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순응자> 2016년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1929년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집필한 『무관심한 사람들』로 당시의 낙관적이고 서정적인 문단의 분위기를 뒤엎고 퇴폐적이고 사실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주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941년 파시스트 정부의 검열 탓에 저술 및 책 출간을 할 수 없게 되고, 전쟁이 끝난 1940년 후반부터 1950년 중반에 사회의 혼란뿐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 타락해가는 상황을 반영한 작품들을 발표한다. 『순응주의자』는 1951년에 출간된 모라비아의 후기작으로, 관습상 정상적인 것을 추구하고 평생 그에 스며들려고 노력한 마르첼로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1930년대의 파시스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순응자>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1970년에 제작한 이탈리아 영화이다.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로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00년", "마지막 황제" 와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있다.
[프롤로그]
어린 시절 마르첼로는 눈에 띄는 모든 사물에 매료돼 있었다. 아마도 엄격하다기보다는 무관심한 집안 분위기에서, 부모가 그의 소유욕을 만족시켜주지 않았거나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더 깊은 곳에 숨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본능이 그 안에서 탐욕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뭐든 갖고 싶다는 끊임없는 열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우개 달린 연필, 그림책, 새총, 자, 휴대용 고무 잉크병 같은 하찮은 물건마저도 그의 마음을 휘저어놓았다. 일단 뭔가를 소유하고 나면 마법에 걸린 듯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만족감을 느꼈다.
마르첼로는 자기 방에서 따로 잠도 자고 공부도 했다. 책상 위에 흩어져 있거나 서랍에 든 잡동사니는 언제 얻었는지에 따라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나뉘었다. 그것들은 다른 사람이 가진 물건과 비슷하지도 같지도 않았다. 또한 집에 있는 물건들과도 분명 달랐다. 해보았거나 해보고 싶은 경험의 편린으로서 열정과 신비가 담겨 있었다. 마르첼로는 자신의 소유욕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남다름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얻는 동시에 반성할 틈조차 없을 만큼 계속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가장 원하는 물건은 무기였다. 그에게는 금지된 것이라 더욱 갈망했다. 그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총이나 나무 단검 같은 게 아니었다. 무기의 온전한 존재 이유인 위협, 위험, 죽음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레 전달되는 진짜 병기였다. 장난감 총으로는 전쟁놀이를 해도 실제로 살인 가능성은 전혀 없다. 반면 진짜 권총은 죽음을 코앞까지 끌어왔다. 오직 도덕적 사리 분별만으로 유혹을 제지해야 하는 것이다. 마르첼로는 진짜 총을 몇 번 잡아본 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사냥할 때 쓰는 소총과 아버지가 어느 날 서랍을 열고 보여준 오래된 권총이었다. 마르첼로는 총을 쥘 때마다 마치 손잡이와 자기 손이 자연스럽게 일체가 되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그는 동네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그가 무기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순수하게 군대에 매료됐다기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심오한 어떤 까닭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군대놀이를 할 때 잔인하고 흉포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척 흉내만 내는 놀이일 뿐이었다. 마르첼로는 반대였다. 그는 군대놀이를 하면서 정말로 잔인성과 흉악성을 표출했다. 다른 때는 심심풀이로 뭐든 부수거나 죽이곤 했다. 마르첼로는 이런 잔인한 성격 때문에 후회나 수치심을 느낀 적이 없었다. 잔인성이 무미건조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유일한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P9-10)
로베르토와 만난 후 마르첼로는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로베르토는 그와의 연대는 물론 그가 그토록 바라던 면죄부도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정상에서 벗어나 자제심을 잃고 거짓과 폭력에 굴복하는 일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보여주지 못한 채 다시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제 그가 느끼는 수치와 가책은 도마뱀을 죽인 데 그치지 않았다. 공모를 요구하려다 로베르토에게 거짓말을 하고 화가 나 그의 귀를 잡아당기는 행위로 본심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첫 번째 죄에 두 번째 죄가 더해졌지만, 그중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마르첼로는 쓰라린 반성 중에 도마뱀을 죽인 일을 다시 떠올리면서 그에 대한 가책이 모두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 순간 그는 도마뱀이 죽지 않았기를 바라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동시에 도마뱀을 잡으며 경험했던 흥분감이 또다시 밀려왔다. 이런 느낌이 너무도 강렬해서 나중에 그런 살육을 반복하고자 하는 유혹에 과연 저항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겁이 났다. 그는 비정상적일 뿐 아니라 비정상성을 억누르지도, 조절하지도 못했다. 그는 자기 방 책상에 앉아 책을 펴놓고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성급하게 일어나 침대 곁으로 가서는 언제나 기도할 때처럼 러그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뒤 자신이 생각하기에 진실한 어조로 크게 말했다.
