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Nov 01. 2024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영화 <베토벤>  2020년

로맹 롤랑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 예술박사학위를 받은 뒤, 고등사범학교 예술사 교수, 파리대학교 음악사 교수를 지냈다. 그는 극작가로도 활동했는데, 드레퓌스사건에는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반대하며 <이리들>을 발표했고, 혁명극 <당통><7월 14일> 등을 썼다. 그는 영웅에 대한 숭배와 열정으로 <베토벤의 생애><미켈란젤로의 생애><톨스토이의 생애>등 천재들의 전기를 집필하였다. 그의 첫 번째 대하소설 <장 크리스토프>(1904~12)는 로맹 롤랑에게 1913년 프랑스 아카데미문학대상과 1915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다.     

[1]

“그이는 저 같은 여자하고 결혼할 게 아니었어요. 그이는 후회하는 거예요.”

“무엇을 후회한단 말이냐?”

“아버님도 잘 아시잖아요. 아버님도 제가 그이의 아내가 된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죠.”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자. 하긴 그렇기야 하지. 나도 얼마간은 서들펐느니라. 그런 청년 --이렇게 말하더라도 언짢게 생각하지야 않겠지만-- 내가 소중하게 키워 낸 뛰어난 음악가요 참다운 예술가인 그 애는, 너처럼 가난한 데다 신분도 우리와 다르고 아무런 재주도 없는 여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배우자를 찾을 수 있었으니라. 크라프트 집안사람이 음악가 아닌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지난 백 년 동안 없었던 일이지! ..... 하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나는 너를 원망한 일은 없고, 너를 잘 알게 되고부터는 네가 마음에 들었느니라. 더구나 일단 결정된 이상은 이미 돌이킬 수도 없잖느냐. 이제는 오직 정직하게 의무를 다할 뿐이지.”

노인은 난롯가로 돌아가 앉아서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자신의 격언을 입에 올릴 때의 버릇으로 제법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일이니라.”

그는 항의하는 말을 기다리며 불 속에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아기 어미도 갓난아기도 아무 소리가 없으므로 계속 말을 이으려 했다. 그러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P17) 

    

장 미셸의 아들인 멜키오르 크라프트와 결혼할 때 그녀는 하녀였다. 그들의 결혼에는 누구나가 다 놀랐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당사자인 그녀 자신의 놀라움이 가장 컸다. 크라프트 집안은 비록 재산은 없었지만 노인이 약 반세기 전에 자리를 잡은 이 라인 강변의 조그만 도시에서는 뭇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부자(父子) 대대의 음악가로, 쾰른으로부터 만하임에 이르는 이 지방의 음악가들에게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멜키오르는 궁정 극장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리고 장 미셸은 최근까지만 해도 대공(大公)댁의 연주회를 지휘하는 몸이었다. 

이 노인은 멜키오르의 결혼에 깊은 굴욕감을 느꼈다. 그는 아들에게 크나큰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 자신은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유명 인사의 꿈을 아들이 이루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분별없는 결혼 때문에, 그 희망은 무참히 깨져 버리고 말았다. 그는 처음에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멜키오르와 루이자를 마구 꾸짖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본디 착한 사람인지라, 며느리의 인품을 알게 되고는 그녀를 용서했다. 그리고 아버지다운 애정까지 품게 되었으나, 그 애정은 대개 무뚝뚝한 태도로 표현되고 있었다.                 (P18) 

    

멜키오르는 남이 기대하거나 자기 자신이 기대하거나 하는 것과는 언제나 반대되는 짓을 하는 사나이였다. 이런 사람들이 앞을 내다볼 줄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앞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남달리 두 곱을 조심하는 모양이나..... 그들은 무엇에도 속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며 자신의 배를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정확히 조종하여 갈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흔히 찾아오는 공허한 순간 그들은 언제나 키를 내팽개쳐 둔다. 그리고 일을 멋대로 내팽개치고, 주인의 뜻을 거스르는 데서 심술궂은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자유롭게 풀린 배는 똑바로 암초를 목표로 하여 나아간다. 이리하여 야심가 멜키오르는 끝내 부엌데기와 결혼해 버렸던 것이다.         (P19)  

   

종이 울린다....... 자, 새벽이다! 종소리는 마치 호소하듯이 적이 구슬프게, 정답게, 조용히 서로 화답한다. 그 은은한 종소리에 따라 꿈의 떼가, 지난날의 꿈이, 죽어 버린 사람들의 욕망과 희망과 회한이 솟구쳐 올라온다. 어린이는 그러한 사람들을 전혀 몰랐으나, 사실은 그도 그러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들 속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그의 속에서 다시 살아 돌아와 있기 때문이다. 

몇 세기에 걸친 숱한 추억이 지금 이 종소리의 음악 속에서 떨리고 있다. 슬픔과 수많은 기쁨! --그리고 방구석에 있더라도 이 종소리를 들으면, 가뿐한 대기 속을 흐르는 아름다운 음파나,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 따사로운 바람의 숨결 등등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파란 창공의 한 귀퉁이가 창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한 줄기 햇빛이 커튼을 통해서 침대 위로 미끄러져 비추어 온다. 아기의 눈에 익은 조그만 세계, 날마다 아침에 눈떴을 때 잠자리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 그것을 제 것으로 하려고 아기가 숱한 노력을 기울여 알기 시작하고 또 이름 붙이기 시작한 모든 것, 그의 왕국이 빛나기 시작한다.              (P25)   

  

이따금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악상이 머리에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전율을 느끼며 책상으로 달려간다. 이번에야말로 영감을 포착했으려나? ..... 그러나 펜을 들자마자 주위의 침묵 속에 홀로 멍하니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고작이었다. 스러져 버린 그 소리를 다시 부르려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귀에 들려오는 것은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의 널리 알려진 선율뿐이었다. 

조르주 상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세상에는 표현하는 힘이 결여된 불행한 천재가 있다. 그의 명상은 남에게 알려지지 못한 채, 그는 무덤 속으로 그것을 가지고 간다. 저 뛰어난 벙어리와 말더듬이 일족의 일원인 조프루아 생틸레르가 말한 바와 같다.”

장 미셸도 그러한 일족에 속해 있었다. 그는 음악에서나 언어에서나 자기 자신을 완전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항상 환상을 품고 있었다. 이야기하는 것, 쓰는 것, 위대한 음악가가 되는 것, 위대한 웅변가가 되는 것을 그는 얼마나 바라고 있었던가! 그것이 그가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상처였다. 그것을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도 고백하려 하지 않았으며, 애써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그의 마음에 죽음의 씨를 뿌렸다.           (P44)

     

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런 하찮은 사람이 바로 인생에서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마치 공중에 방치된 물체처럼 그들은 떨어지려고만 한다. 반드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면서 자기와 같이 있는 온갖 것을 더불어 끌고 가버리는 것이다.(P47)     


인간 중에는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받는 사람이 있고, 자기네 집 식구나 자신은 명령하는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날, 그의 온몸과 마음은 노여움으로 들끓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생애에 닥쳐온 첫 위기였다.(P49) 

    

아아! 그 얼마나 크리스토프는 아버지를 얄밉게 여겼던가! 아버지가 식구들 생각은 도무지 할 줄 모르고, 그들 몫마저 먹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을, 그 얼마나 원망스럽게 생각했던가! 그는 너무도 배가 고파 아버지를 미워하며 증오의 말을 입 밖으로 쏘아 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그는, 자신이 생활비를 벌지 못하는 동안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내게서 빼앗아 간 빵도 원래 아버지가 번 것이다. 그 자신은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있다. 그는 식구들에게 무거운 짐인 것이다. 그에게 항의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항의할 수도 있게 되리라.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아아! 그러나 그 전에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P58~59)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거나 자존심을 만족시키거나 하기엔 자신이 너무 약하다고 인정했을 때, 그가 어린아이라면 그러한 욕망이나 자존심을 부모에게 옮기고, 그가 인생에 패배한 어른이라면 그러한 것을 자식들에게 옮긴다. 이런 식으로 희망이 걸린 사람은, 희망을 건 사람이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꿈꾸는 바로 그대로의 것이거나 또는 그렇게 될 것이다.(P60)     


이러한 짓눌리듯 답답한 어둠의 한복판에, 시시각각으로 어두워져 가는 것같이 여겨지는 숨막힐 듯한 밤중에, 마치 어두운 하늘에 단 하나 남겨진 별처럼 빛 하나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일생을 비추어 줄 빛, 성스러운 음악이었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낡은 피아노 한 대를 마련해 주셨다. 본디 이 피아노는 할아버지가 후원자 한 사람에게서 처분을 부탁받은 물건인데, 끈기 있게 매만진 끝에 간신히 고쳐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선물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루이자는 그렇지 않아도 방이 좁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멜키오르는 한술 더 떴다. 아버진 별로 큰돈 주고 구하신 것도 아닐 거야. 까짓것 장작으로 써 버리지, 이렇게 말하는 판이었다. 다만 나이 어린 크리스토프만은 왜 그런지 새로이 굴러 들어온 이 물건을 좋아했다. 그것은 마치 할아버지가 가끔 몇 페이지씩 읽어 주며 함께 즐거워하던 그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는 마법 상자라고 생각되었다.                  (P75-76)     


잘못 칠 때마다 내리쳐지는 잣대와 그보다도 더 저주스러운, 그를 가르치는 아버지의 고함에 위협을 받으며, 그 손은 추위로 얼어붙어 곱아 있을 때가 많았다. 

나는 음악이 싫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아버지가 무섭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한마디 말이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노인은 울고 있는 손자를 보고 엄숙하게 타일렀다. 인간의 위안과 영광을 위해서 주어진 가장 아름답고도 고상한 예술을 위해서라면, 얼마간의 고통은 받을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고, 크리스토프는 할아버지가 마치 다 큰 어른을 대하듯 말씀해 주신 데 감사하며, 그 소박한 말에 남몰래 감동을 받았다. 이 말은 그의 어린이다운 극기심과 타고난 자존심에 꼭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론보다도 몇몇 음악적 감동의 깊은 기억이, 그가 함부로 반항해 온 이 지겨운 예술에 거역할 수 없이 일생토록 그를 연결시켜 주고 무릎 꿇게 했다.           (P90)    

 

‘얼마나 남았을까? 끝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때 홀연히 모든 것이 끝났다. 왜 그런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막이 내리고, 관객이 모두 일어섰다. 마법은 풀려 버렸다. 

두 어린이인 노인과 아이는 이미 어둑해진 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밤인가! 얼마나 고요한 달빛인가! 두 사람 모두 묵묵히 저마다의 회상을 반추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노인이 말문을 열었다. 

“어때, 재미있었느냐?”

크리스토프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격렬한 감동에 압도되어 있었고, 그 매력이 깨뜨려질까 두려워 입을 열기가 싫었다. 아주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는데도 애를 써야 했다. 크게 한숨을 내쉰 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응! 그래!”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한참 만에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음악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았느냐? 저런 훌륭한 극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명예로운 일이 또 있을 것 같으냐? 그건 이 세상의 하느님이 되는 일이지.”

