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가기 전, 친구와 함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는 맥줏집에서 수상소감의 형식을 빌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반년이 지난 지금, 어떤 소감을 발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루하루가 색다르고 즐거웠던 날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와 웃고 떠든 시간을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와 바닥에 누워 내년 계획을 생각하던 중, 미에로화이바 한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친구에게 “미에로화이바를 이용한 칵테일 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친구가 흔쾌히 동의하자 셰이커와 바스푼, 지거(계량기) 등 기물을 꺼내 각자 원하는 재료를 골라 조합한 뒤 얼음을 넣고 흔들어 잔에 따랐다. 아쉽게도 맛이 없었다. 마지막에 넣은 재료가 지나치게 강렬해 다른 맛을 모두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그조차도 즐겁고 웃겼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시 바닥에 누워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꼭 닫혀 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미래오피스텔 창문은 커다란 액자처럼 주변 풍경을 담아내 침대를 옆에 두고 매일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봄에는 창틀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벚나무와 지나가는 사람들, 집 앞 빵집 줄을 지켜보다가 지갑을 챙겨 나갔다. '우리 이웃들도 이러려나?' 하는 생각이 스치며 그러기를 바랐다.
“우리, 미래오피스텔 이웃들한테 새해 편지 쓸래?!”
“응? 좋아!”
즉시 일어나 책장 한편에 모아둔 카드와 엽서, 스티커들을 총출동시켰다. 단골 카페 굿즈와 띠부띠부씰, 인화된 사진까지 몽땅 끌어모았다. 각자 원하는 종이와 펜을 골라 여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을 담았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렇게 썼던 것 같다.
‘다채로운 나날을 보내면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느끼고, 일상이 반복될수록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대요. 올 한 해는 서서히, 느릿느릿하게 지나가기를 바랄게요!’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흥미로운 일이 찾아오기를 바라요!’
‘하늘을 더 자주 바라보는 해가 되기를 바라요:)’ (구름스티커도 함께 붙여주었다)
이제 마지막 미션이 남았다. 우편함에 몰래 꽂아놓고 오기! 주머니 가방에 편지를 담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엘리베이터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웃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콱 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참아왔던 웃음이 터져 나왔고, 주저앉을 뻔했다. 1층에 도착해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우편함에 무작위로 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문 앞으로 다가오자 숨을 죽인 채 계단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음식 배달 기사님이었다. 기사님이 건물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임무를 재개했다. 앞집과 옆집은 인사한 적이 없지만, 앞집과 옆집이니 넣었다. 마지막 편지까지 다 넣고 재빠르게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만일 그 편지를 받았다면 환한 미소와 함께 새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래 이웃들도 그러기를 바랐다. 집을 나갈 때와 들어올 때마다 우편함을 눈여겨보며 얼른 사라지기를 바랐다. 본가에 내려간 사람도 있는지 하루아침에 모든 편지가 주인을 만나진 못했지만 3일 뒤엔 한 개를 제외하고 사라졌다. 나머지 한 개는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주인이 모르는 것 같아 잘 보이도록 살짝 걸쳐두었다. 며칠 후, 반송함 위에 놓여있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잠시라도 기분이 좋았기를 바라며 주머니에 챙겼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새해 편지가 있다며 행복해하기로 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기쁨과 별거 아닌 것에서 느끼는 행복, 이 작은 편지가 누군가의 마음에 잔잔한 온기를 남겼기를 바란다. 그렇게 새해의 시작이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이 설레는 마음을 품고, 새해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