“하나님 앞에 맹세하오니, 꽃과 초목과 도마뱀을 다시는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면죄부에 대한 갈망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로베르토에게 공모를 요구하다가 이제는 그 반대의 모습마저 띠게 되었다. 바로 비난을 바라게 된 것이다. 로베르토는 같은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그의 가책을 덜어줄 수는 있지만 마르첼로의 돌이킬 수 없는 마음속 혼란을 수습할 만한 권위가 부족했다. 그는 공범자로서는 적절하지만 심판을 내리는 사람으로서는 부적절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로베르토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때 자기 어머니의 권위를 들먹이며 거부를 정당화했다. 그래서 마르첼로는 자신 역시 어머니에게 호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만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사면해줄 수 있고, 어찌되었든 자신이 한 일을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성격을 아는 마르첼로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어머니를 추상적으로 그려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감정이 실제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세상에 단 하나뿐이 자기 어머니였다. 그래서 의존하려는 충동이 의심보다 강했다. (P20-21)
그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새로운 생활 방식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보다 그의 취향에 잘 맞았다. 그에게도 역시 매력적인 것은 ‘정상’이었다. 이는 미리 확립되고 공명정대하며, 개인의 취향과 관계없이 모든 게 단일한 목적을 지향하는 명백한 규칙에 의해 제한되고 뒷받침되기 때문이었다. (P43)
그는 재앙이 무엇인지 자문해보았다. 그것은 고요하고 푸른 하늘에 떠 있던 알 수 없는 검은 점이 갑자기 크고 거대해지더니 끔찍하고 무자비한 새가 되어, 썩어가는 고기 위에 내려앉는 독수리처럼, 점찍은 대상 위로 급습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던 덫이거나, 그도 아니면 몸짓, 감각, 핏속까지 스며든 서투름, 경솔, 무분별함에 대한 저주가 아닐까도 싶었다. 그는 이 마지막 정의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재앙의 원천을 품위가 부족한 데에서 찾았고, 또 품위가 부족한 것은, 떼려야 뗄 수 없으면서도 불확실하고 헤아릴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산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길의 입구를 가리키는 푯말처럼, 아버지의 행동은 그러한 운명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마르첼로는 그 운명이 살인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가장 두려운 것은 살인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살인할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즉 그가 아무리 자각을 하고 있더라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 특별한 종류의 무지여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그 자신이 그럴 것 같았다. (P75-76)
잠시 후, 마르첼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는 총의 차가운 손잡이를 만지기만 해도 마음속에 잔혹하고 무자비한 유혹이 고개를 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인식한 것은 벽에 부딪힌 머리의 날카로운 통증과 초조함, 그리고 리노에 대한 심한 반감뿐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첼로가 한 발 물러나 권총을 겨누는 것을 보자,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완전히 돌아서서는 연극적인 몸짓으로 팔을 활짝 벌리고 연기하듯 외쳤다.
“쏴, 마르첼로..... 날 죽여..... 그래, 날 개처럼 죽여!”
