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쓰여질 나의 이야기
첫 문장 출처 : <당신의 여행은 어느 쪽인가요> 31쪽
모퉁이를 돌았더니 운동기구며 지압 길까지 잘 갖춰진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숨을 돌리기 위해 벤치에 앉았다. 목이 말라 물을 먹고 싶었지만 아침에 챙겨온 커피가 전부였다.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깊고 구수한 향이 코끝에 닿는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식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동기구마다 어르신이 한 분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원 둘레길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저분들은 모두 은퇴를 하신 걸까? 아니면 출근 시각이 늦어서 이 시간에 아침 운동을 하고 있는 걸까?
멈춤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었겠지. 3월의 평일 이 시간에 내가 공원에 머물 일은 결코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3월은 내게 그런 시간이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수업을 모두 끝내고 조퇴를 했다. 누가 돌아가실 정도의 일이 아니라면 지금껏 나의 3월은 그러했다.
출근을 하면서 문득 눈길이 머문 풍경은 나의 일상과는 꽤 달랐다. 늘 잔뜩 긴장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초조한 마음으로 일터로 향하던 나였기에, 그 시간 그 세상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운동복을 입고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여유롭게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있는 이들은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나와 비슷한 또래거나 심지어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들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무슨 복을 타고나서 이 시간에 저리 여유로울까!'
아침 운동에 일찍 나선 어르신들을 봐도 나의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나도 저리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아주 잠깐 동안 생각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오늘은 나 역시 그들의 세상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 급격히 약해져 있었고 우울함은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리도 간절히 원하던 시간이었는데 정작 누리고 있지 못하다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 우울함을 떨쳐 버려야만 했다.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빨리 해결해야만 했다. 체념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갈증을 해결해 주진 못하겠지만 잠시 이 공원을 몇 바퀴 돌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텀블러를 가방을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우울함을 조금이라도 떨쳐냈으면 하는 심정으로 몸 곳곳을 털어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공원 트랙을 따라 걷고 있다. 그들의 대열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공원 전체를 한바퀴 돌았다. 알록달록 놀이터, 산으로 이어진 황톳길, 곳곳에 높이 솟아있는 나무들, 새들의 지저귐까지! 이제야 공원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올해 이 공원을 한번 열심히 돌아보자. 무거운 생각을 꺼내 버리면서, 싱그러운 자연의 선물도 날마다 느껴 보면서!
휴일에나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공간이었다. 올해는 평일에 올 수 있게 되었으니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멈춤의 시간이기에 내가 뛰쳐질 거란 생각은 접어 두자.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그대로 느껴 보자. 분명 기분 좋은 무언가가 나에게 찾아오리라 믿어 보자.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 보자.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보자.
하루하루 다시 힘을 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