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농부들은 순 바보다

시골이야기

by 이모양

"영덕 농부들은 순 바보디"

마당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남은 잿불에 고구마를 굽던 저녁이었다. 고구마를 감싼 호일을 걷어내면서 아버지가 툭 던지듯 말했다. 나는 고구마 껍질을 벗기던 손을 멈추고 고개들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뭐?”

농부가 바보라니, 무슨 말인가 싶어 자세히 들어봤다.

“사회 시간에 수요와 공급 배웠제? 고구마도 똑같다. 크기도 적당하고, 당도도 올라야 제맛인데, 그걸 못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작고 맛이 덜 들었는데도, 그냥 빨리 먹고 싶어가 비싸게라도 사 먹는 거지. 반대로 제철엔 고구마가 쏟아질 듯이 많아서 농부들이 싸게 팔 수밖에 없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키우는 강아지가 아파서 간식 대신 고구마를 먹이려고 샀다. 우리 할매가 고구마 농사지을 때 매년 4월 중순에 심었는데 5월 초에 고구마가 마트에 있다. 심지어 손가락 세 개 만 한 조그만 고구마 몇 개가 5천 원이 훌쩍 넘었다. 아버지 말대로 일찍 수확하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겠다. 작으니 손질이 쉽고 품도 덜 들며, 제철보다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으니 농가 입장에선 남는 장사다.

“근데 여기 농부들은 착해가 틀려먹었다. 그냥 좀 빨리 캐가 팔라 해도 ‘다 안 컸는데 어떻게 그러냐!!’ 이런다. 아휴, 마음이 이래 약해가 장사하겠나. “

아버지가 말은 그렇게 해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 말속엔 약간의 안타까움, 애정이 섞여있다.

자본주의 세상에선 고구마를 제때 캐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덜 익은 걸 일찍 팔 줄 아는 사람,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장사 수완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영덕 농부들은 그러지 못한다. 작고 덜 익었으면 놔둬야 한다. 기다린다. 제맛이 들 때까지.


“고구마 언제 캐?”

어렸을 때는 할매한테 이렇게 자주 물었다.

“서리가 두어 번 와가, 얼었다 녹아야 단맛이 드는 기라.”

그러면 꼭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냥 몇 개만 먼저 캐서 먹으면 좋겠는데 절대 안 된다.

농부들의 고집이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달콤한 제철 고구마를 입에 넣는 순간, 누가 진짜 바보인지, 그때서야 확실히 알게 된다. 어설프게 간식을 먹어 저녁을 망치는 사람들, 봄여름에 고구마를 찾는 사람들이 진짜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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