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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Oct 28. 2024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

영화 <소립자> 2006년

영화 <소립자>는 2006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남우주연상으로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이다.

[프롤로그]

제르진스키가 살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체로 철학을 어떠한 실체적 중요성도 없는 것으로, 심지어는 대상조차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 어떤 시대에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장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 세계관이 그 사회의 경제와 정치와 풍속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적 돌연변이, 즉 대다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세계관의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변화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아주 드물게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의 출현이 바로 그런 변화에 해당된다.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는 일단 일어났다 하면, 이렇다 할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궁극적인 귀결에 이를 때까지 발전해 간다. 그러면서 정치-경제 체제며 심미적 판단이며 사회적 위계 질서를 가차없이 휩쓸어 간다. 인간의 어떤 힘도 그 흐름을 중단시킬 수 없다. 그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형이상학적 돌연변이의 출현뿐이다.

그런데 언뜻 생각하기에는 형이상학적 돌연변이가 약해진 사회,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사회를 공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기독교가 출현했을 때, 로마 제국은 세력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최고도의 조직화를 자랑하며 당시에 알려진 세계를 모두 지배하고 있었고, 과학 기술과 군사력에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럼에도 로마 제국은 전혀 승산이 없었다. 근대 과학이 등장했을 때, 중세 기독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완벽한 이해 체계를 구성하고 있었다. 기독교는 국민 통치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고, 학문과 예술을 지배했으며, 전쟁과 평화를 좌지우지하였고, 부의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였다. 그럼에도 기독교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제4의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는 여러 가지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 미셸 제르진스키는 그 형이상학적 돌연변이의 선구자도 주인공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살아가면서 겪은 몇 가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그는 가장 자각적이고 가장 명철한 주동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P9-11)   

  

[제1부 잃어버린 왕국]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한 처녀는 불행하다. 사랑받을 가능성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추근대거나 지분거리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녀는 마치 투명 인간과 같아서 그녀가 지나가도 그녀의 뒤를 따르는 눈길이 없다. 사람들은 그녀가 앞에 있으면 거북함을 느끼기 때문에 차라리 그녀를 무시해 버린다. 그와 반대로, 더없이 아름다운 여자들, 이를테면 꽃다운 나이의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큼한 아름다움을 훨씬 뛰어넘는 미녀들은 현실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한결같이 어떤 비극적인 운명을 예고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나이와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남자들이 주목하는 젊은 여자들, 중간 규모의 도시 번화가를 따라 그냥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청장년 남자들의 심장 박동을 빨라지게 하고 노인들의 입에서 한탄 섞인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게 하는 아가씨들. 아나벨은 열다섯 살쯤부터 그런 희귀한 여자들 축에 들게 되었다. 그녀는 교실이나 카페에 자기가 나타날 때마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녀가 그 까닭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몇 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크레시 앙 브리 중학교에서는 그녀가 미셸과 <사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설령 그런 소문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감히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남학생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었다. 젊은 여자가 너무 빼어난 미모를 지녔을 때 겪는 주된 고충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여자들과 상대가 된다고 스스로 느끼는 사내들은 노련하고 능글맞고 거리낌없는 색골들뿐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내들 중에서 가장 비루한 것들이 그녀들의 처녀성이라는 보물을 얻는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영락(零落)의 첫걸음이 된다.          (P86-87)  

   

브뤼노는 어머니의 집에 처음 머물 때부터 히피들이 자기를 받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잘생긴 동물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결코 되지 않을 것이었다. 밤이면 그는 열려 있는 음부들을 꿈에서 보았다. 그 무렵에 브뤼노는 카프카를 읽기 시작했다. 카프카를 처음 읽었을 때, 그는 살얼음이 깔리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심판>을 읽었을 때는 다 읽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난 뒤에도 멍하고 노곤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카프카가 그리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수치심으로 얼룩진 그 슬로 모션의 세계, 존재와 존재가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만큼이나 막막하고 허허로운 공간에서 마주치기만 할 뿐 그들 사이에 어떤 관계도 맺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세계, 그것은 바로 브뤼노의 정신 세계였다. 이 세계는 느리고 차가웠다. 그래도 따뜻한 것이 있기는 했다. 여자들의 두 다리 사이에 있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도달할 수 없었다.            (P90-91)     

1974년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풍속의 해방을 진전시키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3월 20일에 파리에서 비타톱이라는 헬스클럽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 클럽은 그 뒤로 육체미와 육체 숭배의 영역에서 개척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7월 5일에는 성년을 18세로 낮추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같은 달 11일에는 쌍방이 합의하면 이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채택되고 간통죄가 형법에서 사라졌다. 또한 11월 28일에는 임신 중절을 허용하는 이른바 <베이유 법. 이 격렬한 토론 끝에 통과되었다. 대다수 뉴스 해설자들은 그것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규정하였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오랫동안 주류를 이뤄 온 기독교적 인류학에서는 수태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온 생명을 한없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 당연한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육신 안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 영혼은 영원히 살아서 나중에 하느님과 결합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생물학이 발전함에 따라 유물론적 인류학이 서서히 부상하게 된다. 기독교적인 인류학과 비교할 때 전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 인류학은 윤리적인 면에서 한결 온건한 태도를 취한다. 유물론적인 인류학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기독교적 인류학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유물론적 인류학에서는 태아를 무조건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점진적 분화 상태에 있는 세포들의 작은 집합체인 태아는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하는 유전적 결함이 없는 경우, 부모가 동의하는 경우)에만 생명을 가진 독립된 개체로 인정된다. 다음으로, 유물론적 인류학에서는 노인을 지속적인 해체 상태에 있는 기관들의 결합체로 간주한다. 노인은 기관들이 충분히 연계하면서 기능하고 있다는 조건에서만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권리를 진정으로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이렇듯이 인생의 양쪽 끝에 있는 두 시기는 임신 중절이나 안락사와 같은 윤리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근본적으로 상반된 두 인류학은 계속 대립하게 된다.

프랑스 공화국은 원칙적으로 불가지론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 불가지론은 결국 유물론적 인류학이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유물론적 인류학의 승리는 점진적이고 위선적이고 약간은 음험하기까지 했다. 인간 생명의 <가치>라는 문제는 공개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았을 뿐이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서구 문명의 마지막 몇 십 년 동안 사회 전반에 의기소침하고 때로는 자학적이기까지 한 분위기가 조성된 데에는 그 문제도 한몫을 했을 게 틀림없다.              (P102-103)   

  

1974년 7월의 어느 날 밤, 아나벨은 바로 그런 정황에서 자신이 하나의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인간이 하나의 동물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자각하는 것은 먼저 고통을 통해서다. 하지만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완전하게 자각하는 것은 <거짓말>을 매개로 할 때이다. 개별적인 삶은 사실상 이 거짓말과 혼동될 수 있다. 아나벨은 열여섯 살까지 부모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다. 미셸에게도 비밀로 하는 것이 없었다(그것이 아주 드물고 소중한 일이었음을 그녀는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그날 밤 아나벨은 몇 시간만에 인간의 삶이 거짓말들의 끊임없는 연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기회를 통해서,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도 알았다.

