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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19. 2024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영화 <시녀이야기The Handmaid’s Tale> 1990년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발표한 장편소설. 1990년에 폴커 슈렌도르프가 감독하고 나타샤 리차드슨이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소설은 가상의 1990년대 말경에서 2000년대 초입 사이 상황을 다룬 이야기. 시대적 배경은 극우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 길리어드 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미국을 다루고 있다. 발표 당시 이 소설은 여성을 오직 자궁이라는 생식 기관을 가진 도구로만 본다는 설정 때문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으며, 출간한 지 3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에 와서는 성과 가부장적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인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7년 Hulu 채널을 통해 드라마로 새롭게 선보이며 또다시 주목받았으며, 미국 최대 인터넷 서점인 Amazon 2017년 차트 1위에 등극하기도 하였다. <시녀 이야기>는 미국에 세워진 가상의 전체주의적 국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철저하게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충격적인 설정으로 들려주며 성과 권력의 어두운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17년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제작돼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고, ‘미투 운동’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한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얀 보닛에 빨간 옷을 입은 ‘시녀’의 복장은 아르헨티나, 헝가리, 아일랜드, 폴란드 등지에서 낙태죄 폐지 등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21세기 중반. 전 지구적 규모의 전쟁과 환경 파괴로 인해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미합중국이 분열하고 '길리어드'라는 전체주의 국가가 탄생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임 상태가 되어 출생률이 급감하자 길리어드 정부는 여성들을 강제로 징집해 통제하기 시작한다. 정부는 여성들을 임신이 가능한 여성과 불가능한 여성으로 나누고, 각각의 신체적 기능에 따라 '시녀', '하녀', '아내', '아주머니' 등의 역할을 부여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오브프레드'는 시녀다.     

 

군대에 들어왔다고 생각해, 라고 리디아 <아주머니>는 말했다.

침대 하나. 싱글, 적당히 딱딱한 매트리스에 자투리 털들을 모아넣은 하얀 침대보. 침대에서는 그저 잠만 잘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면 잠도 못 자든지.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은 다른 모든 물품들처럼 생각도 레이션식으로 해야 한다. 생각하면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일이 너무 많다. 생각이 많으면 끝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줄어드는데, 나는 되도록 끝까지 버틸 작정이다. 푸른 붓꽃의 수채화 액자에 왜 유리가 끼워져 있지 않은지, 창문은 왜 활짝 열리지 않으며 어째서 안전유리가 끼워져 있는지 나는 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탈주가 아니다. 어차피 멀리 도망갈 수는 없으니까. 뭔가 날카로운 흉기를 손에 넣기만 하면 우리가 우리 몸에다 활짝 그어버릴 또 다른 탈출구가 겁나는 거다.

그리하여, 이런 자질구레한 세부 사항들을 제외한다면 여긴 대학의 손님 접대실이라 해도 좋았다. 물론 귀빈과는 거리가 먼 손님들을 위한 방이라고 해야겠지만. 구시대로 치자면 형편이 어려워진 여자들이 즐겨찾는 싸구려 하숙집 셋방처럼 보이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워진 여자들이라, 따지고 보면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다. 하긴 형편이란 게 그나마 남아 있기나 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만.

그래도 의자, 햇살, 꽃들. 이런 것들을 쉽사리 무시해 선 안 된다. 나는 목숨이 붙어 있고, 살아가고 있고, 숨 쉬고 있다. 꼭 모아쥐고 있던 두 손을 펴고 햇살을 받아본다. 내가 있는 이곳은 감옥이 아니라 특혜의 장소다. 흑백 논리를 사랑하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말대로.   (P16-17)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 그녀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자네는 '하녀'가 아니잖아.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라고 묻지는 않았다. 

