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메뚜기들.

Feat. 장고: 분노의 추적자

by 아스파라거스

우리나라에는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넘쳐난다.
부처마다, 지자체마다, 공공기관마다 자기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하나씩은 들고 나온다. 겉으로는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겠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작 초기와는 거리가 멀다.

심사위원들이 묻는 질문은 늘 비슷하다.
최근 매출 성장률은? 팀원의 경력은? 향후 예상 매출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질문들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팀은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팀이다.
진짜 초기 스타트업은 제품도 덜 만들어졌고, 매출은 0에 가깝고, 첫 고객도 아직 겨우 시도 중이다.
그래서 가장 인큐베이팅이 필요한 팀들이 가장 쉽게 탈락한다.

결국 지원금은 두 부류가 가져간다.
이미 잘 나가고 있는 우량 기업들, 그리고 지원사업 메뚜기들.

메뚜기 창업자의 진짜 사업 아이템은 ‘지원금’이다.
봄에는 AI 스타트업, 여름에는 ESG 소셜벤처, 가을에는 로컬 크리에이터 플랫폼.
정책 키워드가 바뀔 때마다 회사 소개서와 사업 계획서의 타이틀이 함께 바뀐다.
이건 우리가 말하는 ‘피봇’이 아니다. 피봇은 시장의 반응을 보고 방향을 틀지만,
메뚜기들은 시장 대신 공고문을 본다. 고객 대신 심사위원을 상상한다.
그들의 나침반은 고객의 문제와 욕구가 아니라, 올해 쏟아지는 지원사업의 테마와 예산 방향을 가리킨다.
우량 기업이 지원금을 받는 것도 구조적으로는 문제지만, 그래도 그들은 최소한 실제 사업을 한다. 지원금이 있든 없든, 어느 정도는 성장할 팀이다.

메뚜기들은 다르다. 그들이 받는 돈은, 다른 초기 팀이 가질 수 있었던 기회비용이다.
메뚜기 한 팀이 들어오면, 진짜 초기 한 팀이 밀려난다. 단순한 비효율이 아니라 적극적인 가치 파괴다.
생태계도 오염된다. 성실한 창업자는 고객 문제를 붙잡고 밤을 새우는데, 메뚜기는 지원서만 붙잡고 밤을 샌다. 시간이 지나면, 고객 가치보다 공모전 스킬이 더 중요해 보이는 이상한 학습이 생태계 전체에 퍼진다.

이 메뚜기 문제를 단순히 도덕성으로만 설명하면 반은 놓친다. 이건 상당 부분 시스템이 만들어낸 필연이다. 지원 정책이 많을수록 메뚜기에 유리하다. 선택지가 많으니까.
프로그램이 3개월, 6개월짜리 단기 성과 위주일수록 메뚜기에 유리하다. 실제 시장 성과를 내기엔 짧지만, 그럴듯한 발표 자료를 만들기엔 충분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기관끼리 서로 정보가 연결되지 않을수록 메뚜기에 유리하다. 어디서 무엇을 받았는지 추적이 안 되니, 지원사업 포트폴리오를 마음껏 쌓을 수 있다.
평가가 서류 중심일수록 포장력이 승부를 가른다. 진짜 사업을 하는 것보다 지원금을 받는 게 더 쉽고, 고객을 설득하는 것보다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게 더 쉽고, 시장에 나가 검증받는 것보다 서류로 자신을 증명하는 게 더 쉽다면, 사람들은 결국 그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된다.

문제의 뿌리는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그렇게 설계된 인센티브 구조에 있다.
인큐베이터는 메뚜기를 키우는 장치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시스템은 메뚜기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공급하는 자동 급식기처럼 돌아간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아도, 진짜 고객을 만나지 않아도, 사업을 접을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지 않아도, 지원금만 잘 타면 계속 생존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메뚜기에게 지원금은 성장을 위한 연료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다. 지원금이 끊기면 사라질 회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