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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Mar 31. 2023

5. 이탈리아 수업 : 여기 수업은 한국과 뭐가 달라?

교환학생과 이탈리아, 수업 중 느끼는 차이점

1. 트램을 타고 학교보다 두 정거장 일찍 내렸다. 아침 햇살이 차오른 밀라노 거리를 걸어서 학교로 갈 때면 괜스레 기분이 참 좋다.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등굣길에 학교 거리를 보는 맛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전에 내가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던 수업 환경에 교환학생의 지위로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은 짜릿하다. 어쩌다가 수업 중에 마이크를 쥐고, 말을 했을 때 칭찬받으면 참 기분이 좋다. 감정에 색이 있다고 치면, 놀이공원에 가면 헬륨가스로 두둥실 떠 있는 풍선의 노란색과 괜히 부끄럽고 수줍은 연분홍색이 뒤섞인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주위의 친구들은 겉으로는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며 뿌듯해하는 나의 모순적인 반응을 보며 주황색 미소를 남겨놓는다.


2. 처음에는 수업 도중에 마이크가 내게로 올까 하고 마음을 조아렸다. 이렇듯 수업 시간이란 버거운 하루하루의 연속일 따름이었다. 내 주변에서 누군가가 발표하면, 괜히 내게 그 마이크가 넘어올까 봐 얼굴색이 갑자기 붉게 상기되는 걸 나 자신이 느낄 정도로 힘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수님과 눈이 마주치면 ‘제게 주지 마세요’라는 말을 입 안에 머금고 살짝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계속 눈을 피한다고 수업 시간에서 로그아웃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마이크를 피하는지 차분하게 생각해봤다. 어떤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나만 이렇게 지나치게 두려워하는지 말이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럴 거면 왜 여기에 온 거야?’


3. 마음의 두려움을 없애는 최고의 전략은 ‘일단 그냥 해보기’, 말 그대로 바로 보고 이겨내는 것이다. ‘만약에 망신을 당하게 되면, 그것도 여기 아니고서야 언제 당해보겠어.’ 하며 마이크가 다가왔을 때 발표했다. 그리곤 막연한 두려움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재와 달리 부풀려진 두려움의 크기와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고 염려스러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먼저 그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고서야 위험과 맞설 수 있는 실전 기술을 익힐 수가 있다. 앞으로 교환학생 생활의 길목마다 크고 작은 두려움이 있겠지만, 우선 말하기 문제는 넘어선 것 같다. 이 글을 쓰며 피식 웃을 수 있고, 두려운 수업에서도 점차 적응을 해나가는 것 같으니 이젠 다음 길로도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4. 수업 중엔 참 재미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나는 그중에서도 싸움 구경이 참 재밌다. 아이들이 수업 중에 편을 갈라서 갑자기 막 토론하며 싸우기도 하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불구경보다 재미있을 때가 많다. 한 번은 밈(meme)에 대한 이론들을 배우는데, 교수님께서 관련하여 영상 자료를 보여주셨다. 조르자 멜로니 (Giorgia Meloni) 이탈리아 총리가 과거에 동성 육아에 반대하는 집회 연단에서 한 연설에 디스코 음악을 넣고 우습게 편집된 ‘조르자 멜로니 리믹스 (Io Sono Giorgia)’ 밈이었다.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그녀의 정치 성향을 비꼬기 위해 편집된 밈이었지만, 이 밈은 1,000만 건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녀가 인기 있는 정치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밈을 보고 나서 애들은 무리별로 웅성거리다가 싸우기 시작했다.


5. 교수님은 공개적으로 논쟁하라며 마이크를 넘겼고, 한 학생이 화가 난 채로 씩씩거리며 말했다. “멜로니 총리는 총선 당시 우크라이나 여성이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SNS에 올렸어요. 피해자 동의도 안 구하고 성폭행 영상을 확산시켰고, 선거 시기에 이런 이미지를 사용하는 건 외설스럽습니다. 이 여자 밈을 왜 보여주시나요?” 그러자 다른 학생은 마이크를 자기에게 넘기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일간지에서 게재한 영상을 멜로니가 당시 정치인으로서 SNS에 올리는 게 그렇게 잘못되었나요? 끔찍한 성폭행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공유한 거고, 모자이크도 있었는데요.” 교수님은 이와 같이 매번 특정 이론을 배우면, 그 후에는 아이들이 직접 조사하고 각자의 관점대로 충분히 논쟁할 시간을 주었다. 한 번도 만장일치가 되어 조용히 이론을 배운 적이 없다. 어떤 문제든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관점을 갖고 있고, 이는 다시 또 각각의 찬성 및 반대로 나누어졌다.


6. 이렇듯 내가 경험한 유럽 교육은 한국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불을 끈 후에 떡을 썰고, 아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그런 균일한 노동 기술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기계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충분히 사고를 하고, ‘나의 의견’과 ‘너의 의견’을 융합해 창의적인 깨달음을 얻는 학습법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학문 자체가 서양에서는 동양과 달리 개인적 호기심과 지적 욕구 그리고 탐색 본능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게 학문의 주요 동기인 경우가 많다. 즉, ‘학문의 쓸모 유무’보다도 ‘아는 것 자체를 위한 학문’을 추구한 것이다. 이런 동기에서 비롯한 순수 학문 덕분에 그들이 휘황찬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하면 과한 억측일까.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보다는 배우는 이의 입장에서 몇 곱절로 더욱 생각하는 것 같다.


7. 같은 맥락으로 이곳에서는 교과서가 아닌, 텍스트북을 통해 수업을 진행한다. 나는 교과서와 텍스트북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그저 이를 교과서를 번역하면 텍스트북이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텍스트북엔 ‘가르치는 책’을 뜻하는 교과서와 전혀 다른 의미가 내재한다. 가르치는 사람을 중심으로 제작된 교과서와는 그 개념 자체가 다르다. 서양 중세 때, 텍스트북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책에 학생들이 자기의 생각을 적을 수 있도록 빈칸을 많이 만들어 놓은 책을 뜻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학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정리한 텍스트북을 교회 부속 도서관에 제출해야만 했다. 학교에 출입하는 서적상들은 제출된 텍스트북 중에서 가장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원본으로 선택하고 이의 필사본을 만들어 팔았다. 그게 텍스트북의 원형이라고 한다.


8. 무엇보다 내가 경험한 이탈리아의 학습법은 전공, 학문, 지식 각각의 칸막이를 벗겨내고 토의하는 특징이 있다. 수업 중 여러 가지 분야에 거미줄처럼 걸친 이론들을 ‘융합적’으로 활용한다. 그리하여 같이 배우는 처지에서 수업 중에 전공만의 범주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논쟁해 문화, 나이, 학문 등을 고루 섞고, ‘다양성’을 채굴하는 것이다. 나 역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지식을 공유하며 나의 머리를 날마다 새롭게 채우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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