개별적인 삶,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유의 느낌은 <민주주의>의 자연적인 토대를 이룬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보통 <계약>의 형태로 조정된다. 만일 어떤 계약이 계약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쪽의 자연권을 침해한다거나 계약 취소에 관한 분명한 조항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 계약은 이 같은 사실만으로도 무효가 된다.          (P112)  

   

[제2부 기이한 계기들]

1967년 12월 14일, 프랑스 국회는 피임의 합법화에 관한 뇌비르트 법을 제1차 심의에서 통과시켰다. 아직 사회 보험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경구 피임약이 약국에서 자유롭게 팔리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다. 또한 이른바 <성적인 해방>의 혜택이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성적인 해방은 고급 관리자와 자유업 종사자, 예술가, 일부 중소 기업 사장등의 전유물이었다. 예전에 그 성적인 해방은 때때로 공동체주의적 꿈의 형태로 제시된 바가 있었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현실을 따져 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로 성적인 해방은 공동체주의의 실현이기는커녕, 개인주의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살림>같은 아름다운 말들이 시사하듯이, 부부와 가족은 자유주의 사회 내부에서 원시 공산주의의 마지막 섬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성적인 자유는 개인을 시장 원리로부터 지켜 주는 그 마지막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파괴의 과정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P168-169)   

  

그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바라는 게 전혀 없는지도 몰랐다. 미셸이 생각하기에, 인생이란 어떤 간단한 것이 될 수도 있을 듯 했다. 그저 무한히 되풀이 되는 작은 의식(儀式)들을 조합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때로는 그 의식들이 조금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래도 그것에 의지하면서 큰 내기도 걸지 않고 비극을 겪는 일도 없이 살 수 있을 법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짜여져 있지 않았다. 미셸은 이따금 외출을 해서 사람들과 건물들을 살펴보곤 했다. 그가 보기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건 과장일 수도 있었다. 무언가에 전력을 다 바치고 있는 듯한 사람들, 어떤 대의에 따라 행동하는 듯한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삶은 어떤 의미 때문에 무게 있어 보였다. 에이즈 퇴치 활동을 전개하는 <액트 업>이라는 단체의 활동가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갖가지 동성애 행위를 클로즈 업해서 찍은 광고들을 텔레비전에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 광고를 포르노라고 생각하건 말건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체로 보아 그들의 삶은 즐겁고 활기차 보였으며, 다양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파트너가 여러 명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백 룸>에서 항문 성교를 하곤 했다. 이따금 콘돔이 빠지기도 하고 터지기도 했다. 그러면 에이즈로 죽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그들은 친구들의 죽음에 당당하고 전투적인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상업방송 TF1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를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쳐 들었다. 미셸은 청소년기에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 더욱 존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는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텔레비전이었다.                (P174-175)     


1982년 데플레슈앵을 만났을 때, 미셸은 파리 11대학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끝내 가고 있었다. 그 연구의 일환으로 그는 알랭 아스페 박사의 실험에 참여하였다. 동일한 칼슘 원자로부터 연속적으로 방출된 두 광자의 운동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미셸은 그 팀에서 가장 젊은 연구원이었다.

아스페의 실험은 정확하고 엄밀했으며 완벽한 자료로 뒷받침되어 있었다. 이 실험은 학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35년에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와 로젠이 양자 이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이래, 처음으로 그것에 대한 완벽한 재반론이 나왔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실험 결과는 양자 이론의 예언과 완벽하게 일치하였고, 아인슈타인의 가설에서 나온 벨의 부등식은 명백하게 부정되었다. 그럼으로써 이제 두 개의 가설만이 남게 되었다. 하나의 가설은, 소립자의 운동을 결정하는 감추어진 속성들이 국소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소립자들은 서로 얼마만큼 떨어져 있든 간에 즉각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또 하나의 가설은, 소립자들이 관측 문제와 무관하게 내재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재적인 속성을 지닌 소립자라는 개념을 포기하면, 우리는 깊디깊은 존재론적 공허 앞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실증주의를 채택하는 한편, 잠재된 현실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고 관찰 가능한 것을 예측하는 수학적 형식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연구자들의 대부분은 물론 두 번째 가설 쪽으로 결집하였다.                (P181-182)   

  

“소피, 니체가 셰익스피어에 관해서 뭐라고 썼는지 알아요? <이 남자는 고통을 많이 겪은 게 틀림없다. 오죽하면 어릿광대 노릇을 다 하고 싶어했겠는가!> 내가 보기에 셰익스피어는 과대평가된 작가예요. 하지만 니체 말대로 그는 괜찮은 어릿광대죠.”           (P196)     


숄레의 르클레르 슈퍼마켓은 밤 10시까지 영업을 했다. 그는 진열대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키가 작은 여자는 인류의 마지막 사람들과 다른 종에 속한다. <남자는 키가 작아도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자는 키가 작으면 내 눈에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종에 속하는 피조물로 보인다>라고 그 철학자는 썼다. 그는 어떻게 그런 기이한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무슨 까닭으로 평소의 양식(良識)과 그토록 동떨어진 주장을 했을까?                  (P196-197) 

    

“<변화의 장> 고참이시니까(브뤼노는 이 말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비록 말뿐일지라도 어떤 은근한 연대감을 표시하려는 자신이 우스워서였다). 이곳의 초기 모습을 기억하시겠군요. 성적인 해방을 소리 높이 외쳤던 1970년대 말입니다.......”

그는 대뜸 볼멘소리를 내질렀다.

“해방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해방! 기껏해야 내 자지의 해방이지. 파트루즈를 해도 옆에서 구경만 하는 여자들은 늘 있었고, 제 물건만 흔들어 대는 사내들도 노상 있었어. 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애.”

“그래도 에이즈 때문에 달라진 게 있다고 하던데요......”

그는 마른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다음, 브뤼노의 지적을 인정하며 말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사실, 예전에는 한결 간편했어. 입이든 질이든 격식을 가리지 않고 그냥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진정한 의미의 파트루즈를 했다고 볼 수는 없어. 우선 아무나 거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게 아냐. 입구에서 선별되었지. 대개 커플로 온 사람들만 받아 주었어. 그뿐이 아냐. 나는 가끔 이런 여자들을 봤네. 다리를 벌린 채 음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데 아무도 삽입하러 오는 남자가 없어서 파티 내내 자위만 하던 여자들 말일세. 그냥 그녀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하는 것도 불가능했어. 최소한 발기가 되어야 뭐든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들 앞에서는 그것조차 안 되었던 거지.”

브뤼노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요컨대 성적인 공산주의는 존재한 적이 없었고, 단지 유혹 체계가 확대되었을 뿐이군요.”

“그런 셈이야....... 유혹이야 어느 시대나 있었던 거니까 그게 조금 확대되었다고 해방이라고 말할 순 없지.”                    (P200-201)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놀랍도록 정확하게 미래를 예언했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정확함에 놀라게 돼. 그가 그 책을 쓴 것이 1932년이야. 그 점을 생각하면 헉슬리는 정말 굉장한 작가지. 그 이후로 서구 사회는 줄곧 그 모델에 다가가려고 노력해 왔어. 우선 출산에 대한 통제가 갈수록 정확해지고 있어. 이런 경향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생식과 섹스가 완전히 분리될 것이고, 인류의 재생산이 안전성과 유전학적 신뢰성이 완전히 보장되는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게 될 거야. 그러면 가족 관계가 소멸하고 혈연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겠지. 또 의약과 진보 덕분에 젊은이와 늙은이의 구별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어. 헉슬리가 묘사한 세계에서는 60대 노인이 20대 젊은이와 똑같은 외모와 욕망을 지니고 똑같은 활동을 해. 그러다가 노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자유롭게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어. 고통받지 않고 아주 조용하고 빠르게 죽을 수 있지. <멋진 신세계>에 묘사된 사회는 비극과 극단적인 감정이 사라진 행복한 세계야. 성적인 자유가 완벽하고, 개성을 꽃피우거나 쾌락을 추구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없어. 우울증과 슬픔과 회의를 겪는 순간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 문제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같은 약을 복용함으로써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 <1세제곱센티미터의 약으로 열 가지 감정을 다스리는> 진보가 이룩되거든. 그 세계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열망하는 세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세계가 아니겠어?”

