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과 이탈리아, 가리발디에서 본 월드컵 중계와 센싱 능력
01. 여기는 가리발디 대형 스크린 앞. 약간의 비릿한 맥주 냄새가 추위로 얼어버린 코끝을 스치고, 흥분한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는 각자가 들이마실 공기의 부피를 침범한다. 나쁘지 않은, 활기찬 침범이다. 가리발디 스크린에선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생중계해주는데 출전국이 아닌 이탈리아를 비롯해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축구를 보러 왔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고, 어떻게 상영하는지 현장 분위기도 궁금해 한국과 브라질이 경기하기 세 시간 전에 미리 와서 주변을 둘러봤다. 가리발디 생중계 스크린 주변에는, 역시 전시 유행의 선도 도시인 밀라노답게 많은 전시회와 전시 부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양한 전시회 중에서 나의 이목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월드컵 트로피 관련 전시회였다.
02. 나는 이 전시회에서 월드컵 트로피가 밀라노에서 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월드컵 트로피는 밀라노 외곽에 있는 ‘GDE 베르토니’라는 회사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했고, 쥘리메컵의 영구 소유권을 획득한 뒤 FIFA는 새로운 트로피를 만들기 위한 공모전을 열었다. 이때 25개국에서 53개의 작품이 출품됐고, 1972년 FIFA는 이탈리아의 실비오 가사니가(Silvio Gazzaniga)가 제작한 트로피를 채택했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이번 월드컵 본선 출전은 못 하지만, 우승 트로피는 결국 다시 이탈리아로 오게 된다며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으로 예선 탈락을 위안하곤 했다. 전시회를 다 둘러봤는데도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까지도 아직 시간이 꽤 남았고, 스크린엔 일본과 크로아티아의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03. 나는 스크린이 잘 보이는 카페에 가 뜨거운 블랙커피를 주문해 추운 손을 녹이며 자리에 앉았다. 알람이 울려 휴대폰을 보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이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메일을 읽는데, 교수님께서 얼마 전 웨비나를 하면서 만난 어떤 유명 교수에게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들은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자기가 만나본 사람들은 센싱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었다’라고 답했단다. 그러면서 센싱 능력이라는 게 결국 사소한 경험이라도 ‘나의 가치관’으로 호기심을 갖고 다르게 보는 능력이라고 생각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우선 뭐가 되었든 경험해보고 곱씹어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여주셨다. 나는 메일을 읽고 ‘나의 가치관으로 뭘 새롭게 볼 수 있을까’하는 공상에 빠져 주변을 살폈다.
04. 그때 일본과 크로아티아전 경기를 보며 웃고 있는 일본인 여자와 이탈리아인 남자, 커플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남들이 말하는 걸 잘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데, 메일을 방금 읽은 만큼 혹시 모를 센싱 능력 발휘를 생각하며 조용히 숨을 죽이고 들어봤다. 다행히 닭살이 돋는 대화는 없었고, 나는 그 커플의 대화에서 진정한 센싱 능력의 사례를 접했다. 이탈리아 남자는 월드컵 골네트에 대해 말했다. 원래 골대의 골네트는 사각형 모양이었는데, 육각형 골 그물망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처음으로 세계에 등장했다고 한다. 같은 줄과 면적으로 그물망을 짤 때 육각형 네트가 사각형보다 길이가 짧게 나온다는 육각형 그물망 디자인의 장점도 말했다. 또한, 그만큼 재료를 줄이며 동시에 훨씬 통풍도 잘되고 강도도 높아 강하게 날아오는 공의 충격에도 잘 안 찢어진다는 것이다.
05. 그 남자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그동안 월드컵을 보면서 선수들과 경기, 공만 봤지. 한 번도 골대의 그물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바로 구글에 검색해보니 정말 골네트를 위한 육각형 모양의 바느질을 발명한 구식 생산업체가 나왔고, 지금도 매년 만 개의 그물을 만든다고 한다. 낚시와 사냥에서 시작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세계 최초로 스포츠를 위한 그물로 발전했다고 회사 운영자가 말한 인터뷰도 있었다. 그러자 일본인 여자는 답했다. 그녀는 그 월드컵을 통해 일본에서 아주 부자가 된 사람이 있다고 운을 띄웠다. 마음 같아서는 그 커플 사이에 끼어 합석해 듣고 싶었지만, 조용히 귀를 더 기울였다.
06. 1990년 당시 이탈리아 월드컵 경기를 보고 일본의 한 어망 업자는 그 육각형 골네트 기술을 스포츠 의류 용품에 적용했단다.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니 그 어망 업자는 곧바로 스포츠 회사를 차려 기민하게 기업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면서 남들이 보지 않는 것들을 옷으로 만들어보자며, 우리도 졸업 후에 부자가 될 수 있다며 깔깔대고 웃었다. 둘은 책상 위에 스케치 노트를 펴놓고 큰 배낭을 메고 온 걸 보니, 아무래도 패션 학과 학생들인 것 같았다. 과제해야 하는데, 월드컵 경기가 너무 궁금했나 보다. 나는 이 커플의 대화를 들으며 또 다른 센싱 능력을 생각했다. 이들이 영어로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며, 함께 경기를 보면서 과제를 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사람일 것이다. 바로 ‘오가와 기쿠마쓰’다.
07. 1945년 8월 15일 오전 7시경, 오가와 기쿠마쓰는 지방 출장 중에 라디오 방송을 듣고 절망한다. 일본의 천황 히로히토가 육성으로 “만대를 위해 태평 시대를 열고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사실상 천황이 일본의 패전과 항복을 선언하는 말이었고, 이 방송을 들은 모든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심한 충격을 받았고 여행을 포기하며, 바로 도쿄행 열차에 올라탄다. 미군들이 들어와 일본을 점령했고, 일본 전체가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큰 패닉에 빠졌다. 그는 망연자실하게 창밖의 풍경들을 보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미군들에게 필요한 건 뭘까?’ 그리곤 도쿄로 돌아와 바로 동료 출판사를 찾아가 ‘일미회화수첩’이란 회화책을 출간한다. 32쪽으로 이뤄진 회화책은 30만 권의 초판 1쇄 부수가 금방 팔렸고, 그 해 말까지 1쇄 판매량을 제외한 350만 권이 추가로 더 팔렸다.
8. 그렇게 오가와 기쿠마쓰는 회화책 한 권으로 부자가 되었고, 미국과 일본의 교류 증진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모두가 들은, 심지어 천황이 육성으로 2번이나 방송한 그 라디오 방송에서 왜 그 사람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어떻게 실천으로 옮겼을까? 또, 누구는 전 세계인이 보는 월드컵 경기에서 어떻게 축구 게임이 아닌 골네트를 보고 스포츠 의류 용품 회사를 차릴 수 있었을까?
“센싱 능력 : 사소한 경험이라도 ‘나의 가치관’으로 호기심을 갖고 다르게 보는 능력”
다들 어렵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레드오션이라고 더 이상 끼어들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관점’으로 관심 분야를 세밀하게 보고 승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이미 본, 사소한 경험이라도 거기서 얻은 인사이트를 꾸준하고 적절하게 관리하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를 냉정하게 헤아려야만 한다. ‘센싱 능력’, 그게 바로 새로운 걸 만들고, 개척하는 사람들의 초능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