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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Jul 24. 2023

18. 학우의 죽음, “우리는 왜 힘들까?”

교환학생과 이탈리아, 추모의 꽃과 친구들의 택배


1. 아침부터 이탈리아가 떠들썩하다. 우리 학교 학생 한 명이 자살했는데 오늘 아침 관리원이 발견했고, 계속해서 뉴스에 소식이 나온다. 밀라노 부자 사립학교 학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탈리아 전역에서 관심이 쏠렸다. 학교는 재빨리 그 학생을 위한 애도의 기간으로 모든 수업을 폐지했다. 다른 건물 불들은 꺼져있는데 그 건물은 불이 켜있었고 경찰은 해당 사건을 계속 조사 중이었다. 뉴스엔 아메리카에서 온 여학생이 가족과 친구에게 쓴 유서와 함께 홀로 화장실에서 목에 스카프를 두른 채 생을 마감했다고 보도됐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학교 학생들은 그 학우가 마지막 생을 끊은 건물의 문 앞에 편지와 추모의 꽃을 붙였다. 나도 친구들과 꽃을 구매해 게이트 위에 고이 올려놓았다.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 그 앞을 서성였다.

▲ 게이트에 학생들이 추모의 의미로 붙인 편지들과 꽃들

2. 우리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말없이 건물의 게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가 그 친구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좋은 대학으로 유학까지 온 학생이, 모든 도전을 멈추고, 자신을 잃는 선택을 했을까. 시험이 끝난 직후여서 그런지, 학교엔 그녀가 낮은 점수의 시험 성적표를 받고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설령 소문 대로라 하더라도, 낮은 점수의 성적표가 종착역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니 너무 슬프다. 오늘의 낮은 성적표가 다음 학기 성공의 씨가 될 수 있고, 오늘의 높은 성적표가 내일 실패의 주요 이유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우리 또래의 학우가 죽은 게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계속 연신 게이트를 뒤돌아봤고, 각자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갔다.


그 친구가 하늘에서는 더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길, 마음 깊이 추모한다. Rest In Peace.


3. 집에 오니 내 앞으로 택배가 와 있었다. ‘뭐 시킨 게 없는데?’ 발신인 칸에는 민서와 나라의 이름이 보였다. 친구들이 지난번에 집 주소를 묻길래 알려줬는데, 서프라이즈로 한국 새해 설음식들을 가득 채워 국제 소포를 보낸 것이었다. 문제가 있어 반송됐다가 다시 우체국에서 부쳤다고 한다. 우리 가족도 안 보내주는 택배를…. 그 정성에, 또 더군다나 민서와 나라는 교환학생을 와보지 않았다. 그 외로움을 겪어 다 알기에 보낸 게 아닌, 그저 정말 나를 생각해서 보내준 것이다. 기뻐서 나는 친구들에게 얼른 전화를 걸었다. 무엇에 기뻤을까? 친구들의 마음에? 한국 음식에?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연초라고 복사하기 붙여 넣기 같은 안부 인사들이 휴대폰을 울려대면, 답답하기 그지없었는데 오랜만에 정말 반갑고 고마웠다.


4. 메시지에서 ‘만나서 얘기해 줄게’로 끝냈던 수많은 너희들의 근황, 그리고 나의 근황들을 주고받다 우린 말했다. “왜 우린 힘들까?” 아이러니하게도 겉으로 보기엔 전혀 힘든 상황이 아니었다. 늘 열심히 도전하던 민서와 나라는 이름을 말하면 삼척동자도 알법한 서울에 있는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 그런데도 사회인이 된 친구들은 힘들어했다. 나는 그때 전화하고 있는 우리가 어항의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넓은 바다에서 누리는 자유를 박탈당해 이 어항에 들어왔다가 또 다른 어항으로 옮겨지는 게 꼭 영락없는 물고기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어항의 물고기는 잡혀서 어항에 들어왔고, 우리는 우리 발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는 것이다.

▲ 민서와 나라가 한국에서 보내준 택배

5. 친구들은 내게 유럽 사람들의 인생은 정말 자유롭고 뭔가 다르냐고 물었다. 나는 유럽살이에 대해 말할 만큼 오래 살지 않았기에 (실거주 고작 6개월입니다), 장 자크 루소의 말을 빌렸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서 어디서든 속박받는다’라는 루소의 말처럼, 한국이든 유럽이든 결국 인생을 혼자서는 절대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여러 관계 속에서 서로 엮인 그물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는 물고기의 신세를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친구들도 나도 원하는 망망대해를 자유로이 걱정 없이 누비며 헤엄치는 물고기로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같았다. 드디어 대학과 취준생활에서 간신히 벗어났나 했는데 그 기쁨도 잠시 다시 어느새 다른 그물이 와서 친구들을 묶어 놓았다.


6. 함께 학교에 다니는 이탈리아 친구들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 온 유럽 학생들과 오래 대화해 보면 느낌이 온다. 취업에, 돈에, 학력에, 경력관리에, 결혼에, 이직에…. ‘아 얘네도 쉽지 않구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어항 속의 물고기는 때가 되면 저절로 물고기 밥이 나온다. 망망대해를 잃었지만, 그래도 적어도 밥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가족이 생기게 되면 먹여 살려야 하니까 그땐 정말 미친 듯이 싫어도 할 수 없이 어항에 들어가야만 한다. 아무래도 우린, 정말 우리의 상황과 입장에서 자유를 원한다면, 그물과 어항 앞에서 먼저 충분히 내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것들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나만의 관점으로 자신을 생각한 다음에 낚싯바늘을 물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며 입을 맞췄다.


7. 즐겁게 통화하다가도 친구들은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절규했다. 고마워서 이탈리아에서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달라고 하니 친구들은 “촌스럽게 기념품 같은 건 됐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잘 오기나 해”라고 말하곤 끊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기념품은 물론이고 평생 이 마음을 간직하고 언젠가는 갚겠다고 마음먹었다. 전화를 끊고도 콧소리를 한참 흥얼거리다가 생각했다. 내가 지금 밀라노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것은, 분명히 내가 이곳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 역시 결국에는 내가 한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선택에 매우 만족한다. 내가 느끼기에 밀라노는 고급스럽고 화려하며, 정말 창의성과 새로움으로 가득한 도시다.


8.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세계에서 월세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이며, 소매치기에, 거리마다 있는 노숙자와 마약중독자에, 늘 득시글거리는 사람들…. 밀라노뿐만 아니라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대개 보기 좋게끔 예쁜 포장으로 덮여 있지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오직 ‘나만의 관점’인 것 같다. 모두가 말하는 성공이니, 명품이니, 남들의 시선이니, 비교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만의 관점’이다. 그게 있으면 타인의 눈과 평가로부터 자신을 해방해서 진짜 내 인생을 내가 자유롭게 선택해서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게 바로 진정 인생을 살아가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닐까?


 그렇게 진짜 내 인생을 사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과거의 결과는 현재 나만의 관점으로 재해석되고, 미래는 현재 나만의 관점에서 비롯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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