아이는 깜짝 놀랐다. 어럽쇼! 사람이 그것을 만들었다니! 그는 꿈에도 그런 생각은 못했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며 자연의 손에 의해 이룩된 것이려니 하고, 그는 거의 믿고 있었다......                 (P93)  

   

음악가의 마음에는 모든 것이 음악이다. 떨리고 흔들리고 펄럭이는 모든 것, 쨍쨍 내리비치는 여름날의 햇빛, 산들바람 살랑거리는 밤, 흐르는 빛, 총총한 별의 반짝임, 폭풍, 새들의 지저귐, 벌레의 날갯짓 소리, 나무 흔들리는 소리, 그리운 혹은 지겨운 목소리, 귀에 익은 가정에서의 소리, 문짝 삐걱거리는 소리, 밤의 침묵 속에 들리는 혈관을 뿌듯이 부풀려 주는 혈액의 울렁거림 소리 --존재하는 모든 것이 모두 음악이다. 문제는 오로지 그것을 귀로 듣는다는 데 있다. 가지가지 존재의 이러한 음악은 크리스토프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띄는 모든 것, 그가 느끼는 모든 것은 음악으로 변했다. 그는 마치 붕붕 소리가 요란한 벌집과도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줄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P101-102)   

  

크리스토프 곁에 앉아서 페이지를 넘겨 주던 할아버지는, 이윽고 그에게 이게 대체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다. 크리스토프는 연주에-만 정신이 팔려서 자기가 무슨 곡을 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므로, 전혀 모르겠다고 답했다. 

“주의를 기울여 봐라, 이것을 모르겠느냐?”

그렇다. 분명히 귀에 익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잘 생각해 보아라.”

크리스토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요.”

실은 짐작이 가기는 했다. 아무래도 저 가락은...... 아니, 아니다! 그것은 차마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할아버지, 모르겠어요.”

그는 낯이 빨개져서 말했다. 

“바보 같으니라구, 제가 지어 놓고도 모른단 말이냐?”

정말 그렇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말을 듣고 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아아! 할아버지!.......”

노인은 얼굴을 환히 빛내면서 악보를 설명했다. 

“이건 아리아(영창곡)란다. 화요일에 네가 방바닥에 뒹굴면서 노래하던 거지. 이건 행진곡이다. 지난주 네게 대시 한 번 불러 보라고 했을 때, 생각이 나지 않았던 그 곡이란다. 그리고 이건 미뉴에트야. 내 안락의자 앞에서 네가 춤추던 것이다...... 자, 보려무나.”

표지에는 멋진 고딕체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어린 날의 기쁨’ 영창곡, 미뉴에트, 왈츠 및 행진곡, 장 크리스토프 크라프트의 작품 제 1번.

크리스토프는 눈이 부셨다. 내 이름을, 이렇게 아름다운 표제를, 이렇게 큼직한 악보장을, 나 자신의 작품을 보게 될 줄이야!...... 그는 여전히 더듬거리고 있었다. 

“아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인은 소년을 끌어당겼다. 크리스토프는 할아버지 무릎에 몸을 던지고, 그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기뻐서 낯이 새빨개져 있었다. 소년보다도 더 기쁨에 찬 노인은 무심한 체하려고 애쓰며 --감동하려 하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으므로-- 말을 이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반주를 덧붙였고, 노래의 음률에 화성(和聲)을 넣었지. 게다가....” 그는 기침을 한 다음 말했다. “게다가 또 미뉴에트에 트리오를 첨가했단다. 그건..... 그것이 습관이고,,,,,, 게다가....... 하여튼 결국 나빠지진 않았다고 생각되는구나.”

노인은 그 곡을 쳤다. 크리스토프는 이 곡을 할아버지와 함께 지었다는 데 여간 신명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름도 써 두어야겠네요.”

“그럴 것은 없다, 너 말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알 필요가 없지, 그저 말이다.....”  

여기서 할아버지의 음성은 떨렸다. 

“그저 말이다. 훨씬 뒷날에 가서 할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난 뒤, 넌 이것을 보면 이 늙은 할아버지를 생각해 줄 테지? 할아버지를 잊지는 않겠지?”

가엾은 노인은 끝까지 말을 맺지는 못했다.                   (P104-105)

     

크리스토프는 눈물에 가득 젖은 목소리로 외쳤다. 

“왜 시시하다는 거야?”

고트프리트는 정직한 눈초리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왜냐고? ....... 난 모르겠구나..... 가만있자..... 그렇지, 정말 시시해...... 우선 바보스러우니까 그렇지...... 그렇다. 그래...... 바보스럽단 말이다. 그야말로 무의미하지...... 바로 그거야, 그걸 쓸 때, 넌 아무런 할 말도 없었던 거다. 왜 그런 걸 썼지?”

“모르겠어.”

크리스토프는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름다운 곡을 짓고 싶었어.”

“그거야! 넌 단지 쓰기 위해서 쓴 거야.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고, 남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쓴 거야, 넌 오만했어, 넌 거짓말을 했지, 그래서 벌받은 거야...... 그렇지, 그거야! 음악에서는 오만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단다. 음악은 겸손을, 성실을 요구한단다. 그렇지 않다면 대체 음악이란 무엇이겠느냐? 하느님에 대한 불신이고 모독이지. 참다운 것, 정직한 것을 말하라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내려 주신 하느님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아이의 슬픔을 알아채고는 키스해 주려 했다. 크리스토프는 성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도 며칠씩이나 고트프리트 앞에서 샐쭉한 얼굴을 했다. 그는 고트프리트를 미워하고 있었다.                  (P117) 

    

처음으로 죽음을 본 사람은 누구나가, 그 자신이 죽음이나 삶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바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흔들린다. 이성(理性)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신은 살고 있다고 믿어 왔다. 인생에 대해서 다소 경험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태껏 자신은 정신이 짜 놓은 환상의 베일, 현실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가려 숨기고 있었던 환상의 베일에 싸여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고통의 관념과 실제로 피투성이가 되어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죽음에 관한 생각과, 몸부림치며 죽어 가는 육체와 영혼의 경련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인간이 지껄이는 온갖 언어, 인간의 온갖 지혜는, 눈이 아찔할 만큼 처절한 현실의 슬픔에 비기면 뻣뻣한 꼭두각시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진흙과 피로 이루어진 이들 비참한 인간은 모든 쓸데없는 노력을 하여 생명을 붙잡아 매려고 하지만, 생명은 시시각각 썩어만 간다. 

크리스토프는 낮이고 밤이고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임종 때 괴로워하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어디까지고 뒤쫓아 왔다. 무섭게 허덕이던 소리가 귀에 생생했다. 자연 자체가 변해 버렸다. 얼음 안개가 자연을 뒤덮고 있는 듯 생각되었다. 어디를 향하건 주위의 온갖 곳에서 눈먼 야수의 비릿한 죽음의 숨결이 얼굴에 느껴졌다. 이러한 파괴적인 힘의 주먹 밑에서 자신이 어쩔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를 압도하기는커녕 분노와 증오로 그를 불태웠다. 그는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불가능을 향해 똑바로 돌진했다. 이마가 빠개지든, 자신이 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든 상관없었다. 그는 결코 고뇌에 대한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이래로 그의 생애는 용서할 수 없는 운명의 잔학성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이었다.                     (P152)     


다락방에서 그는 홀로 자기의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땅거미가 내린다. 바야흐로 스러져가는 낮의 빛이 악보 위를 미끄러져 간다. 빛의 마지막 한 줄기가 남아 있는 동안은, 그는 눈을 모아 읽고 있다. 지금은 가고 없는 위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이들 말없는 악보의 지면에서 솟아올라 그의 몸속으로 부드럽게 스며 들어온다. 눈에 눈물이 넘쳐 난다. 그리운 사람이 등 뒤에 서 있어 그 숨결이 볼을 쓰다듬고 금방이라도 두 팔로 목을 얼싸안아 줄 것만 같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뒤돌아본다. 혼자가 아님을 그는 느끼고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는 한 영혼이 거기 그의 곁에 있다. 그것을 붙잡을 수 없어 탄식한다.                 (P171-172)  

        

그들은 서로를 모방했다. 웃토는 크리스토프의 태도나 몸짓이나 글씨 모양을 흉내냈다. 크리스토프는 전에 말한 한 마디 한 마디를 옷토가 마치 흉내쟁이처럼 그대로 되뇌기도 하고, 그 자신의 사상을 새로운 사상인 양 그에게 내보이기도 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자신 또한 옷토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옷토의 옷차림새며 걸음걸이며 어떤 말의 발음을 송두리째 그대로 본뜨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매혹이었다. 그들은 서로 상대에게 물들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애정은 샘물처럼 사방팔방으로 넘쳤다. 그들은 저마다 벗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것이 바로 자기네 청춘의 각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P197)     


케리히 부인을 연모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 크리스토프는 민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남을 업신여기는 그녀는 쌀쌀한 태도에 슬슬 화가 났다. 그리고 자주 만날수록 조금씩 대담해져 그녀에게 자유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는 그녀에게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재미있어 하며 그를 자극했고 그것에 대해 그는 격렬히 맞받아쳤다. 두 소년 소녀는 불쾌한 말을 주고받았다. 케리히 부인은 그것을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이러한 말싸움에서는 이기지 못했으므로, 때로는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 민나를 정말 밉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집에 또다시 가는 것도 오로지 케리히 부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민나에게 피아노는 가르치고 있었다. 한 주일에 두 번씩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음계(音階)와 연습을 감독했다. 두 사람이 있는 방은 민나의 서재였다. 이 방은 기묘한 공부방으로서, 이 소녀의 두뇌가 지닌 괴상한 혼란상을 신기할 만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P216)   

   

크리스토프는 민나의 마음이 자신에게 무관심하지 않다고 믿을 수 있을만한 어엿한 까닭이 있었음에도 역시 번민했고, 그녀에게 멸시당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상대에 대한 뚜렷한 관념을 지닌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처럼 이 관념이 혼된된 적은 없었다. 그것은 기묘한 상상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겨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서 어떻게도 전체적인 종합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달려, 실제로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결점이나 매력을 서로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으면 서로 상상 속 매력을 느끼고, 같이 있으면 서로 상상속 결점을 느꼈다. 어느 경우에나 그들은 둘 다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P223)     


그는 클라리넷과 현악기를 위한 5중주곡(五重奏曲)을 지었다. 첫 부분은 푸른 젊음의 희망과 욕망의 시였다. 끝 부분은 사랑의 해학으로, 그곳에선 크리스토프의 다소 야성적인 유머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곡 전체는 제2악장의 라르게토를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 크리스토프는 여기서 열렬하고 청순한 소녀의 영혼을 묘사했다. 그것은 민나의 초상이었다. 또는 민나의 초상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 초상을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요,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완전히 그것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전체를 내 것으로 한 듯한 심정이 되어, 그는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이보다 더 쉽고도 즐거운 일은 없었다. 그것은 연인이 곁에 없기 때문에 마음에 괴어 있는, 넘칠 듯이 푸짐한 애정을 단숨에 발산하는 일이었다. 동시에 예술 작품을 창작하려는 노고나, 정열을 아름다운 명쾌한 형식 속으로 통제하고 집중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정신의 건강과 모든 능력의 균형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그는 육체적인 기쁨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예술가가 알고 있는 최고의 향락이다. 창작하고 있는 동안 예술가는 욕망과 고뇌의 속박을 벗어나 거꾸로 그 주인이 된다. 그를 기쁘게 하는 모든 것, 그를 괴롭히는 모든 것도, 모두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뒤에는 현실의 쇠사슬이 더한층 무겁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P237-238) 

    

“크리스토프 군, 나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나는 당신을 성실한 분으로 알고 존경했어요. 나는 당신을 신뢰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기화로 우리 딸애를 유혹하다니, 정말 뜻밖이었어요. 딸애는 당신의 보호 밑에 있었잖아요. 당신은 딸애를 존경하고 나를 존경하고, 또한 당신 자신을 존경해야 했었던 거예요.”