내 입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는 일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기에. 나는 실망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녀를 큰 언니처럼, 나를 보호해 주고 이해해 줄 엄마처럼 따뜻한 존재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전 임지에 있던 '아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실에 처박혀 지냈다. 이번 '아내'는 다르길 바랐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인생이었다면, 서로 좋아할 만한 여자로 여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할 리 없고, 그녀 역시 나를 좋아할 리 만무하다는 걸 이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옆에 있던 탁자 위의 소용돌이 모양의 재떨이에 반쯤 피다 만 담배를 비벼 껐다. 한번 꾹 눌러서 비비는 무척 단호한 손놀림이었다. 대부분의 아내들이 자주 하는 가볍게 몇 번 걸쳐 살며시 탁탁 터는 동작이 아니었다. 내 남편 말인데, 그녀는 말했다. 그 사람은 그냥 그거야. 내 남편. 아주 분명하게 해두고 싶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이미 정해진 사실이라고.

네, 부인. 나는 깜빡 잊고 말했다. 옛날에 어린 여자애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 중에, 등에 있는 끈을 잡아당기면 말하는 인형이 있었다. 

내 목소리가 꼭 그런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조로운 인형의 목소리. 그 여자는 아마 내 뺨을 철썩 갈겨주고 싶은 마음에 어쩔 줄 몰랐을 터이다. '아내'들은 우리를 때릴 수 있었다. 불문율로 이미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흉기를 사용하는 건 금지 사항이었다. 

쓸 수 있는 건 오직 맨손뿐이었다. (P30~31)

     

그것도 우리가 투쟁했던 이유야, 사령관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때까지 그녀는 불끈 주먹을 쥔,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제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녀가 전에 본 적이 있는 여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 여자를 처음 본 건 내가 여덟 살이나 아홉 살 때쯤, 텔레비전에서였다. 엄마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요일 아침에 나는 먼저 일어나 엄마 서재에 있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만화를 보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볼 게 없으면 나는 '청소년을 위한 복음의 시간' 을 보곤 했다. 아이들을 위해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찬송가를 부르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 나오는 여자들 중에 세레나 조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소프라노 솔로였다. 연한 금발에 체구가 작았고, 들창코를 하고 있었으며 찬송가 때마다 큰 파란 눈동자를 휘둥그레 치켜뜨곤 했다. 그 여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울 수 있었고, 목소리가 바르르 떨리면서 최고 음역에 다다르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뺨을 타고 우아하게 흘러내리도록 눈물 한두 방울을 떨어뜨리곤 했다. 그 후에 그녀는 다른 역할들로 옮겨갔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자는 세레나 조이였다. 아니 한때 세레나 조이였던 여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나빴던 거다. (P32)     

지난 주에 그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어떤 여자를 총살했다. 여자는 <하녀>였다고 한다. 그녀는 통행증을 찾아 옷 여기저기를 더듬었는데, <수호자>들이 그걸 폭탄을 찾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녀를 여장 남자로 오인했다. 그런 사건은 전에도 간간히 있었다.

리타와 코라는 그 여자와 아는 사이였다. 두 사람이 부엌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코라가 말했다. 우리를 보호하려 했던 거죠.

하긴 죽는 것만큼 안전한 게 어디 있어. 리타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는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총으로 쏴죽일 필요는 없었다고.

사고였어요, 코라가 말했다.

세상에 사고라는 게 어디 있어. 배후에는 다 고의가 있기 마련이야.

리타가 냄비들을 싱크대 속에서 거칠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글쎄요, 예를 들어 이 집을 생각 없이 폭파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코라가 말했다.

다 마찬가지야, 리타가 말했다. 열심히 일하던 여자였는데, 그렇게 끔찍하게 죽다니.

더 끔찍하게 죽을 수도 있어요, 코라가 말했다. 최소한 즉사했잖아요.

