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분리 바를 들어 올리는 순간

행복론

by 납작콩

미국에서 유학생 가족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며칠 전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때 일들을 얘기하게 되었다. 서로가 생각나는 일들을 얘기하며 그때의 기억 속으로 여행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한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나도 그 장소에 함께 했었는데, 구체적인 대화 내용보다는 따뜻한 분위기만은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18년 전 딸아이가 4살이었을 때다. 11월 추수감사절 즈음이었다. 추수감사절이면 전통적으로 먹는 음식이 있다. 오븐에서 구운 칠면조다. 추수감사절 때가 되면 마트에서 칠면조를 비롯하여 같이 곁들일 음식 재료를 판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크랜베리, 소스류 등을 사서 칠면조와 어울리게 요리해서 먹곤 한다. 음식 자체보다도 오븐에서 익어가는 칠면조 고기의 냄새와 달콤한 고구마의 향과 온갖 종류의 소스에서 풍기는 냄새들이 괜히 설레고 행복하게 하곤 했다. 내가 요리할 때 아이는 가족만의 추수감사절 저녁을 기대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좋아하곤 했다.


그때도 추수감사절이 가까워져 오는 어느 날이었다.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여유 있을 때는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학비며 생활비를 남편의 학교 내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꾸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는 은행 잔액이 평소보다도 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딸아이를 생각하며 우리는 동네의 큰 마트에 남편과 딸아이와 쇼핑을 하러 갔다. 쇼핑카트 앞에 딸아이를 앉히고 딸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것저것 골랐다. 최소한으로 꼭 사야 할 것만을…….


계산대 벨트에 물건을 올려놓고 음식 재료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졌고, 총금액이 계산대 모니터에 나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좀 많은 금액이 찍혀서 나와서 물건 중 몇 개를 빼야 했다. 어떤 것을 뺄까 고민하고 있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얼굴은 들지도 못하고 계산된 물건을 들추고 있었다.


그때 남편에게 뒤에 줄 서 계시던 할머니와 대화했다. 남편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고, 할머니는 또 아니라고,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몇 번의 오가는 대화가 끝났다. 그러고는 그 할머니는 자신의 물건 바로 앞에 있던 빨간 분리 바를 들어 올리셨다. 그러고는 손으로 큰 원을 그리며 “같이 계산해 주세요.”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뭐라 표현하지 못할 따뜻함을 마음 깊이 느꼈다. 나의 수치스러운 순간을 흔쾌히 품어주셨던 그 할머니께 감사 인사를 하며 물건을 카트에 담아서 나왔다…….


그 이후 나는 가끔 유학 시절 따뜻하게 품어주셨던 마트에서의 그 할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그분의 따뜻함은 내 마음 행복 주머니에 들어있다. 내 삶이 힘들고 지칠 때 꺼내어 볼 수 있게.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들 할 때 꺼내어 볼 수 있게. 나도 주변에 따뜻함을 전해야 함을 잊지 않기 위해 꺼내어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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