남자에게는 관능과 엄격함, 회개의 정욕이 혐오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마르첼로는 그 순간만큼 그렇게 그를 증오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두렵지만, 남자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각한 마르첼로는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P89)
[1부]
그는 기사를 다시 읽으며, 어느 것도 그보다 더 간략하거나 진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특별한 것 없는 언론의 진부한 문구도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알려주었다. 첫째는 리노가 정말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어느 정도는 확신이 있었지만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둘째는 분명 죽어가는 남자의 요청에 따라 사고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첼로는 철저히 가려졌으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 리노는 죽었고, 아무도 그의 사망 원인을 마르첼로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가 오래전에 발생한 사건의 기사를 도서관에서 찾아보기로 결심한 것은 안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세월 동안 완전히 가라앉은 적이 없는 그의 불안은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실제 결과에 주목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리노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이 아직 옛날같이 치명적인 비정상성에 사로잡힌 소년인지, 아니면 그토록 원했고 현재의 모습이라고 확신하는 완전히 정상적인 남자인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렇게 변한 17년 전의 신문 기사가 마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안도했고, 또 그 이상으로 놀랐다. 오랫동안 깊은 상처에 붕대를 감고 있다가 마침내 풀어보니 최소한 흉터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자리에 아무런 흔적이 없고 그저 매끄러운 피부임을 발견하고 놀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문 기사를 찾아보는 것은 붕대를 푸는 것과 같고, 자신이 냉정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치유되었음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고도 생각했다. 이러한 치유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시간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즉 그가 그동안 비정상성을 벗어던지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의식적으로 갈망한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P96-97)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프랑코 편이었다. 그들은 스페인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대중이고 신문을 잘 읽지 않는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공감’이라는 단어에는 ‘사려 깊지 못하고, 비논리적이며 비이성적’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했다. ‘공감’은 오직 은유적으로만, 꽃가루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먼지와 빛이 있지만 생각할 거리가 없는 공중에서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감’은 보다 깊은 곳에서 발생하며, 그의 정상성이 피상적이지 않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동기 및 이유와 자발적이며 이성적으로 결합한 것도 아니고, 단지 본능적이고 거의 생리학적인 상태, 즉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해주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속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존재였다. 그는 비정상적이고 미친 외톨이가 아니었다. 그들 중 한 명, 즉 형제이자 시민이고 동료인 것이다. 리노를 죽임으로써 사람들과 분리되는 것이 오랫동안 두려웠던 그에게 이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그는 프랑코든 다른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연계, 즉 연결과 교감을 의미하는 다리만 있다면 그게 누구든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러나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프랑코라는 사실은 교감과 연대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가 스페인 내전에 감정적으로라도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옳은 일임을 보여주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고 모두가 믿고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대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그 연결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모든 연대는 그의 ‘공감’에 의해,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이러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옳다는 확신으로 이어졌고, 옳다는 확신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왜냐하면 진실을 손에 넣고 있으면 행동이 허용될 뿐 아니라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정상성에 대해 자신과 타인들에게 제시해야 할 확증 같은 것으로, 현실성을 잃지 않으면 점차 짙어지고 계속해서 재확인되며 결국 입증될 것이다. (P102-104)
“이상하죠, 박사님. 정신병자가 어떻게 계속해서 최신 정보를 얻고, 집단주의 사회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에 민감한지 말이죠. 지금 파시즘과 일 두체 때문에 많은 이가 아버님처럼 파시즘과 일 두체에 집착합니다. 전쟁 중에는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카도르나나 디아츠를 대신해서 업무를 보려는 정신 이상자가 셀 수 없을 정도죠. 최근에는 노빌레가 북극에 갔을 때, 그 유명한 붉은 천막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환자가 적어도 세 명은 있었습니다. 그 환자들은 생존자를 구조할 특수 장치를 발명했죠. 미친 사람들은 항상 최신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정신 이상에도 불구하고 공직 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바로 광기를 이용해 그렇게 참여하는 거죠. 훌륭하고 강직한 미친 국민이죠.”