부인의 말투에는 가벼운 빈정거림이 어려 있었다. 케리히 부인은 어린애들의 연애 문제는 조금도 중대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로서는 그런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온갖 일을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듯이 이 비난도 비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의 가슴을 푹 찔렀다. 

“하지만 사모님...... 하지만 사모님......”

크리스토프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더듬거렸다. 

“저는 사모님이 믿어 주신 것을 기화로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발, 그렇게는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맹세코 말씀드리지만 저는 불량배는 아닙니다! ....... 저는 민나 양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결혼하고 싶습니다.”

케리히 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안 돼요, 미안하지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P244)     


그러나 하찮은 일로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가 갈라지는 법이다! 너무 심한 말버릇, 꼴사나운 몸짓, 눈이나 코를 찡그리는 사소한 버릇, 먹는 방식, 걸음걸이, 웃는 방식, 일일이 분석할 수 없는 육체적인 불쾌감…… 그런 것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로운 일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흔히 어머니와 아들이, 형과 아우가, 더할 수 없이 친한 벗들이 영원히 남남으로 갈라져 버리곤 하는 것이다.(P250)     


그는 깨달았다. 인생이란 휴전 없는 무자비한 투쟁이요, 인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군 즉 자연의 파괴적인 힘이나 더러운 욕망 또는 어두운 생각 등, 음험하게도 인간을 타락시키고 절멸시키려 하는 것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는 또 깨달았다. 자신은 그 올가미에 막 걸려들려던 참이었다는 것을, 행복이나 연애는 한순간의 속임수요, 인간으로 하여금 마음의 무장을 해제케 하여 지위를 잃도록 하는 것임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하여 열다섯 살 난 소년 청교도는 자기 신(神)의 음성을 들었다. 

“나아가라, 나아가, 결코 멈추지 말라.”

“하지만 하느님, 저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무엇을 하건, 또 어디로 가건, 가 닿는 곳은 언제나 같지 않나요? 끝은 거기에 있지 않나요?”

“죽어야 한다면 가서 죽어라! 괴로워해야 한다면 가서 괴로워하라!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니라, 인간은 나의 섭리를 성취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로다. 괴로워하라, 죽어라, 그러나 네가 되어야 할 것이 되어라. 즉, ‘하나의 인간’이.”              (P251-252)    

 

그는 깨달았다. 인생이란 휴전 없는 무자비한 투쟁이요, 인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군 즉 자연의 파괴적인 힘이나 더러운 욕망 또는 어두운 생각 등, 음험하게도 인간을 타락시키고 절멸시키려 하는 것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는 또 깨달았다. 자신은 그 올가미에 막 걸려들려던 참이었다는 것을. 행복이나 연애는 한순간의 속임수요, 인간으로 하여금 마음의 무장을 해제케 하여 지위를 잃도록 하는 것임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하여 열다섯 살 난 소년 청교도는 자기 신(神)의 음성을 들었다. “나아가라. 나아가. 결코 멈추지 말라.”(P253)     


크리스토프는 참을성 있는 심경이 되어 있었다. 슬픔은 그의 편협하고 분격하기 쉬운 성질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 그는 고상한 사람들이 지니는 잔인한 냉담성을 너무나 뼈저리게 겪었으므로, 우아한 점도 없고 몹시 따분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인생에 대해서 엄숙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정직한 사람들의 가치를 한층 더 절감하게 되었다. 기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그가 보기에 그들은 결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며 자신의 마음에 들 것이 틀림없다고 믿어 버렸으므로, 크리스토프는 독일 사람답게 그들이 정말 자신의 마음에 든다고 믿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잘 되지 않았다. 자기 판단에 따른 마음 편한 안정과 자신의 쾌적한 생활이 흐트러질까 두려워서, 보기에 불쾌한 것은 보지 않으려 하고 또한 보지도 않는, 저 독선적인 독일식 이상주의가 그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가 남을 사랑하려 들면 그들의 결점이 뚜렷이 느껴지곤 했다. 왜냐하면 그는 전혀 아무런 제한 없이 사랑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성실성이며 진실에 대한 억제할 길 없는 욕구로서, 가장 친애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를 한층 통찰력 있고 한층 까다로운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P266-267)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스물이나 서른에 죽어 버린다. 그 시기가 지나면 그들은 이미 자기 자신의 반영(反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나머지 생애는 한갓 스스로를 모방하는 데 헛되이 쓰여 없어질 뿐이다. 그 옛날 그들이 살아 있던 때의 말과 행동과 생각과 사랑하던 것을, 날이 갈수록 더욱 기계적으로 또한 더욱 멋없이 되풀이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P269)   

  

크리스토프는 극도의 피로와 불안을 느꼈다. 까닭도 없이 기력이 꺾이고 머리가 띵하고 눈이나 귀 등 온갖 감각 기관이 취한 듯하며 윙윙거렸다. 무슨 일에도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정신은 정력을 소모케 하는 광열(狂熱)에 몰려 이리저리로 뛰어 옮겨 가곤 했다. 물체의 형상이 어른어른하며 눈도 어지러웠다. 처음엔 과도한 피로 탓에 봄철 조울증인가 했으나 봄이 지나도 불쾌감은 더해 갈 뿐이었다. 

그것은 고상한 손으로만 모든 일을 매만지는 시인들의 청춘의 불안이니 젊은 천사의 고민이니, 또는 젊은 육체와 정신에서의 애욕의 눈뜸이니 일컫는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면 일체의 부분이 무너지고 죽고 또 되살아나는 존재 전체의 이 가공스러운 위기가, 다시 말해 신앙도 사고도 행동도 온 생명도 모두 고뇌와 환희의 경련 속에서 절멸하여 새로이 단련되어 가는 이 격변기가, 그야말로 치기에 찬 어리석은 것 같아져 버리지 않는가!          (P292)      

  

두 사람은 다 눈물을 흘리며 어두운 방 안에서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가까스로 로자가 손을 놓았다. 크리스토프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용서해 줘!......”

로자는 그 손을 자애롭게 크리스토프의 머리에 얹었다. 크리스토프는 일어섰다. 두 사람은 묵묵히 입술을 마주 포갰다. 서로의 입술 위에 짭짤한 눈물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언제까지나 친구로 지내자.”

크리스토프는 어렴풋이 나직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로자는 고개를 까닥였다. 너무나 깊은 슬픔으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어, 로자는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 

세상사는 제 뜻과 같지 않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랑받는 자는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는 언젠가는 사랑으로부터 격리된다. 

어떤 이는 괴로워한다. 어떤 이는 남을 괴롭힌다. 

반드시 괴로워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다.               (P352)  

   

사람이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은 앞으로 계속해서 가야 한다. 아무리 뒤를 돌아보았자 헛일이다. 그래 봐야 자신이 지나온 고장이나 묵어 온 집의 굴뚝에서 나는 아스라한 연기가 추억의 안개 속에서 지평선 너머로 스러져 가는 것이 보일 따름이다. 그리고 정열을 불태운 수개월만큼 우리를 우리의 옛 영혼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없다. 길이 갑자기 구부러지며 풍경이 아주 달라진다. 자신이 뒤에 남긴 것에 마지막 이별을 고한 셈이다. 

크리스토프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과거를 향해 팔을 뻗쳤다. 깨끗이 체념해 버렸던 고독한 옛 영혼을 되살리려고 고집스레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 영혼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정열은 정열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낳는 수많은 폐허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려 했으나 헛일이었다. 연애를 --잠깐-- 멸시하려 했지만 역시 헛일이었다. 그에게는 연애의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휑뎅그렁한 공허가 자리잡고 있어, 그것을 채워야만 했다. 한번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나 불태워 버리게 마련인, 저 애정과 쾌락과의 무서운 욕구 대신, 설사 그 반대되는 정열이라도 좋으니 어떤 다른 정열이 필요했던 것이다.                 (P409)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는 진실이고자 항상 애썼다. 하지만 진실이고자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실로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할 때, 어떻게 진실일 수 있겠는가? 이러한 작품의 허구를 그에게 보여준 것은, 그와 그의 과거 사이에 갑자기 도랑을 파놓은 것은 실로 이 6개월 동안의 시련이었다. 지금의 그는 환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는 자기 사상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쓸 수 있는 현실의 척도를 가지고 있었다. 

정열 없이 만들어진 과거의 작품에 혐오를 느낀 그는 버릇대로 또 극단으로 달리고, 앞으로는 열렬한 필요성에 의해 꼭 써야 될 것이 아니라면 절대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또한 관념의 추구는 그만두고, 만일 창작열이 마치 벼락이 떨어지듯 불현 듯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면 음악을 영영 버리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P426-427)     


그는 자기 일이 느린 데 난감해졌다. 될 수 있으면 하루에 모두 해치워 버리고 싶었다. 그렇건만 사소한 일을 하는 데에도 무척 곤란을 느꼈다. 가장 곤란한 것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인데도 그만 싫증이 나버리는 점이었다. 꿈은 그대로 지나가 버리고, 그 자신도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한 가지 일을 하고 있으면, 다른 일을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나의 아름다운 주제를 선택한 것만으로, 이미 그 주제에 흥미가 없어지는 듯했다. 이리하여 그는 숱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상상은 손에 닿지 않는 것만이 싱싱했다. 용하게 움켜잡은 것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것은 탄탈로스의 고통이었다. 과일은 그의 손이 닿는 데 있었지만, 그것을 잡으면 단번에 돌이 되었다. 신선한 물은 그의 입술 바로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가 그 위로 몸을 굽히면 그것은 훌쩍 멀어져 갔다.(P427)     


그는 악상에 마음이 집중되어 있었다. 어떤 때 그것은 독립된 완전한 악구(樂句)의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작품 전체를 포용하는 커다란 성운(星雲)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작품의 구조와 대충의 윤곽은 베일을 통해서 분간되었다. 그리고 이 베일은, 조각적(彫刻的)으로 선명하게 어둠에서 두드러져 나오는 휘황한 몇 개의 악구에 의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섬광에 지나지 않았다. 때로는 그러한 섬광이 줄줄 잇따라서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 섬광 하나하나는 저마다 어둠의 다른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하지만 보통 때는 종잡을 수 없는 이 힘은, 일단 느닷없이 나타난 다음에는 뒤에 빛의 꼬리를 남겨둔 채 며칠 동안 신비로운 은신처로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한 영감(靈感)의 기쁨은 참으로 강렬한 것이었으므로, 크리스토프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혐오했다. 경험 있는 예술가라면 영감은 드물게밖엔 오지 않는 것이며, 직관적인 작품을 마무르는 것은 지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예술가는 자기의 관념을 압착기에 넣어, 거기 차서 넘치는 훌륭한 즙을 마지막 한 방울에 이르기까지 짜낸다(대부분의 경우, 여기에 맑은 물을 타기도 한다).                  (P429-430)


