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환불원정대에 대한 생각들
나는 언제나 지금 여기, ‘맨 앞’의 케이팝에 대해 관찰하고 고민하고 기록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케이팝이 늘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기분이 좋을 때면 나는 종종 그것을 가능케 한 어제의 케이팝들을 헤아린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가당치 않게 소홀한 대우를 받으며 나온 창작물들이었던가를 떠올린다. 저작권도 인권도 없던 척박한 땅에서 가까스로 축적되었던 한 줌의 문화자본이란 너무나 소중하다. 사실은 보아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도, 한국 가요계의 지난날을 맨몸으로 겪어낸 의지력에 대한 존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서 기반을 다져놓으면 뭘 해, 결국 대중은 새로움을 원하고 더 어린 인간들을 원한다. 99.9%의 아이돌은 3년을, 7년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팀들에 대체된다.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 근본 없고 성찰 없이 돌아가는 산업에서, 엄정화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자 솔로 댄스 가수로서 28년을 활동해오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새로움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납득할 만한 새로움을 제시해왔다는 뜻이다. 그 근면함 덕분에, 엄정화의 디스코그라피는 한국 댄스 가요의 발전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 자신이 곧 아카이브다. 그래서 MBC 《놀면 뭐하니?》를 통해 엄정화의 ‘오늘’에 대한 존중과 응원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엄정화가 다시 노래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충분한 시간과 감정과 분량을 할애해 그려줘서 좋았다. 결국 엄정화의 용기가 환불원정대의 완성으로 가는 중요한 키였다는 이 서사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엄정화-이효리-제시-화사로 이루어진 환불원정대는 전 세계에도 전례가 없을, 50대-40대-30대-20대인 멤버들이 모두 포함된 그룹이며, 1990년대-2000년대-2010년대-2020년까지를 포괄하는 경력이 모여있는 팀이다. 이 팀은 활동하는 것 자체가 메시지다. 음악은 늙지 않는다는 것, ―그에 얽힌 이해관계들이 빛바래는 경우는 있어도― 예술은 낡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케이팝 산업의 배불뚝이들이 계속해서 어린 여자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려 하는 게 예술성과는 결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성적 대상화를 위한 기만일 뿐이라는 진실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새롭지 않아도 새로울 수 있고, 젊지 않아도 젊을 수 있다. 엄정화에게도 화사에게도 무대는 똑같이 도전이다. 이효리에게도 제시에게도 녹음은 똑같이 떨린다. 그 당연한 진실도, 관성에 가리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렇게 달려온 환불원정대의 서사는 여러 무대를 통해 매듭지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연출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바로, Don’t Touch Me 무관중 떼창 무대다. (링크: https://youtu.be/f1iHl6yaWNE ) 퍼포먼스 중간에 소리로만 던져진 응원법은, 무관중 무대에 익숙해져 있던 팬들과 가수들을, 놀라게 하고 울게 했다. 가요계가 ‘지는 해’라고 여기며 등한시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준 바로 그 그룹의 무대가, 갑작스러운 재난 속에 무기력하게 휩쓸리고만 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 주었다. 이 무대를 만들어낸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책임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어떤 역할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 공중파 방송은 그 기술력과 파급력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사회적 가치를 전파해야 한다는 책임. 그 책임감이, 이 순간을 2020년 케이팝을 정리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순간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