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 Aug 09. 2024

허름한 부모 밑에선  허름한 자식이 나고

가난한 청춘들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어머니는 밤새 나의 옷을 빨고 또 빨았다. 마치 옷에 묻은 가난을 지워내려는 듯이. 하지만 어머니의 노력에도 내 모습은 형편없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신발. 구멍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난 티셔츠. 어디선가 얻어온 듯한 책가방. 그럼에도 나는 학교에 갈 생각에 그저 신이 났다. 때가 묻은 책가방도 마음에 들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가져본 나만의 가방이니까. 이후 학창 시절은 비교적 순탄했다. 애초에 가진 게 없으니 문제를 일으킬 요소도 없었다. 가끔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 골치가 아픈 것 빼고는 누구를 때리거나 욕을 해본 적 한번 없이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것이 어머니와 나를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 사이에는 묘한 변화가 생겨났고, 키가 크거나 힘이 센 아이들이 지나가는 나를 툭툭 치거나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싸움을 하면서 어머니를 더욱 고생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더럽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던 날에도, 나는 그냥 조용히 모든 것을 감내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를 건드리던 녀석들은 금방 흥미를 잃었고 몇 번 나를 더 괴롭히더니 이내 풀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데 누군가가 나를 계속 따라왔다. 이 달동네까지 쉬지 않고 따라오는 그가 하도 이상해 걸음을 멈춰 세우고 물었다. “왜 자꾸 따라와?” 퉁명스러운 내 목소리에 어이없다는 듯이 그가 답했다. “너 안 따라가. 나도 여기 살아. 너도 여기 출신이냐? 처음 보는데.” 그의 왼쪽 가슴에는 ‘김명훈’이라고 쓰여 있는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이름표의 색을 보아하니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를 사귈 생각이나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기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발을 돌렸다. 그런 내 뒤통수에 대고 “야. 잘 가라” 하는 그의 인사에도 대꾸하지 않고. 그날 이후 동네에서 명훈을 자주 마주쳤다. 명훈은 첫 만남 이후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나는 아무 일 없이 실실 대는 그가 괜히 얄밉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마음에 그가 시키는 어떤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넉살 좋은 명훈은 개의치 않고 나를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함께 등하교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명훈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알고 보니 그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그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 마지막 언덕 꼭대기에 살고 있었다. 때문에 등교할 때는 항상 높은 곳에서 내려와 나를 만났고, 집으로 돌아갈 땐 나와 헤어진 후 마치 하늘로 솟는 모습을 하곤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나는 종종 그런 명훈의 뒷모습을 보며, 어찌 보면 그가 나보다 먼저 이 동네를 탈출할 수 있겠다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는 이곳에 살기엔 너무 건강하고 밝았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교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실내화를 던졌다. 그리곤 그들은 내게 냄새가 나니 교실 밖으로 나가라고 외쳤다. 낄낄대는 학생들 사이로 나는 보던 책을 집어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복도에 쭈그려 앉아 다시 책을 보고 있을 때였다. 명훈이 다가왔다. “야 여기서 뭐 해?” “책 봐” 내 무심한 대답에 명훈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교실 안에서 낄낄대는 아이들을 훑어보곤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매점이나 가자” 나는 책을 든 채로 명훈을 따라 매점으로 갔다. 그는 우유 두 개를 사서 내게 하나를 건네곤 자신을 따라오라더니 옥상으로 향했다. 우리는 따뜻한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옥상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 책을 볼까 하다가 명훈의 얼굴이 심상치 않음을 느껴 말았다. 삼십 분쯤 흘렀을까. 명훈이 이야기를 꺼낸다. “야, 너 우리 동네 옆에 산암동 알지. 거기 집들 진짜 크잖아. 너 거기 있는 집 가봤냐?” “아니”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따돌림을 당했다. 아주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을 제외하면 친구들과 모여 놀아본 적도 없었다. 나는 이런 사연을 모를 리 없는 명훈에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명훈은 친구가 꽤 많았다고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명훈에겐 나와 같은 가난이 묻었지만, 점점 존재감을 숨기는 나완 달리 그는 어디서나 존재감을 드러내는 친구였으니. 여하튼 어느 날, 한 친구가 태어나서 한 번도 달동네를 떠나본 적 없는 명훈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빌라와 주택이 있는 산암동의 집으로. 명훈은 마치 그 친구의 집에 어제 다녀온 것처럼 생생한 설명을 이어갔다. “집에서 좋은 냄새가 나. 음식 냄새도 아니고. 그냥 꽃향기 같은 냄새가 거실에도, 방에도 나더라. 그리고 진짜 제일 놀랐던 건 변기에 앉았는데 엄청 따뜻한 거야. 나는 그런 걸 그때 처음 봤잖냐” 명훈은 말하는 내내 감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덤덤하게. 나 또한 그 순간만큼은 명훈과 같이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헤벌쭉 웃었다. 그리고 명훈은 ‘운 좋게’란 표현을 쓰며, 그들과 꽤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명훈의 친구들은 달동네 제일 높은 꼭대기에 있는 그의 단칸방 집을 보았을 때도 전혀 놀리거나 흠잡지 않고, 오히려 그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시끄럽게 놀고 떠들며 재밌게 놀았다고.


  하지만 그들의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매일 함께 운동장을 뛰어놀던 그 친구들이 어느새 명훈을 따돌렸다고 했다. 더럽다고, 거지라고 괴롭히면서. 그 순간 명훈은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피가 서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모두 모여 명훈을 집단 폭행 하려고 했을 때, 그는 이를 악물고 그중 가장 힘센 아이에게만 미친 듯이 달려들어 말 그대로 아작을 냈다고 했다. 그 이후 명훈의 어머니는 학교에 불려 가 거듭 허리를 숙여 사과했고, 파출부를 하며 번 돈을 병원비로 물어줬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명훈을 괴롭히는 친구들은 없었지만, 늘 자신을 ‘거지’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일부러 동네에서부터 한 시간이나 떨어진 먼 동네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했다.


  나는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히는 이들을 참지 말라고 그는 진심 어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귀찮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따위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명훈의 말처럼 좋은 냄새가 나는 집에서 살고 싶었지만, 그것을 막연하게 부러워하며 꿈꿀 시간이 없다. 나는 내 인생을 서둘러야 했다. 더 열심히, 더 많이 공부하고 명문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 내 인생을 짓누르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집에서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니까. 나는 마치 경주마처럼 이를 악물고 달려야만 했다.


이전 01화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