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원하는 공부를 만난 순간
<따로 또 같이 쓰는 첫 문장>
한 걸음 내딛는 데 10년이 걸렸다.
한 걸음 내딛는 데 10년 이상이 걸렸다. 나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까지.
2012년, 여름 방학을 맞이할 무렵이었다. 동료들과 연수에 대해 정보를 주고받다가 '국어문화학교 국어전문교육과정'을 알게 되었다. 나의 관심사를 단번에 알아봐 주신 선배님께서 추천해 주신 연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국어 문법이나 맞춤법 분야에 특히 관심이 갔다. 아마도 당시 2학년 담임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모르겠다.
국립국어원에서 30시간 동안 진행되는 연수였다. 거주지인 부천에서 방화동 국립국어원까지는 버스로 1시간 반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부천 시내를 관통해서 김포 공항을 거쳐 국립국어원 근처까지 가는 꽤 노선이 긴 버스가 있었는데 집 앞에서 탈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당시 날이 너무 더워서 환승은 꿈도 꾸지 않았다. 지하철로 갈아타도 시간이 그리 단축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졌고 국어원에 도착했을 땐 모두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침 에어컨의 바람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기라 강의실에 설치된 대형 선풍기 앞에서 윗도리를 펄럭이며 땀을 식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오후에도 실내 온도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다. 공공기관은 실내를 26도로 유지해야 한다며 쾌적한 환경 제공하기에 매우 인색했다. 체감상 30도는 훌쩍 넘어 있었는데 그 26도의 기준이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건지 따지고 싶었다. 모두 다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땀으로 흠뻑 샤워를 하며 듣게 된 연수였다.
보통 30시간 진행되는 연수는 출석만 하면 이수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달랐다. 30시간 연수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연수 1일 차 첫 시간에 연수생들은 엄숙하게 시험을 치렀다. 한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과 관련된 것으로 연수 과정의 주요 내용에 해당됐다. 즉 강의 전, 사전 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체감상- 확인하고, 과정이 끝난 후 사후 시험을 통해 -체감상-향상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간혹 사후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차이가 심할 때에는 이수증을 못 받아가실 수도 있어요."
시험이 끝난 후 연수 진행 요원이 농담하듯 이야기를 건넸다. 하지만 연수생들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비록 연수를 신청할 때 그 잔인한 시험에 대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 과정을 몸소 겪고 나니 부담감이 엄습했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날씨도 푹푹 찌고, 땀범벅으로 아침부터 진이 빠져 있고, 게다가 강의실도 내내 찜통이었으니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이수가 안 되면 어때, 그냥 추억으로 남기는 거지!'
하지만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왕복 네 시간 가까이 머물러야 하는 버스 안이 독서실이 된 것이. 연수원을 향하는 시간에는 예습을, 집으로 향하는 시간엔 복습을 했다. 버스 기사님과 코드가 맞지 않는 날에는 책을 한 번 힐끗 보고, 한참 동안 눈을 감아야 했다. 급 브레이크를 밟기 좋아하는 기사님은 나에게 울렁증과 어지러움이라는 선물을 가득 안겨 주셨으니까.
5일이 참 길게 느껴졌다. 내 몸에서 땀이 그렇게까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난생처음으로 깨달았다. 4일 차 오후에 시험을 보았는지, 5일 차 아침에 시험을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럭저럭 시험을 치렀다. 참 우스웠던 것이 사전 시험 결과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시험 문제는 비공개라고 했다. 문제가 상당히 많았는데 찍은 답도 꽤 있었기에 내가 뭘 어떻게 답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모두들 혼란스러워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이유로 모두들 연수를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국어원의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연수의 마지막 날 점심시간, 연수 종료를 두어 시간 앞두고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연수 진행 요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별별별 선생님, 어디 계시나요?"
올 것이 왔구나. 이수증을 못 주겠다는 걸까?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떨려댔다.
'이수증 못 갖고 가면 개망신 당하는 거지. 뭐!'
보통 방학 전에는 연수 계획서를, 개학 후에는 연수 이수증을 학교에 제출한다. 교감 선생님은 이수증을 확인하고 인사기록카드에 등재하여 주신다.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대답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2등 하셨어요. 상장과 상품 받을 준비하세요!"
"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순간, 두려움의 두근세근 심장 소리는 기쁨과 설렘의 세근네근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뭐래요?"
연수 동지들도 궁금한 듯 질문을 던진다.
"저, 2등 했다고 하시네요."
"그럼 저분이 1등이고, 선생님이 2등 했나 보네요."
여기저기서 축하의 말을 건네주셨다.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연수 초반부터 성적 우수자에게는 상장뿐 아니라 연수 과정 내용이 포함된 여러 서적을 상품으로 주신다고 분위기를 한껏 띄워 주셨다. 그 상품 중에는 맞춤법 만화책이 포함되어 있으니 학교에 돌아가서 학생들에게 맘껏 자랑을 하며 학급 문고로 활용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상품이 뭐라고 그리 마음을 홀딱 빼앗겼던 것인지 모르겠다. 상품이 없었다면 엉덩이에 땀띠 날 것 같았던 그 버스 안이 독서실이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무더위 속에서 진행되었던 연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가방과 손에는 아침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장과 열 권 남짓한 책이 가득했다. 그걸 들고 오느라 또 땀을 뻘뻘 흘렸다.
비록 그 과정에선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지만, 진정 내가 원해서 선택한 연수였다. 그리고 그 결과 또한 만족스러웠다. 한동안 그 여운으로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이유도 없이 국어원 누리집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한국어 교사'라는 다섯 글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또 한 번 내가 진짜 원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입시나 밥벌이가 목적이 아닌, 진짜 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후회의 시간도 있었고, 나이 들어 시작한 새로운 분야에 커다란 벽을 수시로 느꼈다. 하지만 나도 이렇게 생기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깨달았고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2001년부터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니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진짜 내가 원하는 공부를 찾기까지. 국어원에서 땀샤워를 하며 받은 연수가 그 행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원했던 그 분야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고 있다.
두 번째 걸음을 내딛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얼마나 더 망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란 걸, 그리고 내가 그동안의 시간을 그리 헛살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걸.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