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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05. 2024

광화문에서 #28

에로스트라트(Erostrate)

인간을 관찰할 때엔 높은 데서 내려다보아야 한다. 나는 전등을 끄고 창가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누가 자기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의 앞뒤에 신경을 쓴다. 그러므로 모두가 1미터 70의 구경꾼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누가 7층 위에서 내려다본 중절모자의 꼴에 대하여 상상이나 할 것인가. 그들은 짙은 색깔의 화려한 옷감으로 어깨며 머리를 감싸기를 소홀히 하고, 인간의 대적(大敵)인 수직관찰(垂直觀察)과 싸울줄 모른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웃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그처럼 자랑하는 직립자세(直立姿勢)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들은 한길에서 납작하게 기다시피 하는 긴 다리가 어깨 위로 뻗어 나오고 있지 않은가.

7층의 발코니 —나는 여기서 일생을 보내야 마땅했을 것이다. 하려면 물질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신적 우월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무릇 정신적 우월을 유지하는 데는 물질적 우월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들에 대한 나의 우월은 무엇인가? 다만 위치에 있어서 우월뿐이다. 나는 내 속에 깃들어 있는 <인간>위에 몸을 두고 바라본다. 그러므로 나는 노틀담의 탑과 에펠탑의 전망대와 싸크레꾀르 교회와 프랑브르가(街)의 나의 7층을 좋아하는 것이다. 모두 훌륭한 배경들이다.

그러나 가끔 거리로 내려가지 않을 수가 없다. 예컨대 사무실에 나가는 경우 말이다.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사람들과 같은 평면 위에 서면, 그들을 개미로 간주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들이 나를 스쳐가고 건드리기 때문이다.  

-J.P. Sar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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