그건 네 생각이고, 리카가 말했다. 나라면 죽기 전에 좀 시간이 있는 편을 택하겠어. 그래야 삶을 정리하지.               (P39-40) 

      

세상에는 자유가 한 가지밖에 없는 게 아니야, 리디아 <아주머니>가 말했다. 목표를 향한 자유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로부터의 자유가 있지. 무정부 시대의 자유는 무엇을 행할 자유였어. 하지만 지금 여러분에게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거야. 그것을 얕보지 마.          (P46-47)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만 떠올리기 마련이다. 전부 좋기만 했다고 믿고 싶어한다.          (P58)      

시체들은 갈고리에 걸려 있다. 갈고리들은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장벽>의 벽돌 틈에 끼워져 있다. 시체가 걸리지 않은 빈 갈고리들도 있다. 갈고리들은 외팔이들이 쓰는 의수처럼 생겼다. 강철로 된 물음표 모양을 상하좌우 뒤집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제일 끔찍한 것은 머리에 씌워놓은 주머니들이다. 그 속에 들어있는 얼굴보다 주머니가 더 끔찍하다. 그걸 쓰면 사람들이 마치 얼굴을 미처 그려 넣지 못한 인형처럼 보인다. 허수아비들 같다. 하긴 어떻게 보면 허수아비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을 겁주려는 게 목적이니까. 또 어떻게 보면 그들의 머리는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 밀가루나 반죽 같은 것으로 채워진 주머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백히 드러나는 머리들의 무게, 텅 빈 공허감, 중력이 머리들을 밑으로 끌어당기고 있으며 고개를 쳐들 목숨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는 느낌은 끔찍스러웠다. 머리들은 무(無)다.           (P60-61)      

내 곁의 여자에게서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그녀는 울고 있는 걸까? 여기서 운다고 해서 어떤 식으로 내게 잘 보일 수 잇는 거지? 그런 걸 알아줄 만한 여유가 내게는 없다. 내 두 손이 바구니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불끈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무엇이든 절대로 그리 순순히 내주지 않을 테다.

예사라는 건, 여러분이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야, 리디아 <아주머니>는 말했다. 지금은 보통으로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게야. 예사가 될 거야.          (P63)   

   

경계선을 따라 피어 있는 튤립꽃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갛고, 꽃봉오리가 벌어져 이제는 와인 잔이 아니라 넓은 술잔 모양이 되어 있다. 저렇게 온몸을 내던지는 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꽃들은 완전히 뒤집혀지고, 천천히 흩어져 꽃잎들이 비늘처럼 나부낄 텐데.            (P78)   

   

그때 우리가 그렇게 살았던가? 하지만 우리는 평상시처럼 살았다. 다들 대개는 그렇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평상시와 다름없이. 심지어 지금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살고 있는 거니까.

우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무시하며 살았다. 무시한다는 건 무지와 달리,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즉시 변화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천천히 데워지는 목욕물처럼 자기도 모르게 끓는 물에 익어 죽어버리는 거다. 물론 신문에는 많은 뉴스가 있었다. 도랑이나 숲에서 발견된 시체들, 둔기에 맞아죽거나 사지가 절단되거나, 속된 말로 성폭행 당한 시체들. 하지만 그런 건 다 다른 여자들 이야기였고, 그런 짓을 하는 남자들도 다 다른 남자들이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문에 나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겐 꿈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 꾸는 악몽처럼. 진짜 끔찍하지 않니, 라고 우린 말하곤 했고 실제로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끔찍하다는 게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신파조여서 우리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만 같았다.

우리는 신문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신문 가장자리의 여백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훨씬 더 자유로웠다.

우리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간격 속에서 살았다.             (P99-100)   

   

꽃은 식물의 성기(性器)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P139) 

내 머리 위 침대 머리맡 쪽으로 세레나 조이가 사지를 벌린 채 잡고 있다. 쫙 벌린 그녀의 두 다리 사이로 내가 눕는다. 머리를 그녀의 배를 베고, 내 두개골 아래쪽으로 그녀의 골반 뼈가 자리를 잡으며, 허벅지는 내 양쪽 겨드랑이로 내려온다. 그녀 역시 옷을 다 차려입고 있다. 

