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킨포크와 북유럽 휘게, 스웨덴의 라곰.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발맞추어 해외 라이프스타일 개념을 전체적으로 담아내는 삶의 스타일 열풍이 불고 있다. (노르웨이 '프리루프트슬리브(friluftsliv)도 최근 언급되고 있다)
각국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단어로 책을 출판하거나, 기업에서는 온라인 마케팅의 요소로 활용한다. '휘게 라이프를 꿈꾸는 러그'나 '킨포크적인 느낌의 카페'처럼.
각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세련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삶은 매우 각박하다. 자신과의 경쟁에서 싸우는 이들보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싸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인정을 받고 난 후 행복함을 느끼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삶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진다.
킨포크와 휘게, 라곰은 여유로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급변하는 세상의 트렌드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영위하는 삶을 지키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쓸데없는 낭비를 삼가고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무조건적으로 해외 라이프스타일 단어에 집착하며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지속 가능한 소비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인드 같은 부분은 우리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오랜 시간 전해져 내려오는 한국만의 자랑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한다. 바로 정(情)이다.
롤라 오케르스트룀의 <LAGOM>에서도 소개되었듯이, 라곰을 무언가로 정의하기 힘들다. 라곰은 보통의, 평범한, 남들과 적당히 맞추는 어떤 경계선에 위치한 무언의 약속 같은 단어라고 설명한다. 우리의 정도 그렇다. 정을 한번 설명해볼까? 음, 쉽지 않다. 나누어 주는 것? 낯설어하는 이에게 베푸는 배려? 좀 더 구체적인 상황으로 표현한다면 이사 후 돌리는 시루떡으로 설명하기도 좋겠다.
개인이 정에 대해 갖고 있는 경험은 매우 다채로울 것이다. 나는 최근에 마트에서 정을 느꼈다. 대부분 공감하지만 혼자 살게 되면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일이 쉽지 않다. 매일 대충 끼니를 때우다가 어느 날 쫀득쫀득한 닭강정이 먹고 싶어 졌다. 마침 마트에 가니 50대 정도로 보이는 직원분께서 군침도는 닭강정을 달달 볶고 계셨다. 닭강정을 구입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후, 직원분께서는 "고기도 먹고 건강해야 엄마가 덜 걱정하실 거예요."라며 닭강정을 크게 한 주걱 더 담아주셨다.
매일 가는 요가원에서는 내 이름을 기억해준다. 속이 좋지 않아 혹시 비상약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여쭤본 적이 있다. 약이 어디로 간 건지 원장님께서는 약을 계속 찾으셨다. 나는 운동이 끝나고 약국에 가도 된다며 찾아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을 드리고 요가룸에 들어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요가원 1층에 위치한 약국에 바로 가셔서 까스활명수 한 병과 소화제 한 팩을 곧바로 사 오시고는 조용히 나에게 건네주셨다. "한 알로 괜찮아요? 한 알 더 드릴까요?" 끝나고 약을 살러 갈 수도 있었는데, 원장님께서는 마음이 편치 않으셨나 보다.
생각보다 정의 범위가 너무나 협소한가? 부쩍 거창한 의미로 해석되는 라이프스타일은 우리가 하루를 살며 느끼는 감정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설명할 수 없는 정이란 이런 경험이고, 한국은 아직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해외에도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정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마 그들은 우리의 문화가 간섭적이고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은 단지 정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뿐, 정 속에 살아가며 사소한 감동과 행복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감싼다. 한 나라에서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동시에 정을 이야기하는 게 참 모순이다.
'정'이 '헬'을 조금이라도 다독일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