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파프리카 훔쳐갔노

시골이야기

by 이모양

고등학생 때 다이소에서 파프리카 씨앗을 사서 심었다. 금세 새싹이 돋고 쑥쑥 자라더니, 금세 죽어버렸다. 다시 씨앗을 심었다.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주말에 집에 가서 뒷마당에서 삽질을 해 지렁이 세 마리를 잡아 와 화분에 넣었다. 하지만 파프리카는 또 죽었다.


결국, 시장에서 모종 두 개를 사서 집 뒷마당에 심었다. 혹시나 누가 뽑거나 밟을까 봐 옥상 올라가는 계단 밑,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은 작은 땅에 심었다. 평일에는 어머니가 물을 주었고, 주말에는 내가 물을 주며 말을 걸었다. 지렁이도 없는 땅이었지만, 모종이라 그런지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던 열매가 열렸다. 노란색 3개와 빨간색 2개,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3배는 작고 못생겼지만, “정성 가득한 유기농 노지” 파프리카라서 더 소중했다. 그런데 집 마당과 뒷마당 물건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리 집 개 랑이라도 뒷마당에 둬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꼬리를 흔들며 반겨줄 것 같아서 포기했다. 어머니한테 당부해 두었지만, 평일에는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주말에는 화장실 창문으로 뒷마당을 수시로 감시했다.

토요일, 집에 도착하자마자 뒷마당으로 달려갔다. 내 파프리카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이런! 노랑 파프리카 하나가 없다! 심지어 동글동글 제일 예쁜 놈이! 웬걸 여태껏 안 훔쳐간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맛있게 익었을 때를 노린 게 분명했다. 게다가 그중에 가장 탐스러운 놈으로 가져갔으니. 상실감이 밀려왔다. 남은 것까지 사라질까 불안해져 남은 파프리카를 전부 따 버렸다. 어차피 다 익은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원래 비닐하우스에서 키워야 하는데 그냥 노지에서 키워서 작았던 거였다. 두 개는 내가 먹고, 남은 두 개는 기숙사로 가져가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파프리카가 없어진 사실은 나와 어머니밖에 모르지만, 범인은 동네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바로 이웃집 할머니. 치매가 온 뒤로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 가셨고, 사람들은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맛있게 드셨길 바라기로 했다. 어디 벽돌이나 나뭇가지처럼 마당 한구석에 방치되지만 않기를 바랐다. 다음에 또 무언가를 심는다면, 좀 더 안전한 곳에 심어야겠다. 아니면, 차라리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걸 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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