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다시 꺼내 읽었다.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은 정말 어려웠다. 22살의 나는 이해하기 정말 어려웠다. 보이지 않은 것들이라 어려웠을까? 이내 책을 덮고 2년째 내 책꽂이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은 지나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책을 다시 펼쳤다. 20대 최고의 관심사인 ‘사랑’의 부분을 다시 읽었다. 막상 사랑한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진실로 사랑을 한다는 것은 평생 이루어낼 수 없는 단어였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놓아주는 것.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면서, 초현실주의처럼 상대방의 본연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책은 상대가 다른 상대를 사랑해도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는 마음이 드는 게 사랑이라고 한다. 진정한 사랑. 이게 무슨 소리일까. 평생 사랑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사랑 비스므리같은 것을 하면서 사랑의 감정에 조금씩은 가까워지지만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인가.
그런 사랑에도 배신은 있다. 나 또한 사랑의 배신을 겪어보았고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런데 사랑의 배신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분명 책에 의하면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놓아줄 때 사랑이라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본래 사랑은 주고받는 개념이 아닌 마음의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의 소통이 무너지면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어디까지가 사랑의 배신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예로 상대방에게 등록금을 빌려주거나, 차를 사주거나 나 자신의 빚을 져서라도 도와주었다. 하지만 상대는 나를 필요한 것만 쏙 골라먹어 편식했다. 이것은 엄연히 사랑의 배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의 마음이 식었다. 상대는 그래서 떠났다. 이건 배신이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나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내 일보다 상대의 앞길을 축복했지만 그는 다른 여자를 선택하여 행복한 앞길을 걸었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만들어준 앞길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걸을 수 있어.. 나쁜 놈..’ 라며 몇 개월을 통곡하며 지냈지만 지금은 초연하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기에 나는 또 다른 갈림길을 만났고 그 길을 열심히 걷는 중이다. 물론 길을 걸으면서 또 다른 길을 걸을 수는 있겠지만 내 앞길이 행복할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사랑의 배신은 아니었던 걸까.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우리에게는 행복한 길이 무수히 존재하기에 사랑의 배신이라고 정의하기보다는 다른 길을 찾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화가 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