의사는 자신의 유머에 매우 만족해 싸늘하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마르첼로의 어머니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 모두 부군만큼 미쳐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부인? 우리 모두 찬물로 샤워하고 환자복을 입어야 합니다. 이탈리아 전체가 커다란 정신 병원입니다. 에, 에, 에.”
“그 점에서, 제 아들은 확실히 미쳤습니다.”
마르첼로의 어머니가 천진난만하게 의사의 아첨에 동조하며 말했다. (P197)
[2부]
그날 그 구절은 바로 자신을 위한 구절인 것 같았다. 원치 않게 저지른 죄를 저주하는 동시에 저주 자체를 신성하고 손댈 수 없게 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성당에서 프레스코화를 보고 있는 동안 그 구절이 다시 떠올랐고, 그 상황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 같았다. 비유와 의미가 풍부한 토양에 반성이라는 도구를 밀어 넣었다는 음흉한 확신을 가진 채 그는 예식이 계속되는 동안 냉정하게 이 점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정말 저주가 있었다면 왜 자신에게 퍼부었을까? 이 질문에 끈질긴 우울감이 또다시 그를 엄습했다. 그는 길을 잃었고 길을 잃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리노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종교와 그 의식 밖에서 오래전에 저지른 죄의 비정상성과 타락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여전히 벗어나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답을 알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 데다, 자신을 바꾸는 것은 자기 권한 밖의 일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사악하게 굴었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타고난 조건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그 조건이란 종교와 매우 거리가 먼 조건이었고, 그 세계는 종교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놓은 것 같은 세계였다. 분명 그는 애정 넘치는 고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싶었을 것이다. 매우 정의로우신 하느님, 자애로우신 성모님, 자비로우신 예수님. 하지만 이런 열망을 느낀 바로 그때, 그는 이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도 의탁할 수 없으며 자신은 종교 밖에 있어서, 스스로 정화해 정상이 되더라도 종교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정상성은 이제 다른 곳에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P207-208)
“봐요, 저기 좀 봐요. 저게 뭐죠? 불인가요?”
줄리아가 마침내 평소 어조로 말했다. 실제로 그때 붉은 꽃처럼 검은 유리창 중앙에 불꽃이 비치고 있었다. 마르첼로가 말했다.
“누가 알겠어?”
그러고는 창을 내렸다. 거울 같은 밤의 유리창 빛이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얼굴에 불어왔다. 그러나 붉은 꽃은 불가사의하게도 가까운지 먼지, 높은지 낮은지 파악하기 어려운 채로 어둠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움직이며 떨리는 것 같은 그 네댓 장의 불꽃 잎을 오랫동안 바라본 후, 그는 자신과 줄리아의 그림자와 열차의 희미한 빛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철로의 급경사면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심한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왜 기차를 타고 있는가? 자기 옆에 서 있는 여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자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정확히 누구인가? 그리고 자신은 어디서 왔는가? 이러한 당혹감은 그에게 고통을 주기는커녕 거꾸로 만족감을 주었다. 그것은 그에게 친숙하고 가장 친밀한 것의 근간을 이루는 감정이었다. 그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그래, 난 저기 밤의 저 불 같지. 타오르다가 꺼질 거야. 원인도 결과도 없이 말이지. 어둠 속에 보류된 파괴.’ (P224-225)
“파리는 밤의 도시가 아닌가요?”
관광 안내서에 나올 법한 대화에 마음이 완전히 편안해진 줄리아가 물었다.
“아직 하나도 못 봤지만 가보고 싶어요. 댄스홀과 나이트클럽이 많지 않나요?”
“오 그렇죠. 타바랭. 카바레. 여기선 ‘박스’라고 부르죠.”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교수가 말했다.
