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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두렵고 어려운 당신에게

by 김이서

우리는 매일 아침 옷장 문을 열어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한다. 출근을 할 땐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걷는지 무의식적으로 보게 된다. 쇼핑몰의 배너 광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종합해보면 모든 이미지에는 패션이 속해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패션이지만, 사람들은 패션이 '어렵다'라고 한다. 이들에게 패션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옷을 입는 건 쉽지만 패션의 용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패션을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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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보그체'라는 용어가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다. 보그(Vogue)체는 과도한 영어, 불어, 이태리어 등을 섞어 쓰는 스타일이다. 2015년 3월에는 MBC에서 집중 취재로 '외국어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닌 보그체를 아십니까?'라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분명 다수의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캡처.JPG MBC 뉴스데스크 2015년 3월 1일 방송





무분별한 보그체는 자제해야 한다


나 또한 '보그체'라고 일컫는 언어가 우리 현실에 남용되는 것은 어느 정도 반대한다. 능동형 문장을 수동형 문장으로 바꾸는 점이나, 한국어로 표현될 수 있는 말인데도 외국어로 사용하는 점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드라마 '닥터스'에서도 김태호 역을 맡은 장현성은 환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사용하지 말고, 어려운 의학 용어는 환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패션이야말로 대부분 삶의 영역을 차지하기 때문에,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머스트 헤브 아이템(꼭 필요한 상품)', '비비드 한 컬러(선명한 원색)', '네오 캐주얼(신개념 평상복)'처럼 충분히 우리말로 쓸 수 있는 말은 보그체를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보그체 말투가 패션업계를 넘어 각종 상품 광고와 홍보 글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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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 측은 젊은 구매층의 흥미를 끌기 위해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상품을 보다 세련된 느낌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외래어의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내용보다는 겉치레를 중시하는 우리 세대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상이 지나치면 문화적 갈등을 촉발시킬 수 도 있다.





보그체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


나는 몇 달 전 패션 언론계에서는 유명한 기자분께 용기 있게 메일을 보냈다. 그분에게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상담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사실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준건 그 기자분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때문이다. '사람들은 패션 용어가 어렵고 그걸 순화해서 표현하라고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나도 일을 하면서 수많은 패션 용어들을 접한다. 처음 패션 용어를 접할 때부터 외래어로 이해하다 보니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 어려운 표현도 있다. 예를 들면 '모던룩'은 '현대적인 룩'으로 바꿔서 이야기할 수 있으나 모던룩과 현대적인 룩은 좀 다르다. '모던'은 현대적인 의미와 함께 모노톤(Monotone)이 주가 되고 화려한 디테일이 생략된 룩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룩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사실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패션 업계 종사자들은 패션을 설명할 때 이렇게 섬세한 표현이 필요할 때가 많다.

2079_7248_2027.jpg 클럽 모나코의 모던룩

문화의 융합이 벌어지는 공간에서는 이런 기형적으로 보이는 문장들이 자주 보인다. 앞서 이야기한 의학뿐만 아니라 요리 분야에서도 낯선 언어가 종종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개념이 특정 문화권의 언어를 통해 주로 형성된 것이라면, 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해당 분야 사람들과 소통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는 패션 용어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이번 시즌 트렌드 컬러를 설명할 때 '로즈 쿼츠'나 '세레니티'의 색상을 한글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로즈 쿼츠를 딸기우유를 잔뜩 머금은 핑크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장황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물론 이 표현은 내 주관적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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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용어를 공부하고 싶다면


아이러니하게 보그체를 사용하는 패션 잡지에서는 패션 용어를 따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패션 용어는 빠른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 특성상 새로운 단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패션 용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의류학과의 전공 디자인 책을 읽어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전공서적을 사면서 공부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블로그를 활용하는 것이다. 괜찮은 패션 블로그 몇 개만 알아두면 웬만한 트렌디한 단어들은 눈에 익힐 수 있다. 또한 '어패널 뉴스'나 '패션 비즈'와 같은 뉴스 채널을 구독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요즘은 SNS의 팔로우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접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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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외래어를 사용하는 보그체는 분명 변해야 한다. 하지만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패션 용어를 무조건적으로 비난을 하는 자세도 매우 위험하다. 사람들이 모든 패션계의 단어들을 일일이 비판하는 불온한 심리를 덜었으면 한다. 물론 제대로 된 패션 사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나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끊어낼 수 없는 패션 분야가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들과의 잦은 소통을 지속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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