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고 집으로 가는 길. 시험 성적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고, 괜히 기분이 붕 떴다. 이제 교환‘학생’으로서의 본분은 다 끝났기 때문이다. 학업에 대한 부담을 확실히 내려놓을 수 있고, 마음 편히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된다. 휴대폰으로 성적표를 찍은 후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을 믿어서 자신만만했을까. 아니면 몇 개월 살아봐서 이젠 괜찮다는 오만한 생각이었을까. 지하철은 서서히 밀라노 첸트렐레역(Centrale FS)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첸트렐레역엔 항상 사람이 많은데, 이 역에서 이탈리아 전역을 비롯해 스위스와 프랑스 등 유럽 내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열차를 탈 수 있다.
2. 승객들은 열차에 섭적 올라탔고, 또 내렸다. 정말 많은 사람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내 휴대폰이 빠져나갔다. 뉴스에서나 봤던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올랑올랑 가슴은 뛰고 주위를 살피니,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로 내 뒤에 있던 남자가 서둘러 전철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친구들도 말했다. “쟤가 도둑이다!” 우린 재빨리 그 남자를 좇았으나, 그는 순식간에 귀신같이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거기 있는 이탈리아 친구들은 모두 밀라노에서 소매치기당했었다. 한 친구는 지갑을, 한 친구는 가방을, 또 한 친구는 나처럼 휴대폰을. 그리고 친구들은 말했다. “못 잡아. 타깃이 되면 끝이야.” 그래도 내가 계속 어떻게든 해봐야 한다고 성을 냈고, 친구들은 나를 데리고 첸트렐레역 사무실에 갔다. 하지만, 역무원들은 CCTV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3. CCTV를 돌려본다 한들, 작정하고 소매치기하는 애들을 어떻게 잡냐는 것이었다. 우리 무리 중 두 친구의 아버지는 경찰이었고, 두 친구는 각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현재 상황에 관해 말씀드렸다. 그러자 한 친구의 아버지 육성이 스피커 너머 작게 들렸다. 일정한 어조로, 냉정한 대학병원 의사처럼 담담하게 말이다. ‘우선은 주변에 경찰서를 가라. 하지만, 사실 소매치기는 거의 못 잡는다고 보면 된다.’라고 하셨단다. 역무원에게 안내받은 경찰서를 가니 줄이 엄청나게 길게 늘어져 있었고, 8할은 외국인이었다. 내 앞에 있던 남자는 밀라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인데 맥북이 들어있는 가방을 지하철에서 누가 그냥 확 낚아채 갔단다. 맨 앞줄에 있는 두 명의 남자는 울면서 어떻게 안 되냐고 계속 서럽게 울부짖었다. 들어보니 그들은 이탈리아인인데, 차를 도난당했다고 한다. 그저께 새 차를 뽑았는데, 차가 없어졌단다.
▲ 경찰서에 접수한 신고서 사진
4. 경찰은 소매치기범의 수법이 대개 스마트폰은 잠금 해제 없이도 초기화해 시리얼 넘버를 바꿔 되판다고 했다. 차는 도난 방지 옵션이 없는 경우, 훔쳐서 번호판과 차 고유 번호도 바꿔 추적을 피해 되팔곤 한단다.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 경찰의 안내대로 신고서를 접수해 제출했다. 집으로 오기 전에, 내가 도난 사고 담당 경찰관에게 솔직하게 범인을 잡고, 물건을 돌려받은 사례가 있는지 물어봤다. 경찰은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못 잡을 확률이 높다고 말해줬다. 내가 찍은 사진들도 다 날아갔고, 휴대폰 케이스 뒤에는 카드와 교통 카드가 있었다. 나는 소매치기 안 당할 거라고 자신만만했는데, 정말 오만 그 자체였다. 그래서 벌 받은 건가. 친구들의 전화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고, 카드와 휴대폰을 분실신고 및 정지했다. ‘로마에선 소매치기 조심’과 같이 거의 공인된 등식도 잘 지켜 로마에서도 문제없었는데, 왜 여기서….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그렇다. 조금 알면 아는 척, 잘난 척, 나는 소매치기당할 일 없다고 으스대다가 이렇게 큰일이 벌어진다.
