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연꽃이 피어있는 공원에 있는 표지판이다.
연꽃이 한참 피기 시작하는 때에 연꽃 많기로 소문난 공원에 갔다. 조금은 이른 시기라서 그런지 연꽃보다는 물 위로 길게 자라 펼쳐진 잎이 더 많이 보였다. 그 잎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더운 여름에 잠을 잘 때 배를 덮고 자기에 충분한 이불 크기만 했다. 학교 운동장 크기만 한 연못이 여러 개였다. 그 연못마다 가득가득 덮여있는 진한 녹색의 연꽃잎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연잎들 사이로 듬성듬성 연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분홍빛을 내는 연꽃으로부터 자신의 순수함을 결연히 보여주는 것 같은 백색 빛깔을 내는 연꽃까지 여럿 있었다. 대부분의 연꽃이 꽃봉오리 상태로 야무지게 뱅글뱅글 말려있었다. 가끔 한두 송이는 이미 활짝 피어있기도 했다. 길 가까운 곳에 활짝 피어있는 연꽃을 잠시 서서 자세히 보았다. 펼쳐진 꽃잎 안에 초록빛을 띤 평평하게 둥근 윗면과 두툼한 밑동이 연결된 열매가 숨어있었다. 마치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물 호스의 분사기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친숙함을 느꼈다.
길을 따라가면서 거대한 잎들 밑에 고여있는 물을 보게 되었다. 연못 안의 물은 맑지 않았다. 흑색 빛으로 탁하고 그 위에는 많은 부유물이 둥둥 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깨끗하지 않은 곳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연꽃과 연잎으로 다시 시선을 옮겨와 걷기 시작했다. 공원 주변으로 보이는 몇 개의 산등성이와 그 위에 펼쳐진 하늘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공원 안에 전시된 어떤 작가의 토기로 빚은 작품을 보며 느린 걸음으로 감상하기도 했다. 그 작가는 엄마의 존재를 ‘나무’로 표현하며 토기로 빚었다. ‘엄마 나무’라는 작품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나무 위에서 뒹굴며 놀고 쉬고 먹고 있었다. 색을 입히지 않은 투박한 흙색 토기였지만 그 ‘엄마 나무’의 표정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안도감과 행복감’을 볼 수 있었다. 한없이 내어주는 나무와 같은 엄마의 경이로운 사랑을 마음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긴 채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가다가 너무도 친숙한 시구가 적인 표지판을 보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연꽃에 대한 설명이겠거니 생각을 하고 지나치려다가 더 자세히 그 아래 설명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표지에는 연꽃이 아닌 연못에 떠 있던 부유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네가래, 개구리밥, 물별 이끼, 물벼룩이 자리 등의 ‘사랑스러운 식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이 식물들이 하는 일은 남한강 정화와 물속 생물들에게 먹잇감이 되거나 산소를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몇 분 전에 내가 그리 주목하지 않고 지나쳤던 부유물들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니. ‘자세히’ 그리고 ‘오래 서서’ 읽었던 그 표지판의 설명이 없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그 식물들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내어줌으로 다른 생명 살리는 일을 하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다시 한번 깨닫고 만났다. 그 공원에서.
연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연못의 ‘사랑스러운 식물들인 네가래, 개구리밥, 물별 이끼, 물벼룩이 자리 그리고 그 외의 식물들’. 그리고 ‘나무와 같이 한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하는 엄마.’
그들의 희생적인 사랑 덕분에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음에 겸허한 감사함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