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터틀넥과 진한 데님 팬츠에 뉴발란스 운동화를 매치하고 강연을 하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입는 스웨터와 티셔츠를 연상할 때, 이들을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2014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놈코어’가 하나의 패션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이 패션 아이콘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놈코어가 무엇이기에, 스티브잡스와 마크 저커버그를 패셔너블하게 만들었을까?
‘norm(표준, 일반적인)’과 ‘hardcore(핵심, 절대적인)’가 합쳐진 말로 2014년에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신조어로 등록한 단어이다. 놈코어는 청바지나 셔츠, 스니커즈 같은 베이직한 아이템에서 시작된다. 옷장 속에서 누구나 한 벌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아이템을 매치한다는 것이 쉬워 보일지라도, 사실 놈코어 스타일을 제대로 구현해내기란 꽤나 철저한 일이다. 앞에서 소개했던 스티브 잡스역시 이세이미야케의 터틀넥을 즐겨 입어 생산이 이미 종료된 제품을 일본 본사까지 직접 연락하여 수백 벌을 특별 주문했다는 일화까지 있다. 놈코어는 한마디로 ‘지극히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 이쯤에서 왜 놈코어가 2015년 패션 트렌드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매 년 바뀌는 패션 트렌드에 지치고 항상 새롭고 유니크한 것을 추구해야하는 패션 세계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 아닐까싶다. ‘세상도 복잡하니 옷이라도 단순하게 입자’라는 생각과 편한 옷을 입고 ‘나 좀 제발 내버려 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이러한 놈코어가 패션의 높은 장벽을 넘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평범함이라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욕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이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경향 때문에 보편적인 트렌드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패션의 철학을 자기 스스로 정하겠다는 사람들의 증가로 인해 놈코어의 흐름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편안함과 자연스러움 속에서 자신을 보여주겠다는 신념이 강해진 것이다. 세 번째로는 경제적인 흐름도 무시될 수 없다. 경제의 불황으로 소비 유도 방향이 틀어질 때,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패션 분야이다. 새로운 옷을 입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됨으로 몇 년이 지나도 유행에 따르지 않고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아이템들을 구입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놈코어 대세의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물질 만능주의에서 일상의 행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명품 브랜드에 집착을 하면서 매 시즌 런웨이 룩을 그대로 빼입는 것에서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의 한정된 소비 여력을 내가 좋고 편한 것에 집중을 하고 싶어 한다. 이런 흐름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예로, 최근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여느 스타들과 달리 두 사람은 강원도 정선에서 극비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은 재력을 과시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름기를 뺀 일상의 행복이라는 본질로 보았다는 것이다. 패션 분야에서만 시작된 놈코어가 결혼식 문화까지 확장되면 어떨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비 욕구에 대한 변화 트렌드는 어떤 분야에든 관심 가질 트렌드 코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