“몽마르트르, 몽파르나스..... 사실 우린 그곳에 자주 가지 않았죠. 이탈리아인 친구가 이곳에 오면 그 친구가 이런 걸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서 우리도 접해본답니다. 하지만 늘 똑같이 오래된 것들이죠. 이 도시의 고유한 품위와 우아함을 갖추고 있지만요. 아시겠지만 부인, 프랑스인은 진지한 사람들입니다. 매우 진지하죠. 가족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요. 대다수 파리 사람들이 카바레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겁니다. 이곳에선 가족이 중요합니다.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그렇죠. 그리고 종종 이탈리아보다 더 훌륭한 가톨릭 신자들이고, 형식 면에서는 부족하지만 더 실질적인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바레가 우리 외국인들 차지인 건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훌륭한 수입원이죠. 파리의 번영은 상당 부분 카바레 덕분이고 전반적으로 밤 문화가 한몫한답니다.” (P288-289)
그는 개선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넓은 보도를 걸어 올라가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이제 자신의 전 생애를 망치고, 막 아내가 된 여자를 버리고, 정치적 신념을 배반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불륜에 모든 것을 걸려고 하는가? 그는 오래전에 자신의 구애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던 여대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사랑은 봄에 초원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는 암소와 그 위에 올라타기 위해 뒷발로 서는 황소라고 비통하게 대답했던 일이 생각났다. 마르첼로는 이제 그 초원은 콰드리의 거실에 깔린 중산층풍 카펫이고, 리나는 암소이며, 자신은 황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가 다르고 짐승의 사지가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알몸이라면 모든 면에서 그 두 마리 같을 것이었다. 서투르고 다급한 폭력으로 표현된 열망의 격렬함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명백한 동시에 몹시 하찮은 유사점은 끝이 났다. 불가사의한 정신적 연금술에 의해 그 격렬함이 욕망에 필요한 인장을 받았지만 결코 욕망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생각과 감정으로 금새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열망은 그 이전에 존재한 것으로, 다급하고 강력한 자연의 도움에 불과했다. 그것은 미래의 자궁에서 미래의 모든 인간,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아기를 꺼내는 자연의 손이었다. (P302-303)
리나의 발이 계속해서 그의 발을 눌렀다. 이러한 신체 접촉에 그는 마치 애정 관계의 모호함이 생애 전체를 침범했는데 시나리오가 하나가 아니라 둘인 것처럼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자신이 오를란도에게 콰드리의 존재를 알려주고 줄리아와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콰드리를 구하는 대신 줄리아를 버리고, 리나와 함께 파리에 남는 것이었다. 두 시나리오가 교차하여 이중 인화한 두 장의 사진처럼 합쳐졌다. 회한과 공포, 희망과 슬픔, 체념과 반항 같은 그의 감정으로 두 장의 사진은 다양하게 채색되었다. 마르첼로는 리나가 오직 그를 속이고 사랑에 빠진 여자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연기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터무니없지만 그녀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랐다. 한편 그는 도대체 그녀가 감정을 공유하는 많은 몸짓 중에서 왜 그토록 전통적이고 상스러운 움직임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마치 자신을 속이는 데는 섬세함과 창의성이 그리 많이 필요치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 그 선택이 다시 한번 자신에 대한 경멸을 확인해주는 것만 같았다. (P338)
“내가 누군지 알겠지. 하지만 나도 자네가 누군지 안다네.”
그는 두 손으로 마르첼로의 재킷 깃을 잡고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불안과 공포로 얼어붙은 마르첼로도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콰드리의 눈에는 증오가 없었고, 여전히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악의적이라고 생각되는 감상적이고 눈물 어린 간절한 감정만 있었다. 콰드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난 자네가 누군지 알고 있고, 이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착각에 빠져 사는 순진하고 멍청한 인간일 뿐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상관없어, 클레리치. 그래서 난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네. 고맙다고 말이야.”
마르첼로는 그를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르첼로의 재킷 깃은 여전히 콰드리의 손 안에 있었고, 누군가 자신을 내던지기 위해 손을 움켜쥘 때처럼 마르첼로는 재킷이 목둘레로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 느꼈다.
“정말이지 고맙네.”