‘진실된 용기를 가지라!’ 그는 계속했다. ‘추하게 보일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라! 만일 여러분이 너절한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를 솔직히 말하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 주라. 모든 애매한 것의 그릇된 허식을 영혼으로부터 떼어 버려라. 그런 것은 깨끗이 씻어 버려라. 대체 언제부터 여러분은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지 않았나? 내가 앞으로 이것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겠다. 작곡가 여러분, 악단 단장 여러분, 가수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당신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형의 사람이 되어라. 하지만 반드시 진실하라! 비록 그 때문에 예술가와 예술이 괴로움을 당하게 될지라도 진실되어라! 만일 예술과 진실이 함께 살 수가 없다면 예술 쪽이 죽는 것이 좋다! 진실, 그것이 생명이다. 허위, 그것은 죽음이다.’          (P485)   

  

말과 노래는 저마다 독자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희생하여 자기가 즐기는 쪽에 승리를 얻도록 한다고 하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둘을 타협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둘 다 희생시키는 일이었다. 말이 이미 말이 아니고 노래가 이미 노래가 아니기를 바라는 일이었다. 노래의 광대하게 퍼진 흐름을 운하의 단조로운 둑 사이로 옹색하게 흘러들게 하고, 말의 아름다운 벌거숭이 리듬에 동작이나 걸음걸이를 방해하는 호사스러운 무거운 옷을 입히는 일이었다. 어째서 양쪽에다 자유로운 동작을 허용해 주지 않는 것일까? 예컨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냇물을 따라 거닐면서 꿈꾸는 한 소녀처럼 말이다. 물의 속삭임은 그녀의 꿈을 흔든다. 그녀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않고 걸음걸이의 리듬을 시냇물의 노랫소리에 맞춘다. 이렇게 되면 음악과 시는, 둘 다 자유로이 꿈을 서로 한데 엮어 나가며 나란히 걸어나갈 것이다. 확실히 이러한 협력에 있어서는 어떠한 음악도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또 어떠한 시도 훌륭하다고 할 수 없었다. 멜로드라마의 반대자들은 여태까지 시도된 시험과 그 실연자들의 서투른 솜씨에 대해서는 공격할 만한 훌륭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도 오랫동안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 배우들은 악기의 반주에 따라 대사를 말하는 것인데 반주 따위는 문제도 삼지도 않으며, 자기 목소리를 그것에 맞추려고 하지도 않고, 반대로 자기 목소리만을 두드러지게 들려주려고 애썼다. 그들의 졸렬함과 우매함은 음악적인 귀를 지닌 인간에게는 불쾌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코린의 조화 있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는 하나의 새로운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이다. 흐르는 듯한 이 맑게 트인 목소리는, 음악에 싸여서 움직였다. 그것은 물속의 한 줄기 광선 같았으며, 노래보다도 더욱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일종의 노래 같았다.              (P537)     

“이것이 자네의 오물이다!..... 자네는 이 속에 코를 쑤셔박혀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다!”

크리스토프는 그것이 문제의 사회주의 신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는 별로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뭐라구? 뭐라구?” 대공은 째지는 소리로 외쳤다. “아주 뻔뻔한 놈이구나!....... 이 파렴치한 신문은 매일 나를 모욕하고 있어, 나를 향해 더러운 욕설을 해대고 있단 말이야!......”

“전하.” 크리스토프는 말했다. “저는 이 신문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거짓말 말아!” 대공은 외쳤다. 

“전하께 거짓말쟁이라고 불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크리스토프는 말했다. 

“정말 저는 읽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음악에 관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제가 쓰고 싶은 데에 쓸 권리가 있습니다.”

“자네에게는 침묵할 권리밖에 없어. 나는 이제까지 자네들에게 너무 친절했다. 자네의 소행이나 자네 아버지의 소행으로 보아 자네들을 추방할 이유들은 충분히 있었지만, 자네와 자네 일가에게 지나칠 만큼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내게 적대하는 신문에 계속 쓰는 것을 엄금한다. 그리고 원칙으로 앞으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내 허가 없이 쓰는 것을 엄금한다. 자네의 음악상의 논쟁은 이제 그만두게. 내 보호를 받고 있는 자가 취미와 애정을 지닌 사람들에게, 진정한 독일인에게 귀중한 일체의 것을 공격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나는 용서할 수 없네. 자네는 훌륭한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좋아. 만일 그것이 안 되면 음계 연습에나 열을 내는 것이 좋아. 국가적인 영예를 짊어진 사람들에게 험담을 하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시키거나 해서 기뻐하는 음악계의 베벨을 나는 바라지 않아. 다행히도 우린 무엇이 좋은지 똑똑히 알고 있네. 이것을 알기 위해 자네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필요는 없었던 거야. 그러니 자네는 피아노 앞에 앉게. 그리고 우리를 평화롭게 놔두게!”

늠름한 대공은 크리스토프와 마주 앉아 모욕적인 눈길로 크리스토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해진 크리스토프는 어떻게 해서든지 입을 움직이려고 했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는 전하의 노예가 아닙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말하고, 쓰고 싶은 것을 씁니다....”

숨이 막혔다.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P549-550) 

    

크리스토프는 다시금 기운을 내어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제 다시는 ‘옴므드 레트르(문학자)’,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인간, 내용 없는 수다쟁이들, 신문 잡지 기자, 비평가, 예술을 밥으로 삼거나 예술을 팔아 거래하는 자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또 음악가의 편견이나 질투와 싸워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은 더구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좋다! 나로서도 그들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궁정은 그를 풀어 주었다. 그는 이것을 감사했다. 그는 사람들의 적의(敵意)에 감사하고 있었다. 덕분에 침착하게 조용히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이자는 진심으로 아들의 태도에 찬성했다. 루이자에게는 야심이 없었다. 루이자는 크라프트 집안사람은 아니었다. 크리스토프의 아버지와도 할아버지와도 닮지 않았다. 아들이 명예를 얻거나 유명해지거나 하는 것은 전혀 바라고 있지 않았다. 물론 아들이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면 기뻤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이익이 불쾌한 대가를 치러야만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런 것은 문제시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궁정과의 불화에 대해서는 사건 자체보다도 아들의 비탄 쪽이 훨씬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차라리 그가 잡지나 신문사 사람들과 절교한 것을 기뻐했다. 루이자는 악덕 신문에 대해서는 시골사람다운 불신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한 것에 관계하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거나 적을 불러들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P562-563) 

    

“용서하십시오. 그런데 선생님은 옛날에 제 작품을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직 이것을 위해 독일의 구석진 곳에서 이곳까지 찾아 온 것입니다. 꼭 좀 들어봐 주십시오.”

이러한 상대의 태도에 익숙지 않은 하슬러는 자기 앞에서 분연히 얼굴을 붉히고 금방 울어 버릴 것처럼 하고 있는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슬러는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지루한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피아노를 가리키며 하는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어디 해 보게나!......”

하슬러는 낮잠이라도 자려는 사람처럼 소파에 몸을 파묻고 쿠션을 주먹으로 때려 편편하게 고르고는 그 위에다 두 팔을 뻗고 반쯤 눈을 감았다. 그런 다음 조금 눈을 뜨고 크리스토프가 주머니에서 꺼낸 악보의 부피를 재고는 작은 한숨을 후 내쉬며 지루하지만 들을 각오를 했다. 

크리스토프는 겁을 먹고 주눅이 들고 또 울화통도 치밀었지만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하슬러는 눈을 뜨고 귀를 쫑긋거렸다. 아름다운 것에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사로잡히는 예술가의 직업적인 흥미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이 차차 또렷해지고 꽉 다물었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러고 나서 완전히 눈을 뜨고 놀라움과 탄성의 신음을 냈다.                   (P600)    

 

'정말로 느끼고 노래부르는 것일까?‘

그러나 그가 상대의 눈 속에서 본 것은 만족한 허영심의 불꽃이었다. 무의식적인 힘이 이 답답한 고깃덩어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 맹목적이고 소극적인 힘은 마치 싸우는 군대와 같았다. 그것은 기꺼이 복종했다. 이 힘은 행동하고 싶었던 것이다. 만일 저 혼자에게 맡겨졌더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으리라.

크리스토프는 이런 것을 생각했다. 우주 창조의 날에 위대한 조각가인 조물주는 대충 만들어 낸 피조물의 흩어진 각 부분을 가다듬는 일에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다. 부분 부분이 잘 맞는지 안 맞는지 하는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그럭저럭 아무렇게나 조립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각 개인은 여러 군데서 모아 온 단편으로써 만들어지게 되고, 또 같은 인간을 각각 다른 몇 사람 사이에 분산하게 되었다. 즉 두뇌는 어떤 인간의 것이 되고, 심장은 다른 인간의 것이 되고, 이 혼에 알맞은 육체는 세 번째 인간의 것이 되어 버렸다. 악기는 이쪽으로, 연주자는 저쪽으로 하는 식이 되어 버렸다. 어떤 사람은 능히 켤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상자 속에 간수되어 있는 훌륭한 바이올린 같은 상태를 계속했다. 그리고 훌륭한 바이올린을 능히 켤 수 있을 만한 사람은 한평생 빈약한 바이올린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한 페이지의 노래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으니만큼 이런 투로 생각하는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그는 탁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자기 음성을 들으면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P633-634) 

    

이때 크리스토프는 비로소 독일 이상주의의 위대성을 깨달았다. 크리스토프가 지금까지 이 주의를 미워한 것은 그것이 변변치 못한 혼 속에 들어가면 위선적인 저열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크리스토프는 세계의 한복판에 세계와는 다른, 마치 대양 한가운데의 고도(孤島)와 같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고 있는 이 신념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러한 신념에 견뎌낼 수는 없었다. 크리스토프는 이러한 ‘죽은 자의 섬’에 피난하는 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생명! 진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혹 약자에게는 낙천적인 거짓말이 살기 위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크리스토프도 그렇게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환상을 빼앗는 것은 하나의 죄악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러한 기만에 의지할 수는 없었다. 크리스토프는 환상에 의해서 사느니 오히려 죽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술도 또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을까?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진실! 진실이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온몸의 털구멍으로 생명의 강렬한 숨을 들이켜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불행을 정면으로 대하며, 그리고 웃는 것이다.               (P652)    

        

매사에 서투른 루이자는-어머니는 자신의 서투름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더욱 서투르게 되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일을 꼭 해버렸다-아들의 슬픔의 원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끈질기게 아들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오게 하려고 들었다. 절실한 애정이기는 하지만 침착성이 없고 지리하며 몹시 까다로운 애정으로 그를 귀찮게 굴고서, 두 사람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그는 이것을 잊으려고 애썼지만-자꾸 생각나게 하고 있었다.(P669)     


새로운 <뤼트랭>이 거센 싸움을 일으켜 지금 음악가를 두 진영으로 갈라 놓았다. 즉 대위법(對位法) 진영과 화성(和聲)의 진영이라고 하는, 마치 대 부티엥(Gros-boutiens)과 소 부티엥(Petits-boutiens)의 분쟁 --달걀을 쪼개는 데 굵은 쪽으로 하느냐 가는 쪽으로 하느냐로 분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온다--처럼, 한쪽이 음악은 수평으로 읽어야 한다고 격렬히 주장하면 다른 한쪽은 음악은 수직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자는 감미로운 화음, 사르르 녹아드는 연결, 자양분이 푸짐한 조화 따위 말고는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과점 얘기라도 하듯이 음악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전자는 귀를 너절한 것으로 치고 그것에 의지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으악은 하나의 연설이었다. 연설자가 주위 사람들 같은 건 아랑곳없이 모두 동시에 끝까지 지껄이고야 마는 의사당과 같은 것이었다. 일일이 그것이 분간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이튿날이 되면 연설은 관보로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음악은 읽기 위해 있는 것이지 듣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리스토프는 수평파와 수직파의 이러한 논쟁의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들을 모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연속군(連續軍)과 누적군(累積軍)의 어느 한쪽에 가담하기를 재촉받았을 때, 소지의 표어는 아니지만, 그의 여느 때의 표어로 대답했다. 

