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펼쳐질 날들을 기다리며
4주의 방학 기간이 끝나고 1월 31일 학교의 문이 아주 활짝 열렸다. 물론 방과후교실, 방학 중 특별 프로그램, 돌봄 교실 등으로 학교의 문은 늘 열려 있었다. 나 역시 학습지원대상 학생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교육청에 공문을 보고하기 위해서 -집에서도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었지만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교무실 근무와 개학 준비를 위해 학교의 문을 수시로 두드리고 밀어댔다.
학교의 시계는 정말 급박하게 돌아간다. 특히나 종업식을 앞두고는 전교사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한쪽에서는 다음 학년도 계획을 짜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현 학년도 마무리를 해야 한다. 교과 시수며 교과전담교사 배정이며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묻기 때문에 수시로 메시지가 오간다. 다음 학년도 교사 배정 인원은 2월 중순까지 -심지어 2월 말까지- 물음표인 경우가 있다. 1학년 신입생 수에 따라서 전출생 수에 따라 교육청 사정에 따라 학교의 교사 배정 수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업무도 통합된다. 교사 수가 늘어서 업무가 분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 상황에선...
2024학년도에 내가 맡은 업무는 기초학력 관련 업무였다. 보직 교사 다음으로 기피 업무에 해당한다. 나는 24학년도에 정시에 퇴근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휴직의 여파도 있었지만 처음 맡아보는 업무에 강사를 두 명이나 관리해야 했다. 보통 학년과 업무 배정은 빠르면 2월 10일 전후, 늦어도 2월 20일경에는 발표를 한다. 그리고 보통 기초학력 강사는 2월 20일경이면 선발 확정이 되어 있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2024학년도 실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 우리 학교와 계약을 하기로 한 강사가 다른 학교에도 동시에 지원을 했었는데 양쪽에서 합격 소식을 받은 모양이다. 우리 학교 근무를 포기하겠다고 연락을 했단다. 다른 학교 근무 조건이 더 좋았던 것이다. 거리가 더 가깝다거나 강사료가 더 높았거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월 중순부터는 새로운 학년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복직 후 나의 첫 임무는 강사를 다시 뽑는 일이 되어 버렸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이전 학년도 담당자의 기안문을 열어보고, 관련 교육청 공문을 뽑아 형광펜으로 칠하며 공부부터 시작해야 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전 담당자가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면 수시로 물어볼 수 있지만 이전 담당자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 버렸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1학기 내내 우당탕탕 정말 많이 헤맸었다. 그나마 동학년 선생님들을 너무 잘 만나 버틸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다가왔고, 드디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방학만 바라보며 달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또 연이어 터졌고 결국엔 방학 중 프로그램을 내가 맡게 되었다. 물론 윗분들께서는 다른 여지를 주셨으나 나는 판단했다. 차라리 내가 나와 수업하는 게 낫겠다고. 내 결정이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휴식 없이 이주 동안 여름방학 때도 출근을 계속했다. 물론 아이들을 만나면 예상치 못했던 감동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와 단지 6~8시간 정도 수업을 했을 뿐인데 헤어지면서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쓰인 편지와 '선생님이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으면 좋겠어요.'라는 감동적인 멘트를 선물 받았다. 여러 학년을 맡았기 때문에 학년별로 다른 반응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나의 몸은 녹초가 되어 버렸지만.
어느 직업이 방학이 있냐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맞다. 그렇다. 하지만 방학이 없으면 교사는 버틸 수 없다. -사실 방학 중에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연수를 받는다. 비록 나는 24학년도에는 연수를 받을 에너지가 없었지만.- 아이들과 있는 내내 초긴장 상태이고,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 없다. 수업이 끝나면 여기저기 회의에 불려 다녀야 하고 혹여나 예상치 못했던 불미스러운 일로 학부모님과 통화라도 하게 되면 몸 둘 바를 모른다. -나는 엊그제 아이들이 교과 수업을 받고 있을 때 한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다행히 크게 이상은 없었지만 병원에 가는 내내 떨었고,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 밝게 웃으며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긴장하고 있었다. 강사를 뽑아야 하는 이 시즌에 아이들이 교과 수업을 간 시간에 나는 업무에 올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로 오후 내내 보건 교사와 윗분들과 협의를 해야만 했고, 각종 공문과 파일철을 가지고 퇴근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집에서 처리했고 공고문과 계약서를 수정해서 다음날 협의를 준비했다. 나는 그날 세 시간 새우잠을 잘 수 있었다.
