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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혜민 Jul 30. 2020

서로를 변하게 하는 삶들

영화 '타인의 삶', 만화 '극락왕생'

최근 접했던 것들 중 너무나 좋아했던 두 가지 컨텐츠에 대해 쓰고자 한다.


첫 번째는 영화 <타인의 삶>이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동독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영화인데, 엄마가 하도 좋다고 추천하셔서 기억해두었었다. 심야에 엄마랑 같이 vod를 결제해서 봤는데 끝나고 나서 박수를 막 쳤다. 보기 전에 “너무 어려워서 내가 이해 못 하면 어떡해?” “졸려서 잠들면 어떡해?” 하며 어깃장을 놨던 나를 엄마가 참아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우려가 모욕이라고 할 만큼 좋은 영화였다.

꼬인 데 없이 분명하고, 맑고, 따뜻한 영화. 촬영이나 편집이 정말 정적이고 예스럽고, 미술도 구현을 잘했으며, 대사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페르메이르 회화 볼 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하는 영화라고 해야 할까.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라는 악곡이 흘러나오는 장면으로, 마치 모두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깊이 감동했다.

한편 이렇게 험한 시대상을 그린 영화를 볼 때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 치열했던 사람들의 삶이 너무 안쓰럽고 애틋해서 자꾸 가슴이 아프다. 국가의 감시와 폭력이 평생 지속될 거라고 믿고서 행동했던 사람들의 삶이 고작 4년 7개월 만에 뒤집혀버리는 걸 보며, 물론 그것이 크게 보면 감사한 일이지만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 허망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 영화가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이라는데, 왜 꼽혔는지 알 것 같고 그렇게 인정받았다는 말에 내 기분도 좋았다. ‘인간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깊이 공감하고 아껴줄 수 있을, 내 편이라고 여겨질 만한 그런 영화였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2504


만화 <극락왕생>은 스토리, 작화, 연재 방식, 플랫폼, 모든 게 다 새로운 시도로 가득 찬 작품인데, 딜리헙이라는 창작자 중심 컨텐츠 플랫폼에서 연재 중이다. 불교 관련 개념들을 바탕으로 세계관이 만들어져 있고, 귀신이나 보살, 신선 같은 존재들이 많이 나온다. 워낙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런 존재를 인간이 돕는 이야기에 애정을 갖고 있는 나인지라 당연히 첫 편을 볼 때부터 빠져들었는데, 이상하게 읽으면서 계속 슬펐다. 번뇌 가득한 인간도를 배경으로, 노력의 단계가 각자 다른 인물들과 존재들이 막 자기 얘기를 하는데, 줄곧 먹먹한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봤다. ‘타인의 삶’ 보고 나서 더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삶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해가는 게 그냥 너무 슬펐다. 아예 변하지 않기로 하면 안 되나 싶다가도, 그러면 삶이 아니고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계속 이렇게 힘든 길을 가야 하는 모든 인간들이 가여워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여러 질문을 하게 만든다. ”왜 하필 내가 선택되었을까?” 처럼 내 삶의 목적을 질문하게 만드는 질문도 포함. 뭔가 기독교스러운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원래 진리를 향한 탐구라는 건 비슷비슷한 접근으로 시작되는 것 아닐까. (종교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도 읽어보면 좋겠다.) 어쨌든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작가의 뚝심과 인류애가 너무나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라 결제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여자-여성-여체로 등장하는데, 그게 되게 유쾌하게 불편하다. 새삼스럽게 나의 읽기 태도를 점검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여성 독자로서의 몰입감을 실질적으로 높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작용이 있어서 즐거웠다. 이 역시도, 사람은 변할 수 있고 그 변화는 대가가 없을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내 친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https://dillyhub.com/home/gosaribaksa/grws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만나고 나면,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내 양 편에 이들을 든든하게 세워놓는 상상을 한다. 그냥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좀 더 지지받는 기분이 든다. 이 세상에 내가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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