콰드리가 감동받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자넬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말게. 자네가 임무를 수행했다면 편지를 가져가서 상관에게 보여줬겠지. 해독하고, 거기에 언급된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말이야. 자넨 그렇게 하지 않았어. 클레리치, 그렇게 하길 원치 않았지. 충성심에서인지, 자신이 틀렸다는 자각 때문인지, 순간적인 의구심 때문인지, 정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만은 알고 있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맙네.”
마르첼로는 대답하려는 것처럼 움직였지만, 콰드리가 마침내 재킷을 놓아주며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아니, 자네가 그 편지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아야 내가 의심하지 않을 것이고, 자네도 신혼여행 온 신랑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지는 말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말하지 말라고. 실제로 자넨 구원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고, 난 자네가 그렇게 하도록 도와줄 기회를 주어 고맙게 생각하네. 계속하게, 클레리치. 그러면 진정 새로 태어날 수 있어.” (P358-359)
“마치 교수님과 생각이 같다는 듯이..... 아니면 제가 곧 그럴 거라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제가 직접 기꺼이 따랐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즉 교수님과 생각을 같이하지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교수님이 제게 요구하시는 건 그저 배신입니다.”
“배신이라. 절대 아니지.”
콰드리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우리에게 배신자는 존재하지 않네. 자기 길의 오류를 깨닫고 고치는 사람들만 있지. 난 자네가 그런 사람들에 해당한다고 확신했고, 지금도 여전히 확신한다네.”
“잘못 보셨습니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걸로 해두세.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것으로 말이야. 여기!” (P368-369)
마르첼로가 잠에서 깨 열린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불안정하고 흐릿한 빛 속에서 눈을 들어 천장을 보았을 때, 그 시각 콰드리가 프랑스 도로를 운전해 달리고 있고 약간 거리를 두고 오를란도 일행이 뒤쫓고 있다는 게 즉시 떠올랐으며, 이로써 파리 여행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여행이 끝났다고 그는 되뇌었다. 여행이 끝난 건,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콰드리의 죽음으로 리노의 죽음이 자신에게 남긴 외로움과 비정상이라는 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시절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는 범죄를 대가로, 혹은 정당화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몰랐다면 범죄였을 것을 대가로 치르면서 가까스로 그렇게 했다. 그 자신에 관한 한 그는 그러한 정당화가 부족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는 또한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콰드리의 죽음 덕분에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시민이 될 것이며, 자신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느리지만 확실히 분명하고 견고해질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옛날에 속죄를 위해 무고한 인간을 희생시켜 그 전에 범한 죄악의 불경을 해소하고 무효화했던 것처럼, 그의 모호한 비극의 주요 원인이었던 리노의 죽음이 콰드리의 죽음으로 해소되고 무효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자신의 인생과 콰드리의 살해를 정당화하는 것은 자신에게만 달려 있지 않았다. 그는 명쾌하게 생각했다.
‘이제 다른 자들로 임무를 수행해야 해. 안 그러면 죽은 그를 팔에 안은 채 나 홀로 남겨질 테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 아무것도.’
다른 자들이란, 그가 알기로는 그렇게 살해를 범함으로써 복종했다고 생각한 정부, 정부가 구현하는 사회, 그리고 사회의 지침을 수용하는 국가였다. “나는 임무를 수행했다. 명령에 따라 이렇게 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정당화가 오를란도 요원에게는 충분할지 몰라도 그는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정부, 사회, 국가의 완전한 성공이었다. 외적인 성공뿐 아니라 개인적이고 결정적인 성공이었다. 그렇게 해야한 일반적으로 공통 범죄라고 생각되는 것이 필요한 방향으로 가는 긍정적인 조치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를 좌우하는 세력 덕분에 가치의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부정이 정의가 되고, 배신이 영웅주의가 되고, 죽음이 삶이 된다. 그는 이 시점에서 거칠고 신랄한 말로 스스로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표현할 필요성을 느꼈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파시즘이 완전히 실패하고 로마에 있는 온갖 후레자식들, 무능한 놈들, 얼간이들이 나라를 파멸로 이끈다면, 난 비참한 암살자에 불과하지.’
