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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Aug 16. 2024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도무지 살아낼 힘이 티끌만큼도 없다.

  이보다 더 볼품없는 죽음이 있을까. 어머니가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신 뒤 나는 거의 일주일 가까이 길거리에서 술을 퍼마시며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몸을 일으킨 후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어머니의 공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해서 보니 공장은 언제와 같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드나들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하루아침에 이곳에서 어머니를 잃었는데.


  멍하니 공장을 바라보다가 나는 공장 안으로 걸어갔다. 처참한 꼴을 하고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란 공장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이옥림 씨 아드님 맞죠?” 나는 그들에게 대답대신 “그 엘리베이터가 어딥니까”라고 물었다.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모두가 조용히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공장 직원 하나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미친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연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엘리베이터 문을 내리쳤다. 옆에 있는 소화기를 뿌리고, 쌓여있던 상자들을 던지고 발로 걷어찼다.


  이런 나의 난동 소식에 공장장이 놀란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는 나를 말리려 팔에 매달리고 다리를 붙잡아 보았지만 내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장은 결국 경찰을 불렀다. 경찰서에 끌려온 뒤에도 나는 공장장을 향해 삿대질하고 욕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집어던지고 그의 뺨을 내리쳤다. 나를 뜯어말리는 경찰에게도 침을 뱉었다. 내 어머니를 돌려달라고 목 놓아 울부짖으면서.


  지쳐 나자빠진 내게 경찰은 공장장으로부터 내 사정을 들었는지 사정은 딱하지만 어쩌겠냐며,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어쭙잖은 위로에 미친 사람처럼 웃어젖혔다. 힘을 내라니. 지금 내게 힘을 내란 소리를 감히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이후로도 그는 내게 사는 곳이나 직업 등을 물었지만,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그렇게 한참을 나와 실랑이하던 경찰은 한숨을 푹 내쉬며, 경찰서로 누구든 부르라며 전화기를 내밀었다. 지금 내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어머니도 떠나고 나에겐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한참 쪼그려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내 앞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곧 쏟아질 것처럼 튀어나온 눈알. 빼빼 마른 체구. 거의 삼십 년 만에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은 거리에서 지내던 내 행색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사라도 건넬까 하다가 그마저도 말았다. 그리고 곧이어 이모도 나타났다.


  경찰은 아버지와 이모에게 심각한 얼굴로 지난밤 나의 만행을 털어놓았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이모는 나를 흘깃 보며 한숨을 푹 쉬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잠시 방황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해를 구했다. 방황. 나는 갑자기 그 단어가 괜히 거슬려 소리를 질러버렸다. 아버지란 사람은 이모의 입을 통해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도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눈만 끔뻑거리며 “죽었어?”라고 되물었다.


  이모의 간곡한 청 때문일까. 공장에서의 일은 조용히 마무리되고 나는 곧 경찰서를 떠날 수 있었다. 경찰서 문을 벗어나자 아버지는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길을 떠났다. 나 또한 어머니가 떠났다고 다시 아버지를 반기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었기에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이모는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내 팔을 잡아채며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집. 대체 내게 집은 어딜까. 쓴웃음만 나온다.


  꽤 오랜만에 이모와 함께 동네에 왔다. 이모는 나를 어머니와 살던 단칸방이 아닌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수건을 쥐여주며 일단 씻으라고 하더니 주방에 들어가 온갖 반찬을 꺼냈다. 깨끗하게 씻은 뒤 이모가 차린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하곤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어수선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병원에서 왔다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도저히 영문을 몰라 이모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병원에서 온 이들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만 남겼다. 나를? 나를 왜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지? 순간 벌컥 성질이 나 옆에 있던 밥상을 발로 걷어찼다.


  어머니를 잃었는데, 세상이 잠잠하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 누구도 어머니와 나에게 사과하는 이가 없다. 하루아침에 어머니가 사라졌다. 나는 화가 나 돌아버리겠는데 세상은 무탈한 듯 돌아가고 있다. 이런 나를 이모 또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멱살을 잡으며 실랑이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손이 묶인 채 병원 사람들에게 끌려 나갔다.


  신주 정신병원.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간호사와 보호사가 웃으며 나를 맞았다. 옷을 갈아입고 갖고 있던 소지품은 모두 반납했다. 이모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사라졌다. 입원 첫날.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같은 병실에는 침대에 계속해서 침을 뱉고 욕을 하는 사람도, 종일 울다 웃다가 헛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잠시 그들을 보다가 생각한다. 이 중 제일 정신이 나간 건 나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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