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담아 쓰자
오늘 한 페친 분이 잡지(샵매거진 아님)에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구하길래 내 평소 생각을 편하게 말씀드렸다.
잡지에 어울리는 글이란?
잡지는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문체적 방법론은 딱히 없는 것 같다. 같은 잡지 매체더라도 그게 패션지냐 전문지냐에 따라서, 같은 패션지 안에서도 남성지냐 여성지냐에 따라서 그리고 같은 매체 안에서도 필자에 따라서 유효한 문체와 감수성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샵매거진만 딱 봐도 편집장님과 내 문체는 엄청 다르다.
다만 내가 생각할 때 모든 잡지 매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규칙이 있다면 '잡지는 시간 내서 보는 게 아니라 시간 날 때 보는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전문지더라도 공부한답시고 그걸 교재 다루듯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잡지는 읽어야 할 당위가 독자한테 없다. 없는 당위를 필자가 만들어서 채워줘야 한다. 그래서 잡지 글은 읽는 맛이 있어야 된다. 재밌어야 된다. 조오ㅇ옹ㄴ나 재밌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느낀 점은 '글은 재밌게 쓰는 게 최고지~'라고 원래 그냥 생각했던 사람이랑 여러 맥락을 짚어서 재밌는 글을 써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사람이랑 성향이 엄청 다르다는 거다. 내 경우는 후자라서 생각 없이 막 쓴 것 같은 글도 실은 되게 고민해서 쓰는 편이다. 그래도 실패할 때가 많다. 타고난 감수성이나 재능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래서 잡지체에 맞춰 글 쓰는데 시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
잡지에 찍힌 활자에는 감정이 담겨야 한다
편집장님께 배운 것 중 나를 가장 바꿔놓은 딱 한 가지를 꼽자면 잡지에 찍힌 활자에는 감정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식과 정보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팩트만을 나열할 필요는 없다. 기사라면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야 할 것 같은데 아니다. 잡지 기사를 그렇게 쓰면 아무도 안 읽는다. 잡지는 그 팩트를 대하는 필자의 관점과 태도, 그에 담긴 감정도 함께 보여주자. 예를 들어보자.
"흡입력이 좋은 탓인지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집 개들이 짖고 난리도 아니다. 입구가 엄청 작을 것 같지만 발목을 넘는 양말을 흡인한 적도 있다. 흡입구에 숨어 있는 롱 노즐을 뽑아서 소파 틈새, 에어컨 뒤, 선반 위 등 손이 안 닿는 곳을 손쉽게 청소할 수 있어서 가끔 얘가 내 남편이면 좋겠다. 21평짜리 집 한 번 싹 훑으면 방전돼서 살짝 아쉬운데 이걸로 온 집 안을 청소한다는 발상 자체가 등신 같다는 걸 알아서 참고 살고 있다."
위는 내가 샵매거진 10월호에 쓴 리뷰 기사 일부다. 신혼 생활을 하며 청소기를 직접 사용하는 분께 코멘트를 받았는데 일부러 감정선을 극대화 시켰다. 훨씬 흡입력 있고 제품에 대한 애정이 절로 느껴진다.
그 외의 몇 가지 노하우
1. 주제 잡는 방법
나는 주제를 잡기 힘들 때 일단 첫번째로 내가 이 매체를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지 다 생각해본다. 두번째로 그렇게 떠오른 수많은 것들 중 지금 독자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지를 추린다. 그럼 몇 개 안 남는데 이중에서는 내가 쓸 때 가장 재밌는 주제를 택한다. 그럼 얼추 평타는 친다.
2. 외부 필진 글을 편집할 때는
나는 외부 필진 글 편집할 때도 그 필진의 타고난 개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전문 분야에서 글을 업으로 삼지 않는 이는 처음 글을 쓸 때 자기가 어떻게 글을 써야 더 매력적인지 잘 모른다. 너무 당연하다. 이때 편집자에게는 그걸 '발명'할 역할도 있다. 그렇게 발명되고난 필진은 갑자기 무섭게 잘쓰기 시작한다. 그럼 편집자가 에디팅 할 물리적 시간이 줄어드니까 서로에게도 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