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초등 교실 이야기
03-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8월 28일 수요일, 2학기 학급 임원 선거가 있었다.
되고 말 거야! 굳은 결심.
누굴 선택할까? 심각한 표정.
누가 날 뽑아줄까? 두려움 반, 기대 반.
만감이 교차함을 느낄 수 있다.
1학기 때 한 번 해 보았다고 제법 익숙해진 모습이지만 상대가 경쟁자라는 의식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번 학급 임원 선거에 저를 추천합니다!"
크게 외치던 아이들도 다른 친구를 거침없이 추천한다. 혹시나 후보로 추천받지 않은 친구들이 있으면 손을 번쩍 들고 당당하게 말한다.
후보자 수는 어느덧 재적수와 일치한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남, 여 각각 최대 5명까지! 예비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물론 그전에 '기권'이란 단계가 있긴 하다.
추천은 받았지만 '임원 도전'에 마음이 없는 아이들 몇 명이 일어난다.
기권한 아이의 이름을 지운다. 후보자 수를 확인한다. 남학생 후보자 예비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결코 꺼내지 않기를 바랐던 예비 투표용지를 한 장씩 나눠 준다. 학급 임원이 되었으면 하는 친구 이름을 투표용지에 쓴다.
1학기에도 폭풍 설명을 했었는데! 어느 학년이든, 어느 시기든 단골손님처럼 나오는 질문이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써도 되는 거 아니야?"
웅성웅성한데 확신은 없다. 한 학기에 한 번뿐이라 헷갈리나 보다.
'써도 돼!' 강렬하게 눈빛을 보낸다. 안심하며 연필을 끄적인다.
개표 시간, 5명을 남기기 위한 시간이다. 미리 마음을 달래준다.
"자, 임원이 되는 친구는 단 3명뿐이에요. 나머지 친구들은 다음 기회에 도전하면 되겠죠! 서로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말을 조심해야 해요. 임원이 되지 못하는 친구들은 충분히 속상할 겁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개표 시간이다. 도우미가 필요하다. 투표용지에 쓰여 있는 이름을 부를 도우미, 그 이름이 맞는지 확인할 도우미 그리고 칠판에 표시할 도우미. 서로 하겠다고 손을 든다.
"1학기 임원 세 명이 도와주세요!"
1학기 임원은 2학기 임원 선거 후보자에서 제외다. 도우미로 활약해 줄 세 아이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온다. 능숙하게 개표를 진행한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진다. 후보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표가 한쪽으로 크게 몰리지는 않는다. 그 와중에 한 표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자신의 투표용지에 친구의 이름을 쓴 것이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그 아이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자신의 이름을 적었고 그 표가 유일한 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쓴 건지, 누군가가 써 준
건지는 알 수 없다. 한 표도 받지 못한 친구를 아이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하지만 이 복잡한 마음을 속으로 가라앉힌다. 질문을 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쓴 아이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 작은 공간에서도 생각해야 할 것이 수없이 많다.
후보자가 결정됐다. 떨어진 친구들에게 위로의 박수를 건넨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실패를 맛보았다. 실망은 크겠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마음속에 자리 잡아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 굳게 믿는다.
회장 선거, 부회장 선거가 이어진다. 기표, 개표가 이뤄진다. 아이들은 단계별로 승리와 패배를 맛본다. 회장에 당선된 아이는 어쩔 줄 모른다. 부회장이 된 아이는 회장이 아니라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떨어진 아이들에게서 서운함이 느껴진다.
개표 도우미 1학기 임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의젓했다. 부회장 선거 개표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부회장은 남, 여 한 명씩이다. 투표용지에는 두 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진다면 그래서 엉뚱한 곳에 표시라도 한다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결과를 조용히 지켜보자고 신신당부했지만 궁금한 것도 많고 감정 표현도 다양한 3학년 아이들에게는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다.
1학기 회장이 투표용지에 있는 친구들의 이름을 천천히 부른다. 부회장들은 칠판 앞에서 보드마커를 들고 눈을 반짝인다. 남자 부회장은 남자 후보자 이름 옆에, 여자 부회장은 여자 후보자 이름 옆에 선을 하나씩 긋는다. 회장은 이를 하나하나 확인한다. 눈빛으로 ‘됐어?’, ‘됐어!’ 대화를 나눈다. 감동의 물결이 흐른다.
2학기 임원 선거는 세 아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앞섰을 터인데 끝까지 역할을 해내려는 모습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또 빛났다.
그렇게 2학기 학급 임원 선거는 무사히 끝났다.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한가득 받는다.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은
눈빛을 교환하며 개표를 진행하던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떨어진 친구를 위해 감정을 조절하는
당선 소감에서 '1학기 임원들이 너무 잘해서 걱정이지만....'이라고 말을 시작하는 나의 아이들에게서
따뜻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이 작은 공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