나는 두 팔을 위로 치켜든다. 그리고 세레나 조이가 내 손을 한 손에 하나씩 잡는다. 이런 자세는 우리가 하나의 육신, 하나의 존재임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속뜻을 들여다보면 그녀 쪽에 결정권이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과정을 자신이 통제하고 있으니 결과물도 자기 것이라는 주장일 뿐이다. 세레나 조이의 왼손에 낀 반지가 내 손가락을 파고든다. 이건 나를 향한 복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 빨간 치마는 허리께까지 걷어올려지지만, 더 이상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 밑에서 사령관이 오입질을 하고 있다. 그가 범하고 있는 건 내 아랫도리다. 정사(情事)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하는 짓은 정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교라는 말도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교란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 한쪽만 연루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간이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 중에 내가 자발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보면 결국 지금 이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눈을 꼭 감은 채로 가만히 누워서 머리 위에 늘어져 있을 보이지 않는 침대 덮개를 그려본다. 빅토리아 여왕이 딸에게 해주었다는 충고를 기억해 낸다. 두 눈을 감고 영국을 생각하렴. 하지만 이건 영국이 아니다. 제발 그가 서둘러 끝내면 좋으련만.

아마 나는 돌아버린 지 오래고 이건 새로운 종류의 심리치료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언젠가는 병이 나아서 이런 일도 끝나버릴 테니까.

세레나 조이는 지금 사령관이 오입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자기인 것처럼, 마치 고통이나 쾌락을 자기가 느끼는 것처럼 내 손을 으스러져라 잡는다. 그리고 사령관은 행진곡의 4분의 2박자로,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듯 끝도 없이 계속 삽입한다. 그는 샤워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처럼 정신이 다른 데 가 있다. 마치 다른 생각으로 꽉 찬 사람 같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의 리듬에는 이제 조급한 마음이 비친다. 하지만 이건 남자들이 꿈꾸는 최고의 섹스 아닌가? 두 여자와 한꺼번에 하다니, 흥분되잖아. 전에는 그런 말들을 했다.

지금 이 방에서, 세레나 조이 바로 그녀의 덮개 밑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혀 흥분되는 일이 아니다. 열정이나 사랑이나 낭만이나 기타 등등 옛날 우리가 생각하며 달아오르곤 했던 그런 감정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성적 욕망과도 전혀 상관 없다. 적어도 내쪽은 그렇다. 세레나 조이 역시 마찬가지고.

이제 발기와 오르가즘이 성교의 필수 조건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건 경박한 마음을 나타내는 징후일 뿐이다. 얼룩무늬 가터라든가 만들어붙인 애교 점과 마찬가지로 결박한 인간들을 위한 불필요한 눈요기일 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유행이다. 여자들이 한때 발기니 오르가즘 따위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하고, 걱정하고, 그런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발기니 오르가즘 따위는 누가 봐도 오락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지금 이 일은 절대 오락이 아니다. 사령관에게조차 오락은 아니다. 이 일은 진지한 과업이다. 사령관 역시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있다. 

행여 가느다랗게 실눈이라도 뜨면, 그를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리 불쾌하지는 않은 얼굴이 내 몸통 위에 걸쳐져 있고, 은발 몇 가닥을 앞이마에 늘어뜨린 채, 그가 지금 서둘러 끝내고자 애쓰고 있는 내면의 여행에 몰두하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목적지는 그가 가까이 갈수록 똑같은 속도로 멀어질 테지. 실문을 뜨면 그의 뜬눈을 볼 수 있으리라.            (P161-163)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난 죽어버릴 거다.

아니,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섹스를 못해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사랑의 결핍으로 죽어간다. 여기에는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들은 전부 죽어버렸거나 다른 곳에 있다. 이름이 뭔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에게 내가 그렇듯이, 그들 역시 내겐 어디에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 역시 실종된 사람이다.             (P175-176)  

    

어쩌면 그들이 나에게 약물을 주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삶은 편집증 환자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하지만 어림도 없는 희망일 뿐.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누군지, 그리고 오늘이 며칠인지 안다.  (P190)     

이것은 내 머릿속에서 다시 짜맞추어 재현한 이야기다. 전부 다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지금 이 순간, 머릿속으로 했어야 하는 말,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 했어야 하는 행동, 하지 말았어야 하는 행동, 어떻게 했어야 할까를 끝없이 되새기며 내 방의 싱글 침대에 똑바로 누워서 머릿속으로 재현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이곳을 빠져나가게 된다면.......

