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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Aug 13. 2024

▶부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을 포기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와 명훈의 꿈은 단 하나였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 그리고 이 동네를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 명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듬직한 동반자였다. 우리는 매일을 그렇게 질주했다. 그리고 아주 긴 싸움 끝에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명훈은 대학교 입학과 함께 기숙사로 들어가며 나보다 먼저 동네를 떠났다.


  명훈이 떠난 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대학 생활에 전념했다. 젊은 청춘들이 온몸으로 뿜어대는 열기를 피하기 위해 강의실이나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생기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첫 월급을 받던 날, 나는 밥통을 하나 샀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밥통 하나 없이 냄비로 늘 밥을 지어주었다. 밤늦게 돌아온 어머니는 내가 사 온 밥통을 보고는 한참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150cm가 조금 넘는 작은 키, 가녀린 체구. 그럼에도 어머니라는 역할을 해내기 위해 온갖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나를 키워온 어머니. 나는 가끔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그날 밤 하염없이 울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악물고 버텼다. 어머니와 함께 이 동네를 떠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피땀 섞인 노력 끝에 밥통에 쓰여 있던 그 전자회사의 영업부에 입사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드디어 고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던 찰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의 사고]

  나의 만류에도 어머니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가사도우미, 식당 주방일, 건물 청소. 어떤 것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몇 해 전, 어머니는 한 공장에서 직원들의 밥을 짓고, 전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청소보다는 요리가 좋다며 어머니는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켰다. 어머니는 가끔 공장에서 요리하고 남은 재료를 집에 가지고 왔다.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말려 봐도 가난이 몸에 밴 어머니는 천 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어머니가 이미 끓여놓으신 콩나물국이 있었다. 휴대폰을 보니 야간교대 근무를 나간다는 어머니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벌게진 얼굴로 목에 감긴 넥타이를 풀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대자로 누워 이제 곧 어머니와 살 방 두 개짜리 집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던 나는 귀찮음에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려는데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린다. “여보세요?” “김명제 씨? 이옥림 여사님 아들분이시죠? 여기 대선공장이에요. 어머니가 사고가 났어요. 지금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수화기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와 온갖 기계음이 섞여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리둥절한 내 반응에 그는 한 번 더 채근한다. “어머니가 떨어졌다고요!”


  어머니가 떨어졌다니. 대체 어디서 떨어졌단 말인가? 나는 술이 번쩍 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작은 골목골목을 뛰어 내려가 택시를 잡아타고 전화 속 목소리가 알려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데 저 멀리 응급실 앞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엔 어머니가 입던 것과 같은 공장 재킷을 입은 이들이 서 있었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본 순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장장이란 사람의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의사가 나를 찾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밥이 실린 카트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던 어머니는, 고장으로 승강기가 올라오지 않은 채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그대로 카트의 무게에 실려 일 층으로 추락했다고 한다.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한순간에 죽을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다리가 풀려버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대로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응급실 침대 위였다. 정신을 차린 나의 곁으로 공장장이 다가온다. 아직도 현실이 믿지 못하는 나에게 그는 곧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이후 텅 빈 눈으로 공장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했다. 사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울지도 못하고 손님들을 맞이했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상을 뒤집어엎기도 했다. 장례는 조촐하게 끝이 났다. 찾아온 손님이라곤 오십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회사 사람들과 어머니의 공장 사람들이었다. 화장터까지 이동하는 길, 나와 같이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는 사람은 고작 명훈, 이모, 공장장. 이 세 사람뿐이었다.


  어머니의 시신이 타는 것을 보며 나는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 그곳까지 따라온 공장장에게 고함을 지르고 욕을 했다. 그리고 옆에 놓인 의자를 들어 그에게 던지고 난동을 부렸다. 명훈이 말리는 사이 공장장은 자리를 피했고 나는 상기된 얼굴로 어머니의 재가 담긴 유골함을 받았다. 분이 식지 않은 나는 씩씩대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내가 아는 곳이라곤 집과 회사뿐. 나는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로 실려 다니다가, 서울역에 내렸다. 근처 보이는 편의점에서 소주를 몇 병 사 그대로 꿀꺽꿀꺽 마셔버리곤 도로 위에 누웠다.


  어머니. 나의 정원, 나의 고향. 나의 유일한 가족. 나는 아직도 어머니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거리에서 며칠을 보냈다. 길바닥에 누워있는 동안 어떤 이는 나의 지갑을 건드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구두를 벗겨 달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들을 잡을 힘도, 저항할 힘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웃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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