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과 추석만 되면 우는 아버지

by 이모양


아버지는 사촌 형제가 많은데 그중 막내다. 옛날에는 같은 마을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작은집부터 큰집으로 차례대로 차례를 지냈다. 보리밥에 김치를 도시락으로 싸가던 아버지에게는 명절 차례상은 뷔페였고, 얼른 차례가 끝나기를 바랐다. 심지어 전날에 음식에 손끝 하나 댔다간 할아버지에게 매를 후들겨 맞을 테니 꼬박 하루를 참은 셈이었다.


촛불을 끄고 상을 물린 후 밥상이 차려졌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자마자 젓가락으로 빠르게 손을 뻗었다. 문제는 아직 차례상이 몇 번 더 남았다는 것이다. 큰집으로 갈수록 상이 더욱 푸짐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점점 부풀어 오르는 올챙이배를 이끌고 큰집으로 갔다. 몸이 무거워서 절도 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눈물이 났다. 단지 배가 부르다는 이유만으로 이 맛있는 음식들을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워 꺼이꺼이 울었다.


어릴 때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먼저 차례를 지내고 큰할머니 집에서 한 번 더 차례를 지냈다. 명절 음식은 평소에 잘 먹을 수 없어서 눈 돌아갔다. 전날에 어머니가 전을 부칠 때 옆에서 도와주며 못난이 전 하나를 얻어먹었을 뿐이었다. 차례가 끝나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먹을 수 있도록 정리와 상차림을 서둘러 도왔다. 큰아빠가 숟가락을 드는 순간, 나도 잽싸게 젓가락을 집었다. 배가 터지게 먹고는 올챙이배를 하고선 큰집으로 향했다. 10분 거리라 소화될 시간도 없었다. 상차림은 우리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왕 햄구이가 있었다. 다른 음식은 제쳐두고 햄구이부터 집어 들었다. 그러나 한 조각을 다 먹기도 전에 배가 불렀다. 어차피 우리 집 음식은 남으면 내 건데, 조금만 참고 햄을 더 많이 먹을 걸 후회가 밀려왔다. 물론 그렇다고 울지는 않았다.


지금은 맛있는 것이 너무 많고, 가족들과도 멀리 떨어져 살아 큰집에 가는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명절이 돌아올 때면 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만약 아버지와 내가 마시멜로 실험을 했다면, 분명 참지 못하고 그냥 먹어버렸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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