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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서 젠더를 읽는다

by 김이서

20세기 초, 대략 10년 동안 레즈비언의 존재가 깨끗하게 사라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복장에 따라서 어떤 부류인지 분간을 할 수 있었고, 의복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겉모습만 봐도 어디에 소속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20세기 초의 동성연애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지향을 표현함과 동시에 그것을 숨겨주는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 마치 한 가족처럼 비슷한 옷을 입어 자매로 분장하여 자신들의 성적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기도 하였고, 남성복이나 여성복을 맞춰 입고 자신들의 관계를 드러내면서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성별을 확실하게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는 의복의 기능은 패션에서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의복은 그 의미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 동시에 패션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자신이 원하는 흐름으로 사람들을 유도할 수 있다. 스타일의 규정성을 깨뜨리는 디자인을 꼽자면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디자인한 ‘반半 드레스의 도시 신사 패션’을 예로 들 수 있다. 칼라는 어긋나고 넥타이도 삐뚤어져 있는 신사셔츠에 사타구니에 무화과 잎이 새겨져 있거나 페니스가 그려진 팬티스타킹을 신은 여성 패션이다.

이와 가깝게 연결될 수 있는 패션 용어가 바로 ‘유니섹스’ 이다. 성별의 규범에 의문이 제기되었던 20세기에 유니섹스는 패션의 심플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유니섹스는 말 그대로 젠더 사이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하지만 반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이 착용자의 옷으로 나타나게 되어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패션 뉴스 기사에 자주 실리는 ‘유니섹스룩’은 소비자들에게 기성 패션의 속박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결론적으로 패션 시장은 성별의 정체성을 산산이 부수고 재구성함으로써 상품의 매상을 올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자동차, 의복, 화장품과 같은 상품들은 성별이 구분되고 컬러나 디자인에서 시각적인 성차가 드러난다. 복잡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패션에서의 젠더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패션을 젠더로 구분 짓는 것보다는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패션과 젠더는 분명 사회적 편견과 저항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과 젠더를 무리해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구성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패션과 젠더가 다양한 사회 현상을 넘나들면서 동시에 ‘패션학 담론’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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