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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24. 2024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영화 <새벽의 약속> 2018년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로 잘 알려진 프랑스 외교관이자 소설가 로맹 가리. 장편 '하늘의 뿌리'로 1956년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고, 이후 평론가들의 '한물갔다'는 조롱을 잠재우기 위해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 공쿠르상을 1975년 다시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 주재 프랑스영사 시절에 여배우 진 시버그와 결혼했고, 두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한평생 집념과 열정에 몸을 맡겼던 그는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받는 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인 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리게 된다.  (P36)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인간이 절망적으로 세계에 부과하려 하는 천칭의 균형 이론을 통해 나는 항상 자신을 어머니의 승리로 보았다. (P46)

    

누구도 나로 하여금 성적 행위 속에서 선과 악의 기준을 보도록 만들지는 못하리라. 내게는, 핵 실험을 계속하자고 문명 세계에 권하는 어떤 저명한 물리학자의 음울한 표정이 어머니와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과 비교도 못할 만큼 추악해 보인다. 20세기의 지적 —과학적— 이념적 탈선과 비할 때, 모든 성적인 탈선은 내 마음속에 가장 부드러운 용서를 불러 일으킨다. 대중에게 넓적다리를 벌리기 위해 돈을 받는 소녀는 자비로운 누이 또는 선한 빵의 정직한 분배자처럼 여겨진다. 그녀의 겸손한 매매를, 유전자를 해치거나 핵공포를 유포하려는 구상에 자기의 두뇌를 파는 학자들의 매춘에 비교하여 보면 말이다. 종족에 대한 이 배반자들이 몸을 내맡기고 있는 영혼과 정신과 이념의 부패에 비하면, 성에 관한 우리의 노심초사란, 그것이 매춘이건 아니건, 근친상간이건 아니건, 우리 해부조직이 배치되어 있는 세 개의 비천한 괄약근을 위에서 어린 아이의 웃음이 지닌 천사같은 순진성을 띤다.  (P81)  

   

무대의 한편에서 내가 이처럼 예술과의 첫 접촉을 시작하고 있는 동안, 무대의 다른 한편에선 어머니가 내게서 어떤 숨겨진, 천연 귀금속같이 감춰져 있는 자질을 발견해내기 위해 체계적인 시굴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다. 바이올린과 춤이 차례로 떨어져 나가고, 그림은 코스 밖으로 벗어나자, 나는 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그 지방 오페라단 최고의 선생들이 내 성대를 시험해주십사 초대되었다. 내가 혹시 빛과 자주색 황금의 장식 속에서 대중의 갈채를 받게끔 전도를 약속받은 씨앗, 미래의 샬라핀이 될 어떤 씨앗을 지니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삼십 년이나 뜸을 들이고 난 지금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내 성대 사이엔 완벽한 오해가 개재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99)     


때때로 나는 향긋한 내 장작 은신처로 가 몸을 숨기고서, 어머니가 내게 기대하고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곤 하였다. 그리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소리 없이. 어떻게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서글픈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다시 라 퐁텐의 우화를 배웠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어머니가 외교관이라는 직업과 외교관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아무튼 어느 날 어머니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내 방에 들어와 곧 긴 연설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여인들에게 선물을 주는 기술’이라고 이름 붙일 수밖에 없는 것에 관한 연설이었다.

“심부름꾼에게 시켜서 큰 꽃다발을 보내는 것보다 네가 직접 작은 꽃다발을 손에 들고 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명심해둬라. 모피 코트를 여러 벌 가진 여자들을 경계해야 된다. 그런 여자들은 언제나 그런 걸 또 한 벌 얻었으면, 하고 기대하거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여자들한텐 가지 마라. 선물을 받을 사람의 기호를 잘 알고 분별 있게 선물을 선택하도록 해라. 만일 그 여자가 교육도 못 받았고, 문학적 성향도 없으면 아름다운 책을 주어라. 만일 검소하고, 교양 있고, 신중한 여자면 향수나 삼각 숄 같은 사치품을 주고, 몸에 걸칠 선물을 주기 전에 받을 사람의 머리색이나 눈 색깔을 잘 봐두는 걸 잊지 마라. 브로치니 반지, 귀걸이 같은 작은 물건들은 눈 색깔에 맞추고, 드레스니 외투, 스카프는 머리색에 맞추는 거야. 머리색과 눈색이 같은 여자들은 옷 입기가 훨씬 쉽고, 그러니까 덜 비싸게 먹히지. 그렇지만 무엇보다, 무엇보다....”  (P103-104)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의 진정한 비극은 자기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진정한 비극, 그것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사실이다. 구매자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건, 아무도 당신이 마지막 공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러 오지 않는 것이다.  (P134)    