미셸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는데, 브뤼노는 마치 미셸의 반론을 제지하려는 듯한 손짓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헉슬리의 세계를 대개 전체주의적 악몽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 사람들이 그 책을 악의에 찬 고발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런 태도는 한낱 위선일 뿐이야. 유전자 조작, 성적인 자유, 노화에 맞선 투쟁, 레저 문화 등 모든 점에서 <멋진 신세계>는 우리에게 하나의 천국이야.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바로 그런 세계에 도달하려고 노력해 왔어. 비록 성공은 못했지만 말이야. 다만 그 세계가 오늘날 우리의 평등주의적 가치 체계와 배치되는 점이 한 가지 있기는 해. 아니, 평등주의적 가치 체계와 배치된다기보다는 능력주의적 가치 체계와 배치되는 점이 하나 있어. 사회를 카스트로 나누고 각 카스트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일에 종사하게 하는 제도가 바로 그거야. 하지만 헉슬리의 예언은 오직 그 점에서만 들어맞지 않았어. 기계화와 자동화가 진전되면서 거의 쓸모없게 된 유일한 요소지. 올더스 헉슬리는 글재주가 아주 형편 없는 작가야. 그의 문장은 무겁고 서걱서걱하며, 그의 인물들은 따분하고 기계적이지. 하지만 그는 뛰어난 직관을 지니고 있었어. 비록 그가 섬세함이나 심리 분석이나 문체에는 결함이 있었다 할지라도, 당초의 직관이 정확했던 것에 비하면 그런 결함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또한 그는 공상 과학 작가들을 포함한 모든 작가 중 생물학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야. 그는 물리학의 뒤를 이어 생물학이 사회 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브뤼노는 말문을 닫았다. 문득 동생이 조금 여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마음을 약간 딴 데에 팔고 있는 듯했다. 사실, 미셸은 며칠 전부터 슈퍼마켓에 가는 것을 게을리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과는 달리 슈퍼마켓 앞에 거지들과 신문팔이들이 많이 죽치고 있었다. 그래도 한여름이라서 다행이었다. 여름은 가난이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계절인 것이다. 만일 전쟁이라도 나면 저들은 어떻게 될까? 미셸은 부랑자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통유리창 너머로 관찰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브뤼노는 포도주를 한 잔 따라 마셨다.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미셸이 지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헉슬리는 영국의 위대한 생물학자 집안 출신이야. 다윈의 친구였던 그의 할아버지는 진화론을 옹호하기 위한 글을 많이 썼어.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 줄리언 역시 저명한 생물학자였어. 실용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영국 지식인의 전통에 충실한 집안이었지.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지식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관찰과 실험적인 방법을 중시했어. 젊은 시절에 헉슬리는 아버지가 집에 초대한 지식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어. 그들 중에는 경제학자나 법률가도 있었지만, 과학자가 특히 많았지. 그는 자기 세대의 작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물학이 가져올 진보를 예감한 사람이야. 만일 나치즘이 없었다면 그가 예상한 진보는 훨씬 더 빨리 이루어졌을 거야. 나치 이데올로기 때문에 우생학과 인종 개량의 발상들이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되었지. 그것들로 다시 돌아가는 데에 몇 십 년이 걸렸어.”

미셸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에서 “내가 감히 생각하는 것”이라는 책을 꺼냈다.

“이 책은 올더스의 형인 줄리언 헉슬리가 1931년에 출간한 거야. <멋진 신세계>보다 1년 앞서 나온 책이지. 이 책에는 인류를 포함한 생물 종들의 개량과 유전자 조작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어 있어. 동생인 헉슬리가 소설로 형상화한 그 모든 것이 인류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바람직한 목표로 이 책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어.” 

미셸은 다시 자리에 앉아 이마에 땀을 훔쳤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 줄리언 헉슬리는 갓 창설된 유네스코의 사무처장으로 임명되었어. 같은 해에 그의 동생은 <다시 가본 멋진 신세계>를 발표했지. 이 책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자기의 <멋진 신세계>를 하나의 고발과 풍자로 소개하려 애쓰고 있어. 몇 년 뒤에 올더스 헉슬리는 히피 운동의 중요한 이론적 지주가 되었어. 그는 줄곧 섹스의 완전한 자유를 지지했고 환각제의 사용에서 개척자 역할을 했어. 에살렌 공동체의 설립자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었고 그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지. 나중에 뉴 에이지는 에살렌 공동체 설립자들의 테마를 온전히 인계했어. 그런 점에서 보면, 올더스 헉슬리는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가 중 하나지.”                  (P230-234)     

“올더스 헉슬리는 1962년에 <섬>을 발표했어. 그의 마지막 책이지. 이 책은 어떤 섬을 무대로 삼고 있어. 식생이며 풍광으로 볼 때 스리랑카를 모델로 한 듯한 낙원 같은 열대의 섬이야. 이 섬에는 20세기의 상업적인 조류와 무관한 독창적인 문명이 발달해 있어. 과학 기술의 측면에서 대단히 진보해 있으면서도 자연을 존중하는 문명이야. 유대-기독교적 억압과 가족 관계가 야기하는 신경증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평화로운 문명이지. 거기에서는 나체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사랑과 쾌락을 자유롭게 추구해. <섬>은 졸작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이야. 이 책은 히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들을 통해서 뉴 에이지 신봉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어. 찬찬히 읽어보면, <섬>에 묘사된 공동체와 <멋진 신세계>의 공동체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사실 헉슬리 자신은 노망이 들었던 탓인지 그 유사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 하지만 <섬>에 묘사된 사회는 <멋진 신세계>와 닮은 구석이 많아. 히피 사회가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 사회나 그것의 변형인 스웨덴식 사회 민주주의사회와 닮은 점이 많다는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아.”