일단은 거기서 멈추자. 나는 이곳에서 나갈 생각이다. 영영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이전에, 흉흉한 시대를 만나면 탈출할 궁리를 했고 그 사람들이 언제나 옳았다. 어떻게든 그들은 탈출했고 폭압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았다. 비록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 동안 계속되긴 했겠지만.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면 이 일을 어떤 형식으로든, 구전으로라도 기록해 놓으면, 그때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이야기가 되어버릴 터이다. 그래서 또 한발 진실에서 물러서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말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말이란 결코 정확할 수 없으며 언제나 뭔가 빠뜨리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너무 많은 단편들이 있고, 관점들이 있고, 반목들이 있으며, 뉘앙스가 있다. 이런 의미도 저런 의미도 될 수 있는 몸짓들이 너무 많고, 말로는 절대 완벽하게 표현할 길 없는 형상들도 너무 많으며, 허공에 떠다니거나 혀끝에 감도는 향(香)도 수없이 많고, 어중간한 색채들도 한없이 많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자라면, 그리고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어 왔다면, 제발 명심해 달라. 당신은 여자로서, 남자를 용서해야만 한다는 유혹이나 기분에 절대 시달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 정말이지 그런 충동은 참으로 거역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용서 역시 일종의 권력이다. 용서를 구하는 일 역시 권력이며, 용서를 유보하거나 베푸는 일 또한 일종의 권력이다. 아마 그만큼 커다란 권력은 없을 것이다.

어떠면 이 모든 일은 통제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해도, 심지어 살인을 해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던가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구는 앉을 수 있고 누구는 꿇어 앉거나 일어서거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드러누워야 한다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 마찬가지라는 말만큼은 절대 내 앞에서 하지 마라.         (P229-230)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법이다. 우리는 사령관과 단 둘이 만나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첩이나, 게이샤나 창녀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를 그 범주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우리들에게서 쾌락의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고, 은밀한 욕망이 꽃필 여지도 전혀 없다. 특별한 총애 따위는 그쪽이나 우리 쪽에서 미리 알아서 정리할 테니 사랑이 싹틀 발판조차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聖杯)다.

그런데 왜 그는 한밤중에 단 둘이서 만나고 싶어하는 걸까?

만약 들키면 나는 세레나의 자비로운 처분에 맡겨질 것이다. 사령관은 집안의 기강을 흐트러뜨리는 이런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 여자들끼리의 문제기 때문이다. 그 후에, 아마 나는 재분류를 당할 것이다. 어쩌면 '비여성'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나자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는 건 더 위험할 것이다. 진짜 권력을 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P233)  

   

“자, 여기, 앉아도 좋소.”

그는 내가 앉을 의자 하나 끌어당겨 주더니 자기 책상 앞으로 밀어 주었다. 그러더니 자신은 책상 뒤로 돌아가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런 동작이 어쩐지 화려해 보였다.

이 동작이 내게 시사해준 사실은 그가 여기로 나를 부른 이유가 적어도 내 의지에 반해 몸에 손을 대려는 수작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짓는다. 미소는 사악하거나 음흉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미소일 뿐이다. 내가 마치 부엌의 고양이인 양 호의적이면서도 약간의 거리를 두는, 형식적인 미소다.

나는 의자에 똑바로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은다. 굽 없는 빨간 구두 속 두 발이 마룻바닥에 닿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발은 땅을 단단히 딛고 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그저 빤히 그를 쳐다볼 뿐이다. 올해 최고의 에누리 표현이군. 이럴 때 엄마는 그런 표현을 쓰신다. 아니 쓰시곤 했다.

솜사탕이 된 기분이다. 설탕과 공기로 만들어진 솜사탕처럼 꼭 쥐어짜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빨강과 분홍색의 조그맣고 지저분하고 축축한 덩어리로 변해 버릴 것만 같다.

