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 주고

행복론

by 납작콩

어제저녁 식사 중에 모기 한 마리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엊그제 에어컨을 설치하느라 창문을 연 사이에 들어온 것 같다. 잠시 정지해서 있는 듯하더니 잡으려고 하니 금세 이리저리로 날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찌나 재빠르고 날랜지 도저히 그 움직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잡아야 했는데 어쩌지?’ 하며 바짝 약이 올랐다. 하지만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드라마를 보고 하는 사이 모기의 존재는 잊혔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잠시 안방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책상 스탠드 등의 밝은 조명을 받고 또 그놈이 나타났다. 하얀빛의 투명 날개를 가지고 있는 그놈은 자신의 자태를 뽐내듯이 이리저리로 날다가 금세 사라졌다. 잠시 잊고 있었던 놈의 출현으로 잠시 생각도 몸도 굳어버렸다. ‘나 잊지 않았지?’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나는 이미 사라져 버린 놈이 사라진 방 천장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그놈이구나. 내가 이놈의 목표물이 된 것일까?’ 하며 왠지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잠시 후 불안한 마음은 밀려오는 피곤함에 뒤덮여 사라지고 나는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랫입술이 아려오고 부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가려웠다. 몇 번을 긁다가 잠이 깨었다. ‘그놈 짓이구나. 이런 나쁜 모기 놈……’ 하며 억울해했다. 바로 전자모기향을 서랍에서 찾아 약을 넣고 침대 머리맡에 꽂아 놓았다. ‘이제 또 물진 못하겠지’ 하면서 분을 삭이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에서 막 깨어서는 좀 아물었는지 물린 곳이 잠잠했다. 하지만 아침 식사 후에는 물린 부분이 아프고 불편했다. 한 번 들어오면 며칠을 서식하는 모기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순간 모기가 미웠다.


그때, 베란다에 있던 남편이 ‘여기, 호박이 열렸네.’ 한다. ‘호박?’ 하며 베란다 작은 텃밭으로 갔다. 작고 앙증맞은 호박이 큰 호박잎 밑에 숨어서 자라고 있다. 잎을 들추고 살짝 엿보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야무지고 예쁜지 행복한 웃음이 내 얼굴에 가득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텃밭 여행은 계속된 행복한 웃음으로 이어졌다. 핸드폰을 가지고 이것저것 찍기 시작했다. 작은 나무와 같은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치커리가 예뻤다. 상추가 뿌리째 뽑힌 자리 옆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도 있었다. 버섯은 언제 이렇게 와서 크기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텃밭을 한참 구경한 후에 그 옆 화분으로 가서 또 감상을 시작했다. 폭신하고 풍성한 애플민트, 울긋불긋한 가을 잎을 가진 아이비, 만세를 부르고 있는 선인장, 바닷속 물풀 같은 모양의 피쉬본, 향을 진하게 품어내는 라벤더를 보았다. 나는 물만 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초록 초록 열심히 자신의 모습을 한껏 드러내며 크고 있는 식물들이 너무도 예쁘다. 그러면서, 나를 물고 갔던 얄밉지만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모기에 대한 미움도 잠시, 아주 잠시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내 주변에는 나와 함께 숨 쉬고 있는 작지만, 나의 정서에 끼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은 존재들이 있다. 텃밭의 식물들부터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는 모기까지. 그들은 나에게 불안과 불편함이라는 병도 주지만 때론 웃음과 포용이라는 약도 준다. 휴일인 이 아침 행복한 글쓰기를 하게 해 준 내 옆의 작은 존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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