미셸은 말을 중단하더니, 새우 하나를 매운 소스에 적시고 젓가락을 도로 내려놓았다. 입맛이 떨어진 듯하나 표정을 지으며 그가 다시 말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낙관주의자였어. 유물론과 근대 과학이 낳은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는 두 가지 중대한 결과를 야기했어. 합리주의와 개인주의가 바로 그거야. 헉슬리의 실수는 그 두 결과 사이의 세력 관계를 잘못 평가했다는 거야. 특히 죽음에 대한 의식이 강해짐으로써 개인주이가 확대되리라는 것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게 그의 실수였어. 개인주의에서 자유와 자아 의식이 생기고, 나와 남을 구별하려는 욕구와 남보다 우월해지려는 욕구가 생겨. <멋진 신세계>에 묘사된 것과 같은 합리적 사회에서는 서로 우월해지려고 다투는 것이 완하될 수 있어. 공간을 지배하려는 욕구의 은유(隱喩)인 경제적 경쟁은 부유하면서도 경제의 흐름이 통제되는 사회에서는 더 존재할 이유가 없어. 또 생식을 통해 시간을 지배하려는 욕구의 은유인 성적인 경쟁은 섹스와 생식의 분리가 완전하게 실현된 사회에서는 더 존재할 이유가 없어. 하지만 헉슬리는 합리주의만 생각했을 뿐 개인주의를 고려하지 않았어. 그는 섹스가 생식으로부터 분리되고 나면 쾌락의 원리로서 존속하기보다 자기 도취적인 차별화의 원리로서 존속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 부유해지려는 욕구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야.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자유주의 모델을 이겨 본 적이 없어. 또 그 모델은 성적인 영역에서는 실험된 적이 없어. 그 까닭이 무엇이겠어? 근대 과학이 야기한 형이상학적 돌연변이가 개인주의와 허영과 증오와 욕망을 낳기 때문이야. 욕망은 그 자체로 고통과 증오와 불행의 원천이야. 불교나 기독교의 성현들뿐만 아니라 철학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 모두가 그것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가르쳤어. 플라톤에서 푸리에를 거쳐 헉슬리에 이르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의 해결책은 욕망의 직접적인 만족을 도모함으로써 욕망과 그에 따른 고통을 소멸시키자는 거야. 반면에 섹스와 광고가 판치는 우리 사회는 욕망의 충족을 개인적인 영역에 묶어 두면서 욕망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발전시키는 데에 몰두하고 있어.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경쟁이 지속되어야 하고, 경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욕망이 증가하고 확대되어야 하는 거지. 그 욕망이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어.”

미셸은 지친 기색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음식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브뤼노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완화제가 있어. 휴머니즘적인 해독제가 있다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죽음을 잊을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것이 항불안제와 항우울제야. <섬>에서는 명상과 환각제, 힌두교와 관련된 몇 가지 요소들이 나와 있어. 실제로 오늘날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결합시키려 하고 있어.”

미셸은 싫은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되받았다.

“줄리언 헉슬리 역시 <내가 감히 생각하는 것>에서 종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책의 제2부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지. 그는 과학과 유물론의 진보가 모든 전통 종교의 토대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어. 동시에 그는 어떤 사회도 종교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어. 그래서 그는 1백 페이지가 넘는 지면을 통해 자기 나름대로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 종교의 토대를 세워 보려고 하지. 하지만 그 결과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 사실, 육체적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종교와 과학을 융합할 수 있다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고, 인간의 허영과 잔인성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지. 사랑이 작은 위안은 되겠지만, 그것도 희망이 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야.”                 (P235-237)   

  

“사춘기에 막 들어선 사내아이보다 더 어리석고 심술궂고 고약한 존재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거야. 녀석들이 제 또래의 다른 사내아이들과 패거리를 짓고 있을 때는 특히 그렇지. 사춘기에 막 들어선 사내아이는 괴물에다 바보야. 녀석들의 부화뇌동은 거의 상상을 초월하지. 그 나이가 되면 인간의 내면에 있는 가장 나쁜 것이 돌연 하나의 사악한 결정(結晶)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 그 녀석들이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모습이지. 사정이 이러하니, 어떻게 성징(性徵)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나쁜 힘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겠어? 그런 녀석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며 사는지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삶이 텅 비어 있을 때나 가능한 거야. 그렇다고 내 삶이 비어 있지 않다는 얘기는 아냐. 내 삶도 텅 비어 있어. 그래도 나는 견뎌 내지 못할 거야. 어쨌거나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어. 모두가 우스꽝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어. 사람들은 이혼을 하고도 좋은 친구로 남아. 주말에는 번갈아 가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그건 비열한 거야. 아주 비겁하고 째째한 것이지, 사실 남자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관심을 갖지도 사랑을 느끼지도 않아.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남자들은 사랑을 느끼는 능력이 없어. 사랑이란 그들과 거리가 먼 감정이야. 그들이 아는 건 욕망, 특히 동물적이고 성적인 욕망이며 수컷끼리의 경쟁이야. 그래도 옛날에는 남자들이 나이가 들고 결혼 생활도 오래 하고나면, 자기 아내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곤 했어. 아내가 자식 낳아 주고 살림 잘하고 좋은 요리사에다 좋은 섹스 파트너 노릇까지 해줄 때에 말이야. 그럴 때 남자들은 자기 아내랑 같은 침대에 자면서 쾌락을 느꼈지. 어쩌면 여자들이 원하는 건 그런 고마움의 감정이 아니었을 거야. 그래서 불화가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감정은 아주 강력한 것이었어. 그래서 남자들은 아내와 성행위를 하는 기분이 갈수록 밍밍해져도, 말 그대로 아내 없이는 살 수 없었지. 불행하게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몇 개월 만에 아내 뒤를 따라가는 남자들이 적지 않았어. 한편, 그 시절엔 자식들에 대한 생각도 오늘날과 달랐어. 자식이란 어떤 신분과 규범을 계승하고 재산을 상속받는 존재였지. 봉건 귀족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상인이나 농민, 수공업자 등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 그러했어. 오늘날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아. 나는 봉급쟁이고 세입자야. 내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 전혀 없어. 아들에게 일을 가르쳐야 하는 것도 아냐. 나는 녀석이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조차 모르고 있어. 또 내가 익힌 규범은 내 아들에게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될 가능성이 많아. 녀석은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테니까 말이야.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삶이 대대손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삶으로 끝나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게 되면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지. 우리 삶이 바로 그래. 오늘날에는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 남자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하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달라. 여자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어하고, 사랑할 존재를 필요로 하지. 남자들은 그런 욕구를 느끼지 않아.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남자들 역시 아기를 돌보고 싶어하고 자녀들과 놀고 싶어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진실이 아냐. 이혼으로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고 나면, 남자들에게는 부자 관계나 부녀 관계라는 게 전혀 의미가 없어. 자식은 그저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함정이고, 평생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애물단지야.”

미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공중에서 불그스름한 바퀴들이 빙빙 돌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손이 자꾸 떨리고 있었다. 브뤼노의 말이 맞다. 부성애란 허구이고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그것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쓸모가 있다. 변화가 실패로 돌아가면, 남는 건 거짓말에 대한 의식과 씁쓸한 뒷맛뿐이다.           (P246-248)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편이 덜 고통스럽겠다 싶으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 나서는 말문을 닫고 다시 혼자가 된다. 브뤼노가 자기 인생의 실패한 부분을 되짚고 싶어 하는 것은 아마도 무언가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새로운 출발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건 좋은 징조였다.            (P251)   

  

