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조이스 공간 마케팅 미니밋 후기
헤이조이스에 흥미로운 미니밋이 오픈했다. 기존에 마케팅 비즈니스 내용과 조금은 결이 다른 '공간 마케팅'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모임이다. 20년 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경미, 정은아 작가의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를 읽고 공간을 마케팅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일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된 모임의 첫 순서는 역시 자기소개였다. 공간 마케팅 모임답게 관련 업계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이 오셨다. 공간 인테리어 플래닝 디렉터, 기관 교육 프로그램 운영랩 CEO, 공인중개사 등 다양한 공간 인사이트를 전달해주신 분들이었다. 나 또한 스타트업에 일하기 전에 패션연구팀에서 VMD 관련 업무를 지속해서 해왔던 터라, 공간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자기소개가 끝난 후 현업에서의 핫토픽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본격적으로 책에서 각자 영감을 받은 부분에 대해 대화를 풀어 나갔다.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가 성공하듯이, 스토리가 담긴 공간은 고객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인식된다. 체계적으로 공간을 구성하지 않고 무조건 예쁘고 비싼 공간 디자인만 생각한다면 혼란만 가중되고 정체성을 잃은 공간으로 변질된다. 나는 이런 공간을 '숨이 없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다.
최근 5년 사이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SNS 추세가 넘어가면서 핫하고 힙한 공간이 대세로 떠올랐다. 하지만 대세로 떠오른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가게, 저 가게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비슷해 보이는 드로잉 그림, 공간 한 면을 가득 차지하는 스투시, 원형 대리석 테이블 등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곤 했다.
책에서는 공간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 '목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공간을 기획하는 목적을 통해 디자인과 콘텐츠가 나오고 소비자가 이런 흐름을 타고 경험을 해야 그 공간만의 '맥락'이 생긴다. 공간을 직접 경험할 소비자 니즈를 고려한 위치 선정과 소비자의 만남이 공간의 목적이다. 콘텐츠 마케팅이 그렇듯 공간도 소비자를 첫 번째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목적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흔들리지 않는 컨셉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맥락이 있는 공간을 꼽자면 가로수길에 위치한 '탬버린즈(tamburins)'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탬버린즈 홈페이지에 아래와 같이 스토어를 설명하고 있다. 매장을 단순히 제품 판매 공간이 아니라 제품이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소비자에게 적절하고 그 촉감과 향은 어떤지 모든 스토리를 공간의 흐름으로 경험하게 한다. 시간이 있다면 탬버린즈 매장 방문은 꼭 추천한다! (1년에 2번 정도 리뉴얼을 하기도 한다)
매장 그 이상의 공간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탬버린즈가 친절히 도와드립니다.
공간을 구성할 때 시각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지만, 공간에 대한 첫인상은 후각적인 자극에 먼저 반응하여 형성된다고 한다. 인간의 감정을 결정하는 75%는 후각이다. 비슷한 공간들이 각자 다른 이미지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간마다 가지고 있는 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나, 호주 멜버른에서 탄생한 이솝(AESOP) 매장들은 적극적으로 제품의 향을 자극한다.
실제로 이솝 매장을 가보면 원하는 제품을 개수대에서 직접 사용해보도록 스태프가 도와준다. 제품에 대한 설명과 직접 손으로 제품을 느껴보도록 부드럽게 손 위에 도포한다. 그다음 온전히 내 피부에 남은 향을 내 것으로 만들어준다. 내가 방문한 파르나스몰 이솝 매장은 구매를 하고 이솝에서 직접 끓인 따뜻한 차와 빵을 준비해주셨다.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마지막으로 감동 포인트까지 이솝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력을 몸으로 실현시켜 주었다.
공간의 티핑포인트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된다. 가령 소비자의 동선을 고려한 상품 배치, 공간에 어울리는 조명의 조도, 스태프의 태도 등이 소비자가 공간에 느끼는 '티핑포인트'가 된다. 나는 스태프에 대한 서비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소비자에 대한 배려를 하는 태도를 갖게 되면, 작은 배려의 개선이 공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콘텐츠 마케팅에서는 이를 페르소나 마케팅이라고 말한다. 가상의 소비자를 설정하고 그 입장에서 공간과 서비스를 경험하고 경험을 개선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공간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비자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을 주게 되면 시각적 자극이 많아지기 때문에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동선을 만들고 거울을 사용하여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등의 티핑포인트가 필수다. 이런 공간은 독립 서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비교적 대형 서점보다 작은 공간에서 책을 판매해야 하는 독립서점은 소비자에게 구매를 도와주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인아 책방, 동아서점, 당안리책발전소처럼 완벽한 큐레이션으로 팔릴 만한 제품을 소개해주는 방법, 책마다 책갈피를 꽂아 간단하게 책에 대해 설명해주는 소비자에 대한 배려 등 공간만의 티핑포인트를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로 책에 대해 느낀 점을 공유하고 내가 생각하는 핫플레이스의 이유와 공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방안을 함께 토론했다. 나는 책의 프롤로그 11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을 읽으면서 의견을 공유했다.
"공간의 본질은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있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는가?'가 메시지이고, 컨셉이며, 브랜딩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공간을 객관화하는 과정이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중략) 일본의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즈노 마나부가 말했듯이 브랜딩을 위해서는 '보이는 방식을 컨트롤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요즘의 공간 마케팅은 단순하게 상품만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소비자의 경험을 디자인해야 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하는 맥락, 오감, 티핑포인트를 고민하여 공간의 역할을 계속 진화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헤이조이스 공간 마케팅 모임을 통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영역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