“나는 여러분 모두의 적이다!” 그리고 그는 물었다. “화성과 대위법 어느 쪽이 음악에서는 중요할까?” 또 그는 외쳤다. “중요한 건 음악이다. 아무튼 너희 음악을 보여 다오!”          (P746)  

   

어느 당파나 똑같았다. 그들은 자기 조국, 자기 지방, 자기 집단, 자기의 좁은 두뇌, 정치적 혹은 종교적 공식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있어 재산의 특권자 모두에 대한 불 같은 증오에 온 힘을 바쳤다. 그러한 그들은 모든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또 미운 자들은 모두 유대인이라고 불렀다. 또 국가주의자들이 있어 다른 모든 국민을 미워했다 --그들이 매우 기분이 좋을 때는 경멸하는 정도로 그쳤다-- 그리고 같은 국민 중에서 자기들과 같은 의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외국인이라느니 반역자라느니 배신자라느니 하고 불렀다. 또 신교도 반대파가 있어 모든 신교도는 영국인이나 독일인이라고 믿고 이를 모두 프랑스에서 추방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서방주의자들이 있어 라인 강 동쪽 지역에서는 아무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또 북방주의자들은 르와르 강 이남에서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남방주의자들은 르와르 강 이북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그 밖에 게르만 민족인 것을 자랑삼는 사람들도, 골 민족임을 자랑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그중 가장 어리석은 것은 자기들 조상의 패배를 자랑삼는 ‘로마인’이었다. 그리고 또 브르타뉴인, 로렝인, 르와르인, 프로방스인, 알비주아인, 혹은 또 카르팡트라인, 퐁투아즈인, 캥페르-코랑탱인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밖에는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것을 귀족의 자격으로 여기고 타인이 다른 의견을 가진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자들에겐 아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떠한 이치를 말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이외의 세계는 불태워 없애버리든가, 아니면 자기들이 불에 타 죽든가 하는 그런 자들이었다.               (P824-825)  

   

크리스토프는 이러한 힘을 단숨에 들이켰다. 독일인의 혼에서 흘러나오는 이러한 음악의 힘의 은총을 똑똑히 느꼈다. 그 힘은 흔히 평범하고 조잡하기도 했지만 그게 어떻다는 것이냐! 중요한 일은 힘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가득 넘쳐 흐른다는 일이다. 프랑스의 음악은 파스퇴르식 여과기에 의해 간단히 밀봉된 병 속에 한 방울씩 모아서 담겼다. 그리고 이 맛없는 물을 늘 마시던 자들은 독일 음악에 대해 거부하는 얼굴을 짓는다! 그들은 독일 정신의 흠을 잡아낸다!

‘인색한 자들이다!’

크리스토프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자신도 역시 우스꽝스런 인간이었던 것을 기억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했다.                  (P856)  

   

크리스토프는 이제까지 회화에는 별로 감동을 받은 적이 없었다. 너무나 내면적인 세계에 골몰해 있었으므로 색과 형태의 세계를 확실히 포착할 수 없었다. 색과 형태는 음악적 공명으로서 작용해 올 뿐이었다. 그러나 이 공명은 원래의 색과 형태를 이지러뜨리고 있었다. 물론 그의 본능은 음향적인 형태에 있어서와 같이 시각적인 형태의 조화를 지배하는 동일한 법칙이 있다는 것, 또 생명의 반대인 두 사면을 흘러내리는 색과, 음의 두 냇물이 솟아나는 혼의 깊은 물줄기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두 사면 중 하나밖에 몰랐다. 그리고 시각의 왕국 속에 들어가면 멍해져 버렸다. 이리하여 빛의 세계인 여왕인 이 밝은 눈초리를 가진 프랑스의 가장 미묘한, 또 아마도 가장 자연스런 매력의 비밀을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P868)     

불행한 그의 몸 속으로 음악이 들끓어올랐다. 몇 주일 동안 그는 음악을 들을 수도 연주할 수도 없어, 고압을 받고 파열해 가는 기관 같았다. 몇 개의 집요한 악구가 송곳처럼 뇌 속에 파고들어 고막을 꿰쭗고 그로 하여금 고통의 외마디 소리를 지르게 했다. 이러한 발작이 그치자 털썩 머리를 베개 위에 떨어뜨렸다. 죽은 듯이 지쳐 땀으로 후줄근해지고 기진맥진해서 허덕이고 숨이 가빠올랐다. 침대 곁에 주전자를 놓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옆 방의 소리와 사람이 닫는 지붕 밑 다락방의 문소리에도 움찔 떨었다. 그는 주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환각적인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아직도 싸움을 계속했다. 악마들에게 용맹스런 나팔을 불어댔다.......

‘비록 세계에 악마가 가득 차고 우리를 집어삼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그의 존재가 떠도는 더운 어둠의 대양 위에, 돌연 갠 하늘이, 밝은 빛이 찾아왔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고요한 속삭임과, 트럼펫과 호른의 평온한 승리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와 동시에 그의 병든 혼에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성가와 같은 확고한 노래가, 커다란 벽처럼 거의 부동의 자세로 솟아올랐다.                (P873)     


그는 자신의 앓는 몸이 부끄러웠다. 그는 생각했다. 

‘이 녀석이 죽으면 얼마나 기쁠까!’

고독, 질병, 빈곤 따위로 괴로워할 이유는 많았으나, 크리스토프는 참을성 있게 자기 운명을 견디었다. 이렇게 잘 참는 일이 전에는 없었다. 자기 자신도 놀랐다. 병은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몸은 축나지만 혼을 해방시켜 준다. 혼을 맑게 해준다. 부득이 무위의 밤과 낮을 보내는 동안, 너무 강하게 번쩍거리는 빛을 싫어하는 사상, 건강의 태양을 만나면 불타버리는 사상이 태어난다. 한 번도 병을 앓은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자기의 전부를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P882)     

그는 청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 미지의 벗은 자태를 감춰 버렸다. 크리스토프는 루생 부인 쪽으로 되돌아왔다. 

“이름이 뭔지 가르쳐 주세요.”

“누구 말씀이지요?” 부인은 물었다. 

“아까 말하던 사람 말입니다.”

“저 젊은 시인 말씀이에요?” 부인이 말했다. “올리비에 자넹이라는 분이에요.”

이 이름의 메아리는 크리스토프의 귀에 썩 오래 익은 음악처럼 울렸다. 한 젊은 여자의 그림자가 순간 그의 눈 속에 떠돌았다. 그런데 새로운 모습이, 새로운 벗의 모습이 곧 이를 지워 버렸다.

크리스토프는 밖으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인파로 붐비는 파리 거리를 걸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감각은 주위 모든 것에 대해 닫혀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주위의 산맥에 의해 세계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하나의 호수와도 같았다. 바람 하나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며 아무런 소란도 없었다. 고요할 뿐이다. 크리스토프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게는 벗이 한 사람 있다.”                   (P892-893)   

     

'내가 사랑하는 미지의 사람들이여! 생활에도지지 않고,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큰일을 꿈꾸며 적의 세계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행복하다는 것은 실로 좋은 것이다! 오, 나의 벗이여, 나는 그대들이 거기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대들에게 팔을 벌린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하나의 벽이 있다. 벽의 돌을 하나하나 나는 마멸시키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도 마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언제 우리는 같은 곳에 있게 될까? 다른 벽이, 죽음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기 전에 나는 그대들에게로 갈 수 있을까? 무슨 상관이냐! 그대들을 위해 일하고 그대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곧 내가 죽는다 해도 그대들이 다소나마 나를 사랑해준다면 나는 한평생 고독해도 괜찮다!‘               (P883)   

  

그 보답은 즉시 나타났다. 정치가이며 신사인 체하는 속물들의 분위기 속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에 대해 이제까지 없었을 만큼 심한 혐오를 느꼈다. 몇 달이나 고독한 생활을 계속했으므로 이러한 동물원과는 인연이 멀어졌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모독이었다. 첫 곡이 끝나면 곧 돌아가리라고 그는 결심했다.(P894~895)     

[2]

그는 단 혼자서 오직 자신의 기쁨 때문에 항상 피아노를 쳤다. 그의 마음은 음악에 젖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치고 있는 것을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저 수동적으로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화성학을 가르쳐 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또 그 자신도 그런 일에는 무관심이었다. 학문이라거나 학문적 정신이라는 것은 그의 가정에는, 특히 어머니 쪽 계통에 있어서는 인연이 먼 것이었다. 법률가이고 재사이고 인도주의자인 이 가족들은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그만 속수무책이었다. 먼 친척 한 사람이 천문협회에 들어간 것이 하나의 불가사의로서 얘기되었다. 그리고 이 인물은 그 때문에 미쳐 버렸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억세고 착실한 정신의 소유자이기는 했지만 그 정신이, 먹은 것을 오랫동안에 걸쳐 소화하는 습관이나 나날의 단조로운 생활 때문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시골의 오랜 부르주아 계급 사람들은 자신의 양식만을 의지하고 있다. 자신만만하고 아무리 거북한 문제라도 자기의 양식으로 해결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칫 학자를 일종의 예술가로 보기 쉬워, 예술가보다는 쓸모가 있지만 예술가만큼 고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술가는 아무 쓸모없지만 무위한 생활에도 품위가 없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학자는 거의 손으로 일을 하는 노동자이고 --이것은 불명예스런 일이었다-- 직공과 비슷한 것으로서, 예술가보다 학문은 있지만 정신 상태가 약간 돌아 버린, 종이 위에서는 퍽 능란할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숫자의 공장을 나오면 부지깽이와 마찬가지다! 만일 생활과 실무 경험을 가진 양식가에게 인도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P909-910)   

  

인생에는 이러한 착오가 있는 법이다. 어떤 시기에 이르러 인간은 도무지 몰락을 면할 길이 없는 것만 같다. 마치 누가 와서 도와주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말을 들었더라면 살아남을지도 모를 모든 충고를 피하고, 몸을 숨겨 열에 들뜬 것처럼 성급히 달아나 드디어 제멋대로 깊은 못 속으로 빠져들고야 만다.(P920)     

그 뒤 며칠 동안 그녀는 방에 혼자 틀어박혀 어떤 감정 속에 멍하니 빠져 들었다. 그녀는 이 감정을 정면에서 보는 것을 피하고 있었는데도, 그것은 쑤셔대는 관자놀이의 희미한 맥박처럼 그녀의 모든 생각 속으로 까닭 없이 섞여들어 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 올리비에가 크리스토프의 가곡집을 가지고 왔다. 어떤 서점에서 찾아낸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고 닥치는 대로 펴 보았다. 그러자 그 페이지의 한 곡 서두에 다음과 같은 헌사가 독일어로 쓰여 있는 것을 그녀는 읽었다.