5. 집에 와서 너무 분해서 5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고, 속이 답답해 물만 벌컥벌컥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처음에는 얼굴과 체형, 스타일을 기억하니 그 소매치기범을 다시 잡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나름 완전무장 후에 다시 그 첸트렐레역으로 가 그 사람을 찾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휴대폰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하는 나의 기대감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언제나 원망은 하면 할수록 그 분노의 칼은 더욱 커졌고 뾰족해졌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늘 그렇듯 마지막엔 나 자신을 질책했다. 그렇게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고작 이런 결과라니. 사람들의 친절과 세상에 대해 그나마 갖고 있던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마저 눈 녹듯 차갑게 사라졌다.
6. 그러다 일기에 썼다. ‘이제 교환학생 과정도 끝났고, 내가 떠날 때가 되니까 신이 일부러 이탈리아에 정을 떼라는 뜻에서 그렇게 계획한 걸까. 교환학생 과정이 확실하게 끝나면 가보고 싶던 박물관과 지역들을 조금 돌다 가고 싶었는데, 그냥 다 취소하고 집에 가만히 있다가 가야겠다. 이젠 첸트렐레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난다. 내가 이렇게 회복탄력성이 낮은 인간이었던가.’ 그때 집 밖에서 계속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빵빵-” 테라스로 가서 보니, 친구들이 차를 끌고 왔다. “Eih! 곤! 뭐 해? 나와.” 나는 테라스에서 피폐한 몰골로 손을 흔들다가, 상황이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은 나를 차에 태우곤 말했다. “이곤, 이 차엔 도둑 없다. 긴장 풀어.” 그리고 나의 무드를 끌어올려주겠다며 밀라노에서 3시간 정도 운전해 트레비소(Treviso)에 나를 데려갔다.
7.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트레비소의 한 레스토랑. 트레비소에서 티라미수가 탄생했고, 여기 티라미수가 이탈리아에서 제일 맛있단다. 이탈리아어로 티라미수 뜻이 ‘당기다’라는 뜻의 ‘티라(tira)’와 ‘나’를 뜻하는 ‘me(미)’, 그리고 ‘위로(up)’라는 듯의 ‘su(수)’가 합친 말이란다. 그러니까 나를 위로 당겨주는 “Pick me up” 내지는 “Cheer me up” 같은 뜻이 내재한 케이크인 거다. 요리사는 우리 테이블에 와 즉석에서 티라미수를 만들어줬다. “너, 본고장에서 오직 너를 위한 티라미수 먹는 거 쉬운 일 아니다. 네 잘못도 아니고, 계속 그 상황을 생각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얼른 웃어” 고마웠다. 티라미수도 물론 달콤했지만, 이런 가운데 이렇게 웃긴 녀석들이 있어 크게 위로가 됐다. 어쩌겠는가. 스마트폰은 잃었지만,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얻었으니까 웃자.
▲ 트레비소 티라미수, 이탈리아 요리 아카데미 대표단 공식 자료에 의하면 티라미수는 1970년대에 트레비소의 Le Beccherie 식당에서 만들어졌다.
8. 그래, 트레비소에서 티라미수까지 먹었는데, 좋게 생각하자. 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기에 자꾸 휴대폰을 들여다보니까 가기 전에 이탈리아 생활을 더욱 즐기라고, 신이 일부러 그렇게 했나 보다. 잃어버린 사진은 내가 친구들에게 보낸 걸 다시 받으면 되고. 꼭 찍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아이패드로 찍으면 되고. 지금 이 모든 게 지나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니까. 지금 내 감정을 다스리는 게 훨씬 현명하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