 

이렇다 할 문학적 영향을 받지 않고, 본능적으로 나는 유머라는 것을 발견해내었다.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 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말이다. 유머는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누구도 내게서 그 무기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또한 나는 기꺼이, 그 무기가 내 자신을 향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나 “자아”를 통해 그 유머가 바로 우리의 근원적 조건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유머는 존엄성의 선언이요,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이 우월성의 확인이다. (P165)     

나에겐 도망칠 권리가, 어머니의 도움을 마다할 권리가 없었다. 나의 자존심, 나의 남성다움, 나의 존엄성, 이 모든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내 미래에 대한 전설이 어머니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었다.’ 화를 낸다거나 까다롭게 군다거나 하는 것은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점잔을 빼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 엄격한 순결성이라든지 근사하게 턱을 주억거린다든지는 나중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피와 살이 된 가혹한 실험 교육이 나로 하여금 더 이상 버림받은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게끔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므로 하는 말인데, 그에 대한 철학적, 정치적 결론이나 정돈된 교훈이나 도덕성 따위들 역시 나중 일이었다. 우선 나는 부끄러움을 삼키고, 시계와의 경주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었다. 약속을 지키고, 사랑이 넘치는 비합리적 꿈을 계속 살아있게 할 무엇인가를 공급하려 애쓰면서…. (P213)     


하지만 나는 전혀 절망하지 않았다. 오늘까지도 나는 절망하지 못했다. 난 다만 그런 체하고 있는 것뿐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노력은 항상, 완전히 절망하는 데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별도리가 없었다. 내 안에는 항상 계속 미소 짓고 있는 무엇인가가 남아 있는 것이다. (P277)     


어머니의 용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P283)     

나는 드골을 따르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너무도 잘 이해한다. 그들은 자기네 장식 가구들 속에 너무나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인간 조건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지혜’를 배웠으며 가르쳤다. 삶의 습관이 겸양과 포기와 수락의 달콤한 맛과 더불어 우리의 목구멍에 조금씩 조금씩 부어 넣는 그 독을 탄 카모마일 차를, 학식 있고 사려 깊고, 몽상적이며 섬세하고 교양 있고 회의적이면서 가문 좋고 좋은 교육을 받고 인류를 열렬히 사랑하는 그들은, 마음속 깊이에선 비밀리에 인간이란 불가능한 기획임을 언제나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히틀러의 승리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명백한 생물학적, 형이상학적 예속에, 정치적, 사회적 예속을 첨가할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누구도 모욕하려는 의도 없이, 나는 좀 더 심하게 말할 수 있다. 즉 그들은 합리적이고, 그 한 가지만으로도 그들을 경계할 충분한 이유가 되리라고. 그들은 합리적이다. 능란하고 신중하며, 모험을 피하고, 안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수에게 십자가에서 죽기를 피하게 하고, 반 고흐에게 그림 그리는 걸 피하게 하고, 프랑스 인이 총 맞아 죽는 것을 피하게 하고, 나의 모렐(저자의 또 다른 소설 ‘하늘의 뿌리’의 주인공)에게 코끼리를 피하게 해서, 교회와 미술관과 제국들과 문명들의 탄생을 막아 그 모든 것을 함께 무에 처박았을 거라는 점에서. (P300-30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아올랐다. 나는 내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의 튼튼한 힘이 나를 지켜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또 걸작에의 내 모든 취향, 완성되어가고 있는 중의 예술 작품 —그것에 숨겨진, 그러나 변할 수 없는 논리는 항상 결국에 가선 아름다움의 논리일 것이었다— 에 다가가듯 인생에 접근하는 나의 본능적 태도가, 내 상상속에서, 색조와 비례사이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 사이의 엄격한 조화의 법칙에 따라 미래를 정돈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모든 인간의 운명이 무엇보다 균형과 조화를 염려하는 고전적이고도 지중해적인, 위엄 있는 영감에서 비롯되기라도 하는 듯이, 사물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정의를 일종의 미학적 절대성으로 화하게 함으로써, 어머니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어머니의 해피엔드인 나는— 절대로 손상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집으로 금의환향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던 것이다. (P317)     