‘나를 위해 희생된 가련한 소녀를 위해’

그리고 그 밑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이 날짜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서 악보를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악보를 내려놓고 동생에게 그것을 쳐 달라고 말하고 자기 방으로 가 거기에 틀어박혔다. 올리비에는 이 새로운 음악이 기뻐 견딜 수가 없어 누나의 감동도 눈치채지 못하고 치기 시작했다. 앙투아네트는 옆방에 앉아 들먹거리는 가슴의 맥을 가만히 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불현 듯이 일어나 찬장 속의 작은 출납장을 찾았다. 독일을 출발한 날짜와 이 신비적인 날짜를 알아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알아보지 않아도 분명했다. 그렇다. 확실히 크리스토프와 함께 연극을 본 밤이다. 그녀는 자리에 몸을 눕히고 얼굴을 붉히고 가슴 위에 두 손을 얹고 반가운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가슴은 감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아! 어째서 이렇게 머리가 아픈 것일까?                     (P984-985)     

두 사람의 우정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벗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 그 모든 가치를 부여한다. 벗을 위해 살게 되고, 벗을 위해 시간의 마멸 작용(磨滅作用)에 대하여 내 몸의 안전을 지키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충실했다. 올리비에는 맑은 정신과 병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강한 힘과 움직이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장님과 중풍환자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대단히 풍부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올리비에는 크리스토프의 보호를 받아 빛에 대한 취미를 회복했다. 크리스토프는 고뇌와 부정이나 증오 속에서도 낙천적인 기질을 잃지 않는 충만한 생명력을 올리비에에게 주입했다. 그 대신 크리스토프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올리비에한테서 얻었다. 그것은 천재의 법칙이다. 천재는 아무리 많은 것을 남에게 베풀어도,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사랑에서 얻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사자(獅子)이기 때문이며 천재이기 때문이다. 천재란, 반은 주변에 있는 위대한 것을 모두 흡수하여 그것을 다시 더 위대하게 하는 재능이기 때문이다. 부(富)는 부유한 자에게 모여든다는 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은 강한 자에게 모여든다. 크리스토프는 올리비에의 사상을 자기의 양식으로 했다. 그의 침착한 지성, 세속을 초월한 정신, 사물을 멀리 바라보면서 침묵 속에서 이해하고 지배하는 시력(視力) 등을 자기 몸에 흡수했다. 그리고 올리비에의 그러한 장점은 크리스토프의 보다 더 비옥한 땅에 이식되자, 전혀 다른 힘으로 육성되었다.             (P1012-1012)  

    

당신은 모르지만, 초라한 건물 속에서, 파리의 지붕 밑 다락방에서, 조용한 시골에서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그 평범한 일생 동안 꾸준히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서 그날그날 자기희생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어요. 이거야말로 항상 프랑스에 존재하는 조그마한 교회입니다. 숫자로 보면 작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커다란 교회이며, 사람들의 눈에 띄는 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실은 프랑스의 모든 힘이죠. ‘선택받은 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부패하고 변모하는 것과는 달리, 그 힘은 묵묵히 영속하고 있는 거요…….(P1019~1020)     


그들은 정신의 모든 절대적 법칙, 모든 지상 명령, 모든 생존이유에서도 초연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살아 있는 것일까?

“자유를 누리는 기쁨을 위해서죠.” 올리비에는 대답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그런 자유 속에서는 오히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연했으므로 강력한 규율의 정신과 독일적인 독재주의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말했다. 

“자네들의 기쁨은 유혹의 함정일세, 아편상습자의 꿈일세, 자네들은 자유에 도취하여 삶을 잊어버리고 있네. 절대적 자유라니, 그런 건 정신으로서는 미치광이의 원인이고, 국가로서는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는 것일세.... 자유라니! 이 세상에서 대체 누가 자유란 말인가? 난봉꾼뿐이겠지.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숨도 못 쉬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닌가. 이젠 꿈이나 꿀 수밖에 없어, 그러다가 앞으로는 꿈도 못 꾸게 될 거야.”

“괜찮아요!” 올리비에는 말했다. “크리스토프, 미안하지만 당신은 자유의 즐거움을 몰라요. 그건 위험이나 고통이나 죽음마저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자유롭다는 사실, 자기 주위의 모든 정신이, 그래, 난봉꾼마저도 자유롭다고 느끼는 일, 이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즐거운 일이죠. 영혼이 무한한 공간을 헤엄치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런 영혼은 이미 다른 장소에서는 살아가지 못할 거예요. 당신이 말하는 안전이나, 제국주의 병영(兵營)의 울타리에 갇힌 훌륭한 질서나, 완벽한 규율 같은 게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환경에 들어가면 숨이 막혀서 죽어 버리겠죠. 공기가 필요해요! 지금보다 더 많은 공기가! 지금보다 더 많은 자유가!”

“세계에는 법칙이 있어.” 크리스토프는 말했다. “늦거나 이르거나 지배자가 오겠지.”       (P1029-1030) 

    

혐오감, 피로, 그리고 행동이나 고통이나 추악이나 우열(愚劣)이나 위험성이나 책임 등에 대한 염려, 또는 오늘날 많은 프랑스 사람들의 훌륭한 의지를 좌절시키고 있는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 무서운 생각이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지적(知的)이었다(그 지성은 활개를 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찬성의 이유와 반대의 이유가 한꺼번에 뚜렷이 보인다. 힘이 부족하다. 생명이 부족하다. 사람은 생기발랄할 때에는 자기가 살아 있는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살아 있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니까!(P1060)   

  

자네들은 자네들을 압박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백배 더 하고, 천배 더 값어치가 있는데, 그들의 뻔뻔스러운 압력에 짓눌리고 있어! 나는 자네들을 이해할 수 없네. 자네들은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가장 훌륭한 지성, 가장 인간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용하려고는 하지 않고, 소수의 시시한 사람들의 지배 밑에서 모욕과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거야. 자네들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 주게나! 하늘에 도움을 바란다든가, 나폴레옹의 등장을 바란다든가 하는 건 집어치워! 일어나서 단결해야지! 자, 다들 일을 시작해야지! 집 안을 청소하는 거야.(P1062)    

 

패배는 뛰어난 사람들을 다시 단련하고, 강한 정신과 약한 정신을 구별한다. 그것은 순수하고 강한 자를 가려내어 더욱 순수하게 하고, 더욱 강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몰락을 재촉하기도 하고, 비약하는 힘을 좌절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쓰러지는 대부분의 민중과, 걸음을 계속하는 뛰어난 사람들을 분리시킨다. 뛰어난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용감한 사람들 중에도, 남 모르는 우울함이 있고, 자기의 무력과 고민의 의식이 있다. 그리고 가장 잘못된 것은 대중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동시에, 그들끼리도 서로 분리되어 있는 사실이다. 저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 강한 사람들은 자기를 구출하는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오오, 사람들아, 자기 자신을 구하라!.....’는 강력한 격언은 ‘오오, 사람들아, 서로를 구하라!’는 뜻임을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하는 마음, 동정심의 표현, 민족의 승리에 의해서 부여되는 공동생활의 요구, 충실감, 절정으로 향하려는 감정 등이 모든 사람에게 결여되어 있다. 

크리스토프와 올리비에는 그런 사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들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진 영혼이 충만되어 있는 이 파리에서, 미지의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이 집 안에서, 두 사람은 마치 아시아의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고독했다.               (P1063)    

   

사람 사이의 오해는 그 사이에 제삼자가 끼어들지 않는 한에서는 결코 중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제삼자는 반드시 나타나는 법이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남의 일에 흥미를 가지고, 그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P1092)    

 

사람이 남에게 감화를 준다는 것은 말에 의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존재에 의한다. 눈초리, 몸짓, 말 없는 가운데 맑은 마음의 접촉에 의해서, 자기 주변에 침착한 분위기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토프는 생명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 생명은 마비된 이 집 건물의 낡은 벽이나 닫힌 창을 통하여 봄철의 다사로운 공기처럼 슬그머니 스며들었다. 그것은 슬픔이나 무기력, 고독으로 인하여 몇 해 전부터 침식되고 고갈되어 죽을 지경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되살아나게 했다. 영혼이 영혼에 끼치는 영향력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주고 있는 사람도, 모두 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이승의 생활은, 그러한 신비로운 인력으로 지배되는 만조와 간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P1139)     


크리스토프는 그들에게 사육될 인물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자가 자기에게 음악에 관해서 해야 할 일을 말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술은 정치보다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해 주었다. 그는 또 그 신문의 한 전속 문필가가 만든 시시한 오페라 각본에 곡을 붙여 달라는 사주(社主)의 추천이 달린 부탁을 받았으나, 무뚝뚝하게 버텼다. 이 사건으로 크리스토프와 가마슈 사이에 첫 균열이 생겼다. 

크리스토프는 그런 일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무명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원래의 무명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자기를 타인 속에 상실하는, 저 눈부신 조명에 노출된’ 자기를 보았던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괴테의 말을 생각했다. 

작가가 하나의 훌륭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게 되면, 대중은 그가 제2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방해하려고 한다...... 명상에 잠긴 재능이 본심이 아니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소란에 휩쓸려 들게 된다. 왜냐하면 저마다 그의 재능의 한 조각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P1213)     

크리스토프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친구들 사이에 신비로운 기반이 짜여감에 따라, 그의 예술관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은 더욱 인간적으로 되었다. 크리스토프는 이미 단순한 독백이나,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한 음악은 원하지 않았다. 오직 전문가들만을 상대로 하는 교묘한 구상 같은 것은 더욱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이 모든 사람의 영혼에 공통된 것이 되기를 원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합되는 예술이야말로 참으로 살아 있는 예술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그 고독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던 시기에도, 자기 예술 속에 표현한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과 결보되어 있었다. 헨델이나 모차르트는, 자연스러운 추세에 따라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을 위해서 작곡했다. 베토벤조차 대중을 고려해야 했다. 그것은 그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때로는 천재를 향해서 이렇게 외쳐야 한다.

“너의 예술 속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게 뭐가 있느냐? 만약 아무것도 없다면 꺼져 버려라!”

그런 구속에서 누구보다도 이익을 얻는 것은 천재 자신이다. 물론, 자기밖에는 표현하지 않는 대예술가도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만인을 위해서 고동하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보고자 하는 자는, 자기 사상의 공허 속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P1221)     


연극은 벽화처럼 적절히 일정한 장소에 놓인 예술, 살아 있는 예술이다.

이런 식으로 프랑스와즈가 표현한 생각은 크리스토프의 생각과 일치했다. 크리스토프는 당시 타인과 마음이 상통하는 하나의 집합적인 예술을 지향하고 있었다. 프랑스와즈의 경험은 관중과 배우 사이에 이루어지는 신비적인 협력 작용을 그에게 깨닫게 했다. 프랑스와즈는 퍽 현실적이어서 환상을 품거나 하는 여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상호 암시의 힘을, 배우를 관객에게 붙들어매는 공감의 물결을, 한 사람의 대변자의 목소리가 분출되어 나오는 많은 혼의 강력한 침묵을 감지했다. 물론 프랑스와즈가 그러한 것을 느끼는 것은 퍽 드물고 간헐적인 섬광에 의한 것으로, 같은 희곡과 같은 장소에서 되풀이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 밖에는 혼이 들어가 있지 않은, 단지 직업이고 지적이며 싸늘한 기계 작용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외일 때이다. 일순간에 깊은 못이, 무수한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혼의 섬광에 의해 비쳐 나오는 순간이다. 공통되는 혼의 힘이 단 한 사람의 배우 속에 표현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공통되는 혼이야말로 대예술가가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대예술가의 이상은, 자기를 버리고 세계 위를 불어가는 집합적 정열의 옷을 입은, 고대 그리스 낭송 시인이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산 객관주의이다.                  (P1262-1263)     


크리스토프는 어떤 것을 만들어야만 하는가를 뚜렷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인이 없었다. 저 혼자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단지 음악에만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음악은 비록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보편적인 언어는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정신 속에 음향의 화살을 쏘아 넣는 데는 언어의 화살이 필요하다.

