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이는 잔잔하고 현실적인 스토리에 감명을 받지만, 돈과 시간을 날렸다며 악담을 퍼붓는 이도 적지 않다. 단지 예고편만 보거나, 음악을 다 들어보지 못하고 티저 영상만 보고 '별로다'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작품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는 비난이 언젠가부터 불편해졌다. 창작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의 특성상 칭찬과 비판의 가능성은 물론 열려있다. 하지만 무논리로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다며 제대로 된 비판 없이 비난하는 사람들을 언제부턴가 가까이하기 무서워졌다. 어쩌면 이들은 만난다면 속으로 나에 대한 비난을 끊임없이 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싸 하게 상상되곤 한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작품을 평가하는 한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투자와 가치가 들어간다. 음악 사진집을 만들 땐 퇴근하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채 편집을 했다. 인쇄소 사장님과 통화하며 끈질기게 수정을 거치고, 입고 문의 글을 보낸 서점에서 거절 문자가 왔을 때도 상처를 받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작품을 창작할 땐 얼마나 고생해야 하는지를 몸소 깨달았다. 책의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건 당연했다. 이전에 출판되었던 형식의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모든 메뉴얼을 직접 정해야 했다. 물론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했으니까, 너넨 내 작품을 비난할 자격이 없어!'라고 외치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작품을 좋아해 주고 감동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가끔은 호불호가 첨예하게 갈리기도 한다. '감성', '공감'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라며 나의 창작 과정과 글을 쉽게 평가하며 내 가슴을 후벼 파는 이도 있다. 처음엔 피드백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칼같이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객관적으로 들렸고, 어쩌면 작품보다 더 큰 힘을 지니는 듯했다. 하지만 임경선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작품을 비판하는 데에 한번 맛 들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너무나 쉽게 중독성 습관이 되고, 그러한 부정적인 방향의 계몽은 그 대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시킨다고 언급했다.
창작은 고통스럽지만, 창작을 평가하는 사람보다는 창작의 고통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평가하는 사람은 작품의 느낌과 주관적인 견해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창작을 한 사람은 작품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게다가 작품이 없다면 어떤 평가도 이루어질 수 없다.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작품을 볼 수밖에 없지만, 창작을 해내는 사람은 그 비난을 얼마든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