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어 볼게요.
이렇다 할 종교는 없습니다. 그냥 모든 종교를 사랑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예수님의 사랑을 나는 감히 이를 수 없는 그 길을 걸어가던 그분들을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마음속으로는 '성탄절'이라는 세 글자가 익숙하지만 입 밖으로는 '기독 탄신일'이라는 다섯 글자를 쓰려하는 사람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연말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제가 사는 도시보다 훨씬 번화한 지역에선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며 화려한 불빛으로 눈부시겠지요. 지지리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저의 어린 시절에는 상점마다 화려한 장식이 꽤나 있었는데 말이죠. 9개 동이 전부였던 지난 보금자리에서는 아파트 정문 입구나 나무 한두 그루 위에 장식 전구가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16개 동의 제법 규모가 큰 지금의 보금자리에는 전구 하나, 트리 하나 없었습니다. 어제 잠시 동안의 산책길에서 누군가가 나무 위에 수줍게 올려놓은 아주 작은 전구줄이 하나 걸쳐져 있는 것을 운 좋게 보았을 뿐입니다. -사진을 찍을까 망설였었는데 아쉽네요. 오늘의 이 글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만 그런 건지 아니면 예전부터 그랬던 건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리 서운하지만은 않습니다. 낭만이 없는 자라서 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전구줄을 그리 달갑게 보지만은 않았었거든요. 나무가 괜찮을까 그런 재미없는 생각만 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한강 다리를 수놓은 화려한 불빛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처럼 낭만만 가득해야 할 것 같은 날에 시시콜콜하게 저의 좁은 마음을 털어놓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불빛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는 이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알콩달콩 행복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역시나 나의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어린 시절 역시 크리스마스가 그리 특별한 날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나에게, 밤에 몰래 찾아온다는 산타 할아버지와 한밤중에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두려움의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 수많은 집을 찾아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찾아와서는 하필이면 예쁜 그림 하나 그려지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미운 공책을 놓고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책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지 않아도 부모님이 당연히 사 주는 물건인데 말이죠. 예수님이 태어난 그날 밤, 하늘에 별은 찬란히 빛났고, 마구간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는데 어린 나에게 뒤따라 들려오는 말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성당에서 영세까지 마친 자입니다. 아녜스란 세례명까지 갖고 있지요. 커서는 친구 따라 교회도 몇 년 다녀 봤습니다. 성당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모두가 다니지 않게 되었었고 -반대의 경우도 꽤 있더군요. 오히려 가족을 잃고 종교를 갖게 된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었지요- 교회는 목사님의 그 좋은 말씀들이 족쇄처럼 느껴져서 오래 다니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전하는 말과 종교 자체에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지요. 그냥 저의 성향 자체가 특정한 종교를 갖는 것이 매우 어려운 사람이란 것을요. 지금은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종교의 모든 가르침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불교 교리에 대해 공부는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24일과 25일이 되면 저 역시 마음이 설렙니다. 석가탄신일과 마찬가지로 25일이 휴일이라는 것, 그리고 한 해를 정리하기에 참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이유에서요.
이렇게 어여쁜 카드도 두 통이나 받았고요.
동료에게 이런 앙증맞은 케이크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카드를 건네던 수줍은 손길에, 몇 글자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담긴 손글씨에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다 보니 크리스마스에게 괜스레 미안해지네요.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분들은 일 년 중 가장 행복하고 경건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요. 또 저 역시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면서 작은 기쁨을 느끼고 있네요. 이젠 크리스마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냥 막연히 '쉬니 좋다.' '오, 나에게 카드를 건네는 이도 있네.' '케이크 맛있구먼!' 하고 말았겠지요.-
To. 크리스마스에게
크리스마스야, 너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나에게도 이런 행복한 시간을 가져다 주는구나. 고맙다. 이젠 나도 너에게 마음을 열어볼게.
크리스마스야, 메리 크리스마스!
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From. 글향이가
브런치에서 제게 선물을 보내 주셨네요.
글 남기라고;;;;
블친님이 자꾸 글 남기라는 독촉 메시지를 받았다고 하셔서 어떤 걸까 궁금했었는데요. 드디어 저도 받았습니다. ^^;; 그것도 크리스마스날!!!
부끄러운 오늘입니다.
블로그 글을 퍼다가 남겨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