“약간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

내가 대답이라도 한 것처럼 그가 말한다.

턱 밑에 리본으로 단정하게 끈을 묶은 모자라도 쓰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바라는 건......”

그는 말한다.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지 않으려고 안간힘 쓴다. 네? 네, 네? 그다음엔 뭐지? 그는 뭘 원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절대 속내를 들키지 않으리라. 이렇게 몸이 달아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게 하리라. 지금은 흥정할 시간, 막 거래가 성사되려 하는 것이다. 망설임 없는 여자는 패배한다. 아무것도 공짜로 내주지는 않으리라. 오직 대가를 받고 팔기만 할 테다.

그는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그러더니 그는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수줍은 표정’이라는 쪽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리라, 한때 남자들이 저런 표정을 짓던 때가 있었지. 어떻게 하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기억할 수 있을 만큼 그는 나이가 들었으니까. 그리고 옛날에 여자들이 그런 표정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꼈는지도 기억할 테니까. 젊은 남자들은 이런 기교를 부릴 줄 모른다. 한 번도 실전에서 써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나하고 ‘스크레블’(알파벳이 쓰여진 말들을 맞추어 상하좌우로 단어를 맞추는 일종의 오락) 게임을 한 판 해주면 좋겠는데.”    (P240-242)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의 정부다. 최고위층의 남자들은 언제나 정부가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물론 계약의 내용이 약간 다르기는 하다. 옛날에는 정부들이 작은 집이나 아파트를 따로 갖고 있었지만, 요즘은 사정이 뒤죽박죽 되었다. 하지만 들춰보면 속은 다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옛날 어떤 나라에서는 <바깥 여자들>이라고 불렀다지. 나는 바깥 여자다. 안에서 채워줄 수 없는 걸 제공하는 게 나의 일이다. 그게 스크래블 게임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치욕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말 한심스런 신분이기도 하다.            (P274-275)  

   

대재앙 직후, 그들은 대통령을 쏘아죽이고 의회를 기관단총으로 쓸어버렸고, 군대는 계엄령을 선언했다. 당시 그들은 이슬람 광신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침착하십시오. 그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말했다. 상황은 완벽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누구나 충격을 받았을 거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 전체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다니. 그들은 어떻게 침입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가 바로 그들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을 때다. 그들은 한시적인 조치라고 했다. 거리에선 소요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밤마다 집에서 텔리베전을 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사태의 주범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 확실한 적도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 모이라가 전화로 말했다. 이제 곧 닥친다.

뭐가 닥친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기다리면 알아. 그들은 이 사태를 차근차근 준비해 온 거야. 이제 너와 내가 장벽에 맞서 싸워야 해. 모이라는 우리 엄마의 표현을 인용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농담이 아니었다.   (P294) 

    

배반을 깨닫는 순간만큼 기분 나쁜 때는 없다.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알게 되는 그 순간, 다른 인간이 당신에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를 못내 바랐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처참하다.

그건 마치 사슬이 끊어져 꼭대기에서 추락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추락하고, 추락하지만 어디 부딪치게 될지 모르는.            (P329)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소, 그가 말한다.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

더 좋은 세상이라고요? 나는 조그맣게 되뇐다. 어떻게 이걸 더 좋은 세상이라 생각할 수 있는 거지?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그는 말한다.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기 마련이지.            (P330)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은지도 몰라요. 차라리 모르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요. 어저면 앎을 감당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인류의 타락은 무지에서 앎으로의 전락이었죠.           (P332)    

 

“끔찍해.”
 나는 말한다. 하지만 책임을 덮어쓴느 건, 아기의 결함이 무조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 재닌다웠다. 하지만 자기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무슨 짓이든 하게 마련이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 아무런 줄거리가 없다는 얘기다.             (P368)  

   

여기엔 민들레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잔디밭은 잡초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벌초되어 있었다. 민들레 한 포기, 단 한 포기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쓸데없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뽑기 어려우며, 태양처럼 불변의 노랑색을 자랑하는 민들레. 밝고 서민적이며 누구를 위해서든 똑같이 빛나는 민들레가 보고 싶다. 우리는 민들레로 반지도 만들고, 왕관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다가 손가락에 쓰디쓴 즙으로 얼굴을 남기기도 했다. (P368-369)   

  

"어떻소, 좀 특이한 경험을 해볼 준비가 됐소?"

