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진심일 때 통한다.

사춘기 소녀들을 통해 깨닫는 인생의 진리​​

by 글꽃향기



<따로 또 같이 쓰는 첫 문장>

"모든 진심은, 결국 표류한다."





모든 진심은 결국 표류한다. 솔직히 드러내지 않으면.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요."

6학년, 또래 집단에서 공감 형성에 포인트를 쌓아 올리는 시기이다. 그래서일까? 담임교사인 나에겐 좀처럼 다가와 주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교실에는 의외의 소녀가 한 명 있다. 늘 밝은 미소를 띠고 있는, 내가 무언가에 끙끙거리고 있을 때 '도와드릴까요?'라고 다정한 말을 건네곤 하는. 그런데 그 소녀가 나에게 다가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의외였다.




요즘 아이들이 담임교사인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숙제 제출에 문제가 생겨서 미리 안전한 울타리를 치기 위해서, 뭔가 심각한 -보통은 방과 후나 주말에 있었던 - 일을 알리기 위해서. 저학년의 경우 나를 찾는 빈도수는 나날이 늘어난다. 하지만 고학년에선 그 수가 하락하는 편이다. 다만 단순한 상황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보다는 질'이라는 말이 이 상황에서 어울린다고나 할까?




"무슨 일 있었어?"

"친구들이 저랑 안 놀려고 해요."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




3월의 첫날부터 단짝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 학년에 네 개의 학급, 한 학급에 20명 남짓 학생들뿐이어서 두루두루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때로는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에 이유 없는 경계가 그어져 있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심지어 단짝 집단끼리도 자연스럽게, 별 갈등 없이 섞이기도 했다.




나에게 말을 건넨 달달이는 네 명의 무리 중 하나였다. 모두 성실한 학생들이라서 '저렇게 사이가 좋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넷 사이에선 항상 웃음이 가득했다.




"애들이 저에게 말도 안 시켜요. 저보고 남자에게 미쳤대요."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모르겠어요."

나 역시 '황당'이라는 두 글자를 얼굴과 입으로 가득 뿜어냈다. 그러나 대충 어떤 일인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이가 좋다는 건 서로 으르렁거릴 일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좋은 의미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뭐든 적당한 게 좋다.'라는 말이 아이들의 우정에서도 통하나 보다. 사실 그 '좋은 사이'가 수업에는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올해 내가 맡은 학급은 남학생 10명, 여학생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위기를 예측할 수 없기에 학기 초엔 우선 번호대로 짝꿍 없이 마치 대학 강의실처럼 책상을 배열해 놓는다. 보통 3주에 한 번씩 자리 배치를 다시 한다. 첫 3주 동안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한 후, 모둠을 구성한다. 이때 한 모둠 안에 개성과 성향이 다른 학생들을 골고루 섞어준다. 자리와 모둠을 바꿔줄 때 또 다른 철칙이 있다. 되도록 모든 친구들과 빠른 시기 안에 모둠을 해 보도록-마치 테트리스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돌리고 옮기는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 부딪혀 봐야 짝꿍도 생기고, 조심해야 할 점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처음에야 뚝딱뚝딱 5분 안에 자리 배치가 마무리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은 깊어진다.




고학년 학생들이기에 남-여 짝꿍은 되도록 피하는 편이다. 자칫 코드가 심각하게 맞지 않을 경우 단순한 부딪힘에도 '성 사안'으로 부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을 기본 모둠으로 구성했고, 이제는 초등학교에서까지 고려해야 하는 그 사안 때문에 당연히 짝꿍은 남-남, 여-여 커플로 책상 배열을 마쳤다. 19명 재적 수의 학급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한 모둠은 남 2, 여 1명으로 구성됐다. 내가 그린 그림은 남-남 커플에 여학생이 혼자 뒤에 앉는 구도였다.




그런데 교실 중앙에 위치해 있는 전자 칠판이 문제였다. 앞 친구의 앉은키 때문에 칠판이 가려지는 경우가 생겼다. 특별히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면 키는 자리 배치에서 고려 대상에 넣지 않는다. 키까지 고려했다간 '학기 초 모든 친구들과 만나보기'의 그림은 스케치만 하다가 끝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칠판이 보이지 않는 경우, 혹은 오랜 시간 동안 칠판에 집중해야 할 경우 책상의 각도를 조금씩 틀기도 한다. 키 차이가 급격하게 날 때에는 그 각도가 심하게 벌어지는데 때로는 책상 배열이 괴이한 모습을 띄기도 한다. 외부 강사님들이 수업하실 경우 '이 반은 책상 배열이 참 창의적이다!' 말씀하실 정도로. 어쨌든 때에 따라 책상 각도는 틀어지기도 하고 일렬로 재배치되기도 한다. 그렇게 구도의 변화를 거듭하던 와중에 어느 순간 3명의 모둠, 남-남 커플과 나 홀로 여학생의 책상 배열이 남-여 커플과, 나 홀로 남학생의 책상 배열로 바뀌어 있었다.




"너희 안 불편해? 원래대로 책상 다시 옮기자!"

"아니에요. 땡땡이가 이번에는 자기 혼자 앉고 싶대요."

즉 남학생 중 한 명이 '나 홀로'를 외쳤고 나머지 두 명의 학생도 '오케이!'로 답을 하고 만 것이다.

'에효, 혼자 앉는 게 참 싫었나 보네!'

