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추억

완전 범죄를 꿈꾸다

by 글꽃향기


<따로 또 같이 쓰는 첫 문장>

고학년이 되었던 어느 날

우연히 친구를 따라갔던 ~에서


출처 : <별거 있는 책 읽기> 55쪽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선생님을 찾아갔던 그곳에서 그 아이는 내 품에 안겼다. 선생님의 교무실 책상 옆에 편안히 앉아 있었던 그 아이, 조금은 당돌하게, 하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그 아이! 그 아이가 내 품에 안길지 꿈에도 몰랐다. 그저 가까워지고 싶어 선생님 앞에서 투정을 부렸을 뿐이다.




나의 학창 시절의 휴일엔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공공 도서관이나 독서실 정도? 공공 도서관 열람실에는 일찍부터 집을 나선 학생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특히나 시험 기간이 되면 자리 쟁탈전은 치열했다. 어린 시절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새벽형 인간이었기에 맘만 먹으면 열람실 자리 잡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그 열람실이, 공부하는 사람들로 빼곡했던 그 공간이 너무 답답했다. 혹시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라도 나면 어찌나 부끄럽던지,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면 어찌나 민망하던지!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하고 싶었다. 동네 독서실 역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론 최적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나만을 위한 수납장, 책과 공책의 자리를 환하게 비춰주던 조명, 그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러나 뭐든 누리려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지불해야 하는 법! 나만의 공간을 위해 한 달 이용료는 필수 조건이었다. 고작해야 휴일에만 이용할 텐데, 단 며칠을 위해 한 달 치 주머니를 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선택했던 장소, '학교'였다. 지금과는 달리 나의 학창 시절 학교 정문은 휴일에도 활짝 열려 있었다. 단짝 친구와 아무도 없는 학교에 들어가는 그 기분은 참 특별했다. 평일,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짜여진 틀에 나를 맞춰야 했던 그 공간에서 휴일의 나는 친구와 참 자유로웠다.






일요일 학교로 향하기 전, 꼭 챙겨야 하는 것이 있었다. 책? 연습장? 깜지용 연필? 아니다! 그건 옵션이었다. 과자와 커피우유! 두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빠뜨리는 날에는 학교 앞 구멍가게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빠다코코넛이나 후렌치파이, 그 아이들이 참 좋았다. 빠다코코넛은 경제성에서 최고였다. 다른 과자에 비해 양이 정말 많았다. 후렌치파이! 가장자리 부분을 참 좋아했다. 적당히 노릇노릇 구워져 있는 그 부분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바삭함과 딸기잼의 달콤함! 황홀함 그 자체였다.





정문 앞에서 친구를 만나 교실로 향했던 그 길, 항상 시끌벅적했던 그 길은 꽤 고요했다. 학교의 건물은 꽤 높은 곳에 있었다. 덕분에(때문에?) 정문에서 교실까지 내내 오르막길뿐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맞았던 시원한 바람, 속닥속닥 우리들의 수다 소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새들의 지저귐, 화단을 꾸며 주고 있었었던 아름드리나무와 꽃들, 모든 것이 친구와 나를 위한 무대였다.





교실에 도착하면 우리에겐 우선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미 오르막길을 통해 100개 이상의 계단을 올라왔기에 지쳐 있었다.

'공부는 무슨 개뿔!'

에너지 충전 전, 우리에겐 특별한 무대가 필요했다. 책상 두 개를 창문 앞에 나란히 붙여 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오르막길을 걸으며 들었던 새들의 노랫소리는 이제 조금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배경음악으로 바뀌어 있다. 완벽한 무대가 완성되었다. 과자와 커피우유 소품이 등장한다. 달콤, 바삭, 진지의 기운이 돌면서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는다. 수업 시간에는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던 시곗바늘이 휴일 그 시간엔 어찌나 빨리 움직이던지!