브뤼노를 한낱 개인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그의 기관들이 썩어가는 것은 그의 몫이다. 또한 그는 개인적으로 육체적인 쇠퇴를 겪고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쾌락주의적 인생관이나 그의 의식과 욕망을 구조화하는 역장(力場)은 그의 세대 전체에 속한다. 어떤 실험을 위해 장비를 설치하고,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관측 가능한 물리량을 선택하면, 하나의 원자 시스템에 일정한 운동 —입자적인 운동이든 파동이든 운동이든—을 부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브뤼노는 한낱 개인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떤 역사적 흐름의 수동적인 요소일 뿐이다. 동기, 욕망, 가치관 등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그는 동시대인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욕구 불만 상태에 빠진 동물이 보여 주는 첫 번째 반응은 대개 더 힘을 내서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닭(갈루스 도메스티쿠스)을 철망 울타리에 가두어 먹이를 얻지 못하게 하면, 이 닭은 철망 울타리를 넘어가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그 행동은 점차 다른 행동으로 바뀐다. 이 다른 행동에는 일견 아무 목적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비둘기(콜룸바 리비아)는 원하는 먹이를 얻지 못하게 되면, 땅바닥을 자꾸 콕콕 쪼아 댄다. 땅바닥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비둘기는 그렇게 공연히 부리로 땅바닥을 쪼는 행위를 할뿐만 아니라, 제 깃털을 매끈하게 다듬는 짓을 하기도 한다. 욕구 불만이나 갈등을 초래하는 상황에서 자주 나타나는 그런 의미 없는 행동을 흔히 <대상(代償) 행위>라 부른다. 1986년 초, 나이 서른을 갓 넘긴 브뤼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와 맥락이 비슷한 행위였으리라.             (P261-262)  

   

늙는다는 게 바로 그런 걸 거야. 감정의 반응은 무뎌지고 원한도 기쁨도 별로 간직하지 않게 돼. 그 대신 몸 여기저기에 이상은 없는지, 기관들의 균형이 무너져 있지는 않은지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되지.                  (P280) 

    

브뤼노는 체념 어린 말투로 말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소시지를 먹을 줄만 알았지, 돼지를 어떻게 기르는지도 모르고 소시지나 포크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라.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들, 내가 사용하거나 먹고 마시는 것들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그것들의 생산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어. 만일 산업 활동이 정지되거나 엔지니어와 전문 기술자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난 공장을 다시 가동시키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거야. 경제와 산업 부문의 문외한인 나는 나 자신의 생존조차 책임질 수 없을 거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도 모를 거고, 악천후로부터 나를 지키지도 못할 거야. 나의 기술적인 능력은 네안데르탈 인의 능력에도 훨씬 못 미치지 않을까 싶어.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의존하기만 할 뿐, 사회에는 거의 쓸모가 없어.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낡아빠진 문화적 대상에 대한 모호한 해석을 생산하는 것뿐이야. 그런데도 나는 봉급을 받아. 그것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짭짤한 봉급을 받지. 내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해.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 동생뿐이야.”

“동생이 아주 대단한 일을 했나 봐. 무슨 일을 했지?”

브뤼노는 상대를 놀라게 할 만한 대답을 찾느라고 접시의 치즈 조각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잠시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젖소를 만들어 냈어. 이건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의 연구 덕분에 유전적으로 변형된 젖소들이 태어났어. 영양이 아주 풍부한, 품질 좋은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를 말이야.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 기여했어.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았어. 세상에 기여한 것이 전혀 없지.”

“그래도 나쁜 일은 하지 않았잖아.........”                   (P299-300) 

    

그는 유럽을 불 바다와 피 바다로 만들었던 나폴레옹을 존경했어. 나폴레옹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종교나 신념을 내세우지도 않고 수십만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어. 히틀러나 스탈린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자기와 나머지 사람들을 철저하게 구분했어. 그가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지배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어. 다비드는 자기 가문의 뿌리가 이탈리아의 제노바에 있고, 나폴레옹도 옛날 제노바 공화국의 섬이었던 코르시카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해 냈어. 그러고는 자기가 나폴레옹과 친척 관계에 있다고 상상했지. 새벽에 전선을 둘러보다가, 팔다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진 채 쓰러져 있는 수천 구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까짓거....... 파리의 남녀들이 하룻밤만 자고 나면, 이 모든 피해를 다 복구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던 그 독재자와 말이야.                    (P310)   

  

브뤼노가 살아오면서 자주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쾌락을 쫓아 행동했다. 물론 그 쾌락이라는 개념 속에는 타인의 평가나 칭찬과 긴밀하게 결합된 자아 도취적 만족감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쾌락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인생이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규칙도 예외는 있었다. 그의 이복 동생 미셸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그에게는 쾌락이라는 말 자체를 결부시키기가 어려울 듯했다. 하지만 쾌락이 아니더라도, 미셸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동기가 있긴 있었을까? 등속도 직선 운동은 마찰이나 외부의 힘이 개입되지 않으면 무한히 지속된다. 미셸의 삶은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었으며, 사회 계층으로 보면 상류층의 중간에 속해 있었다. 브뤼노가 보기에, 미셸의 그런 삶은 이제껏 이렇다 할 마찰 없이 영위되고 있었다. 분자 생물학 분야의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닫힌 세계에서도 서로 자기 세력을 키우려는 암투가 있을 법이다. 하지만 미셸은 그런 것과도 전혀 무관한 듯했다.      (P315-316)     

<우리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오후마다 그 백사장으로 나갔다. 인간의 쾌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 쾌락에 엄격한 시선을 보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르세양 해수욕장의 모래언덕은 누구에게나 아주 인간적인 장소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아무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주지 않고 각자의 쾌락을 최대화하자는 휴머니즘적 제안에 딱 들어맞는 장소이다. 이제부터 그 점을 입증해 보이고자 한다.

성적인 쾌감(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쾌감)은 주로 촉각, 특히 성감대라 불리는 몸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것에 좌우된다. 이 성감대는 크라우체 소체로 덮여 있고, 이 소체들은 시상하부에서 다량의 엔돌핀을 방출시킬 수 있는 뉴런들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 단순한 시스템이 성적인 쾌감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신피질에서 일어나는 어떤 심리적 매커니즘이 그 시스템에 겹쳐지기 때문이다. 이 심리적 매커니즘은 여러 세대에 걸친 문화적 축적 덕분에 생거나는 한결 풍부한 과정으로서 주로 성적 환상과 사람의 감정을 동원한다. 내가 보기에, 마르세양 해수욕장의 모래언덕은 성적 환상을 터무니없이 격화시키는 장소가 아니다. 이곳은 오히려 성적인 문제에 대해 균형 잡힌 태도를 갖게 해주는 장소이며, <선의>의 원리에 바탕을 둔 정상적인 성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의 거점이다. 모래언덕과 바다 사이의 이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먼저 한 커플이 공개적으로 애무를 시작한다. 어느 커플이든 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대개는 여자가 자기 파트너의 성기를 손으로 어루만지거나 혀로 핥아 주고, 남자가 그것에 화답하여 여자에게 똑같이 해주는 것으로 일이 시작된다. 옆의 커플들은 그 애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커플들은 더 잘 보기 위해 다가든다. 그들이 처음 시작한 커플들은 더 잘 보기 위해 다가든다. 그들이 처음 시작한 커플을 조금씩 따라하면서 백사장에는 애무와 색정의 물결이 퍼져 나간다. 이 물결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을 흥분시킨다. 성적인 열기가 고조되면서 많은 커플들이 서로 다가들어 집단적인 애무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든 어떤 상대에게 접근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대개는 명시적으로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원하지 않는 애무를 피하고 싶으면 간단한 고갯짓으로 그 사실을 알린다. 그러면 남자들은 즉시 정중하게 사과를 한다. 남자들의 태도는 너무나 예의바른 나머지 익살스런 느낌마저 든다.