크리스토프는 일상생활로부터 영감을 받은 일련의 교향곡을 만들고자 계획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것과는 다른 그의 독특한 <가정 교향곡>을 머릿속에 구상했다. 작자의 의도에 따라 음악 주제가 여러 가지 인물을 표현하는 저 상투적인 초보의 수법을 이용해서 가정생활을 영화적인 화면으로 구체화한다는 따위의 것은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위법의 대가가 하는 현학적이고 유치한 놀음이다! 크리스토프는 인물이나 행위를 그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누구나가 거기에서 저 자신의 혼의 메아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감동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1악장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젊은 부부의 안정된 소박한 행복과 애정이 듬뿍 담긴 관능의 기쁨, 앞날에 대한 신뢰 따위를 나타냈다. 제2악장은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엘레지였다. 하지만 크리스토프는 고통의 표현에 있어서의 사실주의적인 파고드는 수법은 혐오해서 피했다. 개성적인 모습은 사라졌다. 거기에는 하나의 커다란 슬픔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당신의 슬픔이고 나의 슬픔이었다. 또 누구나의 운명이고, 혹은 운명이 될는지도 알 수 없는 하나의 불행에 부딪쳤을 때의 누구나의 슬픔이었다. 슬픔에 짓눌린 혹은 애처로운 노력으로 조금씩 일어나 드디어는 자신의 괴로움을 공물로서 신에게 바치고 있었다. 제2악장에 밀접히 연결된 다음 제3악장에서는 혼이 씩씩하게 자기의 길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 장은 제멋대로의 푸가로서, 대담한 구상과 집요한 리듬은 드디어 주인공을 사로잡고 싸움과 눈물 가운데서 절대로 흔들리거나 굽힘이 없는 신앙에 담긴 힘찬 행진곡으로 도입되었다. 마지막 악장은 인생의 저녁을 묘사했다. 최초의 주제가 감동적인 신뢰와 늙지 않는 애정을 가지고 다시금 나타났다. 하지만 그 주제는 상처를 좀 받았으면서도 한층 성숙하고 광명을 품으며 고뇌의 그림자 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한한 삶에 대한 경건한 사랑의 찬가를, 마치 풍성한 꽃다발을 바치는 것처럼 하늘을 보고 노래 불렀다.              (P1264-1265)     

현재의 도덕론자들은 기묘한 자들뿐이다. 그들은 관찰 능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온몸이 위축되어 버렸다. 그들은 이미 인생 관찰에만 노력할 뿐이다.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또 그것을 가지려고도 노력하지 않는다. 인간이 지닌 성격 중에 있는 무엇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록해 버리면 이미 자신들이 할 일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이런 말을 했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바꾸려고는 조금도 애쓰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일종의 도덕적 가치로 보이는 모양이다. 모든 약점은 대번에 신성한 권리를 부여받는다. 세계는 대중화한다. 옛날에는 국왕에게만 책임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 더욱이 하층민들에게는 그것이 없다. 실로 놀라운 협력자들이다! 그들은 아주 힘들여, 세심한 주의를 다하여 약자들에게 어떠한 점이 약한가를 알려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약자들은 영원히 약하도록 자연에 의해서 정해져 있는 것임을 지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약자들에게 있어서 팔짱을 끼고 있는 일 말고 무슨 할 일이 남아 있겠는가? 그들에게 자존심이 없다면 아직도 다행한 일이다! 여자들은 약한 어린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있는 동안에, 결국 약한 어린이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된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갖는 옹졸함을 키워서는 조장시키는 것이다. 만약 어린이들에게, 소년기의 어느 나이 때는 혼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다 잡지 않았기 때문에 죄악이나 자살이나,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최악의 타락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다고 반 장난삼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의 과실을 용서해 보라..... 단번에 범죄가 꼬리를 물게 될 것이다. 남자로서도 너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을 계속 듣게 되면 벌써 자유스럽지 못하고 금수처럼 되어 버린다. 여자에게 너에게는 책임이 있다, 너는 자신의 육체와 의지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해 보라, 여자는 실제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비겁하게도 여러분은 그런 말을 하기를 꺼리고 있다. 왜냐하면 여자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P1298-1299)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당했다.’ 

그러한 생각에 올리비에는 짓눌려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애정 어린 난폭한 말투로 격려했지만 헛일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이야.” 크리스토프는 말했다. 

“친한 자에게 배신당하는 것쯤은 병이나 가난이나 바보들과 싸우는 것같이 흔히 있는 시련이야. 거기에 대해서 무장해야 해!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빈약한 인간이기 때문이야.”

“음!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별로 그것을 자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빈약한 인간, 그렇다. 애정을 필요로 하고 그것이 사라져 버리면 죽어야 되는...... 빈약한 인간인 것이에요.”

“자네의 인생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야, 아직 사랑할 인간들은 얼마든지 있어.”        (P1327)    

 

입센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 속에서 끝까지 살아가려면 타고난 재능과는 다른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삶을 충만시키고 거기에 의의를 부여할 만한 정열과 고뇌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작품을 쓰는 것뿐이다.’

크리스토프는 작품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작품들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더라도 좀더 발랄한 것을 쓰고 싶었다. 자기의 근육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쉬고 있는 격투가와도 같은 그는, 따분한 야수처럼 하품을 하면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조용한 작업의 세월을 지그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의 타고난 독일적 낙천주의에 따라 이만하면 만사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 상태를 피치 못할 종점으로 여기고 있었다.                       (P1348)   

  

남에게 햇빛을 쏟아 넣으려면 자기 속에 그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올리비에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늘날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기 혼자서 힘을 방사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힘을 방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결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누구와 결합한단 말인가? 자유로운 정신과 종교적인 마음을 가진 그는 모든 정치적, 종교적 당파에 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당파들은 관용성이 없었고 편협했고 끊임없이 다투고 있었다. 권력을 손에 넣으면 당장 남용했다. 오직 압제받는 사람들만이 올리비에의 마음을 끌었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만은 그도 크리스토프와 의견이 같아서 먼 데 있는 부정과 싸우기 전에 가까운 부정, 많건 적건 간에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는 주위의 부정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저지르는 악은 생각지 않고 남의 악에 항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P1354-1355)

     

이들 부르주아들은 모두 여러 가지 상이한 원칙에 의거하고 있었다. 어떤 자는 자기 마음에, 어떤 자는 자기 이성에, 또 어떤 자는 자기의 이익에 의거했다. 또 어떤 자는 자기의 사고방식을 복음서나 혹은 베르그송이나, 카를 마르크스나, 프루동이나 조제프 드 메스트르나, 니체나 또는 조르주 소렐에 결부시키고 있었다. 유행에 의해서 시류를 쫓는 취미에 의해서 혁명가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야만적인 성질 때문에 혁명가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또 활동의 요구에 의해서, 영웅주의적인 열정에 의해서 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노예근성이나 부화뇌동적인 정신에 의해서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자기 스스로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바람에 실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먼지의 소용돌이였으며, 멀리 흰 큰 길 위에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여 돌풍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P1366)    

 

같은 시대의 모든 사람들 위에 내리덮이고 있는 그 어떤 편견이나 요청의 속박에서 빠져나올 대담성을 가진 인간이, 가장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말하자면 자기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는 일이다. 한편에는 황무지 속의 자유가 있고 한편에는 인간이 있다. 그들은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 쪽을, 가축의 무리 쪽을 택한다. 그것은 고약한 냄새는 나지만 따뜻하다. 그런데, 거기서 그들은 생각지도 않은 것을 제법 생각하는 체한다.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P1373)  

   

“자네들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이해만이 문제일 동안은” 그는 말했다. “자네들은 나의 동감을 얻지 못하네. 자네들이 하나의 신념을 향해서 나아가는 날에야말로 나는 자네들 편이 될 걸세. 그렇지 않고, 단지 말과 생각의 싸움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예술가야, 나에게는 예술을 옹호할 의무가 있어, 예술을 어느 일파에만 봉사시킬 수는 없단 말이야. 최근 야심 있는 작가들이 불건전한 인기를 얻기 위해 나쁜 예를 남긴 것을 나는 알고 있네. 하지만 그런 짓을 해서 자기들이 옹호하고 있는 주의 주장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리라고는 나는 생각지 않아. 오히려 그들은 예술을 배반한 거야. 지성의 빛을 구제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닌가. 자네들의 맹목적인 투쟁에 그것을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거야! 만일 우리가 그 빛이 꺼지는 대로 방치해 둔다면, 누가 그것을 계속 쳐들고 있을 수 있겠는가? 자네들도 전투 뒤에 빛이 본디대로 계속 빛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아마 매우 즐거울 거야. 배의 갑판 위에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한편에서, 기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불을 때고 있는 노동자가 언제나 필요한 거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도록 해야 돼. 예술가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동안에도 언제나 북쪽을 지향하고 있는 나침반이야......”         (P1382-1383)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타격은 크리스토프 자신이 이미 남몰래 동요하고 있던 시기에 찾아왔으므로 그에게는 더욱더 심했다. 그는 마침 그의 생애에 있어서 신체 조직의 안쪽에서 그 어떤 은밀한 변화 작용이 일어나는 나이에 이르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서는 육체도 영혼도 외부로부터 타격을 입기 쉽다. 정신은 쇠약한 듯한 기분이 들고, 막연한 슬픔에 괴로워하며, 사물에는 진력이 나고, 해버린 일에는 도무지 애정이 느껴지지 않으며 게다가 다른 일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한다. 이런 위기가 일어나는 나이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적인 의무에 묶여 버린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보호자이다. (…) 그러나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은 이런 공허한 때에 자기를 지탱해 주는 것, 자기를 억지로 걸어가게 해주는 것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습관에 따라 걸어간다.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의 힘은 흐트러지고 의식은 흐려진다. 만일 의식이 몽롱한 이런 순간에 벼락의 일격이 몽유병자 같은 걸음을 멈추게 해버린다면 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다. 그는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만다.(P1450~51)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크리스토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기가 보아온 투쟁을 생각할 때 인간이 자기 몸에 신념을 쐐기처럼 박고 살고 있다는 것에 침통한 감탄을 느끼는 것이었다. 상반된 관념이 잇따라 일어나고 행동에는 반동이 잇따랐다. 민주주의와 귀족주의, 사회주의와 개인주의,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진보와 전통이라는 식으로 영원히 그것의 반복이었다. 각각의 새로운 시대는 10년이 못 가서 소멸해 버리는데도, 자기만이 절정에 도달했다고 믿고 돌을 던져 앞서 올라간 자를 산에서 굴러 떨어지게 했다. 그리고 한창 떠들어대고 외치고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었지만 새로 올라온 자에게 돌을 맞고 굴러떨어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면 그 다음에 오는 자는 또 누구인가?.......

