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과 이탈리아, 귀국길_글을 마치며
1. 다이어리를 펼쳤다. ‘돌아오는 날 : 교환학생 끝!’ 교환학생을 오기 전에 밝은 형광펜으로 칠해놓은 칸이 퇴색한 다이어리 위에서 어둑해진 채 낙엽이 져 있다. 벌써 6개월이 지났고, 이제 교환학생 생활은 끝이구나.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다이어리 위 디데이에는 반가움보단 이상한 서글픔이 녹아 있다. 끝은 항상 적막하고 괜히 서운하다. 참 재밌고 감동적이던 영화도 끝나는 시점엔 좋았든 혹은 싫었든 간에 엔딩마크가 찍히니 이 끝을 받아들여야지. 쉽게 인정하긴 싫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다. 6개월이란 기간의 객관적 길이보다는 그 기간에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느낌과 주관적 인상들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재미와 새로움으로 두근거리는 다채로운 6개월이 참으로 빨리도 지나갔다. 여름에 왔는데 벌써 햇살 밝은 봄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2. 지난주에 사 놓은 이탈리아산 홍시를 냉장고에서 꺼내 테라스로 나와 먹었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한다는 현실은 쓴데, 입 안은 참으로 달다. 홍시를 다 먹으니 햇볕은 따뜻하다 못해 날카롭고 따가웠다. 예전에 사람들이 태양을 아폴로의 금마차라고 믿고 엎드려 숭배하던 시절에,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라는 철학자가 태양이 그저 펠로폰네소스 반도보다 큰 불타는 돌덩어리라고 말했고, 그는 아테네에서 추방당했다. 오늘은 나도 하늘 위에 떠 있는 게 아폴로의 금마차라고 굳게 믿고 싶다. 왜? 그토록 그려온 디데이지만, 여기서 떠나고 싶지 않다. 방금 먹은 홍시, 이 열매 또한 식물의 진정한 끝을 의미하겠지. 홍시엔 씨가 없었지만, 보통 열매 안엔 씨앗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박혀있다. 진정한 끝을 햇살과 함께 꼭꼭 씹어 삼켰다. 그래, 교환학생은 끝나서 이제 귀국하지만, 또 새로운 시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자.
3. 가기 전에,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부채 기념품 위에 짧은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내가 ‘마지막 인사’라고 하니 한 친구는 “Last? Si, last”라며 되받아쳤다. (last는 형용사로 ‘마지막’이란 뜻이 있지만, 동사로는 ‘지속하다, 계속하다’라는 뜻이 있다) 친구들은 이건 다른 라스트라며 웃으며 말했지만, 입꼬리는 다들 내려가 있었고 몇몇 여자 친구들은 울기까지 했다. 함께 마지막 사진을 찍은 후, 머리 위 밝게 빛나는 태양을 올려다본 채 속으로 다시 한번 외쳤다. ‘저건 아폴로의 금마차가 맞다고!’ 소리 높여 외쳤지만, 마음속 그 왠지 모를 적막함은 찢을 수 없었다. 한 친구가 수업을 몰래 나와, 나를 말펜사 공항까지 굳이 태워준다고 했다. 나는 이미 예약한 기차가 있어서 계속 거절했는데, 친구는 말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진짜 이별이잖아. 그냥 가자”
4. 그라면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렇게 해서 친구의 차에 모든 짐을 싣고, 말펜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데 차 스피커에서 나오는 경쾌한 음악 소리도 무거웠다. 친구가 쭉 뚫린 도로로 달리는데 내게 물었다. “너 교환학생 생활하면서 후회되는 건 없어? 한국에서 이탈리아 또 오려면 큰마음 먹고 와야 한다며, 근데 크레마(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촬영지)에서 인증샷 안 찍고 가도 돼?” 6개월 전, 교환학생을 처음 오면서 혼자 다짐한 게 있었다. 남들이 설정한 이미지와 남들의 판단을 ‘나’의 가치판단보다 절대 우선시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또,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보단, ‘내’가 어떤 느낌을 받는지에 최우선 사항을 두기. 나는 친구에게 웃으며 말했다. “후회되는 건 전혀 없어! 토리노 영화 박물관에도 갔으니 정말 괜찮아. 그리고 크레마는 뭐 다음에 이탈리아에 다시 올 이유를 일부러 만들고, 약간의 아쉬움을 두고 떠나는 거지. 하하하” (이땐 이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꼴값 그 자체여서 혼자 막 웃었다) 해가 진 고속도로 주변을 둘러싼 나무 무리 속에서 아폴로가 몰래 숨어 우리의 대화를 엿듣곤, 흐뭇한 표정으로 우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5. 