모래언덕을 넘어 내륙 쪽으로 더 들어가면, 남성 참가자들의 이 지극히 정중한 태도가 훨씬 더 놀라운 것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 구역은 한 여자가 여러 남자들을 상대하는 이른바 <갱뱅>의 애호가들을 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한 커플이 애무를 시작함으로써 판이 벌어진다. 보통은 여자의 펠라티오로 시작된다. 그러면 즉시 열 명에서 스무 명쯤 되는 남자들이 이 커플을 에워싼다. 남자들은 앉거나 선 자세로 그 장면을 보면서 자위 행위를 한다. 어떤 때에는 여자가 손짓으로 다른 남자들이 가세해도 좋다는 뜻을 알린다. 그러면 남자들은 서두르지 않고 차례차례 그녀에게 다가가서 손이나 입으로 애무를 하기도 하고 삽입을 하기도 한다. 여자는 판을 중단하고 싶으면 역시 간단한 손짓으로 그 사실을 알린다. 말은 전혀 오고가지 않는다. 모래언덕들 사이로 불어와 풀들을 눕히는 바람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때로는 그 바람마저 잠잠해져 깊은 적막이 감돈다. 쾌락에 겨운 거친 숨결이 적막을 깰 뿐이다.

아그드 곶의 나체주의자 해수욕장이 마치 공상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한 어떤 목가적인 생활 공동체라도 되는 양 좋은 면만을 부각시켜 묘사하는 것은 내 의도가 아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아그드 곶에서도 젊고 몸매가 좋은 여자나 매력적이고 힘이 좋은 남자는 가는 곳마다 듣기 좋은 제안을 받는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아그드 곶에서도 뚱뚱하거나 늙었거나 못생긴 사람들은 자위 행위로 만족해야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다만, 다른 공공 장소에서는 일반적으로 금지되는 이 행위가 여기에서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그드 곶의 나체주의자 해수욕장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장점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포르노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성행위들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데도 폭력적인 요소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는 전혀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성적인 사회 민주주의>는 규율과 계약 존중의 미덕을 잘 보여 주는 흔치 않는 본보기이다. 독일인들로 하여금 한 세대 간격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도 폐허 속에서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게 한 것도 바로 그 규율과 계약 존중이라는 미덕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그와 같은 문화적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겨 온 나라(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아그드 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어쨌거나 예의바르고 규칙을 잘 지키는 그런 태도는 참가자 누구에게나 평온한 쾌락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 대단히 강하다. 이 나체주의자 해변에서 소수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랑그독 지방의 편협한 극우파 패거리, 아랍 계 불량배, 리미니에서 온 이탈리아인들)에게도 그 태도가 쉽게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그 사실을 잘 말해준다.>      (P324-328)    

 

자기 건물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우울증 환자가 아닐까?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닐까? 그의 동네에서는 몇 년 전부터 국민전선에 대한 경계와 투쟁을 호소하는 포스터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그 문제에 관해서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극도의 무관심을 보였다. 이런 무관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불안한 징후였다. 우울증 환자들의 의식 상태는 종종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투입 중단>, 즉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에 대해 정신적인 에너지의 투입을 철저하게 중단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의식 상태는 우선 자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들에 대한 관심의 결여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좀 거칠게 말하자면, 사랑에 빠진 우울증 환자는 상상할 수 있어도 애국심 강한 우울증 환자는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다.               (P334-335)    

 

미셸은 집에 돌아와 주방으로 들어서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행위가, 특히 개인의 정치적 행동이 이성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된다는 믿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대다. 하지만 이 믿음은 아마도 자유와 예측 불가능성을 혼동한 결과일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다가 교각 주위에 다다르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이 강물의 소용돌이는 구조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용돌이를 놓고 <자유롭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백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 커튼을 내린 다음 자리에 누워 생각을 계속했다.

카오스 이론의 방정식들에는 그것들이 적용되는 물리적 계(界)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유체역학, 기상학, 개체군 유전학, 집단 사회학 등에 두루 응용될 수 있다. 이 방정식들이 형태론적 모델화라는 측면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들의 예측 능력은 보잘 것 없다. 반면에 양자 역학의 방정식들은 미시 물리학적 시스템의 운동을 아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만일 물질주의적 존재론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면, 그 정확성은 완벽해질 수도 있다. 이 두 이론을 수학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현재로선 시기상조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셸은 확신하고 있었다. 뉴런과 시냅스의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끌개(attractor)의 구조와 성격을 알아내는 것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설명하는 일의 열쇠라는 것을.               (P335-336)    

 

죽음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죽음에 관한 이미지를 만들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다.               (P340)     


행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고 느낄 때 찾아오는 불행,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불행이다.                  (P364)     


현대인들의 의식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인간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주 오래오래 줄기차게 자기들 나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일찍이 어떤 시대, 어떤 문명에서도 나이에 대한 생각이 이토록 집요했던 적은 없다. 현대인들 각자의 머릿속에는 미래에 대한 한 가지 단순한 전망이 들어 있다. 자기의 남아 있는 삶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육체적 쾌락의 총량을 밑도는 때가 오리라는 전망 말이다(요컨대, 현대인들은 자기들 마음속에서 계량기가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계량기는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돈다). 사람에 따라 이르거나 늦거나 하는 차이는 있지만,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남아 있는 쾌락과 고통의 양을 비교하는 때를 맞게 된다. 이생의 어느 고비부터 이런 성찰은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 점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20세기 말에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두 지식인 질 드뢰즈와 기 드보르가 자살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자살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장차 자기들의 육신이 쇠퇴해 가리라는 생각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죽음에 전혀 놀라지 않았고 어떤 논평도 가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의 경우에 국한하지 않고 더 일반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오늘날의 자살 중에서 가장 빈번한 것은 노인들의 자살이다. 그리고 노인들의 자살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현대인들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예가 하나 더 있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라. 만일 폭탄 테러를 당하게 된다면 자기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느냐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다리가 잘리거나 얼굴이 흉해지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그들이 삶에 조금 지쳐 있다는 것도 물론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불구가 되거나 몸의 기능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포함한 그 어떤 것보다도 끔찍해 보인다는 것이다.         (P367-368)     

[제3부 감정의 무한]

“이제 무얼 하실 건가요?”

“모르겠어......”

데폴레슈앵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행이나 하지 뭐.... 섹스 관광이나 좀 해볼까 봐.”

그러면서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의 미소 띤 얼굴은 아직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물론 인생에 좌절하거나 환멸을 맛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매력이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참된 매력 아니겠는가.

