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
미리 말씀드리자면 순돌이는 사람음식도 먹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개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건강합니다.(심지어 10살입니다) 산책도 자주 나가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순돌이는 자라목 삼촌이 잠시 맡겼던 강아지였지만, 이러저러한 사정 끝에 아버지와 함께 벌써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애기 때부터 돌덩어리처럼 무겁고 평범한 강아지보다 발이 세 배가 컸는데, 꾸준히 자란 덕분에 지금도 왕 큽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순돌이 머리가 소대가리만 하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덩치는 산만하지만, 접힌 귀와 순한 눈매는 ‘순돌이’라는 이름과 퍽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는 순간 바로 배를 홀라당 까버립니다. 앉아/손/엎드려 같은 명령어는 순돌이 사전에 없습니다. 무조건 복종입니다. 하지만 이는 온전히 사람한테만 해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한테는 가차 없는 아주 사납고 못된 개입니다.
지난번에 순돌이가 멧돼지 새끼를 건드린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순돌이의 밥 먹는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이젠 하다 하다 시골개 밥 먹는 얘기까지 하나 싶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순돌이는 최강 시골 촌개라서 닭뼈는 물론이고, 꿩뼈와 생선 뼈도 씹어먹습니다. 고깃집에서 갈비를 먹는 날이면 종이컵에 갈빗대를 챙겨갑니다. 뼈에 붙은 고기가 가장 맛있지만 순돌이도 고기 맛 좀 보라고 그대로 둡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손에 고이 쥐고 하나씩 꺼내 바닥에 놓아줍니다. 순돌이는 감자칩 먹듯이 콰삭콰삭 몇 번 씹고 삼켜버립니다. 더 없냐고 쳐다보는 눈빛에 20인분은 먹었어야 했나 약간 미안해집니다.
몇 년 전 일인데요, 순돌이가 최강 시골 촌개라 도시의 맛, 맛있는 걸 먹이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영덕에 반려동물 용품점이 없었을 때입니다. 대형마트 동물코너에서 가장 큰 개껌을 샀습니다. 하지만 우주 최강 시골 똥깨라서 낯선 생김새에 냄새만 슬쩍 맡더니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뀔 수 있으니 밥그릇에 넣어두었는데 결국 일주일 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최근 동생이 저와 같은 마음으로 개껌을 사들고 왔습니다. 냄새만 맡고 또 고개를 돌려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개껌 맛을 몰라서인지, 훨씬 맛있는 양념 갈비뼈와 꿩뼈를 먹고 자라서 눈에 안 차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저도 다른 지역에서 해산물을 잘 먹지 않습니다.
순돌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양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이빨이 몽땅 썩었을까 걱정돼 입술을 들어서 확인해 봤는데 충격적일 정도로 충치와 치석 하나 없이 새하얬습니다. 치과 선생님도 보면 놀랄 노자입니다. 양치와 치석껌 대신 뼈를 씹어 먹어서 일까요? 뼈를 씹어먹을 만큼 이가 단단해서일까요? 천연 개껌은 역시 뭔가 다른가 봅니다.
+ 가끔 뼈를 한 바가지 부어준 다음날은 하얀 똥이 마당에 가득합니다.
"죽 쒀서 개 준다"라는 속담이 있죠. 애써서 만든 물건을 남이 가진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렇습니다. 외식을 하고 오면 순돌이랑 나눠먹을 밥이 없어서 밥을 새로 합니다. 그것도 압력밥솥으로 가득. 라면도 한 봉 끓여 새 밥을 말아줍니다. 순돌이 입맛이 아버지를 닮아 사료보단 신라면을 더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맵고 짠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인 아저씨라 순돌이 건강이 걱정되는데 다행히 10년째 건강합니다. (아버지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가끔 티비에 매끼 라면만 먹고 장수하시는 분들이 나오는데 순돌이도 20년 넘게 살아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순돌이가 개껌 먹을 줄은 몰라도 향신료는 또 잘 먹습니다. 말레이시아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좋아하는 음식 재료를 몇 개 사 왔습니다. 나시고랭과 미고랭(볶음밥과 볶음면), 코코넛크림이 들어간 커리, 인도식당에 가면 주는 식전과자 이렇게 만들어 아버지와 함께 먹었습니다. 물론, 순돌이도 함께요. 아버지와 순돌이 둘 다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은 처음이라 걱정을 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도 거부감 없이 잘 드셨고, 순돌이도 맛있었는지 남기지 않고 그릇을 핥어먹었습니다. 개껌처럼 버려지지 않아 기뻤습니다. 순돌이가 아버지 입맛을 쏙 빼닮은 게 맞나 봅니다. (아버지도 개껌은 안 드십니다)
다음번엔 순돌이가 아버지를 죽일 뻔했다가, 되려 목숨을 살려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