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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초대받은 집

by 김이서

특별하지 않은 여행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번 파리 여행은 좀 특별했다. 시간을 거슬러 대학교 2학년 동아리에서 친해진 프랑스 친구 멜라니는 한국에 있을 무렵 함께 카페를 가거나 내가 일했던 편집샵에 찾아오기도 했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날, 터미널에서 멜라니는 울음을 터트리며 '절대 성형 수술하지 마!'라는 충고를 했던 유쾌한 친구다. 우리의 연락은 페이스북 메시지로 거의 뜸해졌지만, 꼭 파리에 놀러 오라는 멜라니의 말에 2년이나 지난 2017년 5월 황금연휴에 나는 파리행 티켓과 함께 파리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기간은 10박 11일, 프랑스인 친구 집에서 머문다는 일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많았다. 우선 100만 원 가까이하는 숙박비를 아낄 수 있었다. 소매치기와 강도로 악명 높은 파리에서 다행히 친구가 인턴십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늦은 저녁엔 함께 돌아다녔다. 10일 동안 매일 다른 음식으로 나에게 프랑스 가정식을 선보인 멜라니의 엄마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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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의 방에는 2층 침대가 있었다. 멜라니는 날 배려해서 자기가 2층에서 자겠다고 하고는, 멜라니의 엄마와 함께 내가 잘 침대의 시트를 새로 깔아 주었다. 추울까 봐 꺼내 준 하얀 극세사 담요와 베개, 쿠션까지. 이렇게 포근한 잠자리는 또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프랑스인의 감성적인 무드를 느낄 수 있었다. 멜라니 엄마는 머리맡에 초록색의 작은 테이블 위에 두 개의 스탠드를 놓아주었다. 보통은 조명까지 신경을 쓰지 않지만, 편하게 잘 수 있게 머리 위에 핑크색 공룡 조명을 껴주셨다. 덕분에 나는 잠들기 전 빛과 함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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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여행을 마치고 멜라니의 집으로 돌아가면, 미묘하게 무언가 바뀌어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어제와 다른 꽃이 놓여 있고, 다른 컬러의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달라진 물건들을 보며 나는 멜라니의 엄마께 항상 감탄의 추임새를 보였다. 내 반응이 좋으셨는지 어느 날 밤에는 새로운 조명을 거실에 켜두셨다. 바로 장미 형태의 붉은빛을 내는 조명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작은 소리를 지르고 예쁘다고 연신 말을 내뱉었다. 멜라니 엄마는 무척이나 뿌듯해하셨다. 그날 밤 붉은색으로 물든 거실의 온기는 무척 따뜻한 감흥을 전달했고 우리는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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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멜라니의 부모님, 동생과 함께 보드게임을 즐겼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가족 문화와는 다르게, 프랑스에서는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멜라니는 보드게임을 제안했고,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비교적 쉬운 우노로 시작했다. 노란색은 '쥰', 빨강은 '호쥬', 초록은 '베흐'라고 발음하는 것을 자연스레 배웠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나는 우노에서 엄청난 연승을 거두었고 멜라니 가족과 하나가 되었다.

과연 한국에서 가족끼리 보드게임을 한 시간 동안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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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 가족은 대화를 많이 했다. 여행을 하는 도중 프랑스 대선이 있었고 루브르 광장 앞에서 대통령의 취임 연설이 있었다. 다행히 멜라니 가족은 모두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었다. 멜라니 아빠는 나에게 박근혜 구속에 관해 굉장히 궁금해했었고 나는 심히 부끄러웠다. 다행히 프랑스에 있을 당시 한국도 새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나는 멜라니 아빠에게 '문재인' 대통령을 새롭게 알려 드렸다.


10일간 프랑스 가족과 지낸 시간은 무척이나 짧기도 했고 동시에 새로운 일상의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모든 문화를 면밀하게 체험하진 못했지만, 난 여행자인 동시에 10일 동안 멜라니의 가족이 되었다. 다음은 프랑스 가정식의 '음식'편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여행을 가기 전 읽기 꺼려했던 여행 에세이가 얼마나 중요하고 보석 같은 글인지 깨달았다. 모두에게 완벽한 여행이란 없듯이, 나도 완벽한 여행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여행을 함께 글로서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매력있고 삶의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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