“농담이야..... 사실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지식에 대해서라면 관심이 있지. 그래, 지식에 대한 욕구는 아직 남아 있어. 참 이상해. 지식욕이라는 거 말이야....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 자네도 알다시피, 심지어는 연구자들 중에도 지식에 대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 아주 적어. 대다수는 그저 출세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회만 오면 행정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버리지. 하지만 지식에 대한 욕구는 인류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해. 그걸 우화로 이야기한다면 이런 식이 될 수 있을 거야. 지구 전체를 통틀어 고작해야 수백 명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집단의 사람들이 있어. 이들은 대단히 어렵고 추상적이어서 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지구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해. 그들에겐 권력도 부도 명예도 없어. 그들은 자기들의 활동을 통해서 기쁨을 얻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조차 할 수 없지.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력이야.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해. 그들이 합리적 확실성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지. 그들이 무엇을 진리라고 주장하면 조만간 인류 전체가 그것을 진리로 인정해. 경제, 정치, 사회, 종교 분야의 어떤 권력도 합리적 확실성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어. 서구인들은 어찌 보면 철학이나 정치에 과도하게 관심을 가졌는지도 몰라. 철학적인 문제나 정치적 문제를 놓고 터무니없는 싸움을 벌이기가 일쑤였지. 또 서구인들은 문학과 예술을 열정적으로 좋아했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사실 서구 문명의 역사에서 합리적인 확실성에 대한 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네. 서구인들은 결국 이 욕구를 위해 자기들의 종교와 행복과 희망을 희생했고 급기야는 자기들의 목숨마저도 바쳤지. 훗날 사람들이 서구 문명에 대해 총체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한다면,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걸세.”

데플레슈앵은 말문을 닫고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테이블 사이로 잠시 무심한 눈길을 보내다가 자기 술잔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귀었던 친구가 생각나. 내가 열여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야. 그는 아주 복잡하고 고민이 많은 녀석이었어. 부유하고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 출신이었고, 그 자신도 그런 환경의 가치관을 온전히 공유하고 있었지. 어느 날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어. <어떤 종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종교를 바탕으로 형성될 수 있는 도덕의 성격이다.> 나는 그저 놀라고 감탄했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어. 그가 스스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을 인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어. 아무튼 그 말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네. 40년 동안 두고두고 그 말에 대해 생각했지. 지금은 그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종교를 도덕적인 관점에서만 평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그리스도조차도 윤리의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심판되어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은 옳아. 하지만 나는 종교란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만일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어떤 시도가 합리적 확실성에 대한 우리의 요구와 상충한다면, 그 시도는 성립될 수 없어. 수학적 증명이나 실험은 인간의 의식이 획득한 돌이킬 수 없는 권리야. 그걸 포기할 수는 없지. 요즘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내 생각이 틀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야. 모든 종교 중에서 단연코 가장 어리석고 거짓되고 몽매주의적인 종교인 이슬람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이고 과도기적인 현상일 뿐이야. 장기적으로 보면, 이슬람은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어. 기독교보다 훨씬 더 그래.”     (P398-400)    

 

“저 개인적으로는 실용적인 실증주의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말입니다. 현상은 존재하고 법칙에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인이란 개념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죠. 세계란 우리가 그것에 관해서 갖고 있는 지식의 총합과 같습니다.”                   (P401)    

 

그녀는 셋째 주부터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강변이나 근처의 숲으로 가벼운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 어느 해보다 청명한 날이 많은 8월이었다. 햇빛 찬연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늘엔 천둥비를 예고하는 먹구름 한 점 떠있지 않았다. 어떤 종말의 전조로 여길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셸은 늘 그녀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들은 종종 그랑 모렐 강변의 벤치에 앉았다. 강둑의 풀은 햇살을 받아 거의 하얗게 보였다. 너도밤나무들의 가지 아래로 짙은 녹색 강물이 넘실거리며 끝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외부 세계에는 그 나름의 법칙들이 있다. 그 법칙들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P412)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흔히 말하듯이 길모퉁이에서 근사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일흔 살, 여든 살까지 산다. 그들은 결국 죽을 때가 되거나 중증의 장애 상태가 되어야만 비로소 자기들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미셸 제르진스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인생을 고독하게, 별과 별 사이의 텅 빈 공간 속에서 살았다. 그는 지식의 진보에 공헌했다. 그것은 그의 소명이었고, 그가 자기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나벨 역시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죽었다. 그저 일정한 중량을 가진 물체일 뿐 아무 쓸모가 없어져 버린 그녀의 몸이 빛 속에 가로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관의 뚜껑을 닫았다.                 (P424-425)     


“나는 아일랜드 출신이 아닙니다.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지요. 아일랜드에 오래 살았지만 영국인 기질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영국인들은 침착하고 신중하며 가장 비극적인 인생사도 유머를 가지고 대하는 여유가 있다고 하지요. 그다지 틀린 얘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게 꼭 장점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보기엔 그런 특성이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은 면입니다. 유머는 사람을 구하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거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죠. 유머를 가지고 인생사를 대하는 게 몇 년 동안은 가능할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죽음이 임박하는 순간까지 유머를 잃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 인생은 사람의 마음을 부숴 버립니다. 평생에 걸쳐 용기나 침착함이나 유머 같은 특성을 키워 왔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이 되면 마음이 허물어지고 말죠. 그러면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십니다. 결국 남는 것은 고독과 추위와 침묵뿐입니다. 종국엔 그저 죽음이 있을 뿐이죠.” (P430-431)     

“콩트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포함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증주의의 진정한 창시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당대의 어떤 형이상학이나 어떤 존재론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콩트가 1924년에서 1927년 사이의 닐스 보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엄격한 실증주의적 태도를 견지했을 것이고 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했을 겁니다. 그런데 콩트는 개인적인 삶을 허구적으로 보고 사회적 상황의 실제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역사적인 과정과 의식의 조류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였지요. 게다가 그는 사랑의 감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 보면, 그는 아마도 존재론을 다시 정의하려는 최근의 움직임에 반대하지 않았을 겁니다. 주렉과 체와 하드 캐슬의 저작이 나온 뒤로 새로운 존재론이 확고한 틀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대상의 존재론이 상태의 존재론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상태의 존재론만이 인간관계의 실제적인 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상태의 존재론에서는 소립자들이 식별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어떤 <수(數)>를 통해서 그것들을 규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상태의 존재론에서 식별될 수 있고 명명될 수 있는 실체는 파동 함수와 이것을 매개로 해서 나타나는 상태 벡터뿐입니다. 이런 존재론을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형제애와 연민과 사랑에 다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들은 발리코닐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지척에서 대양이 반짝였다. 멀리 수평선에서는 해가 대서양으로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윌콧은 제르진스키의 사유가 불확실하고 신비주의적 전통을 계승하고 빈 학파의 논리 실증주의에도 영향을 받은 터라 콩트의 저작을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실증주의는 유물주의를 대체했고, 유물주의와는 달리 새로운 휴머니즘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유물주의는 휴머니즘과 양립할 수 없었고 결국은 휴머니즘을 파괴하게 되죠. 하지만 유물주의에도 그 나름의 중대한 역사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신이라고 하는 장벽을 넘을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사람들은 그 장벽을 넘었고, 그 결과로 고뇌와 회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 또 하나의 장벽을 넘었습니다. 코펜하겐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이죠. 우리는 이제 신도 필요로 하지 않고 잠재적 현실이라는 개념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인간의 지각, 인간의 증언, 인간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결합하는 이성과 그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감성이 있지요. 그 모든 것이 어떤 형이상학이나 어떤 존재론도 없이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제 신이나 자연이나 현실이라는 관념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관찰자들의 공동체 내에서 합리적인 상호 주관성을 매개로 경험이 결과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경험들은 이론들에 의해 서로 연결됩니다. 이론들은 가능한 한 경제 원칙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반드시 반박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하고요. 이제 우리에게는 지각되는 세계, 느껴지는 세계, 인간이 세계가 있습니다.”         (P441-443)

     

