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만난 편한 고향 친구와 악수하는 것처럼, 편하게 볼 인사를 한다. 왼쪽부터 먼저, 뒤이어 오른쪽. 이탈리아에선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 양 볼에 에어 키스한다. 이탈리아어론 '두에 바치(due baci)'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 인사법이 낯설어서 피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인사지만, 이젠 가까운 친구들이 생겼고 교환학생으로서 적응이 됐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친구들과 오늘 먹기로 한 음식은, 다름 아닌 삼겹살! 우리는 삼겹살을 파는 한식당에 모였다. 친구들은 밀라노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에서 에스프레소 컵 세트를 곱게 포장해서 선물로 줬다. 곧 있을 나의 생일을 미리 축하한단다. 우리는 오고 가는 칭찬으로 대화를 시작해, 기다렸다는 듯 맥주잔을 비웠다.
2. 그러다가 삼겹살을 한번 뒤집을 때쯤 대화는 서로의 옛날 추억들을 물으며 돌고 돌았다. 삼겹살의 반대 면도 노릇하게 구워질 때쯤엔, 이탈리아 북부가 고향인 친구들과 남부 출신의 친구들끼리 파가 갈려 서로에게 귀여운 시비를 걸기도 한다. “야, 남부 촌뜨기! 너 계속 사투리 쓸래? 못 알아듣겠어.” “아이고 우아한 척 좀 그만해, 그러면서 넌 왜 나폴리에서 시작한 이탈리아 제스처를 쓰냐?”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는 말의 억양부터 시작해서, 성격, 빈부, 문화 차이가 확연하다고 한다. 밀라노가 속한 북부는 공업 지역 위주고, 나폴리가 속한 남부는 농업 지역이 많다. 나는 학교 영화동아리에서 본 이탈리아 영화 ‘Benvenuti al Sud(웰컴 투 사우스)’를 보며 북부와 남부의 문화 차이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 밀라노에 있는 삼겹살 한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3. 친구들은 한 손의 손가락을 위로 모아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이탈리아 영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영화에서 이탈리아인으로 등장하는 역할은 한 번씩 꼭 이 제스처를 한다. 정확히는 ‘네가 원하는 게 뭔데?(che vuoi)’라는 뜻인데, 친구들은 이탈리아인들이 말하며 강조할 때 보통 이 제스처를 쓴다고 했다. 이걸 어떻게 흔드는지에 따라 말하는 이가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삼겹살 한식당에서 그 제스처를 보니 꼭 쌈의 모양 같았다. “그 동작은 쌈을 하나 싸달라는 것 같아!” “쌈이 뭔데?” 한국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쌈 싸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모, 여기 상추랑 쌈 좀 주세요!” 한식당 주인은 이탈리아어를 하는 중국인이었고, 결국 이탈리아 친구가 종업원에게 채소를 주문했다. 친구들도 미국에서 피자집을 가면 가게 주인이 미국인인 경우가 있어 적잖게 당황한 적이 있단다.
4. 채소가 왔고, 쌈을 싸는 과정을 보여주고 하나씩 먹여줬다. 그러자 한 친구가 그랬다. “한국인은 융합의 천재야! 음식을 즐기는 모든 과정이 쌈에 있네” 친구는 큰 쌈을 목구멍으로 꿀꺽 넘기고서 맛있다고 연거푸 외치다 말을 이어갔다. 고유의 여러 음식을 한 쌈에 싸고, 또 쌈을 싸는 과정에서 인도처럼 손으로 쌈을 만졌다가, 바이킹의 뷔페처럼 내가 원하는 음식들로 구성해 골라 집었다가, 알록달록한 재료들을 일본처럼 보기 좋게 쌈 위에 얹는단다. 친구들도 공감했고, 듣고 보니 그랬다. 이탈리아 북부 친구와 남부 친구, 그리고 한국인인 나. 다 다른 성격과 문화를 가진 친구들이 교향곡처럼 한데 어우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쌈이 설명해줬다.
5. 생각해보니 지난번에 라 스칼라 극장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은 유럽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에 속한다. 발레 공연을 봤는데, 곡이 연주될 때와 무대에서 예술가들이 움직일 때 관중은 숨 죽은 듯 조용히 앉아 있어야 했다. 어둠으로 가득 채워진 관객석에서 조용한 적막을 깨는 말을 하거나 움직임을 하면 퇴장당할 수도 있다. 공연 중에 한번 화장실을 가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고, 심지어 박수를 치는 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어, 공연 중에 막 박수를 치는 것도 매너에 어긋난다. 함께 극장에 간 이탈리아 친구는 까다로운 지휘자 같은 경우, 악보 넘기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특수 재료로 악보를 만들어 오는 일도 있다고 했다.
▲ 라 스칼라에서 공연 시작 전에 친구와 함께
6. 하지만, 한국의 전통 공연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연주 도중 추임새를 넣고, 창을 하는 사람이 고수와 농도 나눠 장면을 확대 부연하고 순간들을 극대화해 청중의 몰입을 확 끌어 일으킨다. 또 청중도 신이 나면 함께 몸을 흔들고, 무대 위 배우들과 함께 합을 맞춰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오죽하면 한국 관객들이 ‘떼창의 민족’이라고까지 불릴까. 서구 산업 사회에서 한국의 문화들을 보면, 한국의 전통문화가 다 섞인 하나의 잡음 같은 걸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잡음들을 그냥 잡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서구의 근대문명과 적절한 융합을 하면 그 시스템 체계 전체가 큰 변화를 일으키고 또 새로운 문화를 하나씩 만들어 나간다. 그 증명이 바로 박재범 가수가 외친 ‘BTS, 봉준호, 손흥민, 블랙핑크’가 아닐까.
7. 지난주엔 수업 중 발표하다가 교수님께 칭찬을 들었다. 나는 과제를 수행할 때, 우선 해외의 여러 유사 사례들과 트렌드를 자세하게 조사하고, 분석해서 내가 담당할 파트에 새로 기획해 적용할 방법을 찾아낸다. 이게 보통 한국인 대학생들이 쓰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탈리아 자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자기네가 종주국이라는 긍지 때문에 변화에 기민하지 못하단다. 그래서 교수님은 특히나 이탈리아가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다소 늦는 경향이 있는데, 이곤처럼 새로운 걸 자꾸 추구하는 건 매우 똑똑한 방식이라고 했다. 지난번에 쓴 글 6화 <“식사는 잡쉈어?” 이탈리아에선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한데 섞어 새로운 것을 탄생하는 기술은 한국인의 유전자 깊숙이 박혀 있다는 글을 썼는데, 그런 것 같다.
8. 그래서 내가 삼겹살 식당에서 혼자 내린 결론. 나는 종교가 없지만,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탈리아 성서 번역본을 펼쳤는데,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Man shall not live by bread alone)’라는 구절을 봤다. 뒤에 더 글이 있었는데, 지금 바로 그 문장만 기억이 난다. 그렇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역시 ‘쌈’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