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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서 May 12. 2019

<헤이조이스 북토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관계로 살아가는 것은 기분 좋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몇 달 전 엄마에게 원목으로 된 무인양품 화장대를 살지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무인양품 화장대를 보기도 전에 "결혼하면 사!"라고 매섭게 대답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가구 구매 기준 시점은 결혼이었다. 백화점 그릇 코너에 가면 엄마가 단골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결혼하면 엄마가 반찬 그릇, 김치통 담는 그릇, 국그릇 다 세트별로 사줄게", "결혼하면 침대는 OOO브랜드에서 꼭 사야 해!" 


엄마가 당장의 결혼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4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 몇 년 안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엄마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엄마가 생각하는 딸의 결혼 생활이 와르르 무너질 거다. 나도 모르게 30살 이전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난 후 결혼의 유예 기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책을 쓰신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 대신 함께 살며 2년 반 가까이 즐겁고 건강한 40대를 보내고 계신다. 헤이조이스 북 토크를 통해 작가님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들으며 지금까지 결혼에 규정지은 얄팍한 신념이 산산조각 깨지고 있었다. 아주 멋진 두 분이었다.




즐겁고 건강하게 40대를 살아가는 법



"왠지 결혼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올린 선우님의 트위터가 동거의 첫 시작이었다. 선우님은 외롭게 고립돼서 살고 싶지 않으며 멋쟁이 싱글들이 모여 함께 실버타운에 사는 게 꿈이었다. 하나님은 선우님 트윗에 "나도 그렇다"는 댓글을 다셨고 지금 두 분은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생각하는 것을 끄집어내서 말을 많이 해야겠다고 선우님이 말씀하셨을 때, 전적으로 깊이 공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알리고 의견을 묻는 것보다, 혼자 해결하고 결정해서 완성이 되었을 때 말하는 편을 좋아했다. 하지만 선우님처럼 내 생각을 널리 말하면 분명 도와줄 사람이 생기고, 나는 그 말에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뭐든지 입 밖으로 꺼내 놓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은연중에 전달되기 마련이다. 




모르기 때문에 인생에서 용감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집을 사기 전에 선우님은 집을 산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선우님은 지금까지 전세로 살고 계셨다. 전세는 집을 사지 않고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집을 살 수 있다고 선우님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하나님은 프리랜서로 일한 기간이 길었기에 대출에 대한 문턱이 있었지만, 내 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가 있었다. 


책에서도 좋아하는 챕터 중 하나인데, 59쪽에서 황선우 작가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큰 대출을 얻고 또 갚아보면서 내 배짱은 아주 조금 도톰해졌다. 또 하나 배운 교훈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뭔가를 영원히 피해 다닐 수 없다면 제대로 부딪쳐볼 필요도 있다는 거다. 늘 머물던 안전지대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보면 세상에 생각해온 것만큼 큰 위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겁쟁이일수록, 위험한 상황을 좀처럼 만들지 않는 자신의 본능적 감각을 믿어봐도 좋을지 모른다."




티비를 숭배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작가님들은 집을 처음 샀을 때와 인테리어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주셨다. 이사할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 살고 계신 집이었고 곳곳에 짐이 많아 매우 어두웠다. 집은 곳곳의 체리색 몰딩 때문에 더욱 비좁아 보였다. 작가님은 새롭게 공사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거실이 티비 중심으로 벽장, 책꽂이, 소파 위치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한국에서 살면서 거실에 티비가 없는 집은 드물다. 모든 집은 한가운데에 티비가 굳건히 놓여 있다. 그렇다 보니 티비가 없는 거실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스스로 줄여 나가는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거실 한 면을 모두 책장으로 꾸밀 수도 있고, 푸르른 식물이나 널찍한 테이블로 쾌적한 거실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안도 타다오가 밋밋한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로 외관보다는 내부 공간을 중요시했듯이, 꼭 남들이 다 하는 방식대로 살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요리를 맡는 선우님과 설거지를 담당하는 하나님은 함께 모여 맛있는 저녁 식사 시간을 보낸다.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두고 둘이 함께 합심해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선우, 하나님은 같이 생활하는 것도 한 팀이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동거인과 의사 결정을 하고 룰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일을 해도 내가 모든 업무를 전부 다 하지 않듯이, 내가 잘하는 부분에 집중할 때 퍼포먼스가 나오고 역할 분담을 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선우님은 30대까지만 해도 혼자서 뭐든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주변에 도와달라는 말을 못 하는 이상한 자존심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하나 작가님과 함께 살면서 나 혼자 모두 해내야겠다는 것보다 내가 품을 내어 주고 그것이 내 힘을 더욱 키울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늦게 아셨다. 주변에 힘을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2시간 동안 북 토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가족과 관계로 살아가는 작가님들의 이야기는 무척 즐거웠다. 작가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안정감 있는 하나의 공동체에 대해 기분 좋은 상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함께 책을 쓰시며 생산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고, 한 편이 완성될 때마다 서로 보여주며 각자가 신뢰할만한 독자라고 생각했다는 말씀에 두 분의 지속된 세계의 신뢰가 진심임을 느꼈다. 


누군가와 같이 책을 쓰고 함께 사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에 대해 배우고 창의적인 재해석을 갖게 만들어 준다. 혼자서 하는 고독도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인생이기에 앞으로의 나만의 삶을 재치 있게 상상해보고 싶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분자 개념의 가족으로 살아갈까. 어떤 형태의 삶이든 거실 중앙에 TV를 놓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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