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
“아니 나는 셔들잎이 그래 먹고 싶다.”
얼마 전, 가족들이랑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오빠가 깻잎장아찌를 고기에 싸 먹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마침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고기반찬을 오빠가 다 먹곤 했다. 결국, 내 몫은 늘 셔들잎과 밥뿐이었는데 그게 참 맛있었다. 오빠도 잊지 않고 먹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셔들잎은 정말 평생 그리울 맛인가 보다.
‘셔들잎’은 큰할머니의 시그니처 반찬이다. 깻잎장아찌처럼 식물 잎을 양념한 음식인데, 깻잎 대신 보드라운 셔들잎을 쓰고, 간장 대신 된장을 사용한다. 여기서 문제는 아무도 ‘셔들잎’이 정확히 어떤 나무의 잎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먹고 싶을 때마다 검색해 봤지만 ‘셔들잎’이라는 이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포기하고 깻잎장아찌를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다 지난달에 부산 고모와 점심을 먹다가 혹시나 싶어 “혹시 셔들잎이 무슨 나무 잎인지 아세요?”하고 여줘봤다. 기대 없이 던진 질문이었고, 역시나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약수터 가는 길에… 어디 묘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라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다! 비록 까먹어버렸지만, 아버지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다시 셔들잎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된장 맛이 관건이겠지만 옆 동네 옥자아지매가 준 쌈장에서 비슷한 맛이 났던 걸 보면, 어떻게든 비스무리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쁜 소식을 오빠에게 전하자, “어쩌라고.”가 아니라 “아, 진짜?”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하여튼 경상도 사람 아니랄까 봐 분명 속으로는 굉장히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잎이 푸릇푸릇해질 때쯤 영덕에 내려가 아버지랑 따러 가야겠다. 나무한테 미안하지만 10년 치 원금… 아니, 원엽(葉)을 다 받아내야 한다.
무슨 잎인지도 모르면서 셔들잎을 먹고 싶다는 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에게도 이 소식을 들려주었다. 친구가 마치 자기 일인양 기뻐하다가 혹시나 싶어 검색을 했다. 놀랍게도 예전엔 없던 블로그 글 하나가 나타났다.
‘박쥐나무 잎이지만 더 다양한 이름 남방잎, 난방잎, 방잎, 박잎, 서들취, 서덜취 파는 곳’
글에 첨부된 사진을 보니 셔들잎이 맞다. 왜 이제서야 이 글이 보이나 했더니 작년 5월에 쓰인 글이다. 아, 드디어 10년만에 셔들잎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박쥐나뭇잎 장아찌’를 검색했다. 담그는 방법이 나왔다.
씻어 물기를 뺀 박쥐나뭇잎을 된장에 넣어 1년 정도 숙성시킨 뒤, 된장을 훑어내고 간장과 물엿을 섞은 양념을 켜켜이 바르는 방식(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
같은 맛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된장에 1년 숙성해서 나는 향 때문이었다. 이런 셔들잎을 따도 1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거 참, 셔들잎 한 번 먹기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