그러나 곧 그는 마음속으로 정정했다.
하지만 상황이 아이러니한 만큼 난 이렇게밖에는 달리 행동할 수 없었을 거야. (P371-373)
[에필로그]
마르첼로는 눈을 들어 아파트 발코니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녁 하늘에 흐릿한 자줏빛 일몰의 마지막 파편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낮추어 차가 들어와 안뜰에 멈추고 운전사가 큰 흰색 개와 함께 내리는 것을 보았다. 개는 기뻐서 컹컹 짖어대며 작은 풀밭을 달리기 시작했다. 조성된 지 몇 년 안 된 부자 동네였다. 마당들과 창들을 바라보면 누구도 전쟁이 4년 동안 계속되었고, 20년 동안 지속된 정부가 오늘 쓰러졌다고 짐작도 못 할 것이다. 이곳 주민은 마르첼로와 같이 정상적으로 가족을 이루었다. 그가 오랫동안 그토록 집요하게 추구했지만 이제 외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순전히 비정상으로 구성된 정상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던 날 아내에게 “내가 논리적이라면 오늘 자살할 거야”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그 말에 그녀가 공포에 질렸던 것도 기억났다. 그녀는 마치 전쟁이 불운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단순한 예감 이상으로 자신들이 숨기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는 줄리아가 자신에 관한 진실과 콰드리의 죽음에서 자신이 한 역할을 알고 있을지 다시 한번 자문했지만, 그런 신호를 보이기는 해도 역시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그는 흔히 말하듯이 자신이 지는 말에 돈을 걸었음을 확실하게 깨달았지만 명백한 사실을 관찰한 것을 제외하고는 왜 그런 식으로 돈을 걸었고, 왜 그 말이 이기지 못했는지는 사실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일어날 모든 일이 일어나야만 했다고, 즉 달리 돈을 걸거나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었음을 확신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느껴지지 않는 자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러한 확신을 필요 이상으로 원했다. 사실 그에게 가능한 자책의 유일한 원천은 실수했다는 것, 즉 절대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을 전적으로 다르게 했을 가능성을 일부러 또는 본의 아니게 간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평소처럼 무관심하고 우울하다 해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인지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유용한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확신했다. 아마도 부정적이겠지만 그래도 유용했다.
한편 그는 실수가 있었더라도 다른 누구보다 그것에 더 많은 것을 걸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모든 이보다 그리했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지만, 그 실수를 배제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자존심에 대한 위로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상, 정당, 생활, 성격까지 변하기도 하지만 그는 혼자 있을 때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타인이 어떻게 살든 자신만의 이유로 정부 요원이 된 것이었다. 변화가 허용되더라도 그것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걸 의미했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 엄청난 파멸 한가운데에서 바로 그가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그에게 오류가 있다면 가장 큰 첫 번째 오류는 자신이 비정상성에서 벗어나고,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정상성을 찾고자 열망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오류는 강력한 본능에서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본능과 충돌한 정상성은 단지 공허한 형태일 뿐이었고,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고 불필요했다. 첫 접촉에 그 형태는 산산조각 났고, 그렇게 정당화되었을 뿐 아니라 그토록 인간적인 본능은 그를 희생자에서 집행자로 바꾸어놓았다. 다시 말해 그의 실수는 콰드리를 죽인 것보다는 자기 삶의 원죄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지우려 했던 것이었다. (P395-397)
