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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어려움

by 김이서

초등학교 6년의 기억은 사실 전혀 없다. 친구들과 놀았던 운동장이나 급식실, 함께 거닐었던 문방구가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6년 동안 반에서 1등을 했던 사실만 기억한다. 국, 영, 수 1등이 아니라 일기장에서 A+를 받은 개수로 1등이었다. 일기장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했다. 어른이 되어 일기장을 읽어보니 '동생과 목욕탕 간 날', '이를 뽑은 날' 등 사소한 하루 일과가 일기가 되어있었다. 글이 쓰기 싫을 땐 시를 써서 하루의 일기를 완성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글쓰기는 자연스레 멈췄다. 연필을 들고 글자를 적기보다 방정식 x와 y를 한글보다 더 많이 썼고, 글은 단지 읽기만 했다. 글을 많이 쓴 경험이 있었지만 언어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많이 좋지 않았다. 수학과 영어의 수능 성적은 괜찮았지만 언어가 발목을 잡았다. 참 희한한 일이다.


대학생이 되며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꾸렸다. 학교에 소속되어 있지만, 수업 이외의 시간은 모두 컨트롤할 수 있었다. 우연히 친한 친구와 시작한 '기자단' 활동이 첫 대외활동이었다. 그렇게라도 글을 다시 쓰고 싶었다. 한 달에 두 건, 취재를 다니며 글을 썼고 기사가 올라갔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쓸모없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을 뒤늦게 '패션 저널'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에서 깨우쳤다.


대학교 3학년 때 신문방송학과 수업을 들으며 나의 스승님 '강준만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첫 수업 오티에서 교수님은, '언론고시 모임이 있는데 혹시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은 금요일 오후 2시에 만나요' 라며 수업을 끝마치셨다. 쓴 글은 단 한줄도 없었지만 모임에 참석했다. 글도 모르는 주제에,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간 강의실. 그들의 눈빛과 책상에 놓인 글이 무서웠다. 첫날은 그렇게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졸업생 선배들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 주, 조용히 앉아 교수님께서 사주신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 수업 3주 차, 처음으로 용기 내어 글을 써서 교수님께 보내드렸다. 첫 글은 '놈코어'에 관한 글이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패션 칼럼을 썼다. 3주 차 글에는 내 글이 마지막에 포함되어 있었다. 첫 글이었는데, 뜻밖에도 교수님의 칭찬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선배들의 피드백도 얻고 다음 글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들 안에서 내 글이 읽히고 교수님의 첨삭을 받으면서 패션 저널에 대한 영역을 확장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후로 글감을 찾고, 해외 기사를 읽고, 학교 도서관에 있는 모든 패션 서적을 읽어 나갔다. 로리타와 패션, 젠더 패션, 패션 인문학, 지속 가능한 패션 칼럼 모두 그때 글쓰기 수업을 들은 1년간 써 내려갔다.


아쉽게도 1년이 지난 후 취업과 동시에 글쓰기 수업을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패션 칼럼으로 00 씨의 글을 계속 읽고 싶고,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길 바란다'는 교수님의 말씀과 함께 나는 패션을 글이 아닌 업무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회사생활 동안 엄청나게 많은 패션을 보는 시각을 익혔다. 그 영역을 이루 말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하며 성장했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사실은 확고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글을 쓰는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지금도 내 머릿속, 아이폰의 메모장과 링크를 걸어놓은 수많은 자료들에는 글감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기에는 아직 공부가 부족했고, 다시금 글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이 공존했다. 수준 높은 글을 쓰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욕심을 가지고 글감을 찾으며 밤새 글을 썼던 그 순간이 그리웠다. 내일 출근을 위해 쉬고 싶다는 핑계는 아닐지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누가 글을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 스쳐 지나가는 하루가 두렵다. 나는 분명 하루의 경력을 쌓고 있지만 나 자신의 사유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레프 톨스토이는 '매일 작업하지 않고 피아노나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까. 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라며, 나탈리 골드버그는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다.'라고 했다. 글을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밤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고 무엇이라도 써 내려갔다. 오늘의 글쓰기가 사유를 불어넣고, 글 한편이 완성되어 다음 패션 칼럼을 위한 시작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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