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혜민 Jul 30. 2020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유토피아

웹 예능 〈뉴토피아〉(2020, 소그노)


‘뉴토피아’는 20대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유튜브 채널 ‘소그노’가 만든 웹 예능이다.


내가 뉴토피아에 대한 구구절절한 글을 더 빨리 더 많이 쓰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있어 2020년 상반기의 가장 큰 사건은 뉴토피아였다. 뉴토피아가 올라오는 2월부터 4월까지의 일요일마다, 나는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아주 큰 동질감을 느꼈고 기묘한 위로를 얻었다. 

뉴토피아는 정말 특별했다. 스크린 안의 그들이 만져질 것 같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들은 나였고 내 친구들이었고 내 언니와 동생들이었다. 그 어떤 유명인을 보고도 이만큼 친숙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을 수식하는 단어들이, 그들의 외양이, 그들이 웃는 지점과 그들이 힘들어하는 지점이 모두 나와 같았고, 정말로 내가 같이 2박 3일을 보내는 것처럼 숨가쁘고, 가슴 아프고, 애틋했다. 한바탕 깔깔 웃으며 3개월을 보내고 나니 소그노와 뉴토피아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점이 여럿 생겼다.

첫째, 나에게 이미 익숙한 것이라 해도 여전히 그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내게는 뻔한 무언가여도 보여지는 순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 주어서 고맙다.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편하게 앉고 뛰고 웃고 싸우는 출연진의 모습은 내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댓글에서 보이듯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컬쳐쇼크였다. 그렇다면 나의 취향, 나의 일상, 나의 비전도 미디어가 될 수 있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다시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둘째, 완벽하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줘서 고마웠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일단 시작하고 나의 최선을 보여주는 게 훨씬 낫다는 걸 뉴토피아를 보며 또 한 번 느꼈다. 사실 그들이 먼저 걷기로 했던 그 길은 정말 힘든 길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시도는 유독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는다. 노력에 비해 과한 비판을 받을 게 뻔한 그 길에, 소그노가 제일 먼저 뛰어들어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존경스럽고 고맙다.


나는 그들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정말로 깊게 이해한다. 우리는 하필 여성으로 길러져 하필 이 시대의 가장 첨예한 논쟁 속에 당사자로 내던져졌다. 이 안의 모두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사명을, 무거워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의무를 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 결국 카메라를 드는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을 겪고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물론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들도 끝내 포기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걸 마음 깊이 믿지 못했다면, 아마 못 해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진들과 출연진들은 모두 행운아인데, 놀랍게도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생각해 오던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자원과 운과 타이밍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다. 소수로서 그 의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구석구석 결락이 있는 이것이 오히려 더 완벽한 첫 시작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이 생길까? 웃으라고 만든 프로그램인데 울면서 보게 되는 건 왜일까?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포기하지 않음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무엇을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이 주는 자부심은 정말로 크다. 자부심으로 가득한 컨텐츠여서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이다. 이 다음을 누가 시도하더라도, 심지어 소그노 본인들이 시즌2로 도전하더라도, 처음보다는 쉬울 것이다. 그것을 모두가 느낀다는 점이 또한 대단하다. 


ⓒ 소그노 유튜브 커뮤니티 https://www.youtube.com/c/sogno_official/community


2월 9일 이후로 처음으로 뉴토피아가 없는 일요일을 보내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뉴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뉴토피아가 방영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셀 수도 없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종의 협업이 더 활발해진듯 보인다는 것이다. 뉴토피아만의 영향력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어떠한 “라인”을 만드는 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여성 유튜버들이, 전보다 좀 더 활발하게 협업 팀을 만들고 서로의 채널을 넘나들며 컨텐츠에 참여한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함께 뿌듯하고, 동시에 혼자서 조금 질투를 한다. 이 마음이 더 추해지지는 않도록, 이제는 그 동질감을 조금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뉴토피아 출연진을 연예인 덕질하듯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동료가 되고 싶지 팬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처음이고, 처음인 만큼 소중히 여기고 싶다.


작성일 : 2020. 4. 27. 5:08A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