“어제까진 무솔리니를 향해 손뼉을 쳤죠. 며칠 전에는 폭격으로부터 구해주길 바라면서 교황에게 박수를 보냈고요. 오늘은 무솔리니를 쫓아낸 국왕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군요.” (P407)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날은 벌써 더웠고, 벌써 차 앞에는 빛으로 눈부신 먼지투성이 산울타리 사이로 공기가 흔들렸다. 폭염으로 인해 아스팔트에서 거울 같은 신기루가 떠오르고 있었다. 길은 마른 그루터기가 빽빽하게 들어선 황색 언덕 사이로 완만하게 경사진 시골을 굽이치며 뻗어 있었고, 이따금 갈색이나 회색 농가가 사막같이 나무 한 그루 없는 골짜기 밑에 숨어 있었다. 가끔 그들이 모는 말이 끄는 마차나 오래된 차가 다니는 길을 건넜는데, 거의 아무도 다니지 않는 시골길이었으며, 군용 차량은 다른 길로 다니고 있었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정상적이고, 무심하다고 마르첼로는 운전하며 생각했다. 그들이 혁명과 전쟁을 찢긴 나라 한복판에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치는 몇몇 농부는 울타리에 기대어 있거나 들판 한가운데에서 손에 가래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오직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과 같은, 인생에서 확실한 것에만 충실히 평화롭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추수, 햇볕, 비, 식량 가격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줄리아는 오랫동안 저 농부들 같았다. 이제는 그러한 평화를 빼앗겨 상심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갑자기 초조해졌다. 그녀가 처한 상황은 당연한 것이라고, 인간에게 삶은 너그러운 자연이 제공하는 나태한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며, 끊임없이 분투해야 할 뿐 아니라 매순간 더 큰 문제들의 경계 안에 있는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고, 큰 문제들은 삶의 문제라는 전체적인 문제 안에 있었다.
차가 평평하고 황량한 시골을 뒤로하고 언덕들의 높고 붉은 절벽 사이를 구불구불 달리는 동안 이런 생각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시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차를 몰면서 평탄치 않은 길과 온갖 오르막 커브를 당당하게 맞서 해결하는 차와 자기 몸이 하나가 되는 듯 느껴져 아주 오랜만에 다소 건방지고 대담한 낙관주의가 찾아든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돌풍처럼 마침내 마음의 하늘에서 폭풍을 걷어내어준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의 전 생애가 끝나 묻혀버렸다고 여겼고, 다른 수준에서 다른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 리노와의 만남은 매우 유용했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해 되는 대로 내뱉은 몇마디 말 때문에 20년 동안 잘못된 길을 고집해왔지만, 이제는 그 길을 버리고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당화하고 소통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고, 자신이 실제로 저지른 범죄, 즉 콰드리에 대한 범죄로 인해 정화의 정상성을 헛되이 추구하느라 고통받으면서 자신을 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과거는 과거고 콰드리는 죽었다. 마르첼로는 완전하고 철저한 망각을 의미하는 가장 확실한 돌인 비석보다 무거운 죽음을 떨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제 숨 막히던 사막에서 풍경이 바뀌었고, 보이지 않는 풍부한 물이 길 양옆과 저 멀리 응회암 위에 풀과 꽃과 양치식물을 가져오고, 빽빽하고 풍성한 초록빛 삼림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인간이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가면서 고통과 죄책감을 느끼는 사막의 쓸쓸함을 영원히 피하는 방법을 알 것 같았다. 대신 지금 달리는 이 길과 같이 접근하기 어렵고 험난하여 강도와 야생 동물에게만 적합한 곳을 자유롭고 대담하게 찾아 나서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자발적으로 고집스럽고 어리석게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슬과 훨씬 더 무가치한 의무에 묶어두었는데, 이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 정상성이라는 신기루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슬은 끊어졌고, 의무는 소멸되었으며,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어 그 자유로 무엇을 할지 알게 되었다. 그 순간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의 한쪽으로 숲이 펼쳐지면서 언덕 비탈을 덮고 있었다. 다른 쪽에는 잎이 무성한 거대한 참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자란 풀로 덮인 비탈이 있었다. 그 발치에는 덤불이 무성한 도랑의 급물살이 거품을 일으키며 반짝였다. 도랑 너머에는 돌벽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반짝이는 한줄기 폭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P436-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