"네?" 그의 이런 행동에서 나는 어색함을 느낀다. 나와 함께 어디까지 갈 것인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확신하지 못하는 태도.

"오늘 밤에는 좀 놀래줄 만한 일이 있어서. 그쪽이 좋아할 만한 일." 그가 말한다. 그러더니 소리를 내어 웃는다. 하지만 오히려 비웃음에 가깝게 들린다. 나는 오늘 일어난 일들에는 전부 '좀'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만사를 가볍게 여기고 싶어한다.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그게 뭐죠? 다이아몬드 게임인가요?" 이 정도는 마음대로 말해도 좋다. 그는 오히려 즐기는 것 같다. 특히 몇 잔 거나하게 들이킨 뒤에는. 그는 내가 경박하게 까부는 쪽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좀 낫지." 그는 감질나게 하려고 애쓰면서 말한다.

"보고 싶어죽겠어요."

"좋소." 그가 말한다. 그는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한 손을 등 뒤에 숨기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알아맞혀 보구려"

"동물, 식물, 아니면 광물?" 내가 말한다.

"오, 동물. 누가 뭐래도 동물성이야." 그는 짐짓 심각한 척하면서 말한다. 그는 등 뒤로 숨겼던 손을 내민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은 연자줏빛과 분홍빛이 섞인 깃털 한 줌처럼 보인다. 그가 이 물건을 흔들어턴다. 이건 틀림없이 여자 옷이다. 가슴 부위에 브래지어 컵도 달려 있고, 그 위오 보랏빛 스팽글이 뒤덮고 있다. 스팽글들을 살펴보니 아주 작은 별 모양이다. 깃털은 허벅지가 빠져나오는 구멍 주위에서부터 위쪽으로 달려 있다. 거들로 봐도 무방한 디자인이다. (P397-399)     

나는 누군가의 발길에 채인 것처럼, 숨도 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

그렇게 죽어버렸구나. 그럼 어쨌든 나는 안전하구나. 그들이 오기 전에 죽어버렸어. 난 크나큰 안도감에 휩싸인다.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내가 살 수 있도록 목숨을 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녀를 애도해야겠다.

이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물론 그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해서 몸에 산소를 공급한다. 내 앞에 놓인 공간이 까맣게 됐다가 다시 훤해진다. 이제 앞을 볼 수가 있다. 

나는 돌아서서 문을 열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문을 붙들고 섰다가 걸어 들어간다. 닉은 아직도 그대로 있다. 차를 닦으면서, 휘파람을 불면서, 까마득하게 멀어보인다.

하나님, 당신이 원하신다면 난 못할 일이 없어요. 나는 기도한다. 이제 주님이 내 주인이 되셨으니, 정말로 원하시기만 한다면 나 자신을 하얗게 지워버리겠어요. 진정 내 모든 것을 비우고, 참된 성배가 되겠어요. 닉을 포기하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까맣게 잊겠어요. 불평도 그만두겠어요. 내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겠어요. 희생하겠어요.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어요. 모든 인연을 끊겠어요.

옳지 못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레드 센터에서 가르친 모든 것들, 내가 이제까지 저항했던 모든 것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한꺼번에 나를 덮친다. 고통은 싫다. 머리는 얼굴 없는 계란형의 천주머니가 되고, 두 발은 허공에 매달린 댄서가 되고 싶지는 않다. <장벽>에 걸린 인형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날개 없는 천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살아가고 싶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쓰라고 맡기겠다. 그들이 내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해도 좋다. 나는 비굴하다.

처음으로, 나는 그들의 진정한 힘을 실감한다.                (P486-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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