크리스토프에게 음악 창작도 이미 피난처가 아니었다. 일은 간헐적이고 일정한 방향과 목적이 없었다. 작곡을 한다? 대체 누구를 위해 작곡하는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인가? 그러나 그는 격렬한 인간 혐오의 위기를 지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그럼 자신을 위해서인가? 그러나 그는 죽음의 공허를 채울 수 없는 예술의 공허함을 너무나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단지 고의 맹목적인 힘만이 때때로 거세게 날개치며 그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 힘도 곧 꺾여서 못 쓰게 되었다. 크리스토프는 어둠 속에서 쾅쾅 울리는 폭풍우와 같았다. 올리비에가 죽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그는 이제까지 자기 생활을 채웠던 모든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나눠 가지는 것으로 믿었던 감정이나 사상에 대해 분연히 맞서 나갔다. 지금은 자기가 하나의 환각에 희롱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대체로 사회 생활의 모든 것은 커다란 오해 위에 서 있었다. 그 오해의 원인은 언어였다......             (P1456-1457)   

  

오, 혼의 심연을 여는 음악이여! 너는 정신의 습관적인 균형을 파괴한다. 평범한 생활에 있어서 보통 혼은 닫힌 방이다. 내부에서는 쓸 줄을 모르는 여러 가지 힘이, 다 쓰지 못하는 덕과 악이 쇠퇴해 간다. 현명하고 실제적인 이성이, 겁쟁이의 상식이 방의 열쇠를 갖고 있다. 그리고 아주 평범하게 정돈된 몇 개의 장롱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지만 음악은 마법의 작은 나뭇가지를 갖고 있어 어떤 자물쇠도 풀어 버린다. 문이 열린다. 마음의 악마가 자태를 나타낸다. 거기서 혼은 비로소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다....... 마의 인어가 노래 부르는 동안은 맹수를 길들이는 사람이 야수들을 감시하고 있다. 대음악가의 강력한 이성이 자신이 풀어 놔 준 정열을 매혹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이 침묵하고 맹수를 길들이는 사람이 없어지면 불러일으켜진 정열은 우리 안을 흔들고 짖으며 먹이를 구하러 다닌다.....            (P1481)   

  

삶은 지나가 버린다. 육체와 혼은 개울물처럼 흘러간다. 세월은 나무의 살에 아로새겨진다. 형태의 세계는 모두 닳아 버리고 또 새로이 소생한다. 불멸의 음악이여, 오직 너만이 지나가지 않는다. 너는 마음속의 바다다. 너는 속 깊은 혼이다. 너의 밝게 트인 눈동자에는 삶의 침울한 얼굴은 비치지 않는다. 타오르는 더운 나날, 얼어붙은 차가운 나날, 열에 들뜬 나날은 불안에 쫓기고, 무엇에도 만류되는 일 없이 검은 구름떼처럼 너로부터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너만이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너는 세계 바깥에 있다. 너 혼자서 하나의 세계를 마련했다. 너는 자기 육성의 윤무(輪舞)를 이끄는 태양을, 인력과 수와 법칙을 갖고 있다. 너는 밤의 하늘에 눈부신 이랑--그 이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몰이가 다루는 은쟁기의 자국이다--을 만드는 별의 평화를 갖고 있다.       

음악이여, 너그러운 벗이여, 달빛 같은 너의 빛은 하계(下界)의 태양의 강한 빛에 피로한 눈에는 얼마나 시원스런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려고 발로 흙탕물을 차고 있는 공동 우물에서, 혼은 외면하고 너의 가슴에 매달려 너의 가슴에서 넘쳐나는 꿈속의 젖을 먹는다. 음악이여, 순결한 어머니여, 더러움 없는 육체 속에 모든 정열을 간직하고, 등심초빛 빙하에서 흘러나오는 연초록 물빛을 한 눈의 호수 속에 모든 선과 악을 녹아들게 하는 너는 악을 초월하고, 또 선을 초월하고 있다. 너의 속에 집을 지은 자는 세기(世紀) 바깥에서 산다. 그에게 있어 나날의 연속도 단 하루에 지나지 않으리. 그리고 모든 것을 씹어 삼키는 죽음도 그것을 물려고 하면 도리어 제 이빨을 부러뜨릴 것이리라.

나의 고통스런 혼을 조용히 흔들어 준 음악이여, 나의 혼을 침착하고 굳건하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 준 음악이여 --나의 사랑하는 자이며, 나의 행복인 음악이여-- 나는 너의 맑은 입에 입맞춤하고, 꿈과 같이 달콤한 너의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묻고, 너의 상냥스런 손바닥에 불타는 눈시울을 묻는다. 우리는 잠자코 있다. 우리는 눈을 감는다. 게다가 너의 눈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빛이 보이고, 나는 너의 침묵한 입의 미소를 마신다. 그리고 너의 가슴에 몸을 기대어 영원한 삶의 고동 소리를 조용히 엿듣는다.                  (P1538-1539)

     

이제 그는 이해했다.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힘의 무서운 주먹 아래서는 자기의 자존심이 공허하다는 것을, 인간의 자존심이 공허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무도 확실히 자기를 지배할 수는 없다. 밤에도 자지 않고 경계해야만 한다. 만일 잠들면 그 힘이 우리들 위로 덤벼들어 우리를 납치해 갈 것이다…… 대체 어떠한 심연으로 납치해 가는 것일까? 혹은 또 격류는 갑자기 말라 버리고 우리를 건조한 강바닥에 남겨 둔다. 싸우기 위해서는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언제라도 바라는 때에, 또 어디서든지 바라는 장소에 사랑과 죽음과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신 앞에 굴복해야 한다. 인간의 의지는, 이 신의 의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신은 단 한 순간으로 몇 년의 노고와 노력을 무로 돌려 버릴 수 있다. 또 만일 원한다면 진창에서 영구적인 것을 솟아나게 할 수도 있다. 사물을 창조하는 예술가 이상으로 자기가 신의 뜻대로 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자는 없다. 왜냐하면 만일 예술가가 정말로 위대하다면 ‘신의 영(靈)’에 의해 구술되는 것밖에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P1544)     


크리스토프는 이제 흘러가 버리는 세월을 헤아리지 않는다. 한 방울 한 방울 삶은 사라져 간다. 하지만 그의 삶은 딴 데에 있다. 그것은 이제 역사를 갖지 않는다. 역사는 그가 창조하는 작품뿐이다. 솟아오르는 음악의 끊임없는 노래는 혼을 채우고 바깥세상의 소음을 느끼지 않게 한다.(P1548)     

크리스토프의 음악은 조용한, 바람이 잔잔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잔뜩 모였다가는 우리를 치고, 그러고는 사라져 간 전날의 봄날 폭풍은 이제 아니었다. 그것은 여름의 흰 구름이고, 눈과 황금의 산이며 천천히 날아 하늘을 가득 채운 커다란 빛의 새였다...... 창조! 8월의 조용한 태양에 무르익는 보리......

처음에는 종잡을 수 없는 그러나 힘찬 마비 상태,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의, 부푼 보리 이삭의, 성숙한 태아를 잉태한 임부의 희미하고 커다란 기쁨, 오르간의 우렁찬 메아리, 밑바닥에서 꿀벌이 노래 부르고 있는 벌집...... 가을날 벌꿀빛 광선 같은 어두컴컴한 금빛이 이 음악으로부터 그 음악을 끌어내는 리듬이 차차 뚜렷해진다. 유성의 론도(rondo)가 나타난다. 그것이 선회한다.....

그러자 의지가 모습을 드러내어 보인다. 의지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내달리는 몽상의 말꼬리에 뛰어올라 이를 무릎 사이에 꽉 죈다. 정신은 자신을 끌어내리는 리듬의 법칙을 인정한다. 그리고 불규칙적인 많은 힘을 제어하고 그것들에게 길을 정해 주고, 또 자기의 목적지를 정한다. 이성과 본능의 교향곡이 편성된다. 그늘이 밝아진다. 펼쳐지는 한줄기 기다란 길 위에 빛의 초점이 군데군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루어지고, 그 빛의 초점은 그 자체가 창조되는 작품 속에서 태양계의 주위에 붙들어맨 유성의 작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화면의 윤곽은 대충 정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작품의 얼굴이 어렴풋이 여명 속에서 떠오른다. 모두가 뚜렷해진다. 색조의 조화나 형태의 선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의 모든 힘이 징발된다. 기억의 향로의 뚜껑이 열려 그 향이 발산된다. 정신은 감각을 해방한다. 감각이 열광하도록 내버려두고 자기는 잠자코 있다. 그러나 곁에서 엉거주춤 형편을 살피고 자기 먹이를 택한다......

모든 준비가 이루어진다. 작업반이 감각에서 손에 넣은 재료로 정신에 의해 구상된 작품을 만들어낸다. 위대한 건축가에게는, 자기들의 일을 터득하고 있어 노력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이리하여 대사원은 완성된다.

‘그리하여 신은 그가 손수 만드신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고 보신다.’

거장의 눈은 자신이 창조한 것 전체를 한눈으로 다 보아 버린다. 그리고 그의 손은 조화를 완전한 것으로 한다......

꿈은 이리하여 완성된다. Te Deum(신을 찬영할지어다)......

여름의 흰 구름이, 빛의 흰 새가 천천히 날아다닌다. 그리고 하늘 전체가, 그 큰 새의 날개로 덮였다.                        (P1683-1684)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인간적인 이기심을 타진해 보기 위해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어느 쪽을 바라나? 크리스토프라는 인간과 그 이름이 사람들의 추억에 영구히 남아 있고 작품이 사라지는 것을? 아니면 작품이 오래 남고, 너라는 인간과 그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인가?”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사라지고 내 작품이 계속 살아가는 쪽이다! 내게 있어서는 일거양득인 것이다. 왜냐하면 내 속의 가장 진실된 것만이, 유일한 진실만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라는 인간은 죽어도 상관 없다!........”

그러나 곧 크리스토프는 자기 자신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작품에 대해서도 무관심해진 것을 느꼈다. 자기 예술이 영속하리라고 믿는 것은 얼마나 유치한 환상인가! 그는 자기의 작품이 참으로 미미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을 뿐만 아니라 틈만 있으면 근대 음악 전부를 노리고 있는 파괴의 힘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음악의 말은 다른 어떠한 말보다도 빨리 타버리고 만다.                 (P1706)    

 

<장 크리스토프>에의 고별

바야흐로 흘러가려 하는 한 세대의 비극을 나는 썼다. 그 세대의 온갖 악덕과 미덕, 괴롭고 답답한 슬픔, 혼돈된 자부심, 초인적인 한 임무의 너무나 무거운 짐에 짓눌리면서 이루어진 씩씩한 갖가지 노력, 그러한 모든 것을 나는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 무거운 임무란, 세계의 한 ‘총체(總體)’를, 하나의 도덕을, 하나의 미학을, 하나의 신앙을, 하나의 새로운 인간성을 고쳐 만들어 보자는 일이었다. 우리들 본연의 자세는 이러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여, 젊은이들이여, 이번에는 당신들 차례가 왔다! 우리들을 넘어서 가라. 그리고 전진하라. 우리들보다 더욱 위대하고 더욱 행복하라. 나는 나 자신의 과거의 영혼에 이별을 고한다. 나는 영혼을 한낱 껍데기로서 내 등 뒤에 내버린다. 삶은 여러 죽음과 여러 부활의 한 연속이다. 크리스토프여, 죽자--부활하기 위해서! 

                                                                                                              1912년 10월

                                                                                                                  로망 롤랑

                    (P1715) 


매거진의 이전글 요시모토 바나나의 <막다른 골목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