<자연에 나타나는 형상들은 인간이 지어내는 형상들이다. 삼각형이나 얽혀 있는 모양이나 나뭇가지 형태가 나타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 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늠한다. 우리는 그것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인간이 지어내고 인간에게 전달될 수 있는 창조물들 속에서 성장하다가 죽는다. 우리는 인간적인 공간 속에서 측량을 하고 그 측량을 통해 우리의 도구들 사이에 공간을 창조한다.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공간을 생각하면서 공포에 떤다. 그들은 공간을 거대하고 캄캄하고 텅 빈 것으로 상상한다. 그리고 존재를 이 공간 속에 고립된 채 웅크리고 있는 하나의 공 같은 형태로 상상한다. 3차원의 영원한 무게에 짓눌려 있는 하나의 형상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공간이라는 관념에 겁을 먹고 옹송그린다. 그들은 추위와 공포를 느낀다. 최선의 경우에는 공간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공간의 한복판에서 서로 슬프게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그들의 내면에 있고 그들 자신의 정신이 지어낸 것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그 공간 속에서 사는 법과 죽는 법을 배운다. 그들의 정신이 지어내는 공간 속에서 분리와 거리와 고통이 생겨난다. 하지만 더 설명할 필요 없이 분명한 사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바다 건너 산 너머에서 자기 연인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는 바다 건너 산 너머에서 자기 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사랑은 존재들을 결합시킨다. 영원히 하나가 되게 한다. 선행은 존재와 존재를 묶어주고 악행은 존재와 존재를 이간시킨다. 분리란 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분리란 거짓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고 거대하고 상호적인 얽힘뿐이기 때문이다.>           (P445-446)  

   

[에필로그]

2009년 6월 <네이처>지는 [완전 복제를 향한 서설]이라는 논문을 별책으로 출간했다. 미셸 제르진스키의 마지막 연구 작업을 종합한 이 80쪽짜리 논문은 출간되자마자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세계 도처에서 수십 명의 분자 생물학자들이 제르진스키가 제시한 실험들을 다시 해보고 계산들을 세밀하게 검토하였다. 몇 개월 뒤에 첫 검토 결과가 나왔고 이어서 매주 새로운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결같이 제르진스키의 가설들이 유효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뒷받침하는 것들이었다.

2009년 말에 이르러서는 일말의 의심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제르진스키의 가설들은 유효하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연구가 가져올 실제적인 결과는 누가 보기에도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교란이나 돌연변이가 생길 수 없는 유전자 암호의 표준 형태가 있고, 모든 유전자 암호는 아무리 복잡한 것이라도 이 표준 형태로 다시 쓰여질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이것은 결국 어떤 세포든 무한한 복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었고, 아무리 진화한 동물 종이라도 클론화를 통해 복제될 수 있는 불멸의 종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였다.                   (P454)    

 

허즈체작의 계획에 대한 초기의 비난들 중의 하나는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 꼭 필요한 성차(性差)를 없애 버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 비난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우리의 의도는 인류의 특성을 그대로 지닌 종(種)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생식 방법으로서의 성행위가 종말을 고한다고 해서 성적인 쾌락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최근에 크라우제 소체를 형성시키는 염기 서열이 밝혀졌다. 현재의 인류에게는 크라우제 소체들이 그저 음핵과 귀두의 표면에 퍼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래의 인류에게는 이 소체들이 피부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성적 쾌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성차의 소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된 비판들도 제기되었다. 그 비판들은 제르진스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창조될 새로운 종에서는 모든 개체가 동일한 유전자 암호를 갖게 되므로 인격의 근본을 이루는 요소들 중의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에 집중되었다. 이런 비판에 대해 허브체작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곤 했다.

“우리는 우스꽝스럽게도 유전자의 개별성에 대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지만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우리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다. 유전자의 개별성이 사라지면 인격도 사라질 위험이 있다는 생각은 온당치 못하다. 일란성 쌍둥이를 보라. 그들은 동일한 유정형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각자의 개인사를 통해 저마다 다른 인격을 키워 가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어떤 신비스런 형제애로 결합되어 잇다. 그런 형제애가 바로 인류를 조화롭고 평화롭게 만드는 데에 가장 필요한 요소이다.”                (P459-460)   

  

당시의 서구 사상계는 중대한 지각 변동을 맞고 있었다. 푸코와 라캉, 데리다, 들뢰즈의 저작은 수십 년에 걸쳐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되어 오다가 갑작스럽게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들의 사상은 어떤 새로운 철학 사상에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인문 과학>을 표방하는 지식인 전체에 대한 불신만 심어 주었다. 그럼으로써 과학자들이 사상의 모든 영역에서 강력하게 부상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다 <뉴 에이지>의 동조자들이 <오랜 영적 전통>에서 나온 이러저러한 신앙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관심조차도 사실 그들이 정신 분열증에 가까운 참담한 조난 상태에 빠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 모두가 그랬듯이 오로지 과학만을 신뢰했다. 어쩌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훨씬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과학은 부인할 수 없는 유일한 진리의 기준이었다. 심리 문제나 사회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오로지 과학 기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그들은 내심 믿고 있었다.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허브체작은 2013년에 세계적인 여론 운동의 실제적인 출발점이 된 그 유명한 슬로건을 마음 놓고 내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돌연변이는 정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서 온다>라는 슬로건 말이다.             (P461-462)     


인간처럼 지능을 가진 새로운 종의 첫 개체, 인간이 <자신의 모습대로> 지어낸 새로운 종의 첫 대표자가 창조된 것은 2029년 3월 27일이었다. 미셸 제르진스키가 실종된 지 꼭 20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 작업이 행해진 곳은 프랑스의 팔레조에 있는 분자 생물학 연구소였다. 연구 팀에 프랑스인은 한 사람도 들어 있지 않았지만, 제르진스키에게 경의를 바치는 뜻으로 그가 일하던 연구소를 작업 장소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 사건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물론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사람들은 60년 전이 1969년 7월의 어느 날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이 생중계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았다. 방송의 첫머리에서 허브체작은 아주 짤막한 연설을 했다. 그의 말은 평소와 다름없이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인류는 이제 자기 자신을 다른 종으로 대체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인류는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다른 종으로 거듭 태어나는 최초의 동물 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점을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P462-463)    

 

인류가 우리를 만들었으나, 우리는 이제 그들과 우리를 묶어 주고 있던 부모 자식의 연을 끊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는 그들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던 이기주의와 잔혹성과 분노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어쨌거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과학과 예술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개인적 허영심에 자극받는 일이 없으며, 그 추구를 예전만큼 중대하고 긴급한 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옛 인류의 눈에는 우리 세계가 천국처럼 보일 것이다. 하기는 우리도 이따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자신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옛 인류에게 그토록 많은 꿈을 꾸게 만들었던 그 이름으로 말이다.

역사는 존재한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조차 역사의 지배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가 아니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만들어 낸 그 불이지만 용감한 종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종은 고통 속에서 천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고결한 꿈이 있었다. 그 종은 모순덩어리였고 개인주의적이었으며 싸움을 좋아했고 이기심에 끝이 없었으며 때로는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의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기 초월의 가능성을 예상하였고, 수년 뒤에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그들의 마지막 대표자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인류에게 이 마지막 경의를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의도 언젠가는 잊혀지고 시간의 모래 속으로 사라져 가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이렇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친다.                      (P46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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