어쨌든,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면서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단 스스로 나의 기준과 나의 머리로 내린 선택과 결정을 최우선 가치로 뒀기에 생각나는 후회가 없었다. 말펜사 공항에 도착해 모든 체크인을 마치고서 가볍게 친구와 인사 후 비행기에 올라탔다. 내 좌석에 앉으니 이제 귀국하는 게 실감이 났고,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위한다는 것에서 오는 따뜻함과 교환학생 정말 잘 마쳤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했다. ‘감동’이라는 살아있는 작은 생물이 코안을 찔끔찔끔 이동하며 ‘울림’같은 흔적을 남겨 놓는 것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인, 8월 말에 비행기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순간 ‘자유의 국가 이탈리아에서 나의 의지로, 나의 속도로, 나의 시선으로, 꾸준히 날고 싶다’라고 다짐했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교환학생 생활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과 그 느낌들이 무작위로 편집된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을 험하고 재빠르게 지나갔다. 계획대로 교환학생 생활을 잘 마치고 가는 건가?
6. 처음 떠난 교환학생에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이탈리아라는 새로운 기류 위에서 자유롭게 나의 힘으로 날아본 것 같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너선처럼 오로지 나의 날개로 혼자서도 날아오르는 비행을 연습했고, 나처럼 날고자 하는 다른 무리의 갈매기 떼들을 만나 함께 비행하며 많이 배웠다. 귀국한 이후로는 소중했던 ‘교환학생 생활’이란 단어를 품고 나의 날개로 열심히 날기 위해 노력할 거다. ‘바람 탓’, ‘날개 탓’ 같은 단어를 지우고 말이다. 이 모든 건, 우선 당연히 나의 소중한 가족 덕분이다. 181cm에 72kg, 엄마가 내게 주신 생명의 방이다. 어딜 가나 그 방이 나를 따라다녔다. 이 방을 벗어나 다른 이들의 방을 가보고 싶었고, 그들의 거리를 찾아 나가고 싶었다. 막상 문을 열고 그 거리로 나오니 겁이 났고, 나의 유독 차가운 한숨과 추위 속에 더 얼어붙은 입김만이 나의 방을 채웠다.
7. 그 얼어붙은 방을 따뜻하게 녹여 준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존재와 응원에 힘입어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용기를 냈다.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에스프레소에 더 익숙한 이들을 마주했고,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 내 생명의 방은 겉에서 보기엔 큰 변화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과 말하고, 듣고, 생각과 감정, 마음을 나누며, 훨씬 넓어졌고 지붕의 높이도 훨씬 더 높아졌다. 그 안으로 팔을 힘껏 뻗어보면 가득 채워진 게 나의 손에 닿는다. 아직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들도 가득하고, 내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색채의 그림 같은 감정과 생각들도 계속 방안을 맴돈다. 사람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단순명료한 깨달음과 함께. 그래서 이젠 예기치 못한 토네이도와 쓰나미처럼 예상치 못한 두렵고 거대한 혼란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8.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을 전에 자주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며 사람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경험하고 접한 바로는, 분명한 건 길은 정말 많고, 모두에게 그 길들이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적지 역시도 인생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만의 꿈’과 ‘나만의 관점과 방식’이다. 그런 가르침을 준 이탈리아 교환학생 생활에서 만난 모든 사람과 환경에 정말 감사하다. 그 소중한 느낌을 계속 품고 간직하자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탈리아와의 더 나은, 더 멋진 만남을 위해 마지막 문장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으려 한다.
“이탈리아, 고마웠어! 잘 지내, Arriveder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