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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Mar 10. 2023

2. 웰컴 데이 :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

교환학생과 이탈리아, 웰컴 데이

1. 오리엔테이션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중간 라인의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좌석에 앉았다. 오늘은 ‘웰컴 데이’로, 본격적인 학기 시작 전에 모든 교환학생이 처음으로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이다. 나는 내 주변에 앉은 학생들과 인사하며 통성명했다. “안녕, 나는 김이곤이야.” “요곤 킴?”, “요고운 킴?” 그들은 발음하기 어려운지 나의 이름을 거듭하여 다시금 물어봤다. 나도 그들의 이름이 어려워 몇 번이고 되물었다. 괜찮다. 셰익스피어가 그랬다. ‘이름이 대수인가? 우리가 장미를 장미라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불러도 그것은 여전히 매혹적인 향기를 품고 있을 것인데….’

  

2. 그래서 나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노력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들의 특징을 관찰해 나의 마음속으로 별명을 붙여주기로 결심했다. 가령, 뒤에 앉은 독일 친구는 자기가 옥토버페스트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축제)가 개최되는 뮌헨이라는 도시에서 왔다고 말하여, 맥주 여왕으로 별명을 지었다. 그 친구도 별명이 마음에 드는 듯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너는 오징어 왕자!” 뭐지? 이건 싸우자는 건가? 오징어? 나는 발끈하는 심정을 감추고 밝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그러자 맥주 여왕은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에서 가장 대세니까!”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한국에서는 못생긴 사람을 오징어라 부른다고 설명해 줬다. 맥주 여왕은 재빨리 구글로 나의 도시명인 춘천을 검색하더니, 나를 ‘댁갤뷔..? 오! 그렇다면 너는 Chicken ribs king(닭갈비 왕)!’ 이런, 한순간에 나는 계륵(鷄肋) 왕이 되어버렸다. (계륵 : 닭의 갈비라는 뜻으로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것….’)


3.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데 학교 유학 사무실 선생님들이 들어오셨다. 100명이 조금 넘는 교환학생들이 참석했고, 대다수가 유럽에서 왔으며 동양인으로서는 내가 유일했다. 학교의 전반적인 소개를 시작하며 오리엔테이션은 막을 열었다. 발표하시는 선생님께서 마이크를 켜고 운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한다. 그러자 그 질문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학생들이 또 묻는다. 각 학생이 던진 물음표의 둥근 연결 고리마다 엮여 결부된 듯 질문이 그치질 않는다. 한국이었으면 무조건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질문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고? 유럽에서 태어나 원자시계라는 개념을 최초로 발견해 노벨상을 탄 물리학자,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Isidor Isaac Rabi)의 말이 생각났다. 따지고 보면, 길치인 내가 오늘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을 보며 학교에 잘 찾아온 것도 바로 이 사람의 덕이다.


4.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핵의 자기 공명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물어봐 주셨단다. 아이작 라비는 이것을 바로 오늘의 그가 있게 한 비결로 꼽았다.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유럽인이 노벨상을 받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질문하는 버릇을 어렸을 때부터 길러 준 가정교육이라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유럽 학생들은 질문을 참 많이 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와”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나로서는 입보다는 귀를 여는 것이 익숙했다. 대개 동양인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답을 잘 외우고, 잘 따라 했는가를 확인하는 물음에 답을 하며 자랐으니까. 각자의 고유한 문자를 사용하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물음표는 서양의 문자표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5. 정말 많은 질문과 답이 교수와 학생 간 오고 간 후에야 오리엔테이션 소동이 끝났다. 이 광경이 편안함을 주지는 않았지만, 이 새로움에 가슴이 뛰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유럽 학생들만큼이나 어른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 이게 뭐야?”, “아빠, 달은 왜 모양이 여러 개야?”, “엄마, 왜 노래는 다 사랑 관련 노래밖에 없어?” 특히 부모님께 말도 안 되는 질문을 계속 드렸다가 혼이 난 기억도 있다. 그랬던 나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질문하는 버릇을 조금씩 잃어버린 것 같다. 묻는 것은 선생님의 몫이고, 대답하는 것이 학생의 몫이었으니까. 물음표 없이도 밤에는 달이 뜨고,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열정적으로 질문하는 교환학생들을 보며 물음표는 더 이상 날카롭게 무언가를 걸어 쓰러뜨려 최대한 회피해야 하는 갈고리로 보이지 않았다.


6. 물음표가 그들의 창의력을 지탱하는 단단한 지팡이로 보였다. 갈고리에 넘어져도 다시 그 지팡이로 힘차게 일어설 것만 같은 친구들은 내게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독일의 맥주 여왕을 포함해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영국, 헝가리 등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과 함께 잔디 위에 앉아 이탈리아식 샌드위치인 파니니를 먹었다. 나는 천천히 앉아 주위를 살폈다. 친구들과 따뜻한 햇볕 아래 앉아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애로 사항을 굳이 꼽으라면 포기하지 않는 친구들의 온갖 물음표들이었다. 나는 파니니보다 대화의 흐름에 집중해야만 했고, 우리는 저마다의 개별적으로 궁금한 질문과 공통 질문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묻고 답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꽤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느끼곤, 괜히 기분이 좋았다.


 7. 우리는 ‘왜 많은 국가 중에, 밀라노에, 이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왔는지?’에 대해 공통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교환학생이 내놓는 각자의 원인은 각인각색이었다. ‘이 학교가 커뮤니케이션이 유명하니까’, ‘여행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어서’,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밀라노가 유행의 중심이니까’ 등등 내용도 이유도 다양했다. 그들이 이렇게 내놓은 답들은 모두 ‘말이 되는 것들’이었지만, 새삼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각자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유와 상황들이 다 다르고 다양하다는 사실이었다. 첫 만남에 진심을 잘 밝히지 않는 나로서는 “그냥”을 반복해가며 답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친구는 궁금하다며 포기하지 않고 내게 계속 질문을 했다. 이놈의 끊임없는 질문을 보니 미래에 노벨상을 받을 확률이 있을 것 같다. 이 친구의 별명을 ‘차노(차세대 노벨상)’라고 지었다. 그리고 차노는 투머치토커로 불리는 박찬호 선수처럼 말이 참 많다. 나는 쉬지 않고 묻는 차노에게 다음에 말해주겠다고 하며 그를 겨우 진정시켰다.


8. 모두가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에 의문을 품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이 물음표는 내가 오늘 본 교환학생들이 공통으로 간직한 젊음의 시작이며 출발이었다. 오늘 처음 경험해 보는 물음표의 충격을 평생 내 마음에 기억하고자 마지막 문장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고, 다시 이 글을 읽을 ‘나’에게 물음표를 던지려고 한다.     

“나는 오늘 어떤 물음표를 던졌는가? 아직이라면, 오늘은 어떤 질문을 할 예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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