교사는 수업만 열심히 준비하면 되는 줄 알았다. 사실 수업 준비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정작 학교에서는 수업 준비를 못 하고, 집에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교사들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쓰는 글은 절대 아니다. -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친한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집에 가서도 업무 처리를 하거나 수업 준비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육아 시간으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퇴근하는 교사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이 일찍 퇴근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일까지 잘 해내는지 늘 의아했다. 나만 바보같이 맨날 늦게 퇴근하고, 일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나 싶었다. 육아 시간을 쓰는 교사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대놓고 물어봤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다.
"밤에 애들 다 재워 놓고 나이스 켭니다."
"새벽에 수업 준비해요. 집에서 일 안 하면 아무것도 못하죠."
그들은 그냥 어린아이들을 돌보러 집에만 일찍 갈 뿐이었다. 위로를 받아야 할지, 안타까워 해야 할지 그들의 삶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간혹 규모가 큰 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는 그나마 업무량이 줄어든다. 학교의 일은 규모에 상관없이 대부분 똑같이 돌아간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일은 똑같은데 그 일을 해야 하는 인원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큰 학교의 교사수는 어느 정도 인원 확보가 되니 업무를 하나씩 배정받는다면, 작은 학교의 경우는 교사당 두세 개의 업무는 기본인 것이다. 학교의 크기에 따라서 학년 배정 업무에도 차이가 있다. 우리 학교는 학년당 3~4 학급으로 학교에서 운영되는 위원회에 기본적으로 두세 개는 참여를 해야 한다. 인사자문위원회, 자료 준비 위원회, 도서 선정위원회, 성적관리 위원회, 학습 지원협의회, 원어민 관리 위원회 등등 뭔 위원회가 그리도 많은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나는 학년에서는 인사자문위원회와 자료 준비 위원회 위원이었고, 기초학력 업무로 학습 지원협의회의 담당자였다. 그냥 애들을 보내고 나면 정신없이 왔다 갔다를 반복해야 하고 아주 운이 좋은 날이면 다음날 수업 준비물을 칼라로 예쁘게 출력까지 해 놓을 수 있다. 그걸 못하고 퇴근한 날은 다음 날 일찍 출근해서 준비실 문을 묵묵히 열어야 한다.
내가 일기 검사나 독서록 검사를 못해서 간혹 하루 이틀 늦게 나눠주면 아이들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우리 가면 뭐해요?"
음... 다 말해주고 싶은데 말을 시작하기 전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서 그냥 쓱 웃고 만다. 쉬는 시간 틈틈이 검사를 하고 싶지만 행여나 아이들이 다칠까 봐 장난을 심하게 치는 아이가 있을까 봐 아이들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 간혹 중간에 화장실을 가게 될 경우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를 하고 간다.
"얘들아, 선생님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앉아서 놀자. 절대 뛰면 안 돼!"
그나마 중학년부터는 좀 낫다. 1학년을 맡았을 때는 남학생이 화장실까지 쫓아와서 고래고래 나를 찾는 바람에 당황을 한 적도 많다.
"선생님, 땡땡이가 저 때렸어요!"
화장실 가는 것까지 보고해야 하고, 혹시나 아주 간혹 배탈이라도 나서 긴급하게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 할 경우는 불안에 불안을 거듭하며 떨어야 한다.