인생은 젊다. 늙어가면서 그것은 삶과 시간을 만들고, 작별도 만든다. 그것은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고 더 이상 내게 줄 것이 없다. 나는 가끔 내가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찾는다. 가끔 나는 스무 살에 죽은 친구의 얼굴을 다시 발견한다. 흔히 그것은 똑같은 몸짓, 똑같은 웃음, 똑같은 눈들이다. 무엇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면 거의 —거의!— 이렇게 믿게 되곤 한다. 이십 년 전의 나의 무엇인가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나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내가 패배했다는 것, 그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졌을 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현명함도 체념도 없다. 나는 빅서의 모래 위에 해를 받으며 엎드려 있고, 내 온몸에서 내 뒤에 올 모든 이들의 젊음과 용기를 느낀다. 나는 신뢰를 느끼며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물개들과 또 이 계절이면 물을 뿜으며 백 마리씩 떼를 지어 지나가는 고래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대양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으며, 우리가 모두 함께 이곳에 있음을 알고 있다. 다시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서. (P364-365)     


인생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도 세상을 작가의 영감에 복종할 수 있고, 그것의 진정한 소명에 맞추어 재구성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작가의 진정한 소명, 그것은 잘 다듬어지고 깊이 사고된 작품의 소명이었다. 나는 아름다움을, 따라서 정의를 믿고 있었다. 어머니의 재능은 나로 하여금 어머니가 나를 위해 그토록 꿈꾸어 왔던, 그토록 열렬히 믿었고 애써왔던 예술의 걸작, 인생의 걸작을 어머니에게 바치고 싶어하게끔 만들었다. 이 정당한 완성이 어머니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인생이 그토록이나 요령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순진성과 상상력, 동부 폴란드의 시골에 버려진 한 아이에게서 미래의 위대한 프랑스 작가와 프랑스 대사를 발견케 한 어머니의 그 기적에의 믿음은 근사하게 이야기된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모든 힘을 발휘하며 내 안에서 계속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인생을 문학의 한 장르로 생각하고 있었다. (P372)   

  

어머니는 편지 속에서 나의 찬란한 무훈을 묘사하곤 했는데, 고백하건대 나는 그것을 어떤 즐거움을 느끼며 읽곤 하였다. ‘사랑하는, 영광된 내 아들아’ 하고 어머니는 썼다. ‘우리는 신문에서 너의 영웅적 전과에 대한 이야기를 감사와 경탄으로 읽었단다. 쾰른의 하늘, 브레멘의 하늘, 함부르크의 하늘에서 펼쳐진 너의 날개는 적들의 심장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나는 어머니를 잘 알고 있었고, 어머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였다. 어머니에게는 R.A.F.의 비행기가 목표물을 폭격할 때마다 내가 탑승해 있는 것이었다.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모든 전선에 참가하고 있었으며, 독일 비행기가 영국 비행기에 의해서 격추될 때마다 너무도 당연히 어머니는 그 승리를 내게 돌렸다. 뷔파 시장 길목들은 내 무훈의 메아리로 가득 찼을 것이다.  (P372)     


벌써 내게 종부성사를 베풀어준 지 일주일이 되었고, 그토록 까다롭게 굴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음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나쁜 노름꾼이었다. 나는 내가 졌음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약속을 지키고, 수백 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영광에 뒤덮여 집으로 돌아가고, ‘전쟁과 평화’를 쓰고, 프랑스의 대사가 되고, 간단히 말해 내 어머니의 재능이 널리 드러나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P387)     


‘자네가 어디서 살아 돌아왔는지 결코 자넨 모를 걸세.’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들은 탯줄을 자르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운명에게 한 형태와 의미를 주고자 애쓰는 모든 인간적 손을 질투하는 그 신들은 내 몸이 피 흘리는 하나의 상처에 지나지 않게 될 때까지 내게 악착스레 달라붙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내 사랑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탯줄을 자르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고, 그래서 나는 소생했다. 내 어머니의 의지와 생명력과 용기가 계속 내게 흘러와, 나를 먹여주었던 것이다. (P388-389)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 시간이 필요하였다. 어머니는 삼년 반 전 내가 영국으로 떠난 몇 달 수에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이 나를 받쳐주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내가 서 있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죽기 앞선 몇 달 동안 어머니는 거의 이백오십 통의 편지를 썼고, 그것을 스위스에 있는 한 친구에게 보냈던 것이다. 내 아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편지들은 규칙적으로 발송될 테니까. 바로 그거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성 앙트완 병원에 갔던 날, 어머니의 시선 속에서 어떤 계략의 표정을 잡아내었을 때,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궁리해내었던 것은. 그리하여 어머니가 죽은 지 삼 년이 넘도록 나는 계속 내가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탯줄은 계속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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