을 남겼다. 아나톨리아가 코카서스인의 침략을 받아 남성들이 거의 전멸하자, 감연히 일어나 무기를 잡은 것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이 여성들은, 활, 칼, 도끼, 창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무기를 가지고 훈련했다. 또한 그리스인들을 모방한 청동사슬 갑옷이며 투구를 착용했다.                       (P7)     


그들은 결혼을 거부했으며, 그것을 하나의 굴복으로 여겼다. 대를 잇기 위해서는, 휴가를 주어 인근의 마을들에서 무작위로 고른 남자들과 동침하게 했다. 그리고 전투에서 한 명이라도 남성을 죽인 여자만이 순결을 잃을 권리를 가졌다.                     (P8)     


“내가 이렇게 운동하는 이유는, 기분이 아주 좋기 때문이에요. 이건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는 현상이죠. 운동을 하면 인체는 어떤 의존성 있는 진통 물질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얼마 뒤엔, 매일 나가서 뛰지 않으면 어떤 금단 현상이 나타나는 거예요. 자신의 체내에 있는 것을 모두 쏟아 부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란 정말이지 굉장하답니다. 섹스만큼이나 강렬하죠.”                    (P66)     

고대 그리스,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들에 아마존에 대한 전설들이 넘쳐나지만, 역사적으로 증명된 여성 전사의 예는 단 하나 있을 뿐이다. 서아프리카의 다호메이, 그러니까 오늘날의 베냉공화국의 현존하는 민족인 폰족의 여성 전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여성 전사들은 공식적인 전사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으며, 이들을 주인공 삼은 영화도 제작된 적이 없다. 이들은 역사책 페이지 아래, 조그만 각주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이 여인들에 대해 쓰인 학술서로는 역사가 스탠리 B.엘페른의 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들은 당시 그들의 나라를 위협하던 열강의 그 어떤 남성정예부대와도 능히 겨룰 수 있었다.                    (P233) 

    

폰족 여성부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수없지만 어떤 이들은 그 연원을 17세기로 잡고 있다. 처음에는 왕을 지키는 근위대였던 것이 점차로 늘어나, 여신을 방불케하는 당당한 체격의 6천의 여성병사들로 이루어진 실제적인 병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장식적인 존재들이 아니었다. 2세기가 넘은 세월동안, 그들은 폰족의 선봉에 서서 유럽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다. 특히 수많은 전투에서 그들에게 패배한 프랑스군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1892년, 프랑스는 증원병력으로 대포로 중무장한 보병대, 외인부대, 해군 보병대 그리고 기병대를 배로 가득 실어왔고 결국 이 여성군은 패배하고 만다.

이 여성전사들 중 쓰러진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살아남은 이들은 오랫동안 게릴라전을 전개했으며, 생존한 노병들은 1940년까지 인터뷰와 사진촬영에 응했다고 한다.              (P234)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태어나고, 살고, 늙는다, 그리고 죽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다 살았다. 이제는 해체될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기이하게도 그는 현재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P243)  

   

살인은, 상황 자체가 강요할 때만 이루어져야 하는 법이다. 그것은 아무 때나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에만 사용해야 할 특단의 조처였다.

클린톤은 고개를 저었다.

콜래트럴 데미지............

그는 이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갑자기 역겨움을 느꼈다.

국가를 위해 평생을 봉사해 온 우리가, 이제는 비천한 살인범이 돼버렸어........     (P278)    

 

인터뷰 중에는 여러 번 다시 촬영해야 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던진 질문들 가운데, 그가 아무리 애를 써도 명쾌하게 답변하기 어려웠던 질문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국가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살인까지 범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사실 TV4의 여기자가 물어오기 이전에, 미카엘이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이었다. 물론 섹션은 살라첸코르르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겠지만, 이것만으론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내놓은 답변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섹션은 하나의 광신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점차 크누트뷔 파나짐 존스 목사 같은 사람들이 되어간 거죠. 그들에겐 자신들만의 율법이 있었고, 그 고립된 율법 안에서 선악의 개념은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사회와는 완전히 유리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정신 질환 같은 건가요?”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닐 겁니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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