개학을 하고 꼬마 친구들과 11일이란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시간에도 꼬마 친구들에게만 집중할 수가 없다. 2025학년도 기초학력 협력 강사를 뽑는 일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사실 이번에 교육청에서 강사 모집을 지원해 준다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막상 공문을 열어보니 그도 만만치 않았다. 교육청에서 일괄로 모집을 하되 우리 학교에 지원자가 없을 경우는 다시 학교에서 뽑아야 한다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 그래. 학교별로 근무 환경이 다를 테니 교육청도 어쩔 수는 없겠다.'
'그래도 지원을 해 준다는 그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도 참 감사했다. 아주 잠깐 동안!'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담당자인 나는 또 우왕좌왕 중이다. 이번 연도 예산에 맞게 수업 시간을 계산하고 강사료를 계산하고 공고문을 만들고 내부 결재를 받고 우리 학교와 교육청 사이트에 게시를 해야 했다. 이제 서류가 접수되면 서류 심사에 들어가야 한다. 서류 심사 위원은 세 명이 필요하고, 음.... 또 뭘 해야 하더라? 물론 이 모든 일은 윗분들과 항상 협의하고, 결정한다.
교사의 모든 업무는 교육과정과 관련이 되어 있다. 잘 안다. 정말 잘 안다. 그런데 나는 우리반 아이들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싶은데 온전히 그럴 수가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아직 내가 이 시스템에 적응을 못한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25학년에도 같은 업무를 지원했다. 그냥 하던 업무가 그나마 나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우리 학교는 소규모 학교로 다른 업무도 만만치는 않다. 지금 나이에 또 새로운 업무로 헤매느니 그냥 하던 거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나이에 보직교사를 못하겠다고 선언했으면 기피 업무라도 맡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게 맞다고 본다. 고로 나에게 칼퇴란 두 글자는 없을 것이며 정신이 아주 많이 없을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빵빵 터질 때마다 이제 나는 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다치는 건 예외다. 그건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글로 나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불만만 가득했을지라도 나의 하루하루가, 나의 일이 정말 특별하고 소중해짐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가장 친한 벗이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보통 전보일에는 우리 학교 교사들이 어디로 발령 나는지, 누가 우리 학교로 발령이 났는지 촉각을 곤두세워 기다리곤 한다. 때로는 업무 시스템에 로그인을 해 놓고 교육청에서 발송되는 공문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올해 그럴 수 없었다. 전보 발령일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학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끝내고 카톡을 열어보니 메시지가 꽤나 많이 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땡땡 선생님, 별별로 발령 났어요.'
땡땡은 나의 가장 친한 벗이며 별별은 우리 학교 이름이다.
'언니, 저 언니네 학교로 발령 났어요. ㅠㅠ'
땡땡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
아....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와서 내 너무 좋다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이 너무너무 많은 학교이기 때문에. 엊그제 땡땡이가 우리 학교에 왔다. 인사 서류를 가지고 발령교에 방문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금요일에도 우당탕탕 교과 일람표 오타를 확인하고 있었다. 출결 서류와 교무업무 시스템이 일치하는지 하나하나 대조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날 끝을 내야 다음 주에 강사 채용에 전념할 수 있을 테니. 결국엔 집에 다 싸 들고 왔지만. 정신없는 상태로 땡땡이를 맞이했다. 땡땡이는 그냥 왜 사냐건 웃지요!로 일관된 표정이었다.
주말에 문자를 주고받았다.
"짐 언제 이사할래? 내 차로 날라 줄게!"
"언니, 저 짐 많아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지난번보다 많아졌어? 그때도 내가 날라주지 않았나?"
"아, 짐은 줄었는데 큰 박스에다 짐을 쌓았거든요."
"두 번 왔다 갔다 콜?!!!"
"언니, 고마워요!"
"우리 틈틈이 재밌게 지내자. 위로도 서로 해 주고. 나는 칼퇴가 불가능할 예정이니 참고해!"
나는 매우 매우 바쁠 예정이다. 남편에게도 이미 통보해 놓았다. 내가 요령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내가 맡은 일들이 정말 정신이 없는 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새로 만날 아이들과는 정말 더더 잘 지내고 싶다. 나의 교직 생활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내 일을 아주 야무지게 잘 해내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어본다.
무던하게! 그리고 야무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