친구와 나의 비밀 무대는 그리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꽤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에 나와 있었다. 어느 날, 학교를 순시하던 영어 선생님께 딱! 들켜 버리고 만 것이다. 평일엔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의 가면을 쓰고 있던 우리였기에 휴일에도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게 앞으로 남은 중딩 시간을 위해 좋을 거라는 무언의 결론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우리의 무대 구성을 약간 수정했다. 책 여러 권을 펼쳐 놓았고, 깜지용 연습장에 다섯 줄 정도 흔적을 남겨 놓았다. 형광펜과 색 볼펜 여러 개를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 놓았다. 갑자기 누가 문을 연다 해도 바로 공부 모드로 자세를 취하기만 하면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범생이의 모습으로 손색이 없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던 -내가 정말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은 그 후로도 우리 무대에 자주 등장했다.

"너네! 겅부하는 거 맞↗아↘ 어↗학↘생↗이↘ 겅↗↗부↗↗를↘ 해↗↗↗야지! 어↗↗↗!"

대본에 없던 대사도 애드리브로 날려 주시면서 말이다.




아마 나였을 거다. 우리들의 수다를 위한 특별한 BGM을 생각해 낸 것이. 그날은 새소리 BGM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친구와 교무실로 쪼르르 달려갔다. 다행히 영어 선생님이 계셨다. 영어 선생님 옆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영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마다 데리고 왔던! 교실 전체를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목소리가 컸던 그 아이!

"선생님, 저희 영어 공부할 건데 저 아이 좀 데려갈게요."

"뭐↗↗↗, 겅↘↘부↗↗↗, 그↘진↗말↘ 하지 마↗라↗! 무~쓴↗ 겅↘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일요일마다 교무실 문을 계속 열어댔다. 우리 무대에 찾아와 준 영어 선생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선생님의 무대에 부지런히 출연했다.

"안!!! 돼!!!, 뻥↗치↗지↘ 마↗라↗"

선생님의 'OK' 사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와 나는 단념하지 않았다. 그 아이와 가까워지고 싶어 선생님을 조르고 졸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우리 둘을 보고 화를 내듯 소리쳤다.

"야↗↗↗ 너↗네↘ 이↗거↘ 고_장_나_면_ 알↗↗↗지↗↗↗!"

생각도 못 했다. 선생님이 'OK' 사인을 주실 줄은! 그 순간, 친구도 나도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당연하죠. 선생님. 한 시간만 데리고 있을게요!"

그리고 그 아이를 내 품에 안았다. 선생님 책상 옆에 편안히 앉아 있었던 그 아이, 조금은 당돌하게, 하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그 아이를!






친구와 나는 조심조심 그 아이를 들고 교실로 왔다. 콘센트가 있는 곳 옆에 무사히 자리 잡은 그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셨다. 우리는 조심조심 그 아이를 깨웠고, 곧바로 라디오의 채널을 맞춰 보았다. 교실 전체에 울려 퍼지던 DJ의 음성, 그 감미로운 목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천천히 깔리는 음악! 그 아이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의 무대는 점점 빛이 났다. 나와 친구의 일요일은 더욱 즐거워졌다.



"뭐↘ 하↗노↘! 내↗ 이↗럴↗ 줄↗ 알↘았↗다↗!"





다시 우리 무대에 등장해 준 영어 선생님 덕분에 완전 범죄는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후로도 그 아이는 일요일 우리 무대에 자주 등장해 주었다. 때로는 영어 선생님도 함께였다.







생각해 보니 그 아이를 만나는 것보다 친구와 함께 교무실로 쪼르르 내려가 다른 선생님들 눈치를 보며 영어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던 그 순간을, 철부지 제자들의 투정을 받아주시던 선생님의 사랑을, 그리고 그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몰랐다. 이 모든 일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내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 잡고 있을 줄은.





오랜만에 휴일 나의 단짝이었던 그 친구에게 톡으로 안부 인사를 건네야겠다.





“이*주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선생님께서 주신 사랑 저도 꼬마들에게 잘 전해 볼게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든 순간순간 행복 찾으시길 바랄게요. 저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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