주변의 눈치를 전혀 안 보는 여학생의 태도에 '참, 요즘 아이답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서로 사이가 유난히(?) 좋은 우리반 분위기에 걸맞게 학급에서 유일했던 남-여 커플 역시 다정한 경우가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 사실 그 커플뿐 아니라 우리반 아이들은 틈만 나면 이야기를 해댔기에 나는 똑같이 주의를 주었고, 분위기를 잡았었다.




"애들이 저에게 남자한테 미쳤대요. 저랑 말도 안 하려고 하고, 끼워 주지도 않아요."

"다른 일은 없었어? 서로 기분 상했던 일, 잘 생각해 봐. 친구 사이가 틀어질 때는 여러 가지 일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거든"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에효, 벌써 시작됐구나!'




고학년을 하며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여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을 겪었지만, 여학생들은 속마음을 좀처럼 털어놔 주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본인들 마음에 담아 놓은 실타래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의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물음표만 가득 남기고 일 년 내내 긴장된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경우도 꽤 많았다. 그나마 여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주었기에 상황 파악을 조금 일찍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짝꿍 별별이랑 이야기하는 것 가지고 그러는 거 같아요."

"게네가 왜 그럴지는 생각해 봤어?"

여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별별이랑 친한 너에게 샘이 났을 수 있어. 친구들 중 누군가가 별별이를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네가 자기들보다 별별이랑 더 친하게 지내는 게 싫을 수도 있어. 터놓고 이야기를 해 봐. 나는 너희들이 나를 멀리해서 너무 속상하고 서운하다고 말이야."




늘 그렇듯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너의 마음을 표현하면 일이 잘 해결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일이 더 꼬일 수도 있지. 결과는 알 수 없어. 중요한 건 너는 네 마음을 표현해 봤다는 거야. 너는 최선을 다한 거야. 그것만 기억해."

선택은 속상함을 가득 안고 있는 여학생에게 맡겼다.




표현력이 부족한 저학년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의 대변인이라도 되듯 대신 말을 건네주기도 하지만 고학년,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괜히 코드를 잘못 읽었다간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았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친구는 '고자질쟁이'가 되어 버리고, 나는 '혼을 내려는 사람'으로 정의 내려진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 선택권을 주고 그들이 원할 때 개입을 한다.




"선생님, 저희 점심 먹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어요."

"그래, 늦지 않게 들어와. 마음 잘 전해 보고"




5교시를 앞둔 여학생들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져 있었다. 이야기가 잘 안 된 게 분명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지키고 싶었던 선을 무너뜨렸다. 아이들이 모둠활동을 하고 있을 때 무리 중 한 명인 부회장을 잠시 밖으로 불렀다.




"얘기해 봤어? 서로 마음은 나누었고?"

여학생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렸다.

"대화 못 나눴어?"

"달달이가 저희랑 말하고 싶지 않다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래 알겠어. 네가 부회장이니까 선생님이 부탁 좀 하자. 적당한 때가 오면 다시 문제를 해결해 봐. 어쨌든 달달이는 너희랑 다시 친해지고 싶어 해. 그건 확실해. 우선 화장실 가서 눈물 닦고 들어와."




금방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마음을 터놓으려고 하는 순간 날카롭게 몇 마디가 오고 갔고,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더 꼬일 수도 있다는 나의 오두방정 말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




부회장에게 달달이의 마음을 전했기에 우선 나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춘기 소녀들의 심리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다시 보류했다.




다음 날, 분위기는 전날만큼 심각하진 않았다. 거리를 두는 모습은 여전했지만 일상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기에 그저 그들을 지켜보았다.




"선생님, 점심시간에 한 번 더 이야기해 볼게요."

"그럴래? 오늘은 어제보다는 대화를 조금 더 나눴으면 좋겠네. 수업 시간에 늦지 말고!"

달달이가 다시 용기를 내었나 보다. 전날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게 응어리로 남아 있었나 보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 그렇게 마음을 표현해. 네가 우정을 지키고 싶다면 때로는 자존심이란 것도 내려놔야 해. 그래야 후회가 없어.'

첫날 달달이에게 건넨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점심시간 후 들어오는 네 명의 여학생들은 전날과 달리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음 나누기에 성공했나 보다. 누군가가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를 건넸을 거고, 상대의 마음도 함께 움직였을 거다. 그리고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를 어느 정도는 풀어냈을 거다.




5교시가 시작되었고, 인간관계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역시나 나의 개인사를 들먹이며 '마음을 털어놓으라고! 표현하지 않으면 너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또 한 번 잔소리를 해댔다. 달달이를 포함한 네 명의 여학생들은 눈을 반짝였고, 다른 학생들은 '또 뭔 일이래? 왜 또 저래?'의 표정이 역력했다. 이렇게 사춘기 소녀들에게 찾아온 고비를 무사히 한차례 넘길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고 갔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능력을 믿기에, 그들이 우정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분명한 건 있다. 그들은 진심을 나누었다는 것을. 그 진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무척 아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순간에, 위기의 순간에 마음을 솔직하게 터놓지 않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중심에서 멀어져 갔다. 모든 것이 헛돌기만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에너지는 필요 이상으로 낭비됐다.




모든 진심은 결국 표류한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서로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엉킨 실타래는 꼬여만 가고, 해결의 실마리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 삶의 진리를 사춘기 소녀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복습해 본다.




진심은 진심일 때 통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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