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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불빛 아래 언니들

by 김이서

무서운 언니들을 처음 본 건 몇 년 전 여름이었다. 평소 자전거를 타고 밤바람 마시는 것을 좋아했던 난, 그날도 어김없이 거리를 나섰다. 10분 정도 타고 가다 보면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매일 갔던 길, 또 하나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 이어폰 사이로 쿵쾅거리는 음악이 나왔고 본능적으로 자전거 핸들을 틀었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 방향으로.


이상하게 사람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맞은편에는 시청이 있었기에 더욱 힘차게 달렸고 어느덧 간판이 없는 가게들이 즐 비어 져 있는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허름한 가게들 같았는데, 지붕은 금세 무너질 것 같았다. 왜 간판이 없지?라는 생각이 스칠 때쯤, 멀리서 핑크색 불빛이 보였다. 핑크색 불빛은 보통 가게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핑크색 불빛 아래에는 긴 나팔바지를 입고 그 안에 10cm가 넘는 통굽 신발을 신은 언니들이 한 명씩 서있었다. 언니들은 무서웠다. 눈은 인조 속눈썹을 2~3개 붙인 마냥 시컴했고, 입술은 핑크색 불빛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빨갰다.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갑자기 내 몸의 온도가 내려갔다. 나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지만 큰 죄를 진 듯한 기분이었다. 어떤 공포영화를 보았을 때 보다 무서웠고, 얼른 그 길을 지나가려고 페달을 밟았다. 분명 건너편엔 시청이 있고 큰 마트가 있었다. 하지만 핑크빛 불빛 아래 언니들은 당당했다. 어린 나는 얼마나 놀랐을까.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속도도 늦어졌다. 결국 그 언니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이내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당장 꺼지라느니.. xx 년 같으니라고..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하면서 나를 더욱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그렇게 두 다리는 덜덜 떨린 채 당장 건너편으로 도망 나왔다.


시청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장님은 매일 출근하는 곳 건너편이 과연 사창가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 계셨을 터인데 왜 그곳을 철수하지 않고 놔두시는지도 궁금했고, 간판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시키지 않는 이유도 몰랐다. 길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처음 보는 남자들도 미친 듯이 싫었고, 6명이서 모여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핑크빛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역겨웠다.


2년 연속 시민기자를 하면서 나는 시장님과 만날 기회가 2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시장님은 시를 위해 일을 하시고 계셨고, 굶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밥을 줄 수 있는 정책도 도입하셨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이 언젠가는 알게 될 부끄러운 사실을 막지는 않으셨다. 시장님의 정책으로 아이들은 지금 배부르다. 그런데 두렵고 부끄럽다. 아이들은 여자를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알게 될 것 같다.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그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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